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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판 당근마켓 ‘포시마크’ 품은 네이버의 전략은… 수익성 뒷걸음질에 해외진출 승부수
입력 : 2022.12.13 15: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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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초, 네이버가 깜짝 뉴스를 발표했다. 북미 최대 패션 C2C(개인 간 거래) 커뮤니티 ‘포시마크’를 16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밝힌 것. 네이버는 포시마크의 주식 9127만2609주를 약 2조3441억원에 취득한다고 공시했다. 인수가는 주당 17.9달러(약 2만5800원)이며, 주식 취득 뒤 지분은 100%다. 이는 네이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이며, 국내 인터넷 기업이 진행한 인수 중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젊은 피’이자 미국 유학파인 최수연 네이버 대표가 네이버를 무주공산 격인 글로벌 C2C 시장에서 독보적인 1위 기업으로 등극시켜 진정한 글로벌 테크기업으로 도약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과감한 투자라는 분석도 나왔다. 최 대표는 네이버 신사업 원칙으로 글로벌 진출과 1위 가능성을 꼽았다.
포시마크에 투자한 이유 ‘C2C’네이버가 포시마크에 통 큰 베팅을 한 것은 주력 사업인 커머스의 ‘차세대 먹거리’로 C2C 플랫폼을 점찍었기 때문이다. C2C 시장에서는 개인 간 전자상거래가 이뤄진다. C2C 플랫폼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판매자인 동시에 소비자가 된다. 단순 중고거래를 넘어 소비자들이 공통의 관심사를 기반으로 물건을 거래하는 것도 C2C의 특징이다. 플랫폼을 통해 해외 명품 등 구하기 어려운 상품을 웃돈을 얹어 판매하거나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식이다. 액티베이트 컨설팅에 따르면 미국의 중고거래 시장은 연평균 20% 성장해 2025년 약 1300억달러(약 186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최 대표는 인수 발표 후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 네이버 신사업 원칙으로 글로벌 진출과 1위 가능성을 꼽았다. 글로벌 커머스 시장은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꽉 잡고 있지만 중고거래로 대표되는 C2C 플랫폼 시장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네이버에 기회가 있다고 본 것이다. 기존 커머스 사업은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어서 MZ세대를 주 사용자층으로 둔 C2C 플랫폼은 네이버 미래 커머스 사업에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포시마크는 지역 단위의 소셜·커뮤니티 기능을 내세워 개인 간 거래를 할 수 있는 중고패션 플랫폼이다. 한국으로 치면 패션에 특화한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이다. 총 사용자 수가 8000만 명이며 이 중 80%가 MZ세대다. C2C 플랫폼에선 북미지역의 1위다. 인스타그램에서 게시물을 공유하는 것처럼 포시마크에서 매일 50만 건 이상의 판매글이 게시되고 ‘좋아요’ 등 소셜 인터랙션이 10억 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포시마크는 2018년 미국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가 선정하는 ‘넥스트 빌리언 달러 스타트업(Next Billion Dollar Startup)’에 선정됐다. 중고거래 플랫폼임에도 수익 모델(BM)이 분명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포시마크는 중고거래에 따른 20%의 수수료를 기반으로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고, 연 매출이 4000억원에 달한다. 플랫폼 사업자의 주요 수익 모델인 광고 매출이 아직 없기 때문에 추가적인 매출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김남선 네이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쿠팡도 창업 이래 지금까지 흑자를 낸 적 없을 정도로 커머스는 수익 내기가 어렵다. 중고거래 과금 모델이 성공한 적 없었는데, 포시마크는 작년까지 흑자를 낸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포시마크 인수 가격 비쌌나네이버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2조원대 인수·합병(M&A) ‘빅딜’을 공개했지만 주가는 급락하며 팬데믹 때 수준으로 회귀하기도 했다. 네이버 경영진은 고환율과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네이버가 포시마크를 시가보다 비싼 가격에 인수했다는 일부 주장을 일축했다. 