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격변의 뉴욕 유통 현장 가보니…위워크 앞 아마존 서점은 스페셜티 카페 겸해 미 最古 백화점 맨해튼 본점은 ‘눈물의 폐업’

    입력 : 2018.08.30 08:15:59

  •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피프스애비뉴의 백화점 로드앤테일러. 일요일 오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5층 드레스 전용 매장에서는 몇몇 여성들이 보물찾기 하듯 물건을 고르느라 바빴다. 독립기념일 세일 품목들이 일부 남아있었고, 1000달러가 넘는 드레스에 75% 할인 태그가 붙어 있기도 했다. 막 계산을 마치고 나오던 한 동양계 여성은 요즘 유행하는 가운 형식의 옷(로브)을 각종 쿠폰을 써서 40달러였던 것을 19달러에 건졌다며 자랑했다.

    1층 화장품·핸드백 매장은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매장에 띄엄띄엄 직원들이 있었지만 손님이 와도 말을 건네기는커녕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다른 매장 직원과 잡담하기 바빴다. 쿠폰이 없어도 온라인 사이트처럼 추가 10%, 15%를 적용해 주기도 한다. 현존하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인 로드앤테일러가 내년 초 폐업을 앞둔 현장이다. 아웃렛보다 오래되지 않은 상품들이 앞으로 본격 ‘떨이 세일(Clearance sale)’로 정리될 전망이다.

    이 백화점을 보유한 캐나다 유통기업 허드슨베이컴퍼니(HBC)는 지난해 10월 맨해튼 백화점 건물을 공유 오피스업체 위워크에 8억5000만달러에 매각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때만 해도 이 건물에 임차 방식으로 백화점은 유지할 계획이었다. 백화점의 뉴욕 맨해튼 매장은 수익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고급 이미지를 형성하고 전국에 흩어진 매장들에 전반적인 광고 효과를 고려한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판알을 튕겨본 HBC 측은 지난달 초 결국 미 북동부 위주의 로드앤테일러 48개 매장 중에서 맨해튼 매장을 포함해 10곳의 문을 닫는다고 발표했다. 미국 최고령 백화점의 폐점 소식에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물론 백화점에 추억이 가득한 뉴요커 중년 여성들은 충격이 컸다. 이미 JC페니와 메이시스 등이 매장 정리를 발표한 후이기도 했다. 로드앤테일러는 뉴욕 토박이 여성들에게는 사교의 장이었다. 뉴욕 유명 브런치 장소인 사라베스 카페와 레스토랑이 백화점 안에 들어왔을 정도다. 쇼핑을 돕는 퍼스널쇼퍼 서비스를 처음 도입한 곳이고, 미국 유통업계 최초로 1945년 도로시 세이버라는 여성 경영자를 배출할 정도로 혁신적인 기업으로 통했다. 판매용이 아니라 순수하게 고객 만족을 위해 크리스마스 장식을 시도한 첫 매장이었고, 1938년 움직이는 백화점 윈도 디스플레이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특히 드레스 매장이 전매특허처럼 유명했고, 로드앤테일러 로고를 단 액세서리와 의류 등 패션 PB(Private Brand) 상품도 경쟁력 있었다.

    이 백화점과 거래하던 한 피혁업체 담당자는 “미국의 대표 디자이너 케이트 스페이드의 자살 소식이 나올 때 터진 로드앤테일러 맨해튼 매장 폐업 소식은 충격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 가을 겨울 상품 주문을 받아 생산까지 마쳤지만 폐업 세일 대상이 되는 것은 브랜드 가치 훼손이 불가피해서 아예 주문 취소를 받아줬다”며 “손해를 떠안을 재정적 여력이 없는 기업들은 가을 상품을 고스란히 선적할 수밖에 없어 사실상 하반기부터 아웃렛처럼 변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마존북스 매장
    아마존북스 매장
    사진설명
    ▶104년째 5번 대로 터줏대감 로드앤테일러,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

    현대화 리뉴얼 노력에도 디지털 전략 실패로

    젊은고객 유치 못해

    로드앤테일러는 영국 이민자 사뮤엘 로드가 1824년 창업한 잡화점에서 출발해 백화점으로 발전했다. 피프스애비뉴 본점은 1914년 38번가와 39번가 사이에 개장했다. 20세기 초반 백화점 건축으로 유명한 건축사무소 스타렛 앤 반 블렉(Starrett & van Vleck)이 지은 이 건물은 2007년 뉴욕시 랜드마크로 지정됐다.

