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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매각 윤곽 드러난 우리은행 새 주인 찾기
입력 : 2014.05.16 10: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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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때 세 차례 매각 무산 정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우리은행 매각을 시도했으나 까다로운 매각조건이 걸림돌이 돼 번번이 무산됐다. 그러나 2007년 하반기부터 불거진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글로벌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등 은행의 영업환경은 갈수록 악화돼 지분가치 역시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이런 주변상황이 정부 관계자들을 압박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게 만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정부로선 공공부채 축소를 위해서라도 공적자금 회수를 앞당겨야 하는 입장이다.
그동안 매각이 무산된 주요 원인은 정부가 스스로 발목을 묶은 ‘3대 원칙’ 때문이다. 금융지주회사법 부칙에 ‘예금보험공사가 지배주주인 금융지주회사 주식의 처분’ 조항을 만들어 우리금융 민영화와 관련해 공적자금 회수의 극대화, 해당 금융지주의 빠른 민영화, 국내 금융산업의 바람직한 발전 방향 등을 동시에 추구하라는 것이다. 자의적으로 해석할 소지가 다분한 이런 애매한 조항 때문에 실질적으로 공적자금 회수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박상용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장은 “모든 조건이 충족되는 민영화를 하기가 어렵다면 어떤 조건을 희생해야 하는 지를 논의해야 한다”며 걸림돌로 작용하던 3대 원칙을 재검토할 때가 됐음을 시사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총, 균, 쇠>에 나오는 ‘안나 까레리나 법칙’을 언급하면서 “(구체적 매각) 방향은 정해진 게 없다. 최선의 대안으로 가장 많은 회수를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고 새로운 대안을 주문했다. 주제발표를 맡은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산업연구실장은 이제까지 진행돼온 우리금융 매각과정을 종합하면서 민영화에 실패한 이유로 일반경쟁 입찰을 고수한 점을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2001년 지분 100%의 우리금융을 설립한 뒤 이후 부분적인 민영화에 나서 현재 56.97%를 들고 있다. 김 실장은 “미국은 2007년 금융위기 이후 공적자금을 투입했던 은행의 민영화 작업을 이미 완료했다”는 말로 한국의 매각작업이 지나치게 늦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일반경쟁 입찰의 대안으로 ‘희망수량 경쟁 입찰’ 방안을 제시했다.
희망수량 경쟁 입찰이란 입찰 참가자들이 희망하는 가격과 수량을 적어낸 것을 매각 수량이 될 때까지 최고 가격을 써낸 입찰자부터 낙찰을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한 마디로 우리은행의 주인을 정해주는 대신 시장매각을 통해 다수의 주주를 두자는 것이다.
이 경우도 반드시 2곳 이상이 공개경쟁 입찰에 참여해야 하는 정부 규정에 따라 복수 응찰자가 나와야 입찰이 진행된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유효경쟁 요건 미달로 두 차례나 매각 작업이 무산된 바 있다.
희망수량 경쟁 입찰 방식으로 우리은행을 민영화할 경우 일괄매각과 달리 다수의 매수자에게 지분을 분할해 매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입찰이 진행되기는 보다 쉬워질 수 있다. 다만 확실한 주인을 찾아주는 데는 한계가 있어 자칫 금융당국의 지배를 받는 은행이 될 소지도 있다.
“나도 이것 갖고 몇 십 년 먹고 살았다. 바람직한 발전방향을 누가 아는가. 발전방향의 기준은 무엇인가. 금융의 역사를 보자. 지난 2002년 주택·국민 합병 때 작은 은행들은 다 무너진다고 했다. 그러나 그대로 있다. 공자위가 어떻게 다 아나. 공자위가 영향을 미칠 수 있나. 바람직한 방향으로 간다는 게 맞지만 허구다. 근사한 허구지, 적합성은 아니다. 3대 원칙 갖고 우물쭈물 하느라 국민의 살림이 날아가 버렸다.”
이제 공자위가 용기를 갖고 공적자금 회수에만 초점을 맞춰 조기에 매각하라는 것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도 “이번이 우리금융 민영화의 네 번째인데 나도 네 번째나 나왔다. 더 이상 이런 바보 같은 방안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로 정부가 좌고우면하지 말고 매각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그 역시 정부가 제시한 3대 원칙은 각각의 원칙끼리 상충한다고 지적했다.
“상충하는 목표를 제시한 뒤 일을 하라면 공무원은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론스타의 트라우마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첫째, 공적자금 최대 회수란 목표는 버려야 한다. 이 목표 갖고서 12년째 매각하지 못했다. 경제학에서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게 현재가치 극대화다. 공자위 자료를 보면 얼마 투자하고 얼마 받았다는 얘기만 있다. 현재가치 계산이 없다. 난센스다. 지금 파는 게 최대로 받는 것이다. 몇 년 후 매각 가격을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또 손해를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매각, 조기민영화다.”
김상조 교수는 김우진 실장이 제안한 ‘희망수량 입찰 방식’으로 합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했다. 다만 최소입찰 수량은 정해야 한다고 했다.
