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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근거 마련된 망 이용료, 넷플릭스 버티기 들어가나?
입력 : 2020.05.29 10:3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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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호텔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그렇다고 한없이 백신만 기다릴 순 없는 법, 다양한 패키지에 언택트 서비스를 묶어 매출회복에 나섰다. 다시 일어서기 위한 대책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다. 코로나19 이후 집에 머물며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Over The Top)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난 것에 착안해 속속 관련 패키지를 선보이고 있다. 일례로 서울드래곤시티는 넷플릭스 시청이 가능한 셋톱박스를 객실에 들였다. 글래드 호텔앤리조트도 메종 글래드 제주에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을 이용할 수 있는 UHD 스마트 TV를 설치했다.
굳이 호텔을 찾지 않더라도 OTT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은 코로나19 이전보다 확실히 그 수가 늘었다. 최근 국내 OTT 시장에서 성장세가 도드라진 기업은 넷플릭스다. 전 세계 190여 개국에 1억8300만여 개의 유료 계정을 보유한 넷플릭스는 2016년 국내 진출 이후 빠르게 가입자 수를 늘리고 있다.
넷플릭스의 홍보문구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연결돼 있는 한국을 제대로 겨냥한 매력적인 문구이자 영민한 마케팅 전략이다. 그래서인지 실적도 남다르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국내 넷플릭스 결제금액 추정치는 올 3월 기준 362억원, 결제자는 272만 명으로 나타났다. 2018년 3월 같은 조사에서 결제금액 추정치는 34억원, 결제자는 26만 명에 불과했다. 2년 사이에 10배나 그 수를 늘린 것이다. 1명이 결제하면 2~3명이 계정을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이라 업계에선 실제 이용자수가 적어도 6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성장가도를 달리던 넷플릭스가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건 지난해 말. SK브로드밴드가 방송통신위원회에 넷플릭스와의 망 이용 대가 협상을 중재해달라고 신청하면서 망 이용료에 대한 인터넷회선사업자(ISP·Internet Service Provider)와 콘텐츠사업자(CP·Content Provider)의 갈등이 쟁점화됐다. 급기야 방통위가 5월 중재 결과를 발표하기 전인 지난 4월 14일,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다. 넷플릭스의 국내 법인인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낸 소장에는 ‘트래픽과 관련해 망의 운용과 증설, 이용 등의 대가인 망 이용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두 기업 간의 소송은 국내 정보통신기술(ICT)업계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됐다. 법원 결정에 따라 ISP와 CP의 입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사가 ISP, 넷플릭스,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외 기업이 CP다. CP는 자체 제작한 콘텐츠를 망에 공급하고 ISP는 이 데이터를 소비자에게 전달해 각각 수익을 올리고 있다.
넷플릭스의 인기 상영작 <잉글리시 게임>
국회 본회의 표결 현장
이러한 논란은 지난 5월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윈회가 글로벌 CP들에 망 이용료를 부담하게 하는 역차별 해소 법안(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의결하며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국내 CP는 이용료를 부담하는 반면 해외 CP들은 그렇지 않은 상황을 역차별에 해당한다고 봤다. 업계에선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CP들의 망 무임승차에 제동을 걸 발판이 마련됐다”고 분석했다. 유민봉 미래통합당 의원과 김경진 무소속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CP들에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적 조치 의무를 부과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서비스 품질을 떨어뜨릴 수 없도록 규정했다.
지난 5월 20일에는 국회 본회의도 통과했다. 이날 통과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에는 기간통신사업자뿐 아니라 부가통신사업자, 즉 인터넷을 통해 콘텐츠나 플랫폼을 제공하는 업체들도 안정적 서비스 제공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조항은 해외 CP가 국내 인터넷 인프라에 무임승차해 책임과 비용은 지지 않고 수익만 가져가는 것을 막자는 취지로 신설됐다. 일명 ‘넷플릭스법’으로 불리는 이유다. 업계에선 “이번 법 개정으로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해외 CP들이 망 이용료를 낼 가능성이 커졌다”고 해석한다. 국내 통신사들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ISP업계 관계자는 “무엇보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빠져나가던 해외 CP에 들이밀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해외 CP들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방통위 감독망을 피해왔던 그간의 사안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개정안이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넷플릭스 측은 “국회의 판단을 존중하며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SK브로드밴드 측은 “이용자 보호에 있어 ISP와 CP에게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왔다”며 “글로벌 CP에 대해서도 이용자 보호 의무가 있다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에서 상영 중인 국내시리즈 <킹덤> 시즌2
그런가 하면 이번 개정안으로 인해 국내 CP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부가통신사업자가 서비스 안정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지난 5월 4일 성명서를 통해 “망 품질 유지는 통신사 본연의 의무”라며 “불공정 개정을 통해 CP가 부당한 의무를 지게 되면 CP들에게 족쇄가 돼 결과적으로 디지털 국가경쟁력을 깎아먹는 개정안이 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7호 (2020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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