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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에도 정부 눈치에 값 못 올리는 프랜차이즈 치킨 한마리 팔아봤자 점주 손엔 1~2천원 뿐
입력 : 2018.03.28 12: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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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가공한 닭 공급가와 물류비 등도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모두 올랐지만 일단은 프랜차이즈 본사가 부담하고 있다. 문제는 치킨매장마다 최저임금발로 직원 급여가 올랐지만 또 하나 골칫거리는 배달대행수수료다. 이것마저 오르니 치킨값은 추가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배달직원을 매장에서 직접 고용했지만 지금은 배달대행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치킨점이 배달이 있을 때마다 부르는 형태로 바뀌었다. 치킨 매장들이 배달대행 업체들에 월 20만~30만원을 관리비 조로 내면 배달을 부를 수 있다. 문제는 배달대행업체들도 최저임금 인상을 이유로 올해 배달료를 건당 500∼1000원씩 올렸다는 점이다. 서울 목동의 한 배달 대행사는 올 초 “최저 시급과 오토바이 리스료(보험료) 인상으로 1.5㎞에 3000원이던 것을 3500원으로 올린다”고 통보했다.
인천의 한 업체는 1㎞당 기본요금을 2800원에서 3000원으로 올리고, 학교나 병원 배달은 1층만 가능하다며 배짱을 부리기도 했다. 여의도의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 대표는 “연휴나 눈비라도 오는 날에는 올라간 배달료에 500~1000원을 더 줘야 배달 일손을 구할 수 있다”며 “치킨 가격은 그대로인데 배달료마저 오르니 가게 마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 다른 치킨점 관계자는 “매장에서 배달직원을 고용해 급여를 직접 줬을 때는 배달 1건당 1000원이 드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3000원을 훌쩍 넘는다”면서 “치킨 가격을 올려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배달비 인상이 가파르기 때문”이라고 털어 놨다.
이러다 보니 일부 매장에서는 주문 고객에게 치킨 가격과 별도로 배달료 일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경기도 일산의 한 치킨매장은 2월부터 주문고객들로부터 2000원의 배달수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치킨점 주인들로선 배달대행업체를 쓰지 않는 게 이득이다 보니 주문 후 직접 치킨을 찾아가는 고객에게는 할인해 주는 경우도 많다. 비용 절감을 위해 치킨 구입 시 무상 제공했던 콜라나 무 등을 주지 않는 곳도 늘었다. 임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직원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퇴직한 일자리에 대한 충원을 중단하는 것은 기본이 됐다. 이에 BBQ 등 치킨 프랜차이즈는 배달료를 낮추는 방안을 놓고 골몰하고 있다. 특정 배달대행 업체와 계약을 맺어 건당 할인을 진행하거나 본사가 배달비용 일부를 보전해 주는 식이다. BBQ는 아파트에 사는 노인들을 배달 인력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한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 관계자는 “과당 경쟁 속에 소비자와 정부를 의식해 길게는 9년 동안 치킨값을 올리지 못했다”면서 “다른 외식 품목은 인상하기 쉽지만 치킨은 워낙 국민 관심이 많아 2만원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고 항변했다.
