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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타고 쑥쑥! 디저트가 뭐기에
입력 : 2014.09.12 15: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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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플라자 호텔 ‘프리미엄 에쉬레 팬케이크’
하지만 약 1000년의 세월이 흘러 한국에 불어닥친 디저트 열풍은 사실 기이하다. 경기불황에 세월호 참사 이후 여타 식품·외식업계가 으스스 춥다며 신음하는 가운데 유독 시원하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특급호텔 외식사업부 관계자는 “몇 년 전만 해도 호텔 정찬에서 디저트를 주문하는 분들이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요즘은 디저트만 주문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며 “예전엔 해외 유학 등을 통해 서구문화를 접한 분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지금은 방송이나 인터넷 블로그 등을 보고 찾는 분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고 나름의 원인을 찾았다. 또 다른 특급호텔 매니저는 사회적 상황에서 고객의 성향을 분석했다.
“경기불황에 지갑 열기가 무섭다는데 밥은 싸게 먹어도 후식은 우아하게 먹자는 분들이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젊은 여성분들은 넉넉한 양의 과일빙수를 함께 드시고 계산도 나눠서 합니다. 그리곤 분위기 좋은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내죠.”
이른바 립스틱효과다. 비교적 저렴한 상품을 소비하면서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밥은 싸구려라도 후식 정도는 나를 위해 우아하고 즐겁게 먹고 싶은 충동은 호텔에서만 느끼는 식욕이 아니다. 요즘 ‘핫’하다는 거리에 나서면 남녀 성별 가리지 않고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디저트족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점심시간 20분에 커피타임 40분은 옛말이 된 지 오래, 인테리어 은은한 카페에서 신상 디저트 즐기며 수다 떠는 트렌드는 연령대를 가리지 않는다.
여기서 잠깐, 나름 잘나간다는 디저트계 핫플레이스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트렌드세터들이 많은 거리에 맛집과 멋집이 모여 있는 건 변치 않는 진리 중 하나다. 우선 서울 신사동 가로수 길의 ‘보뚜 아사이(Boto Acai)’가 눈에 띈다. 아사이베리로 만든 ‘아사이 볼’이 유일한 메뉴다. 아사이베리 스무디에 바나나, 포도, 키워, 체리 등 과일과 카카오, 치아 시드를 토핑한 건강식 디저트다. 다이어트에 민감한 여성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같은 거리에 있는 ‘레미콘’에는 이국적인 아이스크림 메뉴가 그득하다. 아이스크림과 토핑, 시럽 등을 직접 선택해 즐길 수 있다.
홍대 앞에 자리한 ‘소복(Sobok)’은 쌀이 주재료인 한국식 아이스크림 전문점이다. 곱게 간 쌀이 씹히는 아이스크림과 부드러운 빙수, 겉은 인절미요 속은 아이스크림인 ‘소복 인절미 아이스볼’이 인기다. 이외에도 가로수길 옆 세로수 길과 효자동 서촌, 이태원 경리단길 등이 핫한 디저트 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해외 유학파 파티셰들이 직접 카페를 운영하며 젊은 층의 성향을 반영하고 있다면 카페 프렌차이즈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망고빙수(1만5000원)로 유명한 라이프스타일 카페 ‘아티제’는 봄 시즌 한정메뉴로 완판됐던 스트로베리 화이트롤을 다시 출시했는가 하면, ‘카페베네’도 초코 악마빙수(9800원), 뉴욕치즈 케이크 빙수(1만3500원)로 매출을 올리고 있다. ‘오설록’은 머랭 케이크인 다쿠아즈를 활용한 아이스크림 샌드를 출시했다.
유채꿀 아이스크림 샌드는 ‘오설록 티하우스’의 진한 녹차 아이스크림을 그린티 다쿠아즈 사이에 넣어 유채꿀로 마무리한 메뉴다. ‘브릭팝’은 다양한 수제 통과일 아이스바를 판매 중이다. 신선한 통과일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 알록달록한 비주얼이 여성 고객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펠앤콜’은 다시마, 깻잎, 막걸리, 샴페인 등 의외의 재료를 사용한 이색 아이스크림을 선보였다.
