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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광고가 불륜을 조장한다?…감성이 지배하는 소비시장
입력 : 2014.07.02 1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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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없고 정보는 많다 몇 년 전 미국의 모 광고대행사에서 글로벌 소비자들의 트렌드 리포트를 내놓으며, 대표적인 현상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를 꼽았다.
1. Time Starvation : 시간에 쫓긴다.
2. Explosion of Choice : (구매할 때)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3. Fulfillment for Sale : 쇼핑을 하며 정서적 만족까지 추구한다.
4. Premium Redefined : 프리미엄을 새롭게(다양하게) 정의한다.
사람들의 생활 리듬은 확실히 예전과 비교해 빨라졌다. 일이 많아지고, 일하는 시간이 그에 따라 늘어나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낸 보고서에
의하면 OECD국가 사람들의 근로시간
은 대체로 줄어들었다.
세계 최장의 근로 시간을 자랑한다는 한국도 실제로는 1위 자리를 내준 지 오래고, 1990년 이래 한국인의 근로 시간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00년 이후만 봐도 연평균으로 500시간 이상이 줄어들었다.
근로 시간이 줄어드는데도 우리가 바빠지고 시간에 쫓기게 된 것은 관심분야와 활동범위가 다양해지고 넓어져서 그렇다. 늘어난 휴일에 가족들과 함께 즐길 계획도 잡아야 하고, 친구들과도 물리적인 만남뿐만 아니라 SNS나 블로그를 통해 열심히 교류도 해야 한다. 또한 정기적으로 운동도 해야 하고, 그런 육체건강에 덧붙여 정신건강을 위한 명상이나 요가, 다른 취미활동까지 해야만 제대로 사는 것 같은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내심이 줄고, 쉬는 것 자체에서조차 효율성을 따지며 다음과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아이러니에 부딪히게 된다. “두 시간밖에 시간이 없으니, 그 시간 동안에 내가 최대한으로 편히 쉴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오!”
시간에 쫓기는데, 제품을 사는 과정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제품들이 많아지고, 동일 제품 속에서도 세분화가 일어났다. 세세한 정보들도 넘쳐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근래 시장에서는 선택을 해야 할 것들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교수인 로버트 레인(Robert E. Lane)의 『시장 민주주의 제도에서의 행복의 유실(The Loss of Happiness in Market Democracies)』과 스워스모어대학(Swarthmore College) 교수인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의 『선택의 패러독스(The Paradox of Choice - Why More is Less)』란 책들이 제목 그대로 너무 많은 제품과 브랜드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간은 없고, 어떤 제품을 사야 할지, 그 제품 카테고리에서 어떤 브랜드를 사야 할지, 그 브랜드에서 어떤 모델을 살 것인지 등 결정 내릴 것들이 많아지면서 소비자들은 구매 결정을 내리는 데 직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소비자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서, 소비자들이 더욱 현명해지고 치밀하게 사전 정보를 획득하고 비교분석하여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실상 그 반대로 경험 등을 통한 직관에 많이 의존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예전 방식으로 하는 소비자 행동 예측이 더욱 힘들어진다.
정보가 많아 직관에 의존한다 시몬슨 교수는 소비자 의사결정 분야의 석학이다. 소비자조사와 조사 결과를 수리적으로 해석하는 데 탁월한 학자이다. 조사에 참여한 소비자들이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에 관한 논문을 내기도 했다.
그런 객관성에 대한 천착의 기저에는 소비자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고, 그것은 수치로 증명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지 않나 싶다. 직관은 수치화하여 예측하기 힘들다.
물론 다음과 같은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의 말처럼 소비자들이 비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린다는 얘기는 아니다. “(요즘) 소비자들의 두드러진 특성은 그들이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The central characteristic of consumer is not that they reason poorly but that they often act intuitively).”
직관은 본인의 경험과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소비자들은 바쁘고 결정 내려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브랜드나 제품이 내세우는 제품의 추가적인 기능이나 저렴한 가격 등의 구체적인 정보를 꼼꼼하게 따지기 힘들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알고 있거나 경험한 브랜드들 중에서 즉각적, 감성적으로 어필하는 제품들에 기울게 된다. 단순히 나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한 쇼핑이 아니라, 욕망을 자극하고 그것을 충족시키는 행위의 일종이 된다.
