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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인구대책 없으면 일본 전철 밟는다
입력 : 2014.09.12 14:4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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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문제는 실업이지만 조금 더 길고, 멀리 보면 우리는 또 하나의 거대하고도 심각한 인구통계학적 메가트렌드에 맞닥뜨릴 전망이다. 지금과는 정반대로, 일손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2030년이면 일손 부족 심각 최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세계 25개국의 노동력 수급을 분석, 예측하는 작업을 했다. 그 결과 2020년까지는 대부분의 나라가 실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지만, 2030년에 이르면 상황이 역전돼 일자리가 아니라 일손 부족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인구통계학적 리스크는 글로벌 경제를 위협하는 분명한 메가트렌드다. 분석 결과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점은 나라마다 처한 사정이 제각기 많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 메가트렌드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똑같지도 않았고, 영향을 미치는 타이밍도 동시가 아니었다.
노동력은 넘쳐도 부족해도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문제다. 노동력 과잉, 즉 실업은 익히 알다시피 경제에 해를 끼친다. 개인 차원에서 오랫동안 일자리가 없으면 역량이 점점 떨어진다. 이는 다시 고용가능성 저하로 이어진다. 악순환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실업률이 높으면 세수 기반이 줄고, 사회적 서비스 비용은 늘며, 사회 불안정성도 높아진다. 이 역시 국가 경쟁력과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마찬가지 결과를 낳는다.
특히 노동력 부족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동력이 부족하면 경제 성장이 어렵다. 임금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기업에 빈자리가 나도 채워지지 않아 사업을 시작하는 일도 키우기도 어려워진다. 궁극적으로 노동력 부족은 국가경쟁력을 해친다.
런던 일자리센터
심각한 미래 노동력 부족의 원인은 물론, 저출산과 급속한 인구구조 고령화다. 2013년 한국의 출산율은 1.19명이었다. 2001년 이후 우리나라는 1.3명 미만의 초저출산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초저출산과 향후 인구 동향)에 따르면,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이 지금처럼 1.3명 미만으로 유지되면 2100년엔 총인구가 2222만명으로 떨어지며,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8.2%가 만 65세 이상 노인이 될 전망이다.
2010년엔 노인 인구가 10명 중 1명꼴(11.0%)이었다. 일할 수 있는 인구(만 15∼64세)도 2010년 2598만명에서 2016년 3722만명까지 증가하고 그 이후에는 계속 줄어든다.
노인 인구는 급증하고 일할 수 있는 인구는 급감하면서 노인 부양에 대한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이 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출산율을 2.1명까지는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 보건사회연구원의 결론이다. 주변 다른 나라는 어떨까. 한국 경제와 뗄 수 없는 관계인 중국은 상황이 사뭇 다르다. 최근 20년간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 성장을 기록한 중국은(평균 10.1%) 2020년까지도 노동력 부족이 아닌 잉여국으로 남을 전망이다. 2030년이 되면 중국 역시 부족국으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됐는데, 그러나 부족률은 3%로 우려할 수준은 아니었다. 인도의 노동력 수요는 2030년까지 공급을 초과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됐다. 기존 노동력이 효과적으로 활용된다면 추가 경제 성장의 가능성이 막대하다.
요컨대, 중국과 인도 중 누가 노동시장과 관련된 문제를 더 잘 풀어 나가느냐에 따라 누가 아시아에서 선도국가의 자리를 차지하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그렇다고 눈 뜨고 당할 수는 없다.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대응책은 인구 자체를 늘리는 것, 즉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다. 경제 성장은 물론 건전한 인구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다만 인구정책은 시행 즉시 효과를 보기 어렵다. 출산율이 상승한다고 해도 그 효과가 나타나려면 최소 1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인구정책 말고도 다양한 정책적 대응을 병행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용해 볼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인다. 특히 여성 인력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인다. 이를 위해서는 보육시설의 양과 질을 높이는 일, 공교육 정상화, 유연성 있는 근무 형태와 시간 등 워킹맘에 대한 정부와 민간 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두 번째, 더 오래 일하게 한다. 즉 퇴직 시기를 늦춘다. 임금 피크(peak) 제도 등이 보편화되어야 한다. 셋째, 이민을 받아들인다. 다민족 사회로 전환을 위한 사회풍토나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마지막은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일본과 독일의 사례를 분석해 보면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일본은 우리가 갈 길을 먼저 경험한 나라다. 잘 알려졌다시피 일본의 경제활동 인구는 1995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2010년 기준 1.3명으로 줄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수준의 저출산이다. 반면 경제활동 참가율은 소폭 상승했다. 1990년 70%였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2년 기준 74%가 됐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도 늘었다.
과거 중국의 구인구직 장면
독일의 경우는 아직 닥치지 않은 인력 부족에 대처할 수 있도록, 수치상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현재 4.1%에 그치는 독일 65세 이상 노동자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10%까지 늘린다. 또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현재의 71%에서 80%까지 올린다. 특히 독일의 경우, 여성노동자는 파트타임이 많은데, 경제활동 참가율 집계에는 정규직과 파트타임의 구분 없이 포함돼 있다. 즉 더 많은 여성인력이 파트타임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노동력 부족 해결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다음은 이민자다. 매년 순유입 이민자를 36만9000명에서, 2030년까지 이를 46만명으로 늘린다. 마지막으로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단순 계산으로는 독일의 경우 노동생산성을 현재의 0.9% 수준에서 1.15%까지 높이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이 같은 조치들이 모두 성공한다면 2030년까지 23%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는 노동력 부족률을 의미 있는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평균 수치만으로 상황을 보는 것은 충분치 않다. 전체적으로 노동력 수급이 완전 균형인 것처럼 보이는 국가도 자세히 분석해 보니 사정이 달랐다. 이를 테면 초등 교육을 마친 노동자는 100만명 공급 과잉, 중등 교육을 마친 근로자는 100만명 공급 부족이라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평균 수치는 그리 많은 것을 말해 주지 않는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와 기업, 또 시민사회가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러 나서야 하는지 답이 보이게 마련이다.
[변준영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서울오피스 파트너]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8호(2014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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