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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50%대 거침없는 성장세의 비결은? 대륙 호령하는 아모레퍼시픽의 위엄
입력 : 2015.03.06 16: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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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의 글로벌 사업은 2014년 말 매출(K-IFRS 기준) 8325억원을 달성했다. 2013년 대비 52.8% 성장한 결과다. 지난 2014년 4분기에는 해외사업 또한 주요 브랜드의 판매 확대 및 효율적인 비용 관리로 2540억원의 매출을 올려 96.9% 급성장했다.
이 중 중국 사업 매출은 브랜드 인지도 강화 및 채널 다각화로 2013년 대비 무려 44% 성장한 4673억원을 기록했다. 해외사업 비중의 절반이 넘는 수치다. 지난해 중국사업은 목표를 훌쩍 뛰어넘는 실적으로 해외사업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7%대인 것을 감안하면 아모레퍼시픽의 성공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다.
‘기회의 땅’이라 불리며 앞다퉈 중국시장에 발을 들였다가 씁쓸하게 발길을 돌리는 글로벌 기업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대륙의 마음을 흔들며 성공가도를 이어가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의 성공 방정식을 들여다봤다.
(위)아모레퍼시픽의 중국 특화 제품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타개책은 철저한 ‘현지화’였다. 회사를 맡은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중국에서 화장품은 사치품으로 분류돼 200~300%나 되는 높은 관세가 부과됐다. 유통업에 대해서는 외국인의 투자를 허용하지도 않았다. 수출을 통한 현지 영업 전개는 사실상 불가능해 사업 초기부터 현지에 생산 공장을 설립해야 했다. 현지인을 판매 대리인으로 고용하거나 현지 업체와의 합작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리스크가 큰 환경에도 불구하고 서 회장은 일찍부터 중국 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아모레퍼시픽이 중국에 진출한 1992년 이후 120회 이상 중국을 찾았다. 두 달에 한 번은 중국을 찾은 셈이다. 첫 사업을 다소 낙후됐던 공업도시 심양에서 시작한 이유는 중국시장을 바닥부터 살펴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994년 2월 선양의 경제기술개발구 안에 합작회사를 설립해 사업을 진행했지만 초창기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30도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에 사업장은 갈탄 난로로 인한 매연으로 가득했다. 국내에서 인기를 구가하던 ‘미로’를 들고 현지 백화점을 돌아다니면서 매장을 달라고 해도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한국의 최고급 화장품 브랜드라고 설명해도 통하지 않았다. 국내 브랜드 파워가 해외에서는 소용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높은 가격도 한몫했다. 당시 ‘미로’ 한 세트 값이 중국에서는 쌀 한 가마니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가까스로 백화점의 구석진 곳에 60cm 정도의 매대를 얻어 입점했으나 미용 사원을 뽑아 애써 교육시켜 배치하면 그만두는 직원들이 속출했다.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까 미용 사원들도 지친 것이다.
그렇게 실패가 거의 눈앞에 닥친 1996년에 새로 펼친 현지화 전략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먼저 현지에 맞는 디자인을 고안해 생산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미로 브랜드는 고가 마케팅을 지켰으나 아모레는 가격을 조금 낮췄다. 먼저 프레스티지 시장을 공략하고 그 다음에 세미 프레스티지 시장으로 진입하는 이른바 톱다운(Top-down) 방식을 구사한 것이다.
아모레는 중국시장의 특성을 국토별 다양한 기후, 지역과 계층에 따른 극심한 빈부 격차로 파악하고 기후 특성에 맞추어 보습 위주의 스킨케어 제품으로 지역 마케팅을 시작했다. 단순히 제품만을 진열해 놓은 다른 화장품 코너들과는 차별화해 미용문화원을 만들어 미용 강좌와 마사지를 무료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그뿐 아니라 이곳을 만남의 장소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함으로써 미용문화원은 짧은 시일 안에 지역의 문화 명소로 알려지면서 시민들에게 각광받았다.
수입판매상 계약을 해 우회적인 방법으로 일단 시장 접근을 도모했지만 판매 실적이 기대한 만큼 순조롭게 호전되지 않았다. 또 대리상은 주로 단기 수익에만 치중했기 때문에 장기적인 브랜드 육성에는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려웠다. 브랜드 이미지 훼손을 우려한 서 회장은 결국 현지 경영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실적 회복을 위한 복안은 광고가 아닌 판촉이었다. 제품에 담긴 우수한 기술력과 품질에는 자신이 있었으므로 소비자들에게 사용 기회를 확산시킨다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적극적인 판촉을 위해 국내에서 프로모션을 전담하고 있던 뷰티지원팀 직원 5~6명을 현지에 파견했다.
