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 다음은 VR?…글로벌 IT공룡들 가상현실로 맞붙는다

    입력 : 2015.05.08 15:5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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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깍아내린 듯한 절벽과 수풀이 우거진 숲을 벗 삼아 하늘을 날아간다. 장엄한 산을 내려다보며 찬찬히 넘어가니 멀리 바다가 펼쳐진다. 고개를 돌려 오른편을 보니 갈매기 떼가 지나간다. 바다에 도착해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니 투명하고 푸른 물속 풍경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 으스스한 건물에 들어서니 누군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장면이 보인다. 도와달라고 외치는 그에게 다가가는데 갑작스레 뒤에서 굉음이 들린다. 고개를 돌리니 건물 밖에서 창문을 부수고 좀비가 몰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관자놀이에 있는 버튼을 눌러 총을 발사해 좀비를 물리쳤다. 수없이 몰려온 좀비들은 총소리를 듣고 건물 안으로 몸을 숨겼다.

    # 아이돌 여가수가 나를 보며 서 있다. 가까이 가서 얼굴을 쳐다보자 “저 살 좀 찐 거 같죠?”라며 수줍게 웃는다. 한쪽에 있는 콘서트 감상하기 메뉴를 쳐다보자 공연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전체적인 군무를 감상했지만 자연스레 좋아하는 멤버 쪽으로 시선이 옮겨간다. 원하는 멤버만 선호하는 각도(?)에서 ‘직캠’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정체기를 맞아, 주요 IT 기업들의 차세대 IT비즈니스 발굴이 큰 화두다. 글로벌 IT공룡기업들이 저마다 뛰어들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포스트 스마트폰 후보군 중 하나는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이다.

    VR은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VR헤드셋을 통해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을 마치 실제 상황이나 사람과 상호 작용하는 것처럼 느끼고 반응하게 하는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말한다. 시각을 완전히 장악하고 청각, 촉각 등 오감과의 상호 작용과 동작 인식 등을 통해 가상공간을 마치 현실처럼 느끼게 해준다.

    이전까지 VR 기술은 3차원 게임이나 영화 등에 한정적으로 이용됐지만, 앞으로는 교육이나 원격조작 분야, 여행, 공연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응용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영상이나 음성을 통해 가상인물이나 상황을 현실처럼 느끼고 대화하는 것도 가능해 영화 ‘She’에 나온 가상 연인 스칼렛 요한슨보다 진화(?)된 형태의 연애도 가능해질지도 모르겠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에 따르면 세계 VR 시장은 2020년경 3910억달러(약 42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글로벌 IT기업들은 VR 시장 주도권 확보 경쟁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구글 카드보드
    구글 카드보드
    구글·삼성·애플·페이스북… VR에 쏠린 시선 페이스북 2조5000억원 투자! 삼성전자와 협업 태동기도 되지 않았다고 평가받는 VR시장에 가장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기업은 예상외로 페이스북이다. 지난해 3월 페이스북은 가상현실 헤드셋을 만드는 오큘러스VR을 23억달러(약 2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파머루키 오큘러스VR에 따르면 주커버그 페이스북 회장이 인수 얘기를 꺼낸 후 열흘도 되지 않아 협상을 마무리 지었을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고 했다. 오큘러스VR은 단숨에 실리콘밸리의 신데렐라로 떠올랐고 가상현실 분야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커졌다.

