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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그룹 ‘맞춤형’ 전략으로 글로벌 공략
입력 : 2014.12.12 10: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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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공장에서 생산한 i10 기념식에 참석한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2000년대 초반 유럽 시장에 공을 들여온 현대기아차그룹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고 있다. 현대차가 유럽시장에서 시장 평균성장률을 웃도는 성장세를 기록한 것이다. 11월 19일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 유럽에서만 3만6378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성장했다. 기아차 역시 마찬가지다. 기아차는 지난달 유럽에서만 3만181대를 판매하며, 4.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시장평균보다 낮은 성장이지만,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현대기아차그룹은 그동안 유럽을 포함해 세계 각지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지난해 해외에서만 414만1492대의 자동차를 생산·판매했다. 북미 지역에는 직접 공장을 설립하며, 현지 생산체제를 갖췄고, 남미에서는 현지 도로 사정에 딱 맞는 맞춤형 차량을 선보였다. 이뿐 아니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의 새로운 격전지로 부상한 중국에서는 현지공장은 물론, 중국형 모델들을 잇달아 선보이며 대륙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현지에 공장을 설립하여 단순한 현지화 전략을 넘어 맞춤형 모델과 특정 성능을 강화하는 등 ‘적재적소’ 전략을 추구하는 현대기아차그룹의 글로벌 경영을 살펴봤다.
이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현지 전략 차종은 바로 러시아에 투입된 현대차의 쏠라리스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기아차의 씨드다.
현대차의 ‘쏠라리스’는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은 러시아의 기후적 특성과 현지 운전 문화 등을 고려한 대표적인 현지 전략 차종이다. 지난해 12만8391대를 판매해 3년 연속 러시아 수입차 단일 차종 판매 1위에 올랐다.
러시아 현지에서 쏠라리스의 위세는 대단하다.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가기 전인 지난 2011년 1월 러시아 3대 자동차 전문잡지인 <클락손>이 발표한 ‘골든 클락손 상’ 소형차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또 2012년에는 ‘2012 러시아 올해의 신차’, ‘2012 러시아 올해의 소형차’ 등에 선정되기도 했다. 쏠라리스가 이처럼 큰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현대차의 치밀한 사전 조사 덕분이다. 현대차는 우수한 연비와 동력성능은 물론 철저한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러시아인들이 선호하는 사양을 탑재했다. 특히 춥고 눈이 많은 러시아 현지 기후를 고려한 ‘윈드실드 와이퍼 결빙 방지 장치’, 낮은 기온에서도 시동을 잘 걸 수 있는 배터리, 4L의 대용량 워셔액 탱크, 눈길을 달릴 때 흙탕물이 튀는 것을 막아주는 ‘머드 가드’를 기본으로 적용한 것이 주효했다.
여기에 급출발과 급제동이 빈번한 러시아의 운전문화까지도 고려한 ‘급제동 경보 장치’도 기본 장착했다. 또 밤이 긴 만큼 장시간 쓸 수 있는 램프를 장착하는 등 철저한 현지 맞춤형 차량으로 개발했다.
기아차의 첫 번째 해외 현지 전략 모델인 ‘씨드’는 아예 기획부터 생산까지 유럽에서 진행된다. 기아차의 유럽 진출 거점인 슬로바키아공장에서 씨드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서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본격 판매에 돌입한 씨드는 첫 해에만 12만6199대를 판매했다. 신형(JD)과 구형(ED)을 포함해 2013년까지의 판매량을 모두 더하면 85만4169대에 달한다.
기아차의 첫 번째 유럽 도전작이었던 씨드가 이처럼 높은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인들이 중시하는 안전성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씨드는 2007년 8월 유럽 품질평가 기관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유럽-NCAP(유럽 신차평가제도)에서 한국 자동차 최초로 별 다섯 개 만점을 받았다.
게다가 디자인에서도 유럽 감성이 물씬 묻어난다. 씨드의 3도어 해치백 모델인 프로씨드는 2012년 11월 ‘iF 디자인상’에서 본상을 수상하는 등 유럽 현지에서 우수한 디자인과 상품성을 인정받으며 인기를 지속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이 이처럼 중국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 것은 ‘위에동’으로 불리는 현지 전략 차종 덕분이다. 위에동은 국내에서 ‘아반떼HD’로 판매되는 구형 모델을 중국 현지 사정에 맞게 차체를 키우고 디자인을 바꾼 전략 모델이다. 2008년 판매를 시작한 위에동은 지난해 초 누적 판매 대수만 100만대를 돌파해 중국 내 ‘밀리언셀러’로 등극했다.