우리가 구매하는 제품 중 가장 고관여, 고가의 제품은 아마 주택일 것이다. 그 주택의 일종인 아파트 광고들의 주류가 감성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심지어는 ‘불륜을 조장한다’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의 광고까지 나왔었다. 여기서 제품은 소비자의 그런 은밀한 내면의 욕망을 발생시킬 뿐만 아니라, 그 비밀을 공유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불륜’까지는 심했고, 일반적인 경우로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돋보이게, 조금은 다르게 보이고 싶은 욕망으로 나타난다. 그것을 쉽게 만족시켜 주는 것이 바로 명품 브랜드다.
윈도우PC와 익살스런 비교를 통해 마케팅효과를 극대화한 애플의 ‘Get a Mac’ 캠페인들
1. 초명품들의 접점 증대 (Accessible Superpremium)
2. 기존 명품들의 브랜드 확장(Extension of Old Luxury Brand)
3. 대중을 위한 명품의 출현(Masstige)
예전에는 극소수의 가진 자들 사이에만 거의 점조직으로 판매되던 초명품들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직접 매장을 개설하고 면세점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가서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와 함께 보통의 사람들도 어느 부분에서는 약간만 무리를 하면 특정 부분에서 명품을 즐길 수 있도록 브랜드를 확장한다.
예를 들어 ‘베라 왕(Vera Wang)’을 느끼기 위해 굳이 수만 달러의 웨딩드레스나 파티용 드레스를 입을 필요 없이 이제는 100달러 안팎의 베라 왕 향수를 사면 된다. 일상적인 용품에서도 명품들이 출현하고 있다. 스타벅스(Starbucks)가 대표적인 예이다.
하루에 몇 잔씩 마시는 커피에서도 명품을 추구하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위에서 든 네 가지 트렌드가 집약된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후딱 커피 한 잔 사가지고 나가는 패스트푸드점에 비해서, 스타벅스에서는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뭔가 마음을 편하게 하는 여유 있는 행동을 했다고 사람들은 느낀다. 굳이 자리에 앉지 않고 주문만 하는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커피향 속에서 느긋함을 누린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스타벅스에서 결정 내릴 것은 얼마나 많은가? 수많은 일상에서는 쓰이지도 않는 단어로 이루어진 커피와 커피 아류의 제품들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크기와 컵의 종류, 어디서 마실 것이지를 결정해서 주문해야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런 특수용어와 절차에 따라 스타벅스 종업원에게 주문을 하고 특별한 의식(儀式)을 행하면서, 코드 언어를 공유하는 유대관계를 맺은 듯한 느낌을 가진다.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엮어져 스타벅스를 마시는 나는 특별한, 프리미엄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제품 특성과 기업전략에 따라 브랜드 비중이 달라진다 시몬슨 교수가 ‘브랜드의 힘이 급락하고 있다는 증거’로 내세운 게, 다른 PC 브랜드의 위탁 생산만 하던 대만의 PC업체인 에이수스(ASUS)가 2007년에 최초로 자기 브랜드로 내놓은 ‘Eee PC’였다. 소비자들은 에이수스란 기업을 모르니 거기서 나온 Eee PC의 품질을 의심할 것이니 팔릴 수 없다고 경쟁자들은 예상을 했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가격 대비 가치를 산정하고 리뷰 사이트와 SNS로 전문가와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들은 소비자들은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Eee PC의 장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출시 후 1년 동안 무려 500만 대를 구입했다는 것이다.
Eee PC의 사례는 단순히 매출 대수만 볼 것이 아니라, 당시 PC라는 제품 카테고리와 주요 PC 기업의 전략을 함께 고려하여 분석해야 한다. PC가 가정과 직장 생활 양쪽에서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Intel Inside’란 전설의 캠페인이 나오면서 PC는 일상적인 용품이 되었다. 인텔 칩이 들어 있으면 껍데기 브랜드야 별상관이 없다는 식이 되었다. 조립식 PC나 유통 과정의 혁명을 통하여 등장한 Dell PC같은 경우는 바로 기존의 브랜드 파워 없이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IBM이 PC사업을 접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Eee PC의 성공이 브랜드 파워란 것이 큰 역할을 발휘하지 못한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PC라는 제품 카테고리 자체에서 브랜드 파워의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PC업계에도 여전히 브랜드 파워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경우도 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애플(Apple)은 보통 ‘Mac vs PC’라고 부르는 ‘Get a Mac’ 캠페인을 전개하며, 거의 같은 포맷으로 이루어진 66편의 광고물들을 내보냈다.
