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드 헌터’ 유순신의 Upgrade Your Career] (9) 모든 벽이 무너지는 시대

    입력 : 2015.05.08 17:21:47

  • 요즈음 수명은 길어지는데 오히려 낮아지는 정년 때문에 은퇴 후나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 남성은 평균 54.4세, 여성은 평균 49.5세를 본인의 퇴직 시기로 예상한다고 하니 적어도 30년 이상은 수입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이런 추세로 인해 최근 인생 2막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즉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될 경우 그 다음 인생은 어떻게 펼쳐나갈지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미리 준비하는 직장인이 많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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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문화, 경제, 교육 등 전 분야에서 모든 벽이 무너지는 이때에 지금까지 생각지 않았던 새로운 직업에 대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포착하고 자신이 원했던 일에 과감히 도전하는 신(新)직업인이 등장하고 있다.

    민과 관의 경계가 흐려지다 초대 인사혁신처장에 민간인 출신 인재가 임명됐다. 그야말로 혁신적인 파격 인사다. 민간기업에 있다가 공직으로 발탁된 L처장은 1976년 삼성 입사 이후 35년간 오로지 ‘인사’ 하나만을 담당해 온 전문가다. 그 덕분에 그는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스 후즈후>에 이례적으로 ‘인사전문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Re-Tire’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타이어를 바꿔 끼웠으니 힘 있게 달려보려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일반미를 먹으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이제 정부미를 먹게 되었으니 초대 인사혁신처장으로서 제 소신껏 열심히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은퇴할 나이를 훌쩍 넘겼음에도 민·관 쌍방으로 개방과 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개척자의 길을 가고 있다. 이제 ‘영역 파괴’, ‘융합’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민과 관의 경계마저도 허물어지고 있다. 최근 정부의 입장 또한 공직의 투명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민간 전문가의 공직 진출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올해 국·실장급 200개에 가까운 자리가 열리는 개방형 직위제의 시행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정부 내 직책을 공무원이 아닌 민간에게 개방하는 제도로 고도의 전문성과 효율적인 정책 수립을 위해 외부에서 적격자를 임용하는 제도다. 민간기업과 공직을 엄격히 구분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개인은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이 생기고, 정부는 민간의 훌륭하고 탁월한 인재를 쓸 수 있어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된다.

    타업종으로 전환 가능 A사장은 공대 출신 경영인의 대표 주자다. IT 분야에서만 30년을 근무하며 민간기업 사장까지 지낸 그가 쌓았던 경력과 상관없는 서비스 업종으로 옮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실무자가 아닌 전문 경영인에게 업종이 무슨 상관이 있나?”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행보에 우려를 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직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 결과는 성공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시각을 가진 경영자가 들어오자 오히려 조직에 활기가 불어넣어졌던 것이다. 인사 제도를 변화시켜 직원들의 전문성 강화를 돕고, 신사업을 시작하는 등 조직을 전반적으로 새롭게 정비해 나가고 있다. 전 세계가 지구촌으로 묶이고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한 분야만 고집하는 것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어졌고, 이종 간 결합을 통해 더 큰 효과를 내거나 아예 영역이 파괴되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내부에서 성장해 기업 문화와 조직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요직에 앉는 것이 정석이지만, 때로는 A사장처럼 전혀 다른 업종의 전문가나 임원에게 지휘봉을 맡겨 새로운 방향과 결과를 모색하기도 한다.

    내부 혁신과 사업 구조조정을 제3자에게 맡김으로써 보다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동종업계로 이직하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새롭게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있고 스스로가 준비되었다면 업종 구분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지금은 모든 벽이 무너진 융합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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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는 장애물이 아닌 감투 B사장은 고문으로 물러난 지 한 달 만에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회장이 직접 그를 불러 “창사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낸 회사를 구해낼 적임자”라며 돌아올 것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비록 나이 때문에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기업에 대한 로열티가 대단하고 업무 전문성도 갖춘 그가 복귀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한 모임에서 그를 만나 축하 인사를 건네며 소감을 물으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이가 많아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제게 도움을 청해 정말 고맙고, 이제는 나이가 어떤 장애물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린다”는 말이 있다. 계속되는 불경기에 기업들이 더욱더 보수적으로 경영을 하다 보니 노장들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졌다.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구할 구원투수로 올드보이들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검증된 인재이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매우 효율적이다. 이제는 나이의 벽도 무너졌다.

