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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노브랜드’ 대박비결 브랜드 거품 뺀 단순함의 힘
입력 : 2018.01.29 15: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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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7월, 새로운 물티슈 제품이 출시됐다. 샛노란 개나리 색 비닐 포장에 별다른 설명 없이 ‘노브랜드’라고 쓴 이 제품은 물티슈 100장에 800원이라는 혁신적인 가격을 내세웠다. 기존 경쟁 제품보다 50% 이상 싼 가격이다. 이 물티슈는 일대 돌풍을 일으켰다. 6개월 만에 270만 개가 팔렸다. 이마트에서 당시 취급하던 60개가 넘는 물티슈 상품 중 매출 1위에 올랐다. 두 해 뒤에도 열기는 식지 않았다. 2017년 노브랜드 물티슈는 매출액 36억원을 기록하며 노브랜드 전체 상품 순위에서 4위를 차지했다. 일반 물티슈 전체 매출이 약 10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전체 물티슈 매출의 30% 이상이 노브랜드 매출에서 나오는 셈이다.
그렇다면 노브랜드는 어떤 상품으로 태어났을까. 노브랜드의 탄생은 2015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마트는 당시 ‘브랜드가 없는 제품’이라는 의미로 ‘노브랜드(No brand)’를 브랜드명으로 낙점했다. 가장 처음 출시한 제품은 생수도 우유도 아닌 뚜껑 없는 변기시트. 가정 화장실에서는 변기 뚜껑을 잘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뚜껑 때문에 변기 청소가 더 번거롭다는 점에 착안한 아이디어 상품이었다. 변기시트와 다른 제품 8개 총 9개로 시작한 노브랜드는 매년 급성장을 거듭했다. 출시 첫 해 말에는 상품수가 170종으로 늘었고, 그 다음해에는 800종, 2017년에는 1000종으로 빠르게 늘었다. 제품은 다양해졌지만 디자인은 일관성 있게 단순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마트는 ‘디자인마저 하지 않는 디자인’을 강조했다. 일본의 무인양품에서 착안한 브랜딩 전략이었다. 1980년 ‘이유 있는 싼 제품’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시작한 무인양품은 디자인 광고도 마케팅도 거의 하지 않았다. 브랜드를 부각시키는 대신 꼭 필요한 기능을 담았다는 점을 어필했다.
노브랜드도 유사한 방법을 썼다. 패키지는 전부 노란색으로 통일했다. 제품 패키지에는 소비자가 알아보기 쉬운 상품명을 크게 인쇄했다. 제품의 장점은 제품을 집어 들자마자 알 수 있도록 인스타그램에서 쓰는 해시태그(#)로 표기했다. 김보배 이마트 과장은 “노브랜드 역시 브랜드 그 자체를 포함해 상품의 본질적인 기능과 상관없는 모든 비용을 줄였다”며 “노브랜드 마니아 고객이 생길 정도로 합리적인 가격의 상품을 제공하는 브랜드로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이마트는 2013년부터 이마트 PB제품을 생산했던 중소업체 한울생약과 함께 적절한 두께 찾기에 돌입했다. 소비자의 사용감이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서 가격은 낮출 수 있는 이상적인 두께를 고민한 것이다. 당시 판매되는 물티슈는 대부분 1㎡당 45g 수준의 두께로 제작됐다. 이마트와 한울생약은 6개월간의 개발과정을 거쳐 두께는 1㎡당 32g으로 낮춘 제품을 개발했다. 시중에 나온 상품은 대부분 한 겹 또는 두 겹으로 부직포를 겹쳐 제작했는데, 노브랜드 물티슈는 얇은 부직포를 네 겹 겹쳐 상대적으로 덜 찢어지게 고안했다.
