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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유통은 사람냄새 나야 산다” 유럽선 관광객 몰리는 전통시장 브랜드화
입력 : 2019.04.03 15: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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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셀프리지 백화점
셀프리지 도어맨 빌은 “셀프리지 백화점 단골 고객은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찾아오는 분들도 많다”며 “이들을 위해서 백화점은 항상 새로운 것을 제공하기 위해 매일매일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때마침 점심 무렵이어서 그는 백화점 위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저기 위에 보이는 식당(브라서리 오브 라이트)에 가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영국 출신 현대 미술의 대가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가 만든 무려 24피트(731㎝) 높이의 거대하고 멋진 조각상 ‘나는 말(flying horse)’ 아래에서 샴페인과 곁들여 맛난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고 권했다. 하얀 머리와 수염, 파란 눈… 전형적인 영국인 풍모의 빌은 직장에서 퇴직한 후 2년 전 고용돼 이곳에서 일하고 있어 아주 운이 좋다고 전했다.
기자가 방문했던 3월 초 런던 셀프리지 백화점은 ‘스테이트 오브 더 아트(State of the Art)’라는 캠페인이 한창이었다. 아주 널찍한 백화점 공간을 활용해 구석구석에 현대예술 작품을 배치하여 거대한 갤러리로 변신한 프로젝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예술을 접하게 한다는 콘셉트에 걸맞게 일본을 대표하는 여류 예술가 쿠사마 야요이, 리처드 라이트 등 쟁쟁한 대가들의 작품을 12개 배치하고 아트숍도 배치해 고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커머스가 득세하는 시대에 오프라인 유통매장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드는 한편, 사람 냄새 폴폴 나는 것이야말로 차별화된 경쟁력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이다.런던 백화점 셀트리지의 도어맨 빌
리스본 ‘타임아웃’ 마켓
해외여행 좀 다녀봤다 하는 이들이라면 ‘타임아웃’이라는 무료 영문 잡지를 기억할 것이다. 주로 그 지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행사와 맛집 등 여행 정보를 바로 얻을 수 있어서 낯선 곳에 도착하면 타임아웃부터 챙기는 게 버릇이 됐다. 바로 벌어지는 이벤트를 총정리해 보여주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라인이 득세하는 시장에서 타임아웃도 이제 더 이상 잡지 형태로 인쇄된 것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잡지에서와 같은 정보를 제공하는가 하면 특히 한국 관광객들의 포르투갈 여행이 늘어나면서 필수 방문 장소로 떠오른 시장이 바로 이곳에 있다.
해안가 인근 기차역(카이스 도 소드레) 근처 타임아웃마켓은 트립어드바이저의 리스본 음식점 중에서 1위를 지키고 있는 강력한 곳이다. 원래 지난 1100년부터 운영된 전통시장 ‘메르카도 다 히베이라’와 나란히 있어 시너지를 내고 있다. 리스본에서는 2000년 도매시장 기능이 시 외곽으로 빠지면서 재래시장이 역할을 다하지 못할 상황이 되자 그 자리를 대체할 만한 사업자를 찾기 위해 아이디어 공모전을 붙었다. 2011년 타임아웃 리스본팀이 해당 사업권을 따내면서 전체 건물의 절반 동쪽은 과일이나 생선 등 기존 재래시장 신선식품을 팔고, 나머지 서측 지상 공간을 타임아웃이 푸드코트로 개발하게 된 것이다. 2014년 5월 오픈 이후 현지인은 물론 해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하면서 리스본 관광산업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타임아웃마켓 리스본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음식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푸드코트 개념이다. 아주 널찍한 공간 둘레에 식당들이 있고 쾌적한 나무 테이블이 펼쳐져 있어서 탁 트인 개방감이 매력적인 공간이다.타임아웃마켓 리스본
▶런던 유명 셰프들도 애정하는 버로 마켓
영국 런던 서더크구 템즈 강변에 자리 잡은 터줏대감 버로 마켓은 런던 토박이들은 물론, 관광객들에게도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전통 시장으로 첫손에 꼽힌다. 지난 2014년 개장 1000주년을 기념한 이 시장은 런던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식품 시장이다. 생각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품목이 겹치지 않는 편이어서 차별화된 고품질 먹거리를 원하는 사람들이 아침 핵심 코스로 방문한다.영국 버로 마켓
일부 관광객들은 유기농 과일 등이 다소 비싼 탓에 실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대를 이어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시장 상인들의 먹거리 위생 상태나 제조 과정에 대한 신뢰가 강해 런던 토박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이곳의 ‘애플비’도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줄서서 먹어야 하는 유명한 식당 중 하나다. 도넛으로 유명한 ‘오버 브레드’는 점포에서 파는 빵과 외부에서 파는 빵의 종류가 다를 정도로 철저히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한다.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꼭 먹어봐야 할 커스터드 도넛으로 회자되고 있는데 자칫 줄을 잘못 섰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 시장 근처 몬머스(Monmouth) 커피는 본점은 아니지만 아침에 장 보러 오는 사람들이 꼭 들르는, 커피가 맛나기로 유명한 곳이다. 원두를 막 갈아 내려주는 드립 커피와 친절한 미소로 주문받는 직원들은 카페의 트레이드마크다.
▶포르투 임시 전통시장 상인들 얼굴로 호객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볼량(Mercado do Bolhao) 시장을 꼽을 수 있다. 1914년에 세워진 이 시장은 지난해 봄부터 2년 일정으로 개보수 공사에 들어간 상황이어서 임시로 라비에 쇼핑몰 인근 지하로 이전한 상태다. 물가가 저렴하기로 유명한 포르투갈에서도 이 재래시장은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 꽃 등이 가득 쌓인 모습을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저렴하고 다양한 기념품을 구매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현재 신식 건물의 지하로 들어와 기존의 천막처럼 열린 재래시장 특유의 분위기는 나지 않지만 시장으로 입장하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이 시장 상인들의 얼굴로 휘장을 걸어서 장식한 모습은 장관이다. 이 장면이야말로 재래시장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기존보다 눈에 띄지 않는 길목의 지하상가 아래로 임시 시장이 들어가야 하다보니 북적북적한 재래시장 분위기를 영 살려내기 어려워 만든 고육지책이었겠지만 일단 상인들이 넉넉하게 활짝 웃는 모습들을 보면 반가우면서 전통시장 특유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재래시장이 리뉴얼에 들어간 것도 인근 대형 쇼핑몰 입점과 상권 변화로 상점가의 일부 매장이 문을 열지 않는 등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임시 시장에서도 드문드문 열지 않은 상점들이 있었다. 새로 오픈하는 현대식 시장에도 고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시장의 연속성을 살려가려는 노력이 보인다.
포르투에서도 전통시장 현대화 과정에서 기존 시장 상인들이 갈등을 겪고 있다. 현재 포르투 유명 관광지인 볼사 궁전(Palacio da Bolsa) 인근에는 빨간색 현대식 건물이 지어져 있다. 원래는 페레이라 보르게스 마켓이라는 재래시장이 있던 자리인데 현대식 건물을 짓고 기존 상인들을 유치하려 했으나 상인들의 반발로 결국 하드클럽이라는 라이브음악 공연장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대표적인 관광지 인근이기는 하나 주변 지역 특성이나 건물 외양이 전통시장 이미지와 잘 어울리지 않는 측면도 있다.
[런던·리스본·포르투 = 이한나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3호 (2019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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