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화자찬은 독이다

    입력 : 2014.02.06 18: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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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업계에서 저보다 똑똑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당신의 회사에 입사하려는 지원자가 이런 말을 한다면 그를 뽑겠는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우리 학교에서 수학을 제일 잘해”라고 하는 애가 있었다면 그와 친해지고 싶던가? 대놓고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실제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심하게 별나거나 정신이 나간 친구로 취급하고, 채용을 하거나 친구로 사귀려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소비자들을 향한 광고를 비롯한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이런 낯뜨겁고, 영어식으로 하면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잘난 체하는 말들이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세계 최대, 세계 최초의 범람 “The World’s First Curved UHD TV”

    삼성전자에서 이번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국제가전전시회) 부스에 내놓은 UHD TV에 걸어놓은 문구이다. 이번 CES에 TV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모두 UHD TV를 전시품목으로 내세웠다. 그런 업체들과 자신을 구분하고 싶었겠다. 그래서 저런 문구가 나왔겠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문구를 보고는 삼성의 기술력을 인식하고, 기왕에 UHD TV를 산다면 꼭 삼성 제품을 사겠다고 생각할까? 사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역시 삼성의 기술력이 대단하구나’ 혹은 그 전에 삼성이 UHD TV를 최초로 세상에 내놓았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거나 기억할까?

    “World’s First ULTRA HD 3D Wall”

    이건 LG전자에서 내건 문구이다. ‘3D Wall’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최초(First)’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비슷한 문구들이 계속 등장한다. “World’s Largest 105” ULTRA HD Display”. 사실 ‘UHD’의 ‘U’가 어떤 단어를 뜻하는지, 앞선 ‘HD’와는 어떻게 다른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런 상황에서 ‘세계 최초’, ‘세계 최대’를 붙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90”-World’s Largest Available Full HD LED TV”

    일본의 도시바 전시장 입구에 대표 제품에 걸린 문구이다.

    여기서의 방점은 당연히 ‘Available’에 있다. 삼성, LG, 소니 등의 경쟁사와 같이 과시용으로 시제품만 내놓은 게 아니라, 자신은 실제로 매장에서 팔고 있음을 강조하며 차별화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느껴진다. 그런데 대체 누구를 향해서 저런 문구를 아로 새긴 걸까?

    오래 전에 휴대폰 두께와 무게가 경쟁의 주요 요소였던 적이 있다. 돌이켜 보면 확실히 ‘와우’하며 놀랄 정도로 이전의 휴대폰과는 상대가 되지 않게 가볍게, 얇게 나와 휴대폰 역사에 획을 그은 제품들이 있다. 그렇게 나온 제품들이 무게와 두께의 표준이 되었다. 소비자들은 대략 어느 정도 선에서 사용하고 남에게 보이기에도 충분하다고 느꼈는데, 소량화와 경량화 경쟁은 줄어 들지 않았다. 새로 나온 제품이 그때까지 가장 얇았던 것보다 0.1mm가 더 얇다거나 0.05g이 더 가벼우므로 그것을 광고에서 부각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건 소비자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데요” 식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 엔지니어들, 개발자들 간의 자존심 싸움이었고, 한편으로는 업계와 자신의 회사 고위층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한 목적이 컸다.

    CES와 같은 전시회에서는 1차 타깃이 업계 사람들이고 자신 회사의 고위 경영층이 꼭 들르니 ‘최초’, ‘최대’와 같은 소비자에게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쓰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겸양지덕이 미덕이 되는 시대가 아니고, 자기PR의 시대로 자신의 뛰어남을 설사 뛰어난 점이 없더라도 만들어서 외쳐야 하는 상황이니 이해가 간다. 그런데 특정한 상황으로 한정 짓고 이런 식의 자기과시형 문구를 쓰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다른 부문까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목표 타깃이 명확해도 그리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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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머의 법칙·상대편에서 얘기하라 2차 세계대전 때 영국의 수상을 지낸 윈스턴 처칠을 만나서 얘기를 하면 누구나 10분 안에 그가 세상의 누구보다도 똑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보다 앞서서 1차 세계대전 때 영국을 이끈 로이드 조지란 인물이 있다. ‘로이드 조지를 만나면 누구나 10분 안에 자신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똑똑하다고 느끼게 된다.‘ 처칠과 조지가 똑같은 성능과 품질을 가진 제품을 팔 때 어떤 방식으로 팔까? 처칠은 최고의 전문가인 자신이 추천하는 것이니까 믿고 사라는 식일테고, 조지는 당신처럼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 제품을 살 것이라는 접근을 할 것이다. 누구에게 제품을 구입하고 싶은가? 마케팅 용어로 얘기하면 누가 고객의 편에 서 있는가?