“1% 단위가 될 것 같다. 1% 사려면 1000억원을 동원해야 한다. 기관이라도 만만치는 않은 금액이다. 우리 상법에 주주가 이사 후보를 주주제안 형태로 추천할 수 있는데, 상장사는 1%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하면 된다. 추천하면 반드시 주총까지 가야 한다. 1000억원 이상 법인은 그 절반만 보유해도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전문경영인을 감시할 이사 후보를 추천할 정도면 된다.”
이런 규정들을 감안해 최소 입찰 물량은 0.5%가 무난하다고 했다. 10% 이상을 보유하면 경영권을 행사할 가능성 매우 크며 10% 이상을 갖는 최대주주를 만들면 나머지 주주가 들어올 메리트가 사라지므로 매각 물량은 0.5~10%가 좋다고 제시했다. 한편 김상조 교수는 매각을 현실화하기 위해 입찰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콜옵션과 분할납부 두 가지가 있는데 분할납부는 바람직하지 않다. 자금동원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만 2%를 신청했다면 1%를 같은 값으로 살 수 있는 콜옵션을 주어 주가 상승 시 인센티브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게 좋다.”
엄영호 연세대 교수 역시 시간가치를 감안할 때 조기매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30%를 일괄 매각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기 위해 언제인지 모를 시기를 기다릴 것이냐, 아니면 지분매각을 할 것이냐다. 지금 시가총액이 5조5000억원인데 7조원 이상을 받을 수 있었을 때 매각했다면 굳이 프리미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됐다. 자본비용은 외부 이자다. 2013년 이후 이를 계산하면 누적이자가 5조8000억원이 넘는다. 민간이라면 이렇게 놔두지 않았다.”
매각가치 극대화는 곧 현대가치 극대화라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꼭 30%를 매각할 필요 없이 지분을 줄여서 파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매각이 지연되면서 생기는 시간비용을 생각하면 마찬가지란 것이다. 또 과점주주에게 매각해도 경영이 정상화돼 잔여 지분의 가치가 상승한다면 역시 매각가치 극대화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엄 교수는 다만 “유효 희망수량이 너무 적으면 입찰을 중지하는 권한은 공자위가 가져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어중간한 물량을 갖고 있다면 잔여 지분의 가치가 애매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유효 희망수량이 일정수량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희망경쟁 입찰을 순차적으로 하는 방안이나 경쟁입찰과 혼합해서 하는 방안도 있다. 10% 이상은 지배주주가 될 수도 있다.”
교보생명 우리은행 인수 가능할까
유일하게 경쟁자로 꼽히는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는 지난 2011년 3차 매각 때 단독으로 응찰했다가 무산된 이후 의욕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금융지주나 미래에셋의 경우 자금동원력을 감안해 의지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점에서 교보생명이 적격자로 비춰지지만 실제 인수하겠다고 나서면서부터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김상조 교수는 “보험사가 은행의 대주주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교보가 4조~5조원의 자금을 동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보험사의 수익성이 좋지 않은데 무리해서 자금을 동원하다보면 교보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승자의 저주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치수 교보생명 상무는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되기 때문에 자금동원력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필요할 경우 교보생명에 투자하고 있는 외국인 주주들과 컨소시엄 구성도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교보생명에는 현재 캐나다 온타리오 교원연금(9.93%)을 비롯해 코르사르 캐피탈(9.79%) 어피너티(9.05%) 스탠다드차타드PE(5.33%) IMM(5.23%) 베어링PE(5.23%) 싱가포르투자공사(4.50%) 등이 주요 주주로 들어와 있다.
그러나 보험을 은행의 하위 금융기관으로 생각하는 은행권이나 학계 전문가들은 교보의 지배보다는 과점주주에 의한 지배를 선호해 방향이 어떻게 정해질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선 확실한 지배주주가 있는 게 낫다는 주장과 특정 대주주 없이 과점주주가 지배하는 외국 은행들이 여전히 잘 나가고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주재성 우리금융연구소 대표는 “우리은행 매각을 빨리해야 하는 이유는 사실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서다. 우리은행 매각에서 지배구조와 오너십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여기서 공자위와 감독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세계를 보면 대부분 5~10% 지분을 갖고 있다. 우리은행은 국내 4대 대형은행이고 기업금융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민영화 이후 은행산업에서 어떤 구도를 갖느냐는 금융산업 전체에서 중요하다. 민영화 이후 구도를 감독당국이 생각해야 한다. 과점주주 방식이 문제가 적은데 수요자 확보가 문제다. 과점주주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상조 교수는 “우리 경영문화에선 다수 주주의 협의를 통한 공동경영은 문제가 있다. 공동 주주단을 만드는 사례는 꽤 있었으나 결국은 한 그룹으로 편입됐다. 한 주주가 다른 주주를 배제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며 최대 지분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동원 교수는 “주인 찾아주기는 주인의 함정에 빠져 있다.
세계적 은행에 주인이 어디 있나. 지배적 대주주에게 다 판다는 것은 허구다. 시장이 납득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일각에서 사금고화 주장이 나오는데 그걸 왜 공자위가 걱정하나. 그건 감독기구가 할 일이다. 지배구조를 걱정하는 것은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는 거다”라는 말로 매각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공자위가 책임을 지고 눈치 보지 말고 매각에 나서라는 것이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4호(2014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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