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약업계 뜨거운 물밑 각축…생존 처방전 ‘M&A’

    입력 : 2014.04.11 17: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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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지난 1월 24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열린 일동제약의 임시주주총회에서 일동제약의 2대 주주(29.36%)인 녹십자는 반대표를 던졌다. 일동제약은 이날 지주사 전환을 위해 정관을 변경하고 회사를 분할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2대 주주인 녹십자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제약업계에 ‘적대적 M&A’ 바람이 불고 있다. 몇 년 새 경영환경이 악화되면서 M&A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의약품 제조시설에 대한 기준을 엄격하게 강화하고 있고,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2년 4월 건강보험 의약품의 약가를 평균 14% 일괄 인하했다. 약품제조에 들어가는 비용은 상승했지만, 약값 인하로 수익성이 악화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약업체들은 생존을 위한 해결책으로 M&A를 고려하고 있다. 경쟁사 인수를 통해 주력사업을 강화하거나, 신규 의약품을 확보해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생존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M&A가 주목받고 있어서다.

    그래서일까. 업계에서는 경쟁사들의 지분을 대량 보유하거나 지배구조가 취약한 제약사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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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동제약 인수 야심 드러낸 녹십자 증권가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회사는 일동제약이다. 매출기준 업계 2위인 녹십자(약 8800억원)가 일동제약의 경영권을 노리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서다. 앞서 밝힌 것처럼 녹십자는 지난 1월 24일 일동제약 임시주총에서 일동제약의 지주사 전환을 막았다. 일동제약이 지주사로 전환될 경우 최대주주인 윤원영 회장의 지배력이 단단해질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녹십자는 이 과정에서 일동제약 주식 보유지분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영향력 행사’로 변경했다. 사실상 일동제약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셈이다.

    두 회사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은 지난 2012년 12월부터 제기됐다. 녹십자가 환인제약이 보유하고 있던 일동제약 주식 177만주를 사들이며 보유 지분을 기존 8.28%에서 15.35%로 늘렸기 때문이다. 이에 일동제약과 윤 회장 일가는 지난해 2월 주요 주주였던 안희태 씨로부터 175만주를 사들여 보유지분을 37.04%로 크게 확대했다.

    이후 잠잠하던 두 회사의 신경전은 올해 1월 녹십자가 일동제약의 주요 주주 중 한 명이었던 이호찬 씨의 보유지분 12.57%를 전량 매입하며 다시 불거졌다. 특히 녹십자홀딩스와 녹십자셀도 일동제약의 지분 취득에 나서 녹십자는 29.36%를 보유하게 됐다.

    녹십자의 이같은 움직임에 불안감을 느낀 일동제약은 곧바로 지주사 전환을 안건으로 상정하며 임시주총을 열었다. 하지만 2대 주주인 녹십자의 반대와 함께 3대 주주였던 피델리티도 반대표를 던져 지주사 전환은 무산됐다.

    증권가에서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동제약 경영권을 놓고 현 경영진인 윤 회장 측과 녹십자가 치열한 경영권 분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녹십자는 일동제약의 정기주총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윤 회장 측이 제출한 대표이사 선임안도 동의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주총을 앞두고 일동제약과 녹십자가 극적인 화해를 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녹십자 측은 여전히 지분보유 목적을 ‘영향력 행사’로 유지하고 있어 경영권 분쟁의 불씨는 남아있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특히 A증권사의 한 애널리스트는 “녹십자가 일동제약을 인수할 경우 유한양행을 제치고 독보적인 업계 1위에 오를 수 있다”면서 “전문의약품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 녹십자가 일반 의약품 라인을 보유하고 있는 일동제약을 인수하면 취약했던 포트폴리오 역시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M&A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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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매한 움직임의 한미약품, 유한양행 동아쏘시오홀딩스(구 동아제약)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미약품도 녹십자와 상황이 비슷하다. 한미약품은 과거 동아제약 지분을 8%가량 보유했으며, 우호지분인 한양정밀의 보유지분까지 포함하면 약 10% 이상의 지분을 확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약품은 동아제약 지분 보유목적을 ‘단순투자’로 명시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M&A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개량신약과 복제약 부문에서 강점을 보이는 한미약품이 신약과 천연물신약, 일반의약품 분야를 주력으로 삼고 있는 동아제약을 인수할 경우 가장 이상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동아제약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한미약품의 처지는 애매해졌다. 동아제약은 지주회사인 동아쏘시오홀딩스와 사업회사인 동아에스티로 분할한 뒤, 최대주주의 주식스왑(맞교환)을 통해 지속적으로 경영권을 강화하고 있어서다.

