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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각설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 운명은
입력 : 2021.03.09 14: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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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사업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업 운영 방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습니다.” (권봉석 LG전자 사장)
LG전자의 ‘아픈 손가락’인 스마트폰 사업본부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마지막 히든카드 차세대 폼팩터인 ‘롤러블폰’을 세상에 내놓으며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롤러블폰은 출시하지 못한 채 중저가폰 시장을 공략하며 명맥을 유지해나갈 것인가. 결국에는 빅테크 기업 ‘구글’이나 베트남 기업 ‘빈 그룹’에 사업본부를 통째로 넘겨주게 될까.
LG전자가 올해 CES 2021에서 공개한 롤러블폰. 사진출처=LG전자
권봉석 사장은 사내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MC 사업본부 구성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에서 그는 “MC사업본부의 사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최근 몇 년 동안 제품 포트폴리오 개선 등을 통한 자원 운영의 효율화, 글로벌 생산지 조정, 혁신 제품 출시 등 각고의 노력들을 해왔다”면서도 “MC사업본부는 2015년 2분기 이래 2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이어오고 있으며 지난해 말까지 누적 영업적자는 5조원 규모”라고 현재 상황을 짚었다.
권 사장은 이어 “글로벌 시장에서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비즈니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LG전자는 모바일 사업과 관련해 현재와 미래의 경쟁력을 냉정하게 판단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으며, 현재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사업 운영 방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MC사업본부의 사업 운영 방향이 어떻게 정해지더라도 원칙적으로 구성원의 고용은 유지되니 불안해할 필요 없다”고 권 사장은 강조했다.
대표가 직접 나서 내부의 동요를 다독이면서 각종 논란을 불식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하지만 ‘매각설 사실 무근’이 아닌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밝히면서 사업부 전면 매각 같은 사업 전면 철수를 포함해 사업부 일부 매각, 사업부 축소 운영 등 각종 재편 시나리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때 LG전자에도 화려한 봄날이 있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인 2000년대 말까지 누적 판매만 1억 대에 달했다. 2006년 ‘초콜릿폰’으로 연간 650만 대를 판매하며 초대박을 터트린 데 이어 샤인폰, 프라다폰 등 히트작들을 줄줄이 내놓았고, 2008년 2분기에는 모토롤라를 제치고 노키아와 삼성전자에 이어 글로벌 순위 3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2009년 아이폰 출시로 시작된 스마트폰 혁명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이후 결과는 사업부 매각설에 직면한 상태다.
적자 구조 개선을 위해 LG전자가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2019년 스마트폰 국내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국내 최대 LG 스마트폰 생산 거점이었던 평택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했다. 2017년 5000명 수준이던 사업본부 인력은 타 사업부로 전환 배치하며 2020년 3700명까지 몸집을 줄여왔다.
하지만 LG 벨벳, LG 윙 등 야심차게 출시한 프리미엄 스마트폰은 잇따라 흥행에 실패했고, 세계 시장 점유율은 10위권까지 떨어졌다. 특히 기대했던 스위블폰 ‘LG 윙’의 참패가 컸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가로로 돌리는 폼팩터 ‘LG 윙’은 2019년 말 취임한 이연모 MC사업본부장이 야심차게 준비한 ‘익스플로러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었다. 하지만 LG 윙의 국내 누적판매량은 10만 대에 미치지 못했다. 삼성전자가 2020년에 출시한 갤럭시 S20이 ‘부진’ 평가에도 출시 첫 달 국내서만 60만 대가량 팔린 것과 비교해도 현저히 떨어지는 수치다.
업계 관계자는 “매각설이 처음 불거졌을 때만 해도 LG전자가 인공지능, 스마트홈, 사물인터넷의 핵심기기인 스마트폰 사업에서 손을 떼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계속 손해를 보기보다는 전장(자동차 전자장치)이나 프리미엄 가전, TV 등 미래 성장동력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권봉석 LG전자 사장이 지난 1월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 사업부 폐지설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전자·부품업계에 따르면 LG전자의 롤러블 스마트폰 ‘LG 롤러블’ 프로젝트는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LG 롤러블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공급을 맡은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BOE가 LG 롤러블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모두 홀딩시켰다는 얘기가 나온다. BOE는 자사 최대 고객사인 화웨이가 미국 제재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공장 가동을 위해서라도 롤러블 프로젝트를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홀딩 관련 설이 도는 것은 LG전자의 의중이 컸다는 분석이다.
당초 돌돌 말리는 스마트폰인 LG 롤러블은 이르면 3월에서 늦어도 상반기 내에 출시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LG 롤러블 티저를 CES에서 공개한 지 열흘 만에 LG전자 스마트폰 사업 전면 재검토가 공식화되면서 출시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업계에서는 LG전자가 최근 중국에서 롤러블폰 관련 디자인 특허를 출원한 것을 두고도 롤러블 출시를 염두에 뒀다기보다 ‘몸값 띄우기’로 보고 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중국특허청(CNIPA)이 공개한 LG전자 롤러블폰 관련 디자인 특허는 듀얼 디스플레이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셀카 촬영을 위한 카메라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후면에 보조 디스플레이를 부착한 형태로, 디스플레이를 펼칠 경우 최대 40% 늘어나 시중의 일반 태블릿PC보다도 더 큰 화면을 제공할 수 있다. 뒷면에는 슬라이딩하기 쉽도록 레일 시스템이 적용됐다.