이들이 펼친 메이크업 쇼는 종전에 보기 드문 빅 히트를 쳤다. 본사에서 지원한 미용 사원과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백화점 입구에 부스를 설치하고 특설무대를 만들어 관련 기자들을 초청한 메이크업 쇼를 진행했다. 이제까지는 백화점 내 해당 매장 앞에서의 메이크업 시연 정도가 전부였던 데 비해 라네즈의 메이크업 쇼는 난타 공연, 마술, 춤 등의 프로그램과 메이크업 시연을 곁들인 프로모션 이벤트로 진행되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상하이 백화점 프로모션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팍슨 백화점 내에서 라네즈의 위치를 굳건히 만드는 발판이 되었다. 프레젠테이션 당시 무시하였던 백화점들로부터도 입점 권유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차별화된 판촉 전략과 우수한 품질에 힘입어 팍슨 백화점의 1호 매장은 개설 6개월 만에 1층의 골든 존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이를 기점으로 중국 전역으로 라네즈 매장을 확산시켜 2002년에는 상하이에 3곳, 이듬해에는 상하이와 베이징을 비롯한 15개 도시 29곳에 매장을 열었으며, 현재는 상하이의 1급 백화점 등 주요 120여 개 도시, 329개 백화점에서 안정적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성과를 올렸다. 브랜드 진출 초기 단기간의 매출 확대보다는 장기적인 전망 속에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주력한 것이다. 또한 거점 도시의 주요 백화점에 매장을 개설함으로써 라네즈를 고급 브랜드로 정착시킨다는 전략이 빛을 발했다.
아모레와 라네즈의 성공이 발판이 되며 여타 브랜드도 중국시장에서 빠르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마몽드’는 현재 270여 개 도시 816개 백화점 매장 및 1676개 전문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에이지 컨트롤 라인, BB크림 등 히트상품 판매 증가로 홈쇼핑, 인터넷 등까지 신규 경로를 확장하며 고객접점을 강화했다.
대표적인 한국판 명품 한방 화장품 ‘설화수(Sulwhasoo)’는 2011년 3월 베이징 백화점 입점을 시작으로 중국 대륙 진출이 본격화되었다.
‘설화수’는 북경 1호점을 오픈한 이래 현재까지 베이징·상하이 등 주요 10여 개 도시의 최고급 백화점에 46개 매장을 입점시켰다. 지속적인 신규 라인 론칭 및 브랜드 인지도 강화를 통해 중화권 고객들에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품 한방 화장품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있다.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Innisfree)’ 역시 2012년 4월 초 온라인을 통해 중국 고객들을 만난 뒤, 중국 상하이에 첫 글로벌 매장을 오픈하며 글로벌 론칭을 성공적으로 알렸다. 중국 내에서 청정섬 제주와 제품 스토리를 이용해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로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 이니스프리는 현재 중국 내에서 상하이 최고의 복합 쇼핑몰인 정대광장몰, 팍슨 백화점, 신세계 백화점 등에서 매장을 운영 중이다. 2013년에는 중국 베이징과 선양 지역에도 각각 매장을 오픈하며 세계 최대 규모의 소비 시장에서 견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특히 이니스프리는 중국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상하이 20~30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특히 ‘더 그린티 씨드 세럼’과 ‘화산송이 모공마스크’는 대표 히트상품이다.
최근 중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인 제주의 천연원료로 만든 자연주의 화장품 콘셉트와 한국의 대표 화장품 회사인 아모레퍼시픽의 연구개발 및 생산기술에 대한 신뢰도 역시 중국 고객들에게 매력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2014년 이니스프리는 중국에서만 108호점까지 매장을 확대하며 중국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넓혀 나갔다.
축구장 12배 규모 유일무이 생산시설 갖춰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사업은 ‘아모레퍼시픽 차이나’ 설립 후 지금까지 연평균 50%에 가까운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중국 사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요인은 몇 가지로 분석된다. 우수한 제품 개발 능력에 한류라는 훈풍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현지화 전략을 필두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에 아모레퍼시픽은 현지 대규모 공장 설립을 통한 고용 창출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 10월 준공된 중국 상하이의 ‘아모레퍼시픽 상하이 뷰티사업장(Beauty Campus Shanghai)’은 대지 면적이 축구장 12배에 달하는 9만2787㎡(약 2만8000평)에 달한다. 연간 1만3000톤, 본품 기준 1억개의 생산 능력(기존 공장에 비해 생산량, 생산 개수 및 연면적 10배 확대)을 보유하고 있다. 기존에는 물류 배송이 7일 이상 소요됐지만 현 물류센터는 선양과 청두에 있는 지역 물류 센터와 연계해 평균 3~4일이면 중국 전 지역으로 배송이 가능하도록 해 고객만족도도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아모레퍼시픽은 2008년부터 올해로 8회를 맞는 ‘아모레퍼시픽 메이크업 유어 라이프(AMOREPACIFIC Makeup Your Life)’ 캠페인을 통해 암 치료 때문에 피부 변화와 탈모 등 급작스러운 외모 변화로 고통받는 여성 암 환우들을 돕고 있다. 메이크업 및 피부관리, 헤어 연출법 등 스스로를 아름답게 가꾸는 노하우를 전수하여 투병 중인 환우들이 심적 고통과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일으킨 장전생명(妆典生命)이라 불리는 이 캠페인은 2011년부터 수혜 지역을 확장했다.
상하이 지역 최고 권위의 복단(復旦, 푸단)대학교 병원에서 진행된 데 이어 병원 및 중국 환우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2012년부터 행사 횟수 및 수혜 대상을 더욱 확대해 ‘상하이 암회복클럽’, ‘분홍천사기금’ 등 대표적인 여성암 관련 단체 및 ‘서금병원’, ‘진여병원’ 등 주요 병원 등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4호(2015년 0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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