    인수 당시 너나 할 것 없이 “왜 페이스북이?”라는 의문을 쏟아냈다. 앞서 페이스북이 카카오톡과 라인의 원조 서비스인 왓츠앱(WhatsApp)을 190억달러에 인수했을 당시에는 페이스북의 메신저 서비스 강화라는 명목이 있었다. 미국과 유럽 메신저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왓츠앱보다 40억달러나 많은 금액으로 벤처라고 볼 수 있는 오큘러스VR을 인수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상현실이 향후 거대한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데에 대한 주커버그의 확신이 작용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품에 안긴 오큘러스VR은 지난해 ‘크레센트 베이’라는 이름의 신형 VR헤드셋을 공개했다. PC에 연결해 사용하는 크레센트 베이는 기존 VR헤드셋 제품과 비교해 화면의 프레임 표시 속도가 향상되고 제품 후두부에 카메라를 달아 사용자의 머리 움직임을 360도 추적 가능하다. 다만 크레센트 베이는 아직까지 내부 개발 단계다. 아직 상용화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VR시장 진출을 위해 오큘러스VR과 손을 잡았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오큘러스와 함께 갤럭시노트 4와 갤럭시 S6에 연동해 사용할 수 있는 ‘기어VR’을 내놓은 바 있다. PC가 아닌 스마트폰과 연동해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돼 휴대성이 좋고 무게도 가볍다. 올해에는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갤럭시 S6와 ‘갤럭시 S6 엣지와 호환되는 기어VR 이노베이터 에디션 for S6를 선보이기도 했다.(국내 출시일 미정)

    게임 분야에 있어 강점을 지닌 소니도 VR기기에 있어서는 빼놓을 수 없다. 소니는 꾸준히 게임용 VR 헤드셋을 개발해 왔는데 올해 콘퍼런스 GDC 2015에서 VR 헤드셋 ‘프로젝트 모피어스’를 공개했다. 자사의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S) 4에 연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MS, MTS 역시 기기를 내놓고 시장 추이를 살펴보고 있으며 애플은 최근 머리에 쓰는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 장치에 관한 특허를 취득해 VR시장 진출이 예견되고 있다. 한편 구글의 경우 VR을 대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구글은 지난해 개발자회의(I/O)에서 스마트폰 사용자가 저렴한 가격으로 가상현실을 쉽게 체험하도록 종이로 만들 수 있는 카드보드(VR기기 설계도면) 오픈 소스를 공개했다. 카드보드는 두꺼운 종이로 제작한 조립형 VR기기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종이 사이에 끼우면, 분리된 렌즈를 통해 스테레오 3D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구조다. 구글이 판매 중인 카드보드의 가격은 불과 2만원 수준.

    이 같은 구글의 행보는 VR기기를 보급시켜 가상현실 업계를 활성화시키려는 플랫폼 전략(Platform Strategy)이 숨어 있다. 기기를 제조해 판매하는 것보다 유튜브라는 걸출한 플랫폼을 통해 VR 콘텐츠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손익계산 상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이 같은 속내는 지난 4월 16일에 발표한 ‘워크 위드 구글 카드보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워크 위드 구글 카드보드 프로그램에는 구글과 함께 VR시장을 독려하는 내용이다. 구글 카드보드는 종이로 제작됐지만, 다른 업체에서는 플라스틱이나 나무, 금속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해 제품을 설계할 수 있다. 조건은 프로그램에 참여해 VR기기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은 제품에 QR코드를 새겨 넣어야 한다.

    오큘러스 개발자 키트2
    오큘러스 개발자 키트2
    핵심은 콘텐츠! 포르노, 교육, 관광 분야 유망 업계에 따르면 현재 출시된 VR기기는 약 20개에 이른다. 많은 제품이 시장에 나오고 있지만 정작 VR시장의 판도를 바꿀 변수는 콘텐츠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VR기기는 이미 제작된 VR 콘텐츠를 효율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돕는 도구적인 역할을 할 뿐 핵심적인 기술은 콘텐츠의 질이라는 것이다.

    구글이 카드보드 기술을 오픈하며 VR기기 제작을 활성화 시키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기의 하드웨어의 차이도 가상현실을 즐기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지만, 정작 질 좋은 다양한 콘텐츠가 부족하면 기기를 구매할 동력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VR시장은 콘텐츠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현재 관광, 여행, 공연 등 분야의 콘텐츠 제작에 뛰어드는 기업들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의대생이라면 가상현실을 통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생생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패션디자이너라면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은 모습을 보다 현실감 있게 볼 수도 있다. 여행사의 경우에는 브로셔 대신 가상현실을 이용한 짧은 투어로 여행 상품을 홍보할 수 있다.

