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껍데기 주식 쥔 회장님들 주가 하락하면 어쩌나
입력 : 2014.12.11 18:08:50
-
주식담보 대출은 본인 소유의 주식을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하고, 금융기관은 담보 주식을 평가해 일정액의 비율로 대출해주는 제도를 의미한다.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재벌그룹 오너 일가들은 이 제도를 그동안 자산축척의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그러나 주식시장이 폭락하거나, 해당 주식의 가치가 급격하게 낮아지면 금융기관은 담보비율 재조정을 위해 담보로 제공받은 주식을 팔아치울 수 있다. 이를 ‘반대매매’에 나서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 재벌그룹 오너 일가들의 그룹 지배력이 급격하게 약화될 수 있다. 양날의 칼인 셈이다.
30대 그룹 3분의 2가 주식담보대출 활용 지난 10월 15일 CEO스코어는 ‘30대 그룹 대주주 일가의 주식담보 대출 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내용에 따르면 30대 그룹 3곳 중 2곳은 대주주 일가 주식이 채권금융기관 등에 담보로 잡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두산, 동부, 한진 등 7개 그룹은 주식담보비율이 50%를 넘었다. 반면 삼성, 현대차, 롯데 등 11개 그룹은 주식담보가 전혀 없었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30대 그룹 대주주 일가의 상장사 보유 주식은 지난 10월 10일 기준 현재 63조6300억원에 달했다. 주식담보 대출로 인해 담보 및 질권으로 설정된 비중은 10%인 6조3500억원이었다. 대주주 일가의 상장사 보유 주식은 10월 10일 기준이며, 주식담보비율은 보유 주식자산 대비 담보 제공된 주식가치로 계산했다.
30대 그룹 대주주 일가 425명이 상장사 116곳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고, 108명이 38개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제공했다. 대주주 일가는 4명 중 1명, 주식 보유 계열사는 3곳 중 1곳 꼴로 주식담보대출이 이뤄진 셈이다. 부영과 미래에셋은 상장사가 없어 제외했다.
주식담보 대출 내역이 없는 11개 그룹을 제외한 17개 그룹을 따로 살펴보면 담보대출 비율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들 17개 그룹 대주주 일가의 전체 주식자산은 17조7700억원이었는데, 이에 대한 담보비율은 37.4%로 집계됐다.
앞서 밝힌 것처럼 주식담보대출은 대주주 일가의 재산권만 담보로 설정하고 의결권은 인정되기 때문에 경영권 행사에 지장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추후 돈을 갚고 담보 주식을 돌려받으면 된다.
그러나 대주주 일가의 주식담보 대출이 알려지면 투자 심리 위축이 일어날 수 있고, 주가가 담보권 설정 이하로 폭락할 경우 금융권의 반대매매(대여금 회수)에 따른 주가 하락으로 소액 주주 피해가 우려된다. 심할 경우에는 최대주주 변경으로 경영권을 상실할 수도 있다.
두산그룹 대주주 일가는 모두 지주사인 ㈜두산과 두산건설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는데,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한 주식 전부에 질권 설정이 돼 있다. 질권 설정은 제3자가 돈을 빌리는 데 담보를 서는 것을 의미한다.
두산그룹 오너 일가 중 담보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일가와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일가로 모두 98.4%에 달했다.
박용곤 명예회장 일가는 총 주식자산 3138억원 중 3086억원을 담보로 제공했다. 박정원 ㈜두산 회장이 1408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이 938억원, 박혜원 두산매거진 전무가 469억원, 박용곤 명예회장이 270억원의 주식을 담보로 잡혔다.
두산가 3남 박용성 회장 일가는 장남인 박진원 ㈜두산 사장이 803억원, 차남인 박성원 두산엔진 전무가 656억원, 박용성 회장이 640억원을 잡혔다.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 일가 역시 총 주식자산 2135억원 중 2100억원을 담보로 잡혔고, 박용만 회장 일가는 1744억원의 주식자산을 담보로 1650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두산그룹에 이어 가장 높은 담보비율을 기록한 곳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동부그룹과 한진그룹이었다. 두 그룹 역시 대주주 일가가 소유한 주식의 90% 이상이 담보로 설정돼 있다.