    은퇴할 나이가 되어 회사를 떠난 사람들을 다시 복귀시키는 것이 확실한 증거다. 평생고용, 평생직업 시대에 염려되는 것이 퇴직이지만 이제 더 이상 퇴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회사가 나를 다시 찾을 정도로 전문성과 역량을 갖추었다면 말이다.

    해외에서도 K-Man을 인정 우리나라가 사회, 경제 모든 면에서 발전하면서 한국의 ‘K-Man’을 찾는 수요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해외로 인재를 수출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특히 섬유, 에너지, 선박, 건설, 전자 등 우리가 확실한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산업 분야에서의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중동의 에너지 기업에서 한 번에 100명이 넘는 숙련된 엔지니어를 찾는 일이 있었다. 국내 전자회사의 임원이 인도에서 제일 큰 회사의 대표로 스카우트되기도 하고, 국내 패션에서 잔뼈가 굵은 인재들이 세계시장의 부름을 받고 외국행 비행기를 타기도 한다.

    월드 베스트 제품을 갖고 있는 업종인 경우는 특히 중국시장의 부름이 눈에 띄게 늘었다. 반도체 전문가로 불리는 C임원처럼 퇴직 후 중국 여러 곳의 반도체 회사와 체결한 자문 계약으로 전에 받았던 연봉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손에 넣는 사람도 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트위터 등 세계적인 기업 내에서 젊은 피의 한국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을 만큼 K-Man의 위력은 이미 인정받고 있다.

    국내 인재들이 외국에서 인정받는 시대, 국가 간의 벽도 무너진 시대가 된 것이다. 외국어에 능통하고 현지 적응력이 있다면 해외로 나갈 꿈을 가지고 과감하게 도전해도 좋을 듯하다.

    NGO도 경영 능력자 선호 최근 자신이 쌓아온 경력과 전혀 무관한 NGO단체로 자리를 옮긴 D사장의 이야기가 감동을 준다. 그동안 일했던 분야와는 전혀 다른 직종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겼다. 더구나 다국적기업의 수장으로 억대 연봉을 받던 그가 10분의 1 수준의 금액을 수락했다는 것도 장안의 화제였다. 퇴직 후 이렇게 놀라운 결단을 한 것은 인생의 중반을 넘기는 나이가 되자 더 늦기 전에 인생 2막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학 시절부터 장애인과 난치병 어린이에게 관심이 많았던 D사장은 기업 대표로 있으면서도 사회 공헌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평소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며 살았기에 이번에 전혀 다른 업종이긴 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발휘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결정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회사 첫 출근일부터 창립 정신으로 돌아가 조직을 정비하고 모든 과정에서 투명성을 강화하는 등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는 240여 개의 비정부기구, 즉 NGO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기업보다 연봉이나 복지 혜택은 적지만 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소명 의식이 있다면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오히려 더 클 수도 있다. 평소 가지고 있었던 신념을 좇아 인생 후반전에 나눔과 열정을 쏟을 새로운 직장을 찾은 D사장이야말로 진정한 사각지대로 간 셈이다.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벽이 사라지는 상황은 얼핏 혼란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눈이 필요하다. 전인미답의 길일지라도 창조적으로 커리어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현 정부의 정책인 창조경제와도 부합한다. 민과 관, 비 동종업계, 국내 또는 해외, 시민단체 중 어느 곳으로 가든지 내 스스로 길을 만들면 된다.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K-Man 모두를 응원한다.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대표]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6호(2015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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