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 나는 플라잉카에 꽂힌 자동차 업계… 벤츠·아우디·현대차 등 상용화 경쟁 치열
입력 : 2019.10.28 14:29:35
-
‘하늘을 나는 자동차(플라잉카·Flying Car)’ 시대가 오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자동차라기보단 헬기에 가깝다. 무인헬기라고 봐야할 것 같다.
학계에서는 개인비행체(PAV·Personal Air Vehicle)라고도 부른다. 주로 도심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한 용도로 활용될 전망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는 ‘도심 항공 모빌리티(UAM·Urban Air Mobility)’라고 규정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은 ‘자동차(Car)’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어렵다며 ‘달리는 비행기(드라이빙 에어플레인·Driving Airplane)’라고 명명했다.
플라잉카 혹은 드라이빙 에어플레인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자율주행 무인 택시(Taxi) 서비스에 있다. 그래서 에어택시(Air Taxi)라고 부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에어택시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고객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운전자 없이 최대한 빨리 수송하는 것이다. 개인이 소유하는 게 아니라 공유한다. 에어택시에서 내려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마지막 1마일(라스트 마일·Last Mile)은 전동킥보드나 전기자전거가 맡는다. 킥보드와 자전거 역시 소유가 아니라 공유의 대상이다. 출발지점부터 목적지까지 모든 이동 과정에 필요한 예약, 탑승, 운항(이동) 등은 하나의 통합 플랫폼으로 관리된다. 지금은 꿈같은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미 하나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플라잉카 개발 가속페달
현대차그룹은 지난 9월 30일 도심용 항공 모빌리티 핵심기술 개발과 사업추진을 전담하는 ‘UAM 사업부’를 신설하고, NASA 항공연구총괄본부 본부장 출신 신재원 박사를 사업부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UAM 사업부’를 총괄하는 신 부사장은 미래항공연구와 안전 부문 베테랑급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1989년 NASA 산하 글렌리서치센터에 입사했다. 1998년 글렌리서치센터 항공안전기술개발실 실장에 오른 데 이어 2001년에 항공연구본부 본부장으로 승진하는 등 항공연구 부문 전문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미 항공우주국 워싱턴본부 항공연구총괄본부 부본부장으로 승진해 항공부문 기초연구 강화와 차세대 항공 운송 시스템 개발을 선도했다.
입사 19년 만인 2008년에는 동양인 최초로 NASA 최고위직인 항공연구 총괄본부 본부장으로 승진해 NASA의 모든 항공연구와 기술개발을 관리하는 최고 위치에 올랐다. 특히 플라잉카와 무인항공 시스템(UAS·Unmanned Aerial System), 초음속 비행기 등 신개념 미래항공 연구와 전략방향을 설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현대차그룹이 신 부사장을 영입한 궁극적인 목적은 고객들에게 이동의 자유로움(Freedom in Mobility)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현대차 관계자는 “도심 항공 모빌리티는 공중비행으로 교통체증을 유발시키지 않으면서 수직 이착륙을 활용해 활주로 없이도 도심 내 이동이 가능해 자동차와 항공기의 단점을 보완한 혁신적인 미래 도심 이동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미국의 교통정보분석기업 ‘인릭스(INRIX)’는 2018년 미국 운전자들이 교통정체로 도로에서 허비한 시간은 평균 97시간으로 추산했으며, 금액(기회비용)으로 환산하면 1인당 1348달러(약 155만원)이고 전체적으로 총 870억달러(약 100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특히 미국에서 교통체증 1위로 도시로 지목된 보스턴에서는 운전자가 길에서 소비한 시간이 164시간, 기회비용은 2291달러에 달했다. 다음으로 워싱턴 DC 155시간, 시카고와 시애틀 138시간, 뉴욕 133시간 순이었다.
물류 부문에서도 항공 모빌리티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드론(무인항공기)을 활용한 도심 배송은 조만간 시장에 출현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자료에 따르면 2040년까지 글로벌 도심 항공 모빌리티 시장은 1조5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차량공유 업체 우버(Uber)는 플라잉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플라잉카까지 자신들의 공유 모빌리티 생태계에 포함해 우버 앱 하나로 이동과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우버는 이미 2018년 7월 미국 최대 전동킥보드 공유 업체 ‘라임’에 구글과 함께 3억3500만달러를 투자했다. 전동킥보드는 우버 택시와 우버 에어택시를 이용하기 전·후 라스트 마일 단계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버는 오는 2023년을 목표로 보잉의 자회사인 오로라 플라이트 사이언스(Aurora Flight Sciences), 세계적인 헬기 제조사인 벨(Bell Helicopter), 브라질 항공기 제조사 엠브라에르(Embraer) 등과 공동으로 플라잉카를 개발하고 있다.
