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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문현지구에 해양금융종합센터 개소…국내 조선 해운업 경쟁력 높일 계기 마련
입력 : 2014.12.12 10: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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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금융센터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는 수출입은행의 이덕훈 행장은 “해양금융종합센터는 우리나라 제1의 해양산업 중심지인 부산에 해양금융 기능을 집중시켜 우리 조선·해운업계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부산을 명실상부한 ‘해양금융 허브’로 육성하려는 정부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고 강조했다.
이 행장은 또 센터 설립을 계기로 “해양금융 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다양한 상품 개발과 맞춤형 금융 제공 등을 통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해운업계의 다양한 금융 수요에 적극 부응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정부는 정책금융기구로서 선박금융 강화에 노력하고 있다”며 “해양금융종합센터에 이어 해운보증기구도 설립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에 각각 1조8000억원과 4800억원을 출자키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서병수 부산시장은 “이 센터가 해운업이나 조선업 지원뿐 아니라 부산지역 금융 자체의 성장에도 큰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현재 해양금융종합센터에는 수출입은행에서 42명, 산업은행 17명, 무역보험공사 18명 등 77명의 전문가들이 나와 조선이나 해양플랜트, 해운, 기자재 등 해양금융 관련 업무 전반을 공동으로 지원하고 있다. 내년에는 관련 인력 규모가 100여 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세 기관이 이곳에 들어온 것은 공동보조를 통해 대규모 지원이 필요한 기업이나 사업의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원스톱상담센터를 운영해 고객의 편의를 제공하는 등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이미 ‘해양금융협의회’를 구성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세 기관은 이처럼 공동보조를 취하기도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독립성을 가지고 각자가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다만 각 기관의 본부장이 전결권을 갖고 내려와 자금 지원 등이 필요할 때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원활한 소통이 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미 공동지원 실적까지 올렸다. 지난 10월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컨테이너선 8척을 구매하기로 계약한 그리스의 오션벌크 컨테이너사에 3억4000만달러의 선박금융을 공동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션벌크 컨테이너는 그리스 3위의 해운사인 오션벌크그룹과 미국계 사모펀드인 오크트리가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로 이번에 현대중공업에 6억8000만달러 상당의 컨테이너선 6척을 주문했다. 이때 자기자금 2억달러를 지불하고 4억8000만달러를 조달했는데 수출입은행이 1억7000만달러, 무역보험공사가 1억7000만달러, 외국계 상업은행이 1억4000만달러를 지원해 필요한 자금을 맞췄다. 이처럼 세 기관이 한자리에서 협의해 대규모 자금지원이 필요한 사업에 신속하게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이 센터의 장점이란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덕훈 행장은 “해양금융 지원에 있어 수출입은행과 부산시, 지역 대표은행인 부산은행의 참여로 ‘지자체-지방은행-정책금융기관’ 간 협력모델을 만들어 나갈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수출입은행이 이처럼 현장에서 해양금융 지원을 강화하는 것은 세계 1위인 한국 조선업이나 세계 5위인 해운업이 안팎으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업의 경우 발주 물량이 감소하는 가운데 중국의 저가 공세와 엔저의 영향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2011년엔 세계 수주금액의 44%를 차지하며 중국, 일본에 압도적 우위를 보이던 한국 조선업은 올해 들어선 9월 말 기준 31%의 수주금액 점유율로 34%를 차지한 중국에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이 얼마나 저가공세를 펼치는지는 건조량이나 수주잔량에서 중국이 한국을 훨씬 앞서고 있다는 데서 잘 나타난다. 무역보험공사에 따르면 건조량 점유율은 2011년 한국이 31%, 중국은 40%였고 올해는 7월 말 현재 양국 모두 34%로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또 수주잔량 점유율은 2011년과 올해 모두 한국 29%, 중국 41%로 중국이 크게 앞서고 있다.
해운업도 경쟁력 약화로 업계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지배선대의 선복량 기준으로 세계 5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금융위기 이후 재무안정성이 떨어지면서 선사들이 연료 효율이 좋은 초대형 선박을 발주하지 못해 운임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특히 자체 선박을 보유하지 못하고 용선에 의존하는 점도 경쟁력이 밀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선이나 해운 모두 자금력에서 뒤져 세계적 경쟁에서 밀린다고 보고 있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이 조선·해운업계의 다양한 금융 수요에 적극 부응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런 점에서 해양금융종합센터는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출입은행이 산업은행이나 무역보험공사는 물론이고 상업은행까지 끌어들여 자금지원을 대폭 늘리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소식에서 김영학 무역보험공사 사장은 최근 조선업과 해운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며 조선·해운업의 위기 극복을 위해 매년 5조원 이상 해오던 해양조선금융 지원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유희경 산업은행 수석부행장도 “금융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해운업계에 큰 힘이 되는 한편, 그동안 축적한 선박 금융 노하우를 활용하여 부산이 아·태 지역 해양금융의 메카로 자리 잡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세 기관이 한 방향으로 해양금융을 강화할 의지를 밝힌 만큼 국내 조선업이나 해운업계의 자금조달 여건은 과거에 비해 훨씬 개선될 전망이다.
