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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vs TSMC, 시스템반도체 핵심사업 파운드리 ‘왕좌의 게임’ 2위 삼성 갈 길 멀지만, 승부는 최첨단 미세공정서
입력 : 2020.07.02 10:5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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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를 천명한 삼성전자에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은 목표 달성을 위해 놓칠 수 없는 사업이고 이를 위해서는 TSMC의 벽을 넘어야 한다. TSMC는 오랜 노하우로 축적된 기술뿐 아니라 공급 생태계, 거래처 등에서 강점을 가지며 삼성전자의 추격을 뿌리치고 있다. 특히 양사는 향후 승부가 최첨단 미세공정(회로 선폭을 줄이는 기술)에서 날 것으로 판단하고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두 회사만이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나노공정은 회로 폭을 나노미터(1㎚는 10억 분의 1m)급으로 줄여 반도체를 만드는 공정을 말한다. 나노공정이 미세해질수록 칩 크기를 줄일 수 있고 전력효율·성능도 개선할 수 있다.
TSMC와 삼성전자는 연내 나란히 5나노 반도체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3나노 공정을 활용한 칩은 2022년께야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삼성과 TSMC의 5나노 공정 양산 시점이 같은 만큼 고객사 확보 경쟁에도 불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올 들어 퀄컴 5G 모뎀칩 생산 계약을 따내는 등 구체적인 성과도 내고 있지만, TSMC는 오랜 노하우로 축적된 기술뿐 아니라 공급 생태계, 거래처 등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글로벌 파운드리 점유율(올해 1분기 기준)은 TSMC가 54.1%로 2위인 삼성전자(15.9%)를 멀찍이 따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2030년까지 TSMC를 넘는다는 목표를 세운 삼성전자는 7나노 이하의 초미세공정에서 주도권을 잡아 점유율 격차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간다는 방침이다. 추격의 핵심 키는 EUV 기술이다. EUV 노광 기술은 파장이 짧은 극자외선 광원으로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기술로, 기존 공정으로는 할 수 없는 초미세 회로 구현이 가능해 고성능·저전력 반도체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삼성전자는 지난달 국내에 두 번째 극자외선(EUV) 파운드리 생산라인 구축을 전격 발표했다. 지난해 4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30년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 1위에 오르겠다’고 선포한 이후 핵심 사업인 파운드리에서 기술 개발과 투자에 더욱 집중하며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 추격 속도전에 나선 것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평택사업장 2공장 일부에 2021년 가동을 목표로 EUV 기반 파운드리 생산 라인을 구축하는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화성에 EUV 전용 V1 라인을 가동하고 EUV 공정 기반 7나노 이하 차세대 파운드리 제품 생산에 돌입했다. 삼성전자는 화성 V1 라인 가동으로 올해 말 기준 7나노 이하 제품 생산 규모가 작년 대비 3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내년 평택 파운드리 생산라인까지 가동하면 7나노 이하 제품 생산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TSMC 대비 선단공정의 경쟁력을 빠르게 회복하는 계기로 작용하며 6나노 이하급 수주 활동이 비약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미국에 5나노 파운드리 공장 설립을 발표한 TSMC는 올해 5나노 공정 생산에 돌입하는 한편, 2나노 공정 개발에도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전자는 2나노 공정에 대해서는 따로 계획을 밝히지는 않았다. 양사의 파운드리 로드맵에 따르면 7나노 EUV 공정부터는 양사의 기술력이 비등하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파운드리 사업은 코로나19 여파와 상관없이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10나노 이하 미세공정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TSMC와 삼성전자밖에 없기 때문에 대기 수요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TSMC는 올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42%나 늘어난 매출을 기록하며 ‘업계 최강자’의 힘을 보여줬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의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추정치)은 작년 4분기 52.7%에서 올 1분기 54.1%로 높아졌고,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17.8%에서 15.9%로 낮아졌다.
이재용 부회장(오른쪽 첫번째)이 중국 산시성에 위치한 삼성전자 시안반도체 사업장을 찾아 생산 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월 ‘반도체 비전 2030’을 선포하면서 2030년까지 133조원을 투자해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 글로벌 1위에 오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사업에서 현재 세계 1위에 올라 있는데, 규모가 더 크고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도 정상에 오르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메모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비메모리(CPU·모바일AP·이미지센서 등)에서도 글로벌 1위를 달성한다면 삼성전자는 독보적인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에 오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삼성전자는 ▲모바일AP·이미지센서 경쟁력 강화 ▲차량용 반도체 개발 확대 ▲파운드리 선두(대만 TSMC) 추격 등 핵심 전략을 수립했다. 시스템반도체는 향후 5G,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새로운 수요가 늘 것으로 기대된다. 자동차용 반도체, 의료용 반도체, 인공지능(AI)용 반도체가 특히 유망하다는 평가다.