우버는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9’에서 벨과 함께 수직 이착륙(VTOL·Vertical Take-Off and Landing)이 가능한 플라잉카 ‘벨 넥서스(Bell Nexus)’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벨 넥서스는 대형 프로펠러 6개를 달고 전기를 동력으로 사용한다. 최대 4명까지 탑승할 수 있다. 최고 속도는 시속 241㎞에 이른다. 벨은 내년 초 시험 비행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 6월 로스앤젤레스 ‘엘리베이트 서밋(Elevate Summit)’에서 우버는 내년부터 호주 멜버른에서 ‘우버 에어’ 시범 운영을 시작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댈러스와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시범 운영이 이뤄질 전망이다. 엘리베이트는 우버의 플라잉카 프로젝트 명칭이다. 우버 에어는 우버가 플라잉카를 통해 제공할 택시 서비스 이름이다.
AM4+AM5 LONDON (에어로모빌 플라잉카 런던 예상도)
글로벌 항공기 제작사 양대 산맥인 미국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도 플라잉카 개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우선 보잉은 지난 2017년 무인 자율 비행 업체인 오로라 플라이트를 인수해 자회사로 두고 플라잉카를 개발 중이다.
오로라 플라이트는 올해 초 미국 버지니아주 머내서스에서 승객을 태울 수 있는 자율 비행 자동차의 이착륙 시험을 마쳤다. 데니스 뮬렌버그 보잉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트위터에 “콘셉트를 잡기부터 비행 택시 시제품을 선보이기까지 1년이 걸렸다”며 “비행 택시 공개 행사에서 우리 보잉과 오로라 플라이트 사이언스 팀의 혁신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전기 배터리로 움직이는 시제품은 50마일(80.47㎞)을 이동할 수 있다. 길이는 30피트(9.14m), 폭은 28피트(8.53m)에 이른다. 첫 시험 비행은 수직 이착륙 위주로 진행됐다. 앞으로 수직 이착륙에서 전방 비행으로 변환하는 시험도 거칠 예정이다.
에어버스는 지난해 초 1인용 플라잉카 바하나(Vahana), 올해 5월 4인용 플라잉카 시티에어버스(CityAirbus) 시험비행에 각각 성공했다. 에어버스는 자회사 ‘붐(Voom)’의 스마트폰 기반 플랫폼을 통해 바하나, 시티에어버스 등 플라잉카 예약·탑승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볼로콥터가 개발한 볼로시티가 밤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모습
다임러(벤츠), 아우디, 포르쉐 등 독일의 완성차 업체들도 플라잉카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대차를 비롯해 완성차 업체들이 뛰어들고 있다는 것은 자율주행차 시장처럼 플라잉카 시장도 아직 확실한 주도권을 쥔 곳이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자율주행차 시장의 경우 한편에서는 구글과 바이두, 인텔 등 정보기술(IT) 업체가 뛰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GM, 포드, 도요타, 다임러, 현대차 등도 상용화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완성차 업체 중 다임러는 지난 2017년 ‘볼로콥터(Volocopter)’에 투자를 하고 플라잉카 개발에 나섰다. 볼로콥터는 최근 중국의 지리자동차로부터 투자를 유치하기도 한 세계적인 플라잉카 개발 업체다. 볼로콥터는 지난 8월 첫 번째 상업용 플라잉카 ‘볼로시티(VoloCity)’를 공개해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볼로시티는 최대 2명까지 탑승할 수 있으며, 최고 속도는 시속 110㎞다. 비행거리는 약 35㎞로 짧은 편이다.
아우디 플라잉카
고성능차 제조사인 포르쉐도 최근 플라잉카 개발에 나섰다고 밝혔다. 포르쉐가 손잡은 기업은 보잉이다. 양사는 지난 10월 10일(현지시간) 도심지역 항공운송 분야에서 제휴관계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포르쉐가 슈퍼카 브랜드라는 점을 고려할 때 보잉과 함께 내놓을 플라잉카도 고급화를 지향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에어버스가 2018년 11월 발표한 플리잉카 서비스
2025년 완전자율주행 플라잉택시
슬로바키아에 뿌리를 둔 에어로모빌(AeroMobil)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플라잉카 업계에서는 유명한 기업이다. 이 회사는 2010년에 설립됐는데 헬기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다른 업체들의 플라잉카와 달리 자동차와 비행기를 결합한 플라잉카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비행자동차, 달리는 비행기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평소엔 자동차로 사용하다가 길이 막히면 날아 오른다. 현재 버전 4.0까지 개발을 완료했고, 내년에 버전 4.0의 상업용 모델을 전 세계에 선보일 계획이다. 오는 2025년에는 완전자율주행이 가능한 플라잉택시를 출시하겠다는 목표로 세워둔 상태다.
구글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가 투자한 스타트업 키티호크(Kitty Hawk)도 플라잉카 분야에서 다크호스로 꼽힌다. 키티호크는 승객 2명을 태운 채 자율비행하는 비행 택시 ‘코라’와 1인승 비행 차량 ‘플라이어’를 개발했다. 우버처럼 오는 2023년 상용화를 목표로 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보잉과 손을 잡고 플라잉카를 개발하기로 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문지웅 매일경제 사회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0호 (2019년 11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