    한편 최근 VR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분야는 포르노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는 VR용 포르노가 상업 제작을 개시했다.

    IT업계 한 전문가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거나 기술이 변곡점을 맞을 때마다 포르노는 IT기술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며 “일찍이 가정용 비디오나 인터넷 보급에 있어 포르노의 역할이 컸던 것처럼 ‘가상현실(VR)’ 분야에 있어서도 대중화가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일반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가상현실 시장은 여러 가지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오프라인, 온라인의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 모델 대부분을 가상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 소장은 이에 대해 “게임, 포르노, 커머스 등을 미끼로 사람들이 가상현실을 경험하고 빠져들게 되면서부터 다양한 비즈니스가 확장되는 형태로 시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Mini Interview 김윤정 무버(Mooovr 구 카몬) 대표 한류·여행 분야 특화해 VR시장 킬러콘텐츠기업으로 자리 잡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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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R산업이 본격화되며 재조명 받고 있는 콘텐츠 기업이 있다. 360도 및 3D VR 영상 콘텐츠 솔루션, 플레이어 개발의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는 무버(Mooovr)가 VR 콘텐츠 시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같은 영상을 360도 각도와 거리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구현해주는 것이 무버의 핵심 기술. 무버의 기술을 통해 영상을 제작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나 공연 영상에서 원하는 멤버를 줌인(Zoom-In)해 감상할 수 있다. 단순히 길을 걸어가는 장면에서도 사방을 자유자재로 볼 수 있어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다. 현재 무버는 SM과 YG를 비롯한 여러 엔터사들과 협력을 통해 아티스트들의 360도 공연 영상 제작을 기획하고 있고 KBS 등과 협력해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나서고 있다. “오랜 기간 360도 3D 영상에 공을 들여왔는데 VR시장이 열리면서 회사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요. 덕분에 투자도 받고 구글, 오큘러스, 삼성전자 같은 쟁쟁한 회사들과 콘텐츠 공급을 위한 미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VR 활성화 위해서는 킬러콘텐츠 필요해 투자자도 심상치 않다. 오큘러스VR이 설립된 초기 투자에 참여해 지난해 페이스북에 인수를 계기로 큰 시세 차익을 거두며 실리콘밸리에서 명성을 쌓은 벤처캐피털(VC) 포메이션 8이 지난해 무버에 투자했다. 전문 VR 콘텐츠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글로벌 감각에 맞게 이름도 바꿨다.

    “이전 사명이 카몬TV였는데 투자자들이 컴온(Common)으로 들린다며 왜 회사이름을 ‘잔잔하다’라는 뜻으로 지었냐고 하더라고요.(웃음) 의견을 받아들여 무버(Mooovr)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김윤정 대표는 요새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도 여러 IT기업들과 미팅을 위해 실리콘밸리를 오가고 있다. VR시장 선점을 위해 글로벌 기업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수준 높은 콘텐츠 제작 능력을 갖춘 무버의 몸값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아직까지 무버의 매출이 본격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좋은 조건의 인수 제안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김 대표는 한류와 여행과 관련된 영상물을 제작해 VR시장의 킬러콘텐츠 제작사로 자리 잡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직까지 VR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도 확실한 킬러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무버는 한류와 여행 관련 콘텐츠에서 비전을 찾고 있습니다. 현장감 있는 뮤직비디오 외에 콘서트 실황을 VR기술을 통해 생중계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 중입니다. 또한 높은 해외여행 수요를 감안해 여행 관련 콘텐츠도 기획 중이니 많은 기대 바랍니다.(웃음)”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6호(2015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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