    윈스턴 처칠과 로이드 조지는 영국식 정객(政客)의 유머를 구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처칠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과 몇 차례 회의를 하면서 개인적인 관계도 돈독했다고 한다. 그 둘이 처음 만나 회의를 하게 되었는데, 처칠의 숙소로 루스벨트가 불쑥 찾아왔다고 한다. 마침 목욕을 하고 알몸으로 나온 처칠이 루스벨트와 대면하는 난처한 상황이 펼쳐졌다.

    처칠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루스벨트에게 손을 펼쳐 맞이하며 말했다. “대영제국의 수상은 보시는 바와 같이 미합중국의 대통령에게 아무 것도 감출 것이 없사옵니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에피소드인데, 실제로 그랬다면 비정상적인 전쟁 시기에 두 정상 간의 신뢰를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로이드 조지가 강연을 하러 웨일스 지방을 갔을 때의 에피소드이다. 웨일스는 잘 알려진 것처럼 정치적으로 영국에 속하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에는 ‘잉글랜드’와 따로 소속되어 월드컵 축구에는 별도로 참가할 만큼 독립 성향이 강한 곳이다.

    영국 수상인 로이드 조지를 요즘 우리말로 ‘디스’하려 했는지 강연의 사회자가 “우리 웨일스는 ‘길이’로 사람의 위대함을 평가하는데, 로이드 조지 씨는 듣던 것과는 다르군요”하면서 키가 작은 편인 로이드 조지에게 가시 돋친 말을 했단다.

    로이드 조지가 바로 받아서 말했단다. “웨일스가 ‘길이’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저도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의 ‘길이’로 알고 있었단 말입니다.” 로이드 조지는 단신이었지만, 얼굴은 우리가 말하는 ‘말상’으로 길었다. 장내에 폭소가 터지고 그의 강연회는 열렬한 호응 속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둘의 유머 스타일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처칠의 주어는 자신이다. 그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하는 것을 표현한다. 이에 비하여 로이드 조지는 상대방을 주어로 먼저 내세우며 거기에 자신을 덧붙인다. 그리고 살짝 비튼다. 이런 로이드 조지식 유머를 기가 막힐 정도로 썼던 아시아의 정치인이 있었다. 중국의 주은래(周恩來:조우언라이) 수상이었다. 그의 성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머로 나는 다음의 두 가지를 든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십여년이 지나 가진 기자회견에서 어느 서방 기자가 물었다. “당신들이 그렇게 중국을 개혁하는데 성공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중국에 창녀들이 있다는 얘기가 있어요. 맞습니까” 주은래가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질문한 기자부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주은래 수상이 뒤를 이었다. “대만에 아직도 있습니다.”

    주은래가 후루시쵸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났다. 뻐기기 좋아하는 후루시쵸프가 말했다. “당신 집안은 부르주아였다면서요? 난 정통 노동자 집안 출신이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주은래가 말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우리 둘의 큰 차이점이죠.” 그리고 이었다. “그런데 출신계급을 배신했다는 공통점을 우리 둘은 또한 갖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가시돋친 말에 대해 주은래는 반박하지 않는다. 그는 수긍하면서 주의를 집중시키고, 이어 반전(反轉)시켜 효과를 증대시킨다. ‘세계 최초’와 같은 문구는 자신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그런 말에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으니 독백에 그칠뿐이다.

    소비자들과의 대화에서도 상호교환(Interactivity)가 더욱 중요해지는 요즘에 어울리는 방식이 아니다. 업계 전시회란 특수상황에 맞춘 문구라 할 수 있으나, 모든 시공간이 개방되어, 어떤 일이라도 알리고 서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게 요즘의 현실이다.