네이버 최고경영진은 “합리적 가격의 인수이고, 시너지를 만들 수 있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며 방어에 나서기도 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는 지난 4일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주가를 보고 걱정들을 하시는 것 같은데 너무 심려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면서 “통상적으로 대형 M&A가 성사되면 시너지에 대해 불확실성이 있어서 주가가 약세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이번 딜에 대해 내외부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평가하고 있고, 중고패션 시장 자체가 아직 태동 시기이기 때문에 큰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최고재무책임자는 “최근에 거래되는 유사 업체들의 경우와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살폈을 때 (인수가가) 적정 가격의 범위 안에 들어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포시마크의 주요 경쟁사인 ‘디팝’이 북미 유명 C2C 업체인 엣시에 16억3000만달러(약 2조3266억원)에 인수된 사례를 언급하면서 “당시 디팝 매출 규모는 지금 포시마크의 5분의 1도 안 됐는데, 이번에 당시 디팝보다도 훨씬 낮은 약 12억달러의 순기업가치에 인수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네이버의 이번 포시마크 지분 인수 금액은 총 16억달러이다. 포시마크가 보유한 현금을 뺀 순기업가치는 12억달러(약 1조7000억원)이다. 시장에서는 네이버와 포시마크의 중·장기 시너지를 점치면서도 당장 수익을 내기 어려운 점을 부정적인 요소로 보고 있다. 실제로 포시마크는 연평균 20~30% 육박했던 성장률이 올해 들어 10% 수준으로 둔화됐다. 엔데믹 영향이 잦아들 것으로 예상되는 2024년에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마진 역시 다시 흑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게 네이버 경영진의 판단이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포시마크와 함께 커머스 분야에서 MZ세대향 커뮤니티 요소들로 한층 강화된 새로운 리테일 형식으로의 소비자 트렌드를 충족하도록 노력하겠다 밝혔다. 중고거래 포트폴리오 확장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명품 ‘리세일(Resale·중고)’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팬데믹 여파로 중고 명품 수요가 늘었고, 럭셔리 제품 소비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구매 주기가 짧아진 탓이다. 여기에 명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MZ세대가 ‘고퀄리티’ 중고 명품에 주목하면서 관련 플랫폼들이 몸집을 키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명품 중고 시장 규모가 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베인앤드컴퍼니의 ‘글로벌 럭셔리 시장 리포트’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중고 명품 시장 규모는 330억유로(약 44조3300억원)를 기록했다. 2017년 대비 65% 증가한 규모로, 같은 기간 신제품 성장세(12%)를 훌쩍 뛰어넘는다.
네이버는 중고거래 사업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네이버의 카페와 블로그 서비스를 통해 인터넷 커뮤니티 기반에서 개인 간 거래가 이뤄져왔다. 당근마켓 등 국내 중고거래 플랫폼보다 앞선 셈이다. 네이버는 만물상식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C2C 트렌드가 넘어오자 작년 초 스페인 최대 중고거래 플랫폼인 왈라팝에 투자했다. 올해 본격적으로 버티컬(특화) 중고거래 플랫폼에 주목하면서 자사의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 ‘크림’과 일본 빈티지패션 전문 플랫폼 ‘빈티지시티’, 작년에 투자한 프랑스 명품 리셀 플랫폼 베스티에르 등과 사업을 강화해왔다. 이 연장선에서 작년 말부터 포시마크와 사업 협력을 논의하다 통째로 품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로써 네이버는 글로벌 C2C 플랫폼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세계 최대 리커머스 사업자로 우뚝 서게 됐다.
특히 네이버는 코렐리아캐피털과 글로벌 리세일 플랫폼인 베스티에르 콜렉티브에 투자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최근 국내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국내 고가 명품 중고거래 시장은 뚜렷한 1위 사업자가 없는 상황이다. 당근마켓, 번개장터 등이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새로운 먹거리로 관련 사업을 키우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럭셔리 리셀 플랫폼 ‘베스티에르 콜렉티브’가 한국 시장 진출을 공식화하면서 시장 판도가 뒤흔들릴 것으로 보인다. 베스티에르 콜렉티브는 세계 최대 규모 럭셔리 리세일 플랫폼이다. 2009년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돼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2300만 명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럭셔리 시장에 집중하면서 미국 더리얼리얼, 스레드업과 함께 세계 3대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손꼽힌다.