    반면 한미약품은 현재 지주사인 한미싸이언스와 함께 동아쏘시오홀딩스 8.29%, 동아에스티의 8.71%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태다. 아직까지 동아제약에 대한 투자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업계 1위 유한양행의 행보 역시 관심거리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2년 말 한올바이오파마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9.96%의 주식을 보유한 2대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올바이오파마는 개량신약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개발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으로 관절염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증권가에서는 유한양행의 한올바이오파마 인수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유한양행이 유상증자 참여 목적으로 ‘경영권 참여’를 적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인 경영 참여 활동은 보이지 않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한양행이 한올바이오파마의 증자에 참여한 것은 신약개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없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CJ생명과학과 SK케미칼, 삼성메디슨 등이 제약회사 인수를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져 당분간 제약업계의 M&A 가능성은 계속 제기될 것이란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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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분 있던 2세대·3세대는 경쟁체제 제약업계가 이처럼 M&A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급변한 경영환경과 치열한 경쟁구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들은 현재 정부의 약값 인하 정책으로 인해 수익성이 크게 낮아진 상태다. 지난 2012년 4월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재정 절감을 목표로 보험적용 의약품의 약 가격을 평균 14% 인하했다.

    반면 제조비용은 올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모든 의약품 제조시설에 모든 공정을 점검하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의약품 제조에는 비용이 더 들어가게 됐지만, 약값 인하로 가격을 내려서 받아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당연히 수익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은 대부분 ‘제네릭(특허가 만료됐거나 특허보호를 받지 않는 의약품)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규모가 비슷한 제약사들이 유사한 의약품을 팔고 있으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금력이 부족한 소규모 제약업체들은 버티기가 어렵고, 중견 제약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경쟁사 인수를 고려하고 있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제약업계에 3세 경영인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달라진 분위기도 M&A 바람의 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매출 상위 제약사들의 오너들이 과거에서부터 각별한 친분을 유지해 오고 있지만, 오너 3세들이 경영전면에 나서면서 이런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

    한 제약업체 임원은 “3세 경영체제에 접어든 제약업체들은 대부분 실적을 기반으로 한 매출지향적인 분위기로 재편되고 있다”면서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대규모 M&A 인수전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고 귀띔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의 움직임에 주목 제약업계는 그러나 M&A에 대해 여전히 조심스런 모습이다. 국내업체와 해외업체 혹은 국내업체와 바이오벤처 간의 인수합병에 대해서는 활발한 모습이지만, 정작 국내 제약사 간의 M&A는 찾아보기 어렵다. 유사 영역에 집중하는 국내업체들이 많아 M&A로 인한 시너지가 가능한 조합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란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이런 점 때문에 글로벌 제약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지난해부터 국내 제약사들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제약업계의 빅뱅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제약사들이 과거와 달리 후보물질 라이선싱, 생산, 정부의 규제와 수익성 하락, 여기에 글로벌 업체들과의 경쟁까지 예상되고 있는 제약업계.

    아직까지 차분한 모습이지만, M&A 기대감을 통해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는 제약업계의 빅뱅은 과연 어느 업체부터 시작될까.

    [서종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3호(2014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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