    마케팅 사례를 제대로 읽는 방법

    영국 유통업체 테스코의 한국법인 홈플러스는 지하철역에 가상 스토어를 만들고 벽면에 상품 사진을 설치해 진짜 매장처럼 꾸며 놓았다. 각 상품에는 QR코드를 심어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면 귀가하는 시간에 맞춰 배송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가상 스토어 덕분에 홈플러스는 온라인 매출이 130%나 증가했고, 업계 1위 이마트보다 매장 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마트와의 오프라인 격차까지 줄일 수 있었다.

    만일 무선네트워크 환경이 썩 좋지 않은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대규모로 확대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다음 소식을 보고 놀라지 마시라. 최근 미국 온라인 식품 유통업체 피포드(Peapod)는 필라델피아와 시카고의 시범 스토어에서 성공을 거둔 뒤 보스턴, 뉴욕, 워싱턴DC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도 가상 스토어 100개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근래 출간된 책 <융합하라!>에 있는 구절이다. 디지털 마케팅의 영역을 개척하고,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신제품 개발까지 그야말로 크리에이터(Creator)의 길을 성공적으로 걸어온 레이저피쉬(Razorfish)의 CEO와 CTO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풀어놓은 책이다. 마케팅 담당자를 넘어 최고경영자에게도 디지털시대를 읽고 헤쳐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줄 책이다. 그런데 초반에 위와 같은 사례가 나왔다. 홈플러스에서 2011년 칸느광고제에 출품하여 대상을 받은 작품을 두고 쓴 것이다. 사실 제대로 실행이 되지 않은 아이디어이다. 저런 가상스토어가 실제로 얼마나 생겨났던가? 홈플러스의 온라인 매출이 130% 늘어났나? 일시적으로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오래 그 흐름이 지속되었던가? 그리고 제대로 운영도 하지 않은 가상스토어 때문에 이마트와의 오프라인 격차까지 줄였다는 게 말이 되는가?

    2012년 말이었던가, 외국의 어느 광고 잡지에서 이 홈플러스 가상 스토어를 가지고 만든 친구들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칸느광고제에서 큰 상을 받은 아시아 광고회사들을 찾아다니며 연쇄 인터뷰한 기사였으니 피할 수도 없어서 곤혹스러웠을게다. 훌륭한 아이디어이고 실행도 멋지게 되었고, 위에 얘기한 것과 같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판에 박힌 말들이 지면에 씌여 있었다. 그렇게 130% 등의 수치들이 기정사실이 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결국 이렇게 유명한 저자의 책에까지 나왔으니 더더욱 역사적 사실로 기록될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생각할 점은 세 가지이다.

    첫째, 마케팅 서적 등의 사례들을 100% 믿어서는 안 된다. 한정된 정보를 가지고 쓸 수밖에 없다. 홈플러스 사례처럼 특정한 목적으로 단기적인 실행과 그에 따른 성과만을 가지고 사례를 작성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런데 그게 장기적으로 안정되게 자리잡은 사례로 씌여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례가 아니라면, 될 수 있는 한 전후 사정을 여러가지 자료를 가지고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 정직해야 한다. 홈플러스의 칸느광고제에서의 성과는 충분히 축하하고 박수보낼 일이고, 당시 광고회사로서도 꼭 필요한 쾌거였다. 국내외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계기 중의 하나로도 충분히 작용했다. 그러나 이후의 결과가 좋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광고 잡지의 인터뷰처럼 그 담당자들이 곤욕스럽게 얼버무리거나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나오지 않는가? 이런 거짓은 겉으로 화려한 꽃을 피웠지만 줄기 안이나 뿌리가 썩게 만드는 것과 같이 작용한다.

    셋째, 사례는 자신에 맞게 받아들이고 운용하자. 마지막 부분에 미국 피포드가 적극 활용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사실 여부를 떠나서 아이디어의 팁을 받아서 자신에 맞춰 적용하면 된다.

    모든 마케팅 사례들이 그렇다. 똑같이 받아들이려고 사례를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마케팅 사례를 떠나서 모든 공부들이 그렇지 않던가? 똑같은 시를 읊조리라고 시를 공부하고 외우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생각하고, 실행하는 방식을 배우면 된다.

    ‘세계 최대, 세계 최초’와 같이 나 자신의 독백은 이제 그만 하자. 부메랑처럼 내게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다른 이들을 무조건 따라 하는 것도 이제는 현명한 방식으로 바꾸자. 상황에 대하여 수긍은 하되, 자신에 맞게 받아들이자.

    [박재항 자동차산업연구소 미래연구실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1호(2014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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