베트남 이마트에 전시된 노브랜드 상품
이마트 노브랜드도 이런 지적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노브랜드의 히트상품들은 중소업체와의 ‘상생’을 강조하면서 수출길을 열어 중소업체와도 윈윈하는 사례가 나타난다. 노브랜드 물티슈 제조업체인 한울생약은 2015년까지 연간 국내에서 생산하는 물티슈의 10%가량을 만드는 국내 3위 생산업체였다. 하지만 이마트 노브랜드 물티슈를 출시한 이후 회사가 크게 성장했다. 2015년 7월 출시 이후 800원짜리 노브랜드 물티슈가 3년 만에 1560만 개 팔리면서 2015년 31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2017년 기준 500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직원은 70명에서 130명으로 늘어났다. 해외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16년 1월 해외 수출을 시작해 지난해 말까지 홍콩, 베트남, 미국, 호주, 중국, 몽골, 싱가포르 7개국에 물티슈 18만 개를 수출했다. 이마트 베트남 점포인 고밥점의 지난해 노브랜드 매출액은 월 평균 3억원이다. 국내 이마트 점포 노브랜드 평균 월 매출액의 2배 수준으로 팔린다.
지난해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한국 상품 수출이 어려움을 겪었던 와중에도 노브랜드 상품으로 선전한 중소 업체도 있다. 바로 노브랜드 유자차를 생산하는 서광에프앤비(이하 서광)다. 이마트는 ‘넷이즈’와 수출 계약을 맺고 서광이 만든 노브랜드 유자차를 판매했고, 넷이즈를 통해 발생한 매출은 2016년 2억원에서 2017년 9억원으로 늘었다. 서광은 유자나 레몬, 자몽 등의 원료를 수급해 설탕에 절인 후 반제품 형태로 식품업체에 납품하던 업체였다. 노브랜드 유자차 완제품을 생산하기 전까지는 공장 가동률이 높지 않았지만, 완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공장에 20억원을 투자했고, 병 세척 설비를 들이고 이물질 검사 인력 등 직원도 새로 뽑았다. 이재근 서광 대표는 “중국에서 유자차가 잘 팔린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수출하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있었다”며 “노브랜드가 상품을 직접 브랜딩해 주고, 중국과 베트남, 몽골 등지로 판매채널을 다각화하면서 서광도 함께 크고 있다”고 말했다. 서광의 완제품 매출은 2015년 9억원에서 2016년 19억원, 2017년 45억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노브랜드 에어프라이어·노브랜드 TV 등 가전제품으로도 영토 확장
노브랜드는 식품과 생활용품 등에 이어 가전제품으로도 영토를 확장해 왔다. 가전제품 구매에서도 ‘가성비’가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가전제품에서도 핵심 기능만 남기고 가격을 낮춘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마트는 “1~2인 가구가 증가하고 인터넷으로 가격을 비교하는 데 익숙한 소비자들이 늘어나 가전에서도 실속형 소비가 일어난다”고 분석했다. 노브랜드 가전은 2개였던 버튼을 1개로 줄이거나, 디지털방식을 아날로그 방식으로 바꾸는 등의 ‘다운그레이드’를 통해 가격을 낮췄다. 노브랜드 전자레인지는 버튼 대신 다이얼을 넣고 해동과 데우기 등 핵심기능만 담아 4만9800원에 출시했다. 이 전자레인지는 싱글족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1만6000대가 팔려나갔다. 토스터(1만6800원), 스팀다리미(1만4800원), 전기밥솥(2만9800원), 커피메이커(2만9800원) 등 유행을 타지 않는 1만~2만원대 생활가전 품목이 많이 출시됐다.
최근에는 가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TV도 노브랜드 품목에 포함됐다. 지난해 9월 이마트는 세컨드 TV용으로 32인치 노브랜드 HD TV를 19만9000원에 내놨다. 이 TV는 9월 출시하자마자 1차 발주물량 5000대가 3주 만에 매진됐다. 2018년 1월까지 4개월 만에 약 7000여 대 이상이 팔려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기름 없이 고온의 공기로 튀기는 에어프라이어도 노브랜드로 출시했다. 이마트는 1인가구가 사용하기 좋은 1.6리터 용량의 에어프라이어(4만9800원)도 지난해 9월 출시 이후 5000여 대 판매되는 등 고객 호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테이블 블렌더(믹서기), 전기면도기와 오븐토스터도 순차적으로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반정원 노브랜드 가전 바이어는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해외 가전 박람회와 현지 공장을 꾸준히 찾아가고 있다”며 “올 연말까지 노브랜드 가전 품목을 49종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유진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89호 (2018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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