일부 가맹점주들은 비용 압박을 견디다 못해 자체적으로 가격을 올리기도 한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치킨 매장은 최근 주요 메뉴 가격을 최대 1000원씩 올렸다. 가맹사업 본부가 제시하는 메뉴 가격은 권장소비자가로 강제성이 없는 만큼 본부에 고지한 뒤 스스로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가격인상 요인이 분명한 제품이 여론 눈치 보기로 머뭇거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치킨 업체들의 폐업을 가져오고, 제품의 품질 하락과 서비스 저하를 가져와 소비자 편익을 줄이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태훈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사무국장은 “프랜차이즈 업계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제품 가격을 모니터링하겠다는 정부 방침 때문에 눈치만 보며 치킨값 인상을 망설이고 있다”면서 “어려워진 치킨매장의 비용을 보전하려면 가맹점들의 임대료 및 카드수수료를 인하해 주는 등 좀 더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비자물가 변동폭 이상 올라
피자나 커피, 햄버거 등 간식 먹거리 가격이 최근 7년간 두 자릿수 이상 올랐지만 치킨만 유일하게 가격인상 사각지대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럭스멘이 최근 주요 식품별로 지난 2011년과 현재 가격을 비교해 본 결과, 대다수 품목이 소비자물가지수 변동폭(8.6%)을 넘어섰다. 2011년은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햇수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는 2015년을 100으로 할 때, 2011년과 2017년은 각각 94.72와 102.93으로 둘 간 변동률은 8.6% 상승했다. 같은 기간 GDP증가율(경제성장률)은 18.5%에 달했다. 식품 품목별로는 커피와 햄버거, 피자 등의 가격은 모두 10%를 넘어섰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355㎖) 가격은 3600원에서 2014년 4100원으로 13.9% 오른 뒤 현재까지 동결된 상태다. 동일 용량의 카페라테도 12.2% 상승했다. 지난 2014년 한차례 가격을 올린 이디야커피의 아메리카노와 카페라테 가격 인상률은 각각 12.0%, 14.3%였다.
지난해 12월 제품 단가를 인상한 롯데리아는 2011년 3000원이었던 불고기버거, 새우버거 가격을 3500원으로 16.6% 올렸다. 이들 햄버거를 넣은 세트가격도 14.3% 인상됐다. 미스터피자를 대표하는 슈림프골드(L)와 포테이토골드(L) 피자는 각각 10.8%, 11.1% 비싸졌다. 식품회사 농심의 신라면은 6.4% 소폭 오른 반면 새우깡은 900원에서 현재 1200원으로 33.3%나 치솟았다.
반면 치킨은 업체별로 2009~2013년 인상을 끝으로 좀처럼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업계 1위 교촌치킨은 1만4000원과 1만3000원이던 후라이드와 양념간장 치킨값을 2010년 둘 다 1만5000원으로 인상한 뒤 지금까지 해당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BBQ 역시 동일 품목에 한해 앞선 2009년에 1만6000원과 1만7000원으로 2000원씩 올린 뒤 9년째 동결 상태다. 멕시칸이 2013년에 1000원 올린 것이 치킨업계의 가장 최근 인상 사례다.
일각에서는 치킨 가격이 다른 품목과 달리 장시간 오르지 않은 데 대해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초기에 폭리를 취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비(非)치킨 업계 관계자는 “치킨값이 7~8년 전과 동일하다는 것은 아직 그 가격으로 장사해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그렇다면 오래전에는 엄청난 이익을 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치킨 업계는 가격 인상이 경제적 수급이 아니라 정치적 이유나 여론몰이를 통해 결정돼 왔다고 주장한다. 부정적인 ‘갑질’ 문화의 표적이 되면서 가격 인상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BBQ가 가맹점주 의견을 받아들여 가격을 올렸다가 열흘 만에 철회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실제 치킨 원재료인 닭고기 가격은 소폭이지만 꾸준히 상승해 왔다. 치킨에 들어가는 다른 첨가물과 인건비, 임대료도 모두 점진적인 우상향 곡선을 그려 왔다. 치킨업계는 다른 품목처럼 인상 여지가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농수산물유통공사(aT)에 따르면 닭고기 도계(중품) 가격은 ㎏당 2011년 4429원에서 지난해 4906원까지 올랐다. 올해 들어서는 4589원으로 떨어진 상태다. 한 치킨 가맹점 대표는 “올 초 최저임금 인상과 배달료 상승 등으로 치킨값 인상 요인은 어느 때보다 분명하다”면서 “그나마 닭 가격이 잠시 떨어졌지만 추위가 풀리면 AI(조류인플루엔자) 창궐 등으로 생닭값이 급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 인해 치킨업계는 따뜻해지는 봄철을 앞두고 조만간 가격 인상을 결단해야 할 상황이다.
[김병호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91호 (2018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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