메뉴도 ‘6시 내 고향’, ‘깻잎 아이스크림’ 등 투박하지만 재미를 가미했다. ‘나뚜루팝’은 아이스크림을 활용한 크레이프 메뉴를 새롭게 선보였다. 프랑스 요리인 크레이프는 얇게 구워낸 반죽에 다양한 재료를 넣고 싸먹는 음식이다. 나뚜루팝 관계자는 “디저트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메뉴가 세분화되고 있다”며 “평범한 메뉴보다 다양한 재미가 더해진 개성 있는 디저트 메뉴가 주목받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그런가하면 올 여름 화제를 모은 디저트 브랜드는 단연 ‘설빙’이다. 지난해 5월 론칭한 설빙은 1년여가 지난 현재 전국 260여 곳에 점포를 냈다. 인기 메뉴인 인절미 빙수(6000원)와 망고유자 설빙(9000원)은 한 끼 식사보다 가격이 높지만 점심시간이면 기다려 먹는 직장인도 눈에 띌 만큼 인기다.
신라동탄스테이의 ‘블루베리 빙수’와 ‘애플망고 빙수’. 특급호텔들도 디저트 강화에 나섰다. 여름철 효자상품은 단연 빙수류다.
디저트 시장의 전쟁터, 백화점 젊음의 거리가 맛과 멋에 빠져 있다면 시내 중심가의 백화점은 역사와 전통, 해외브랜드를 무기로 업계 추산 3000억원의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서울 소공로의 신세계 본점 지하 1층에 새롭게 단장한 푸드마켓 ‘스위트&기프트 존’은 굳이 식사시간이 아니어도 붐비는 곳이다.
뉴욕 3대 치즈케이크로 선정된 ‘베니에로’, 프랑스식 정통 디저트로 유명한 ‘오뗄두스’, 천연 효모종으로 만든 웰빙 빵 ‘라몽떼’ 등 글로벌 브랜드가 눈길을 끌고 있다. 이 백화점은 지난해 처음 디저트 매출 비중(52.6%)이 조리식품(47.4%)을 넘어섰다. 매출액은 2008년 400억원에서 지난해 900억원으로 5년 만에 2배 넘게 증가했다.
롯데백화점의 디저트 매출 또한 증가세다. 지난해 8.6% 증가한 데 이어 올 상반기엔 전년 동기보다 22%나 늘었다. 지난 3월 본점에 새롭게 단장한 디저트 존은 월평균 2억~3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4월에는 건대스타시티점 지하 1층 식품관에 디저트 매장을 새롭게 열었고, 5월에는 잠실점에 군산의 유명 빵집 ‘이성당’을 입점시켰다. 이성당은 오픈한 지 석 달 만에 14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벨기에 수제 초콜릿 ‘고디바’도 남부럽지 않은 매출을 자랑한다. 3억원의 월매출은 웬만한 명품 브랜드와 비교해도 어깨에 힘줄만한 액수다. 지난해 8월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들어온 일본 롤케이크 브랜드 ‘몽슈슈’도 매출 효자 브랜드 중 하나다. 오픈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줄서서 먹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디저트 먹으러 온 손님이 덤으로 쇼핑까지 하고 가니 비록 주객은 전도됐지만 백화점 입장에선 꿩 먹고 알 먹는 데 전혀 이상 없는 구조다. 백화점들이 앞다퉈 디저트 매장 강화에 나서는 이유다.
회장님 가라사대 디저트가 우리의 길이니… 유명 브랜드를 유치하기 위한 백화점 간의 경쟁도 볼거리다. 재일동포 3세가 일본 오사카에서 성공한 롤케이크 브랜드 ‘몽슈슈’의 유치전은 1년여가 지난 지금도 업계에 회자되곤 한다. 당시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이 접촉한 가운데 신세계백화점이 뛰어들었고 결국 신세계가 롯데를 제치고 현대백화점과 함께 몽슈슈를 들여왔다.
현재까지 성과는 만루홈런감이다. 디저트 브랜드 매출이 백화점 매출에 영향을 미치다보니 회장님들의 입김도 브랜드 유치에 한몫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정지선 회장의 지시로 올 초 해외 브랜드 판권 전문가, 유명 요리사, 식품 바이어 등 12명으로 구성된 ‘식품개발위원회’를 구성했고, 이를 통해 마약쿠키라 불리는 홍콩 ‘제니베이커리’, 프랑스 마카롱 전문점 ‘피에르에르메’ 등을 입점시켰다. 갤러리아백화점도 박세훈 대표가 직접 나서서 맛집을 유치하고 있다. ‘속초 코다리냉면’, 이태원 우동집 ‘니시키’, 멕시칸 타코집 ‘바토스’ 등이 그의 작품이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8호(2014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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