동부그룹은 김준기 회장 일가도 주식평가액의 90%를 넘는 1조599억원을 담보대출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유동성 위기로 재무위기를 겪고 있는 그룹의 경영정상화 과정 때문에 담보대출 비율 역시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CEO스코어는 김준기 회장 일가 4명의 주식가치를 총 1조2057억원으로 평가했다. 이 중 90.9%에 달하는 1조959억원을 담보로 대출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김준기 회장 일가가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한 계열사 주식은 동부건설과 동부제철, 동부증권, 동부화재, 동부하이텍, 동부CNI 등 핵심계열사 주식들이다. 금액별로는 김준기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동부팜한농 부장이 6379억원을 대출받아 총 담보금액의 58.2%를 대출받았다. 이어 김준기 회장이 3618억원, 장녀인 주원씨가 949억원, 부인인 김정희 여사가 13억원을 대출받았다.
동부그룹 오너 일가의 주식담보 대출액은 지난해 11월 산업은행과 그룹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급격하게 늘어났다. 총 34건의 담보대출 중 70% 정도(23건)가 11월 이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금액으로 환산해도 총 담보대출액 1조959억원 중 98.5%에 해당하는 1조802억원이 이 시기에 집중돼 있다. 회사채 상환과 핵심계열사 자금 투입, 사재출연 등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부그룹과 함께 유동성 위기를 겪었지만 무난하게 위기를 헤쳐 나가고 있는 한진그룹도 대주주 일가의 주식담보 대출 비중은 90%를 넘었다. 조양호 회장을 제외한 조원태·조현아·조현민 3세와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 등이 소유한 상장사 지분 1600억원 중 1460억원 정도가 금융권에 담보로 제공됐다.
태광그룹은 30대그룹 중 주식담보 대출 비중이 4위로 높았다. 이호진 전 회장이 중병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데도 오너 일가 보유 지분의 88.3%가 담보로 잡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의 경우 담보 제공된 주식의 3분의 2 이상이 공탁(금전·유가증권·기타 물품을 공탁소에 맡기는 것)으로 담보대출과는 거리가 있었다.
조석래 회장이 ㈜효성 주식을 국세청과 한국증권금융, 외환은행에 담보로 설정했고, 부인인 송광자 여사도 신한금융투자와 우리투자증권에 주식을 맡겼다. 국세청에서 추징당한 과징금과 양도소득세를 내기 위한 대출로 보인다.
반면 조현준 사장과 조현상 부사장의 대출은 최근에 집중돼 있다. 조현준 사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9월까지 총 12건의 담보대출을 받았다. 조현상 부사장 역시 ㈜효성 주식자산 중 90%가 담보인 상태다.
재계에서는 조현문 전 사장이 2012년 말 회사를 떠나면서 보유하고 있던 지분 7.18%를 모두 매각했는데, 이로 인해 효성그룹은 경영권이 한동안 위태로웠다. 이에 오너 일가가 담보대출을 통해 실탄을 마련, 일제히 지분을 늘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효성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31.3%로 올라간 상태다.
이 밖에도 한화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도 각각 66.8%와 66.6%로, 대주주 일가 주식 자산의 절반 이상이 담보로 제공돼 있었다.
대주주의 주식담보 대출 비율이 50% 이하인 곳으로는 CJ(46%)→동국제강(27.4%)→LS(26.9%)→OCI(19%)→GS(18.3%)→LG(12.6%)→SK(12.4%)→한라(11.2%)→현대그룹(10.5%) 순이었다. 코오롱은 1.1%로 주식담보비율이 미미했다.
반면 삼성, 현대차를 비롯해 롯데, 현대중공업, 신세계, 대림, 현대백화점, 영풍, KCC, 한국타이어, 한진중공업 등 11개 그룹은 대주주 일가의 주식담보 대출 내역이 없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주식담보 대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을 살펴보면 20~30위권 중견그룹들이 주로 눈에 띈다”며 “특히 오너 일가가 검찰 조사를 받았거나, 유동성 위기, 혹은 형제 간 내홍을 겪고 있는 그룹일수록 담보대출 비율이 높았다”고 밝혔다. 경영권이 흔들리는 만큼 담보대출 비율 역시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증권 전문가들도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일수록 주식담보 대출 비율이 높았다”며 투자에 신중할 것을 요구했다.
[서종열 기자 사진 매경DB]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1호(2014년 12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