막시밀리안 비트너 베스티에르 콜렉티브 최고경영자는 지난 9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국의 성장성뿐 아니라 성장 속도에 주목하고 있다”면서 “네이버·코렐리아와의 파트너십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 “아시아 시장 확대가 우리의 큰 미션인데, 교두보인 한국 생태계는 매우 독특하고 한국 시장과 소비자를 가장 잘 아는 회사인 네이버의 역할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올 9월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방한한 비트너 CEO는 네이버의 주요 경영진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심이 네이버와 베스티에르의 협업에 모이는 상황이다.
북미 시장서 의미 있는 성과 낼까네이버는 올해 3분기 매출 성장에도 수익성이 뒷걸음질 치는 다소 부진한 성적을 내놓았다. 웹툰을 비롯한 콘텐츠 사업의 급성장 등에 힘입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오히려 지난해 1분기 이후 6개 분기 만에 역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네이버는 연결 기준 올 3분기 매출액이 2조573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7273억원) 대비 19.1%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2조780억원)에 부합하는 양호한 실적이다.
문제는 수익성이다. 네이버의 3분기 영업이익은 1년 전(3498억원)보다 5.6% 줄어든 3302억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에 따른 광고 시장 둔화 등으로 하향 조정된 시장 전망치(3262억원)와는 비슷한 수준이지만, 영업이익률(16.1%)은 연결 실적에서 라인이 제외된 2020년 3분기 이래로 봤을 때 역대 최저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20%를 넘나들던 네이버의 영업이익률은 그동안 줄곧 하향 조정됐다.
네이버의 3분기 영업비용은 1조727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조3775억원)보다 25.4% 늘었다. 세부적으로는 인건비가 4335억원으로 17.8% 증가했으며, 파트너비 역시 이북재팬 등 신규 인수 법인 편입 효과로 31.6% 늘어난 7222억원을 기록했다. 인프라(19.3%), 마케팅(17.5%) 비용 등도 모두 증가했다. 수익성 개선보다 외형 성장만 좇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을 의식하듯 이날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네이버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성장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며 “단기 성과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시의적절한 중장기적인 안정성과 투자 균형도 중요하고, 그 중요성은 지난 20년간 네이버의 성장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에도 네이버가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네이버는 이제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 기술 리더십, 국내외 파트너십의 시너지를 통해 ‘멀티플’ 성장을 만들어내는 글로벌 3.0 단계에 돌입했다. 최 대표는 일본에 메신저 ‘라인’을 진출시켜 성공한 것을 ‘글로벌 1.0단계’로, 일본 Z홀딩스의 출범과 북미 최대 웹소설 사이트 왓패드 인수를 ‘글로벌 2.0단계’로 한다면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글로벌 사업 생태계 구축을 ‘글로벌 3.0단계’로 할 수 있다는 구상을 내놨다. 특히 지금 네이버의 거의 모든 사업이 진출 중인 일본을 넘어 IT의 ‘메이저리그’인 북미 시장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겠다는 각오를 피력해왔다.
포시마크 인수로 네이버의 글로벌 사업 역량도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네이버는 포시마크와 함께 커머스, 콘텐츠, 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북미의 MZ세대 공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양사는 네이버의 웹툰과 왓패드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엔터테인먼트 사업과 포시마크를 통한 커머스 사업 간 서비스적 연계를 높이기로 했다. 이번 인수에는 이해진 GIO(글로벌투자책임자)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표는 “네이버는 북미지역의 MZ세대를 더욱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며 “미래의 핵심 사용자들에게 C2C 쇼핑, 웹툰, K팝 콘텐츠를 넘나드는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면서 글로벌 C2C 시장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황순민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7호 (2022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