INTERVIEW 최성영 해양금융종합센터장(수출입은행 부행장) “세 기관 공조로 외국과의 협상력 강화됐죠”
최 부행장은 이번에 센터 개소식을 했지만 사실은 지난 6월 29일에 내려와 사전 준비를 하고 9월 29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수출입은행을 비롯해 산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세 기관이 따로 내려와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각 기관의 여신규정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가 해양금융종합센터와 해운보증기구를 이곳에 설립키로 했는데 새로운 기구를 설립하는 것보다 기존에 해양금융 업무를 취급하던 세 기관이 실질적 효력을 내는 게 더 낫다는 판단에 따라 여기서 함께 영업을 하고 있다.”
최 부행장은 세 기관이 한곳에서 일하다 보니 외국인과 협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경쟁을 하지만 우리끼리 쪽박을 깨지는 말자고 했다. 강요도 하지 않고 독립성도 유지하면서 심사역들이 함께 평가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외국인의 이간질에 대응하기가 쉬워졌다.”
그는 최근 선박금융이 대형화·장기화되고 있어 세 기관이 공동보조를 맞출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조선업은 특성상 장기 자금을 필요로 한다. 선박을 수주하더라도 돈을 한 번에 주는 게 아니라 선수금부터 공정에 따라 분할 지급한다. 이 때문에 실제 공정과 수금과의 미스매칭이 발생하는데 그 부분을 수출입은행이 지원해 왔다. 그런데 최근엔 선수금부터 개런티를 요구한다. 해외 선주들이 한국 조선소 발주 조건으로 파이낸싱을 요구하기도 한다. 20%를 자기자본으로 내고 80% 파이낸싱을 요구하는 것은 보통이다. 미국이나 유럽 선주들은 쉽 파이낸싱이 굉장히 길어 10~12년 된다. 이런 자금을 상업은행이 지원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수출입은행에 지원을 요청한다.”
발주규모 커져 자금지원도 늘어야 그는 특히 최근 대량 발주가 특징이라고 했다. 지금은 10~20억달러 규모가 보통이라는 것. 무역보험공사와 함께 자금지원에 나서는 것도 프로젝트가 대형화되고 있는 추세에 맞춘 것이라고 했다. 센터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공동상담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은 한두 척 발주하는 게 아니라 10척 정도를 시리즈로 발주한다. 그러다보니 선주들도 대규모 자금을 필요로 한다. 미국 같은 경우 자본시장이 발달해 채권 발행을 많이 하는데 금융기관들이 자금을 지원해주는 대신 수출입은행의 개런티를 요구하기도 한다. 연속 발주에 10억달러가 들어간다고 할 때 2억달러를 선수금으로 주고 8억달러를 파이낸싱 하는데 4억달러는 수출입은행이 파이낸싱을 해주고 추가 4억달러는 발주자가 직접 채권을 발행하되 수출입은행이 보증하는 식이다. 직접 파이낸싱을 하거나 보증하거나 리스크는 같지만 수출입은행으로선 외자조달 부담이 줄기 때문에 서로 수요가 맞는다.”
최 부행장은 특히 외국 선주가 자금을 조달할 때 수출입은행이 지원한다고 하면 상업은행들이 편안하게 느끼고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박금융의 리스크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했다. “돈을 못 받으면 배를 회수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국내 상업은행에 선박금융 노하우까지 전수하고 있다.
“외국 선주가 자금을 조달할 때 경험이 부족한 국내 상업은행에 선박금융을 소개해 실적을 쌓도록 하고 있다. 특히 상업은행에 우선변제권을 제공할 뿐 아니라 국제 비즈니스까지 가르쳐주고 있다. 최근 부산은행과 MOU를 체결해 신규업무를 배우도록 주선하고 있다.”
경영난에 처한 중소 조선사나 해운사 지원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오션 밸류업 펀드나 에코쉽 펀드도 추진하고 있다. 옛날 배들은 연료효율이 떨어진다. 새로 만든 대형 선박은 연료를 30%까지 절감할 수 있다. 지금 국적선사들이 어려운데 수출입은행에서 2500억원,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로부터 7500억원 등을 모아 1조원 규모 에코쉽 펀드를 출범할 계획이다. 이 자금으로 효율 좋은 선박을 만들어 임대하는 방식으로 국적선사의 재무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신규발주 역량을 강화하려고 한다.”
저금리 국면이라 수익을 낼 상품이 마땅찮은 자산운용사엔 선박금융은 괜찮은 상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담보대출이라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제법 수익률도 높다는 것. 그는 이 프로젝트가 자율협약에 들어간 중소 조선사의 활로를 여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일감을 제공하는 것 자체가 구조조정을 돕는 것이란 얘기다.
“구조조정도 수주를 해야 가능하다. 금년 내 이를 위한 파일럿 프로젝트가 나올 것이다.”
자산운용사 선박펀드와 연계한 프로젝트를 발굴해 2~3년을 보고 배를 건조해 용선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는 게 그의 복안이다.
한마디로 센터가 대출이나 이행보증 등 전통의 선박금융을 넘어 종합적인 장기금융이나 상업은행 교육, 선박펀드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무를 구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 =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1호(2014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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