    HBC도 북미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으로 꼽힌다. 1670년 북미지역 모피교역을 위해 설립된 영국 특허기업 출신이다. 캐나다 유일의 백화점인 ‘더 베이(the Bay)’를 운영하는 캐나다 최대 소매유통업체로 토론토 증권거래소에도 상장돼 있다. 이 회사는 2006년 로드앤테일러에 이어 2013년 미 백화점 삭스피프스도 인수해 운영 중이다. HBC 매출이 올 1분기 1% 증가한 31억달러를 기록한 것은 삭스피프스 매출이 6%나 뛴 덕분이다. 반면 로드앤테일러는 리뉴얼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전을 면치 못했다.

    계열사로 있던 지난 2010년 로드앤테일러 맨해튼 매장 리뉴얼에만 약 1억5000만달러를 썼고, 지난해에는 브라이드사이드와 손잡고 신부전용숍도 여는 등 1200만달러를 들여 리노베이션을 마쳤다. 드레스숍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투자에 나섰지만 노령의 백인 여성 위주 고객층은 변하지 않았고, 다양한 젊은 고객들을 새로 끌어들이기엔 역부족이었다. 경쟁 백화점인 삭스피프스나 노드스트롬과 달리 아웃렛 사업도 지지부진했다. 아마존과 대항하기 위해 월마트와 손잡고 온라인 전략을 펼친 것도 큰 성과가 없었다. 개인정보 유출과 온라인 뉴스 조작 등 각종 구설수에 시달리다가 결국 올해 2월 미국 편의점업체 CVS 대표 출신인 헬레나 폴크스가 CEO(최고경영자)로 영입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에 연연하지 않고 디지털 전환을 위해 전격 결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리처드 베이커 HBC 회장은 “로드앤테일러 인수 때부터 부동산 가치(Trophy location)에 대한 고려가 있었다”며 “우리 주주들에게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 우리의 부동산 포트폴리오의 강점을 잘 활용해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존이 촉발한 구경제의 몰락이 또 다른 신경제 업체인 위워크로 전환되는 모양새다. 위워크는 이미 뉴욕시에만 무려 53개 빌딩에 진출해 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나 브라이언트파크 등 목 좋은 곳 인근을 선점해 향후 부동산 가치 향상도 기대된다. 위워크는 월회비로 운영되는 구조인데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임대료 비싸기로 유명한 맨해튼의 위워크에서 일하려면 월 500달러(Hot desk 기준)는 준비해야 한다. 브루클린이나 퀸즈 정도면 300달러대 회비도 가능하지만 말이다.

    뉴욕에서 위워크만큼이나 관심을 모으는 매장은 바로 아마존북스토어다.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인근 34번가의 아마존 서점은 지난해 8월 뉴욕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오프라인 서점이다. 앞서 2015년 11월 아마존 본사가 있는 워싱턴주 시애틀에 첫 오프라인 서점을 오픈한 데 이어서 지난해 5월 컬럼버스서클에 뉴욕시 첫 매장을 열었다. 매장 첫인상은 반즈앤노블 등 다른 서점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아마존의 빅데이터에 기반한 치밀한 서가 배치가 눈에 들어온다.

    일단 아마존 AI스피커 알렉사가 전면에 전시되어 있고 아마존의 전자책 패드인 킨들 섹션도 따로 있다. 직접 편하게 시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 무엇보다 아마존 데이터베이스(DB)를 기반으로 각 부문마다 베스트셀러를 추려 놓았는데 독자들 평가 문장을 인쇄하거나 별점 리뷰를 달아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설치할 법도 한데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인쇄 방식이 거부감을 덜하게 한다. 아마존은 해당 지역민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책이나 킨들에서 빨리 읽힌 책 등 독자들이 관심 가질 만한 주제로 추천 책을 선별해 준다. 34번가 매장 한편의 독립된 카페 공간에는 포틀랜드 출신 스페셜티 커피로 유명한 스텀프타운(Stumptown)과 유기농 차 전문업체 리쉬티(Rish tea) 로고가 나란히 박혀 있었다. 아마존 서점 마저도 뉴요커들의 까다로운 취향을 만족할 만한 특별한 음료로 고객들을 더 끌어모은다.

    아마존에 인수된 홀푸드(Whole Foods) 매장에 들어서기만 해도 주요 제품마다 아마존 프라임 회원이 누릴 수 있는 엄청난 할인 혜택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일부 제품의 경우 10% 할인이 적용되는데 그만큼 자주 쇼핑을 하면 프라임회원 연회비(99달러)는 뽑고도 남는다는 게 현지인들의 전언이다. 아마존 배송도 프라임회원은 이틀 내 무료배송이 되니 그만큼 온라인·오프라인 쇼핑이 결합됐을 때 덕을 볼 가능성이 큰 셈이다. 아마존 프라임 회원은 출시 13년 만인 올 4월에 드디어 1억 명을 돌파했다.

    아마존은 주요 거점에 자리한 아마존북스, 홀푸드 등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서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면서 그 영토를 더욱 더 확장하는 모양새다.