물론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LG전자는 지난 1월 말 열린 2020년 4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현재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단말 사업 방향을 검토 중으로 현재까지는 아직 확정된 안이 없다”면서 “구성원 고용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해서 시너지 여부, 재무적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적안을 찾고 있는 중이다.
사업 방향성이 결정되면 최대한 빠르고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LG전자는 3월 주주총회와 이사회가 열리기 전까지 스마트폰 사업의 방향을 구체화할 전망이다.
2005년 출시된 LG 초콜릿폰
현재 LG전자에 인수 의향을 드러낸 기업은 빈그룹의 스마트폰 관련 계열사 빈스마트와 미국 구글, 독일 폴크스바겐 정도로 전해졌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후보는 베트남 빈 그룹 스마트폰 계열사 ‘빈스마트’다.
빈 그룹은 베트남 시가총액 1·2위를 다투는 현지 대기업으로, 베트남이라는 확실한 내수 시장이 있다. 게다가 베트남 현지에는 지난 2019년 이전한 평택 스마트폰 생산라인도 있다.
특히 LG전자는 주로 북미(전체 64%)에서 150달러(약 17만원) 미만의 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 중인데, 북미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는 빈스마트가 LG전자의 북미 시장 브랜드파워, 영업망 등을 탐내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의 빈 그룹은 프리미엄 폰 제조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하다. 베트남이라는 확실한 내수 시장이 있으니, LG전자의 프리미엄 폰 제조 기술을 접목하면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장 먼저 인수 의향을 밝힌 빈스마트의 경우 가장 높은 인수가를 제시했지만, 지식재산권(IP)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빈 그룹은 지난 1월 모바일·스마트폰 사업 확장을 위해 7조베트남동(3억360만달러)의 회사채도 발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탄까지 보유한 빈스마트가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설이 나오는 이유다. 구글의 경우에는 빈스마트보다 금액은 적게 제시했지만, IP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LG전자와 단말 사업에서 협력하기도 했다. 2012~2015년 넥서스4·5·5X 등을 함께 출시했다. 구글이 모바일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를 보유했고, 자체 스마트폰도 이따금씩 내놓고 있는 만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LG전자가 최근 세계 3위 자동차 종합부품회사인 마그나와 손잡고 설립한 전기차 파워트레인 합작법인 ‘LG 마그나’와 구글의 협력도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LG 마그나는 자율주행차 시대가 오면 차량을 대신 생산해주는 형태의 모델을 노리고 있는데, 구글이 향후 LG 마그나가 구글 웨이모를 생산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는 대신, LG전자 MC사업본부를 구글이 매각하는 형태가 그려질 수 있다. LG전자의 업계 관계자는 “빈스마트가 금액도 높게 제시하고, IP 요구도 하지 않았지만, LG전자가 매각을 망설이는 이유가 향후 구글의 자율주행 자회사 웨이모와의 시너지를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LG전자의 모바일 사업 철수 시 미래 사업에 차질이 우려된다는 지적에 대해선 핵심 기술 내재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동명 LG전자 MC경영관리담당은 “MC사업본부의 핵심 모바일 기술은 단말뿐만 아니라 스마트 가전, 자동차 전장 사업의 중요한 자산이다. 사물인터넷(IoT), 차량사물통신(V2X) 등 글로벌 기술 트렌드에 적기 대응하기 위해 MC사업본부와 CTO 내 표준연구소에서 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자사 핵심 모바일 기술이 미래 사업과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다양한 내재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돌리는 스마트폰 LG 윙. 사진출처=LG전자
이 같은 관측은 LG전자가 지난해 말 MC사업부 산하에서 ODM 사업을 맡고 있던 BTD 사업실(보급형 디바이스 담당부서)을 ‘ODM 사업담당’으로 격상하며 조직 규모를 키운 것에서 비롯한다. 대신에 기존 스마트폰 선행 연구와 마케팅 담당 조직은 연구소 내 조직으로 이관됐다. 스마트폰 생산을 담당했던 조직들도 통합되거나 다른 조직으로 이관됐다. 영업 조직도 슬림화했다. MC해외영업그룹에 속했던 ‘MC선행영업담당’도 다른 부서와 통합되며 조직 규모를 줄였다.
ODM 생산방식은 제조업체가 제품 설계와 부품 수급까지 맡아 진행한다. 브랜드 업체인 LG전자는 제품 기획과 마케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고, 생산 시설에 대한 투자 없이도 제조업체의 공정을 통해 원가 절감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LG전자의 지난해 ODM 비중은 전체 물량 중 70%까지 확대된 것으로 전해졌는데, 2019년 30% 비중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시장에서는 LG전자의 다음 스마트폰이 롤러블폰이 아닌 중저가 보급형 스마트폰 모델인 W 시리즈가 될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W 시리즈는 인도 시장에서만 출시되는 모델인데, 정보기술(IT) 팁스터(정보유출자)인 에반 블라스는 최근 ‘LG W41’ 제품 3개의 예상 이미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홍성용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6호 (2021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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