• 삼성 반도체, 테슬라-애플 수주에 다시 날갯짓? 막대한 투자 부담·수율 안정 과제 산적

    입력 : 2025.10.01 17:52:56

  •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 전반에서 다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메모리 초격차를 이어가는 가운데 테슬라 차세대 자율주행 칩과 애플 이미지센서라는 굵직한 계약을 따내며 파운드리 부문에서도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2나노 공정과 첨단 패키징 같은 차세대 기술 투자, 미국 텍사스 신공장 가동 계획이 맞물리면서 글로벌 고객사들의 신뢰 회복 조짐이 감지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미국 테슬라와 약 165억달러(22조~23조원대) 규모의 차세대 인공지능(AI) 칩 ‘AI6’ 위탁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단일 고객과의 거래 규모만 놓고 봐도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삼성 파운드리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상징적 성과다. 메모리 일변도라는 기존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 글로벌 대형 고객을 다시 붙잡았다는 점이 주목된다.

    테슬라 AI칩 23조 계약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삼성전자 북미 반도체연구소에서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삼성전자 북미 반도체연구소에서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번 계약의 핵심은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2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공정에서 빅테크 고객사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테슬라가 요구하는 고성능 자율주행 칩은 연산량이 막대해 초미세 공정이 필수적이다. 이 칩은 삼성 테일러 신공장을 활용해 생산된다. 이 공장은 170억달러가 투입된 삼성의 최대 미국 투자 프로젝트로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2나노 수율이다. 선폭이 극도로 좁아질수록 불량률 관리가 어려워, 일정 수준 이상의 수율을 확보하지 못하면 생산 단가가 급등한다. 삼성전자는 과거 4나노 초기 양산에서 수율 난관으로 고객사 일부를 경쟁사에 빼앗긴 전례가 있어, 이번 테슬라 프로젝트가 신뢰 회복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이번 수주는 지정학적 공급망 전략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테슬라는 미국 현지 생산을 통해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삼성전자는 현지 생산 기반을 강화해 TSMC와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 텍사스에서 생산된 칩은 관세와 규제 부담을 피하면서 테슬라의 자율주행 및 차량용 인공지능 기능에 직접 투입될 전망이다. 이는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리쇼어링’ 기조와도 궤를 같이 한다.

    계약 규모의 추가 확대 가능성도 남아 있다. 수주가 향후 차량용 AI칩을 넘어 데이터센터와 AI 서버용 반도체까지 확장된다면 삼성의 매출 기여도는 수십조원대로 더 불어날 수 있다.

    결국 이번 수주는 삼성에게 기회와 리스크가 공존하는 시험대로 평가된다. 2나노 공정의 조기 안정화, 테일러 공장의 원활한 가동, 고객사 신뢰 회복이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가 테슬라 칩을 성공적으로 공급한다면 TSMC와의 격차를 좁힐 계기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파운드리 신뢰도에 다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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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이미지센서도 수주

    테슬라에 이어 이번에는 애플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8월 아이폰 카메라 모듈에 들어가는 이미지센서(CIS) 공급처로 합류하게 됐다.

    애플은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 있는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전 세계 어디에서도 사용된 적 없는 혁신적인 신기술을 활용한 칩 생산을 위해 삼성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테슬라 수주가 파운드리 경쟁력 회복을 알린 신호였다면, 애플 CIS 계약은 시스템 반도체 전선에서 삼성의 기술과 신뢰가 다시 시장에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이 메모리 이후 시스템 반도체 영역에서도 다시 존재감을 회복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계약은 단순한 부품 납품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애플은 최근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핵심 부품 조달처를 다변화하고 있다. 미·중 갈등, 일본 의존도, 지정학적 불확실성 등이 겹치면서 그동안 소니에 집중됐던 이미지센서 공급 구조를 반드시 재편할 필요가 있었다. 삼성의 미국 텍사스 오스틴 반도체 라인이 CIS 생산지로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내 생산 확대’라는 애플의 전략과, ‘글로벌 고객 신뢰 회복’을 노리는 삼성이 이해관계에서 맞아떨어진 결과로도 읽힌다.

