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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IT 공룡들 코로나19 이후 매출 시장 예상 능가, 현금 동원 규모 역대 최대… M&A도 활발
입력 : 2020.08.28 14: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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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경제위기를 떠올렸다. 코로나19 사태가 처음 터졌을 때의 이야기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환경이 되자, 전 세계의 비즈니스가 동시에 문을 닫았다. 리먼브러더스 같은 대형 금융회사들이 문을 닫았던 2008년 금융위기 이상의 충격파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도 많았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들은 투자자들에게 2분기 예상목표치를 맞추지 못할 것이라며 미리 경고를 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인 세콰이어는 비즈니스 활동 저하로 경제가 얼어붙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편지를 투자기업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미국에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셧다운, 코로나19 확산,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그로 인한 시위 확산 등.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경제적 불확실성들은 깊어져만 갔다.
하지만 웬걸. 그 모든 상황을 뚫고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의 IT 기업들은 시장을 놀라게 하는 실적들을 기록했다. 한국 시간으로 지난 7월 31일에 애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과 같은 거대 IT 기업들이 일제히 2분기(2020년 3~6월) 실적을 발표했는데, 시장 예상보다 낮은 매출액을 기록한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2월 중순부터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됐고,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된 것이 3월부터라는 점을 감안하면 2분기가 어쩌면 최악의 실적을 선사하는 시기였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정작 2분기 실적을 놓고 보니, 구글을 제외하면 모두 매출액이 전년 대비 크게 늘어났다. 이쯤 되면 코로나19 사태가 이들의 실적을 악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높은 매출을 올리게 도와줬다는 해석이 가능해질 정도다.
적어도 코로나19가 이들에게는 큰 타격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의 대표 주가지수 중 하나인 S&P500에서 이들(애플·아마존·구글·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상 최고치인 22%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들의 속내를 보면 결코 커졌다는 사실이 반갑지만은 않다. 왜 그럴까.
덩달아 이들의 현금보유량도 역대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빅 파이브’의 전체 유동자산(현금 및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의 합계)은 6500억달러 규모로 직전 최고기록인 지난해 4분기 6454억달러를 깼다. 미국의 이메일 뉴스매체 액시오스(Axios)는 “이처럼 두터운 현금 덕분에 이들 기업들은 야심찬 내부 투자를 단행할 수 있고, 잠재적 경쟁자들을 인수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질 수 있을 뿐더러, 자사주매입 위기관리 등을 통해 투자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 현지에 있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주변에는 정체 모를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이들의 실적 속에는 구조적 변화가 관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구글은 상장 이후 처음으로 디지털 광고 매출이 줄어들었다. 2000년대 이후 구글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검색광고 영역이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애플 역시 아이폰 매출이 생각만큼 크지 않아서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페이스북은 광고 외에는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없는 데다 지난 7월 벌어진 불매운동 등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매출 수단에 대한 갈증이 커지고 있다. 대신 각자의 신성장영역에서 매출이 상승하는 덕분에 이들은 코로나19 속에서도 사상최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클라우드(구글·아마존), 콘텐츠 및 서비스(애플), 게임(MS) 등이 대표적이다. 비록 매출이 잘 나오고 있지만 본래 사업이 흔들리는 상황은 결코 이들에게 좋은 시그널이 아니다. 게다가 이처럼 커지는 실적이 좋지만은 않은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마크 저커버그(가운데 화면 안) 페이스북 CEO가 7월 29일 시장독점 혐의로 조사받는 거대 IT기업들에 대한 미 하원 화상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 지난 7월 30일(한국시간) 열렸던 미국 IT 기업들에 대한 청문회였다. 특히 진보적 성향의 미국 민주당 의원들은 약 1년 동안의 조사를 바탕으로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애플 등이 갖고 있는 독점적 행태들을 폭로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제롯 네들러 민주당 하원의원은 페이스북의 내부문건을 들고 나와 페이스북의 2012년 인스타그램 인수가 페이스북에게 인스타그램이 잠재적 위협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페이스북 CFO였던 데이비드 에버스먼의 이메일에는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서(Neutralize competitors)’ 인스타그램을 인수해야 한다는 표현이 쓰여 있었다. ‘제거하다(Neutralize)’라는 표현은 흔히 군사작전에서 목표물을 없앤다는 뜻으로 쓰인다.
또한 아마존이 온라인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거래한 판매자들의 데이터를 자체 비즈니스에 활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아마존은 비즈니스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 판매자들의 데이터에 한 번이라도 접근하고 사용한 적이 없느냐’는 자야팔 하원의원의 질문에 베이조스 CEO는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미국의 하원 반독점 소위원회는 8월 말 이들의 비즈니스 관행을 바꾸는 내용의 정책제안서를 내놓을 계획이다. 말이 정책제안서이지, 사실상 이들 IT 기업들에게는 강력한 규제 법안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사력을 다해 로비전을 펼치고 있다. 잘못하면 회사가 쪼개질 수도 있는 엄중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은 IT 기업들에 대한 규제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공화당은 규제안에 대해 입법을 통한 해결은 반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입법을 통한 해결이 어렵다 하더라도 상황이 IT 기업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공화당은 트럼프 행정부가 법무부, 공정거래위원회(FTC) 등을 통해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에 대한 행정조치를 내리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와 공정위 등은 각기 구글 페이스북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르면 선거 전에 조사결과를 내놓을 계획이다.
선거가 지나간다고 해도 ‘너무 커졌다’는 인식은 IT 기업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단 민주당 대선 진영은 이들에게 우호적 시선을 보이고 있지 않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는 여러 방송에서 IT 기업들에 대한 과세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낙점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도 페이스북 청문회 등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등 IT 기업들에 견제를 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현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들에 대한 행정명령을 강화하는 등 견제론을 펴고 있다.
이런 사정들은 코로나19로 변화한 업무환경에 내부 직원들이 대응해야 하는 시간 때문에 발생한 일들이다. 최근 구글은 내부 직원 8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88% 이상의 직원들이 6점 이상(만점 9점)의 스트레스 지수를 호소했다고 한다. 가사노동을 하느라 업무에 시간을 보내기가 더욱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시간을 쪼개서 미팅을 잡아야 하고, 그 덕분에 회의는 더 많아지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는 더욱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에픽게임즈는 애플의 앱스토어 독점으로부터 포트나이트를 해방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프리포트나이트 캠페인 영상.
실리콘밸리의 전설을 쓰고 있는 IT 공룡들의 행보는 언제나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무서운 현금과 기술력,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현재 전 세계 최고의 파워집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더욱 덩치가 커졌음이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는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불투명한 미래와 싸우는 중이다.
[신현규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0호 (2020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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