위에동으로 이미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대차는 2012년 8월 아반떼MD를 중국 현지 사정에 맞춰 개선한 ‘랑동’도 중국에 공개했다. 랑동은 큰 차체를 선호하는 중국인들의 취향에 맞춰 휠베이스(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의 길이)를 동급 모델 중에서 가장 긴 2700㎜로 늘렸으며, 주차 보조시스템, 차체자세제어시스템(ESP), 급제동 경보시스템 등 중형급 이상의 차에 적용되는 첨단 안전 기술을 탑재했다.
특히 운전석 통풍시트와 뒷좌석 에어컨 통풍구 등 국내에는 없는 고급 편의사양 등도 추가해 판매에 나섰다. 그 결과 현대차의 중국법인인 북경현대는 랑동 출시 첫 해인 2012년에만 8만460대를 판매했으며, 2013년에는 20만6348대를 팔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아반떼와 쏘나타의 중간급인 1.8L 및 2.0L 중국 전략 모델인 ‘밍투’ 역시 공개했다. 웅장함을 좋아하는 중국인의 취향을 고려해 헤드램프와 그릴 등을 크고 넓게 디자인했다.
현대차가 국내 모델을 다시 디자인해 중국에서 성공을 거뒀다면, 기아차는 아예 중국시장에서만 판매하는 신차를 출시했다. 2011년 7월 선보인 K2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K2는 제품기획 단계부터 크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호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전반적인 구매성향과 20~30대 젊은 고객들의 다양해진 눈높이에 맞춰 현지 전략 모델로 설계됐다. 차량명도 글로벌 K시리즈에 맞춰서 ‘K2’로 명명했고, 외관 디자인 역시 패밀리 룩을 반영했다.
특히 K2는 연비 15.4㎞/L (중국 현지 기준)의 최첨단 감마 1.4엔진과 감마 1.6엔진을 탑재해 동급 최고의 동력성능과 고연비의 경제성을 갖췄다. 또 동급 최대 길이(2570㎜)의 휠베이스를 통해 준중형급 수준의 여유로운 실내공간을 확보했으며, 버튼시동, 스마트키 등으로 상품성을 높였다.
멋진 신차를 공개해서일까. 기아차는 중국 진출 첫 해인 2011년에만 5만8334대, 2012년에는 14만3206대를 판매했다. K2는 2013년에도 인기를 지속하며 상반기까지 14만3550대가 팔려 역대 최다 판매를 기록하는 한편 출시 3년도 채 안된 기간에 누적판매 30만대를 돌파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인도에서 현대차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소형차 i10은 좁은 골목길이 많고 주차공간이 열악한 현지 도로사정을 고려해 개발됐다. 현대차의 패밀리 룩이 반영된 세련된 디자인과 USB·아이팟 단자, 후방주차 보조시스템 등 다양한 고급 편의사양으로 품질 경쟁력을 높인 것도 인기비결이다.
i10은 현재 인도를 비롯한 아프리카와 중동, 중남미 지역 등에 수출 중이다. 인도에서는 2013년에만 구형과 신형을 합쳐 총 11만9774대를 판매하는 등 인도 내 최다 판매 차종으로 군림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도 27만6167대를 판매해 현대·기아차 현지전략 차종 중 최다 판매 차종으로 등극했다.
브라질 대표 모델로 불리는 현대차의 HB20은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혼합연료 차량이다. 바이오 에탄올과 가솔린을 모두 사용하는 모델로, 오직 브라질에서만 볼 수 있다.
HB20은 현대차의 디자인 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처’를 그대로 계승하면서도, 브라질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도록 세련미와 역동성을 갖춘 해치백 스타일로 탄생했다. 5년 무제한 마일리지 보증, 1년 무상 긴급출동 서비스 등을 통해 고객이 최고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내부 공간은 소형차임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패키징 기술을 바탕으로 2500㎜의 휠베이스를 구현, 거주 공간을 최대화해 경쟁 모델과 차별화된 실내 공간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주차 경보 시스템 등의 편의사양을 적용했으며, 차량 도난이 많은 현지 실정을 반영해 최고 수준의 도난 방지 기능도 갖췄다. 안전성 측면에서는 운전석과 조수석 듀얼 에어백을 기본 적용하고, 급제동 시 제동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첨단 시스템을 탑재하는 등 동급 최고의 안전성을 추구했다.
이러한 우수한 상품성을 바탕으로 출시 3주 만에 계약물량이 5만대에 육박했으며, 지난해에는 16만7385대를 판매하는 등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다.
한 현대기아차그룹 관계자는 “현지 사정에 딱 들어맞는 전략 모델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전략 모델과 출시하는 것은 물론, 고급스러우면서도 효율성이 높은 신차들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각기 다른 문화들이 모인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 그 비결은 바로 글로벌 현지화 전략에 있었다.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1호(2014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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