    시장 파급력도 크다. 애플은 연간 2억 대에 달하는 아이폰을 판매하는 명실공히 세계 최대 스마트폰 제조사다. 고화질 카메라 성능은 소비자 선택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CIS는 이미지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인 만큼, 삼성전자의 공급이 본격화되면 수조 원대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 애플은 소니 의존도가 낮아지고 삼성은 프리미엄 CIS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이번 움직임은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포트폴리오 확장과도 맞닿아 있다. 테슬라 AI칩 계약이 파운드리의 위상 회복을 보여줬다면, 애플 CIS 계약은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을 다시 입증하는 계기다.

    삼성전자가 내년 출시될 갤럭시S 시리즈에 자사 엑시노스 칩셋을 다시 탑재할 것이란 전망도 삼성 시스템 반도체의 경쟁력 강화에 힘을 싣고 있다. 오랫동안 퀄컴 스냅 드래곤에 밀려온 자사 모바일 AP가 다시 핵심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테슬라 자율주행 칩, 애플 이미지센서, 엑시노스 S시리즈 복귀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메모리 중심 구조를 넘어 파운드리·이미지센서·AP를 강화하며 반도체 전반의 경쟁력 회복에 나서고 있다. 업계는 글로벌 고객사 다변화와 기술 신뢰 회복이라는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소니·TSMC 등 주요 경쟁사와의 격차를 좁히려면 양산 안정성 확보와 투자 효율성 개선이 필수라고 지적한다.

    2나노·하이브리드 본딩·적층 CIS ‘관건’

    삼성전자가 반도체 경쟁력 회복을 위해 힘을 싣고 있는 또 하나의 축은 차세대 제조 기술이다. 파운드리에서는 2나노미터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공정 양산을 준비중이고, 패키징 분야에서는 HBM(고대역폭 메모리)용 하이브리드 본딩과 적층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지센서(CIS) 역시 다중 적층 구조를 도입해 해상도와 전력 효율을 동시에 높이며, 공정·패키징 전반에서 기술 우위를 확보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특히 2나노 GAA 공정은 삼성 파운드리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기술로 꼽힌다. 선폭이 2나노미터에 불과한 초미세 공정은 전력 효율과 성능에서 기존 3나노를 뛰어넘을 수 있지만, 안정적인 수율 확보가 관건이다. 업계는 테슬라 AI 칩 수주가 이 기술 신뢰도를 가름할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4나노에서 겪은 수율 난관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2나노에서 반드시 성과를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도 크다.

    첨단 패키징에서도 기술 고도화가 이어지고 있다. HBM 수요가 급증하면서 GPU와 AI 서버용 차세대 패키징 기술이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열압착(TC) 본딩을 넘어 D램을 직접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본딩 방식은 전력소모를 줄이고 속도를 크게 끌어올린다. 삼성전자가 HBM16단부터 이 기술을 적용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차세대 메모리 경쟁에서도 삼성의 행보는 빨라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삼성전자의 첨단 기술 투자는 단기 성과보다는 중장기 경쟁력 확보에 방점이 찍혀 있다. TSMC와의 선단 공정 격차, HBM 시장에서의 주도권 경쟁, 퀄컴과의 협력 구도 등 외부 변수는 여전히 만만치 않지만 2나노 GAA, 하이브리드 본딩, 적층 CIS 같은 기술이 안정적으로 안착한다면, 메모리 초격차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를 포함한 전반적인 사업 반등의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가 테슬라와 애플의 굵직한 수주를 따내고 차세대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반도체 부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여전히 넘어야 할 과제 또 많다고 보고 있다.

    선단 공정의 수율 안정, 막대한 투자 부담,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은 향후 행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과거 공정에서의 수율 난조처럼 한 차례의 시행착오만으로도 시장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삼성전자의 테슬라와 잇따른 애플 계약은 이러한 우려를 덮을 만큼의 기회로 평가된다. 테슬라 AI칩은 삼성 2나노 공정의 성과를 입증할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고, 애플 CIS 수주는 까다로운 글로벌 고객에게 다시 신뢰를 얻었다는 신호로 읽힌다.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 가동 등을 통해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강화라는 정책 기조와 맞물려 삼성의 입지를 넓히는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삼성전자가 기술·투자·글로벌 전략을 얼마나 정교하게 조율하느냐로 갈릴 전망이다. 수율 안정과 투자 효율, 지정학 변수 관리가 뒷받침된다면 삼성은 메모리 초격차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반등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박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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