그 중에서도 파운드리는 시스템반도체의 핵심 축으로 삼성전자가 공을 들이고 있는 사업 분야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중요성을 강조한 까닭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주문형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구글, 테슬라,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글로벌 IT 기업을 중심으로 별도 반도체 설계 팀을 두는 곳이 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파운드리 기술 개발과 투자를 직접 챙기며 시스템반도체 비전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올 2월 첫 가동에 들어간 화성사업장 EUV 생산라인을 찾아 주요 경영진과 시스템반도체 사업 전략을 논의하면서 “이곳에서 만드는 작은 반도체에 인류 사회 공헌이라는 꿈이 담길 수 있도록 도전을 멈추지 말자”고 당부했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평택 2공장은 원래 메모리 생산라인으로 할당돼 있었으나 오늘 발표를 통해 이 공간 일부를 파운드리로 전환할 것”이라며 “TSMC 대비 선단공정의 경쟁력을 빠르게 회복하는 계기로 작용하며 6나노 이하급 수주 활동이 비약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내고 있다는 평가다.
올해 1분기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부문에서 매출 4조5000억원을 달성했다. 지난해 3분기(4조3300억원)에 이어 또다시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한 것인데, 반도체 부문 매출(17조6400억원) 중 시스템반도체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처음으로 25%를 넘었다.
5월 15일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을 둘러싼 대외 환경은 녹록지 않다.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 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업계 5위로 뛰어오른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가 미국 제재의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이 회사의 거센 추격에도 대응하면서 TSMC를 따라잡아야 한다.
최근 화웨이에 반도체 칩 공급을 중단토록 한 미국 정부 규제에 발맞춰 TSMC는 중국 화웨이의 신규 주문을 받지 않기로 했다. 앞서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달러를 들여 반도체 공장 건설을 발표한 바 있다.
그동안 화웨이와 하이실리콘(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회사)은 TSMC로부터 반도체 부품을 공급받아 왔는데 TSMC 전체 매출의 12%를 차지할 만큼 큰 고객사다. 그럼에도 TSMC가 화웨이를 포기하게 된 이유는 미국이 본격 가동한 대중국 공세 정책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제재가 단기적으로는 삼성에 이득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삼성전자가 지속적으로 수혜를 입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TSMC와 함께 ‘유이’하게 파운드리에 7나노 이하 미세공정을 적용한 회사이니만큼 화웨이가 삼성전자 쪽에 구애를 할 수 있지만, 삼성전자로서는 미국 정부 차원의 압박이 예상되는 만큼 섣부르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다.
외신과 업계 일각에서는 중국 화웨이가 삼성전자에 스마트폰용 비메모리 반도체의 위탁 생산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는 “고객사 관련 사항은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쟁사인 TSMC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하면서 향후 삼성전자의 행보에도 관심이 모인다. 삼성전자는 미국과 중국 시장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현지 고객사 확보 등의 이유로 미국 반도체 공장 증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2기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유휴 부지를 확보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에 11나노(㎚) 및 14나노 공정을 가동 중인데, 추가 투자에 나설 경우 EUV 노광 장비를 사용하는 최신 초미세 공정 생산라인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화성·기흥, 미국 오스틴 등 기존 파운드리 생산라인에 평택을 추가해 안정적인 4각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오스틴 공장의 EUV 추가투자가 투자를 이어간다면 개발과 제품 적시성이 중요한 고객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코로나19와 미중 무역분쟁에 더해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불확실성까지 커지자 반도체 부문의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 수립에 돌입했다.
IT 산업의 발달로 반도체가 다양한 산업과 연계되며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는 복잡한 기술력만큼 다양한 기업이 생태계를 이루고 분업과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구조다. 반도체 회사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제품 설계부터 완제품 생산까지 모든 분야를 자체 운영하는 ‘종합 반도체 업체(IDM)’와 제조 공장 없이 설계 기술만을 담당하는 ‘반도체 설계 업체(팹리스·Fabless)’, 반도체 제조를 전담하는 ‘파운드리(Foundry) 업체’가 있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팹리스 업체가 설계한 도면(아이디어)을 받아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분야다. 파운드리는 생산 공정을 전담하는 기업으로 자체 제품이 아닌 수탁생산을 주로 하고 있다. 즉 반도체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지만 직접 설계하여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객으로부터 위탁받은 제품을 대신 생산해 이익을 얻는 것이다. 반도체 생산을 위해서는 수조원대의 막대한 시설 투자비용이 들고 고도의 생산기술이 필요해 반도체를 개발하는 모든 회사들이 반도체를 생산하기는 어렵다. 파운드리는 수많은 팹리스 기업의 생산기지 역할을 수행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팹리스 업체로부터 나온 아이디어를 실제 반도체 칩으로 구현하는 파운드리 역할의 중요성도 증대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1974년 반도체 사업에 진출한 이래 40년 이상 메모리 사업을 추진하며 업계 1위를 차지했지만 비메모리 분야는 원천 기술과 개발 인력 부족으로 인해 격차가 벌어져 있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따라서 반도체 시장의 70%가량을 차지하는 비메모리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는 것이 삼성의 목표인 셈이다.
[황순민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8호 (2020년 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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