퉁퉁하고 보수적인 차림의 아저씨가 ‘난 PC야(I’m a PC)’하며 나오고 날렵하고 트렌디한 느낌의 청년이 ‘난 맥이야(I’m a Mac)’라며 나타나 자신들의 능력을 비교한다. 브랜드 파워라고는 없이 PC라는 보통명사로 뭉쳐버리는 이들과 명확하게 선을 긋는 애플의 전략이 선명하게 드러난 캠페인이었다.
미국 최고의 광고전문지 중 하나인 Adweek는 이 캠페인을 2000년대 첫 10년의 최고의 캠페인으로 꼽았다. 애플이 잘한 면도 분명히 있지만, 이는 브랜드 파워의 역할과 비중은 기업의 사업전략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에이수스는 Eee PC를 출시하면서 애당초 브랜드 파워가 아닌 품질에 기초한 가격 대비 가치(Value for money)로 승부하려고 했다. 그 사례로 브랜드 파워 자체가 사라지고 영향력이 떨어진다고 단정 짓기는 무리다.
정확한 선형(線形) 인과관계로 엮이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없는데 결정을 해야 할 것들은 많아지고 하니, 짧은 시간 동안의 쇼핑 활동에서도 이성적인 결정보다는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에 기초해 감성적, 직관적인 만족을 추구하게 된다. 이는 명품들이 대중에게 더욱 접근하는 양상과 어울려 자신을 올려 주고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는 명품들을 더욱 선호하는 경향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스타벅스의 예에서 보았듯이 어느 분야에서나 명품은 만들어낼 수 있다.
주요한 트렌드들을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나에게 유리하게,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느냐가 열쇠이다. 그 열쇠는 아주 작은 한 점에서 찾을 수도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로스 펠리스에 있는 짝퉁 스타벅스. 세계적 커피체인인 스타벅스란 이름 앞에 ‘덤(Dumbㆍ멍청한)’이란 단어를 붙인 이 가게는 건물 외부는 물론 컵, 메뉴 등 모든 것이 스타벅스와 비슷하다.
많은 푸른 잎 가운데 한 송이 붉은 꽃
[萬綠叢中紅一點(만록총중홍일점)]
사람을 움직이는 봄빛 많은들 무엇하리
[動人春色不須多(동인춘색불수다)]
왕안석(王安石)의 ‘詠石榴花(석류꽃을 노래함)’란 시구절이다. 첫 번째 구는 ‘濃綠萬枝紅一點’으로 나오기도 한다. 전문이 어떻게 되는지 찾아보다 전공자로 중문학 박사인 처에게까지 의뢰했는데 결국 전해지는 것이 위의 두 구라고 결론지었다.
한참 검색을 하고 파고든 처의 말인즉슨, 원래 왕안석의 시가 있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며 다르게 인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萬綠叢中紅一點’을 쓰는데, ‘濃綠萬枝紅一點’이 원시였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왕안석이 원래 7언 절구로 짓지 않고 두 구만 읊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시의 전문이 무엇이었는지, 원문은 무엇이었는지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많은 빛이 필요하지 않다”는 두 번째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브랜드라는 것은 세세한 모든 것을 다 포함하지 않는다. 어느 강렬한 한 부분을 가지고 나머지 부분까지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게 브랜드의 요체다. 이 시가 쓰여진 상황을 마케팅적으로 해석하면 춘하추동의 계절들이 각기 자신의 계절과 관련된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시장이다.
하얀 겨울과 대비되는 봄의 녹색 물결 속에서 사람들의 춘심(春心)을 자아내는 열쇠는 결국 빨간 꽃잎이다. 그 홍일점, 빨간 꽃잎으로 넘쳐나는 녹색 잎들까지 다르게 보인다. 마케팅 용어로 앞장서 길을 뚫고 다른 것들을 이끄는 ‘Silver bullet’의 역할을 홍일점이 한 것이다. 나의 홍일점은 무엇인가?
[박재항 자동차산업연구소 미래연구실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6호(2014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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