    뉴욕에서도 CVS나 듀안리드(Duane Reade)처럼 대형화되고 체인화된 편의점이 번성하는 것은 예외가 없다. 대형 슈퍼와 비슷하고 회원 카드로 할인받는 아이템도 있는 데다 없는 것 없이 구색을 다 갖춰 편리함을 더해 준다. 주로 식료품 위주로 판매하는 델리도 고급화하는 추세다. 뉴욕 한인이 운영하는 ‘Frame Gourmet Eatery’의 경우 2층에 간단한 식사 공간을 확보해두고 다양한 즉석 요리를 선보여 이른 아침 출퇴근족은 물론 관광객들로부터 간단히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브런치로 유명한 사라베스에서 공수한 쿠키 등 디저트 메뉴로도 이해된다. 뉴욕 패션업체에서 일하는 소피아(44) 씨는 “미드타운으로 바쁘게 출근하는 길에 시간이 되면 이곳에 들러 부담 없이 맛있는 아침을 챙겨 먹으면 하루가 여유롭다”고 말했다.

    뉴욕 로드앤테일러 백화점 1층 화장품 매장
    뉴욕 로드앤테일러 백화점 1층 화장품 매장
    미국 뉴욕 로드앤테일러 백화점 외부
    미국 뉴욕 로드앤테일러 백화점 외부
    ▶디저트 열풍에 프랑스 베이커리

    ‘메종 카이저’ 확산세

    레이디엠 카페 9달러짜리 조각 케이크

    줄서서 먹기도

    베이글가게서도 앱으로 주문해

    줄 안 서는 서비스 확산

    뉴욕에서도 디저트 문화가 고급화되는 분위기다. 지역에서 발전한 베이커리 등이 많지만 좀 더 비싼 고급 취향의 베이커리가 빠른 속도로 확장세다. 대표적인 것이 ‘메종 카이저’다. 우리나라에도 한화그룹이 들여온 ‘에릴 케제르’와 동일한 파티셰 이름을 딴 디저트 카페가 뉴욕 맨해튼 주요 입지마다 들어서고 있다. 브라이언트파크와 플랫 아이언 지역 등 목 좋은 곳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뺑오쇼콜라 등 대표적 디저트는 물론 키쉬 샌드위치 등 점심 끼니를 때우는 메뉴도 많다.

    한 한국 교포는 “파리크라상이 뉴욕 맨해튼을 중심으로 빠르게 매장을 확장하고 있는데 이를 견제하듯 정통 프랑스산 베이커리가 빠른 속도로 확장하는 모양새”라고 평했다. 줄서서 먹는 케이크로 유명한 레이디엠(Lady M) 부티크 카페도 무려 한 조각에 9달러나 하는 디저트 케이크로 인기다. 평일 문 열기 전부터 줄서는 관광객들도 출몰할 정도다.

    얇은 크레페 케이크가 대표 메뉴인데 20겹 얇은 크레페가 옅은 크림과 어울려 섬세한 맛을 더해준다. 10~14조각 나오는 9인치 밀 크레페 홀케이크가 무려 85달러다. 브라이언트파크와 플라자호텔 지하 푸드홀 등 뉴욕에만 지점이 5곳 있다. 하지만 이 케이크 가게도 온라인으로 미리 주문하고 픽업하는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웬만한 뉴요커들은 쓸데없이 줄서지 않는다. 최근 모바일이나 온라인으로 작은 케이크나 베이글도 미리 주문하는 시스템이 널리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1976년 창업해 무려 42년이나 된, 3번대로변의 베이글 가게 ‘에싸(Ess-a-bagel)’도 온라인 주문 서비스를 적용했다. 미드타운에 위치해 출근 시간대에 붐비기로 유명한데, 길게 줄서서 기다리던 관광객들은 인근 오피스족들이 줄서지 않고 바로 픽업해 가는 모습을 보고 당황하기 마련이다.

    스페셜티 커피 시장은 스텀프타운이 선점하던 시장에 ‘라콜롬보(la colombe)’와 ‘블루보틀(blue bottle)’의 확장세가 돋보인다. 필라델피아에서 시작한 라콜롬보는 뉴욕시에만 카페를 8개나 연거푸 열면서 미국에서 지점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만들었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한 스페셜티커피 ‘블루 보틀’은 그랜드센트럴과 록펠러센터 등에 12곳을 냈다. 곧 어퍼웨스트 쪽에 1곳을 추가 오픈할 예정이다. 이들 스페셜티 커피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바리스타들이 직접 매장에서 내려주는 데다가 5달러 안팎의 고가에 구매가 가능하다. 이 같은 스페셜티 커피의 득세로 유행에 민감한 뉴요커는 물론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은 델리에서 1달러면 살 수 있었던 일반 레귤러 커피와 아쉬운 작별을 하는 분위기다.

    [뉴욕=이한나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6호 (2018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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