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보상 문제… 한국, 화웨이 장비 도입 말라”…중국 IT 파워에 속타는 미국의 견제

    입력 : 2014.01.09 14:26:10

  • 상하이 고속도로 야경
    상하이 고속도로 야경
    얼마 전 한국 이동통신사인 LG유플러스가 기지국 장비로 중국 화웨이(HUAWEI) 제품을 도입하기로 하자 미국 정부가 안보상의 이유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IT(정보기술) 업계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도대체 화웨이는 어떤 업체이고 미국은 왜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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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웨이 장비도입하면 한미동맹 위협?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비공식적 채널을 통해 화웨이가 한국 네트워크 시장에 진출하면 중국이 한국과 미국의 통신 내용을 감시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우려를 한국 정부에 전달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11년 화웨이가 자사 통신장비를 통해 미국 기밀을 빼낼 수 있다며 무선 네트워크 사업에서 화웨이를 배제한 바 있다.

    단순히 미 행정부에 국한된 걱정이 아니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과 로버트 메넨데즈 상원 외교위원장 등 미 상원 중진 의원들이 잇달아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 등에 LG유플러스가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면 한미 동맹을 위협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냈다.

    이슈가 부각되자 LG유플러스가 강경한 취지로 해명에 나섰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CEO)은 기자간담회 자리를 빌어 “화웨이 제품은 이미 영국의 국제상호인정협정(CCRA) 인증을 받아 국제사회에서 안전한 것으로 확인 받은 상태”라며 “캐나다, 스페인, 영국, 일본 등 해외 여러 나라가 화웨이 기지국 장비를 쓰고 있는데 보안 문제가 불거진 사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KT와 SK텔레콤도 7~8년 전부터 (기지국 장비와는 다른 제품이지만) 화웨이의 유선통신장비를 쓰고 있다”며 “미국 정치권이 제기한 부분이 기술적 문제인지 외교적, 정치적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각을 세웠다.

    MWC 2013·화웨이 비즈니스 부스
    MWC 2013·화웨이 비즈니스 부스
    스마트폰 글로벌 톱10중 4곳이 중국 화웨이가 무엇이기에 한국 이동사가 장비를 도입한 것을 놓고 미국 정치권까지 떠들썩하게 만들었을까. 사실 이는 화웨이라는 기업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중국 IT 기술력이 일취월장하며 미국을 위협할 정도까지 성장하자 미국이 중국 견제에 본격 나선 것이라는 분석의 목소리가 높다.

    1987년 출범한 화웨이는 세계 통신장비업계에서 1~2위를 다투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2012년 전통의 통신장비 강자 에릭슨에게 매출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뒤졌지만 순이익 측면에서는 에릭슨을 넘어서 사실상 업계 1위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웨이는 매출의 70%를 중국 외 지역에서 거둘 정도로 매출선이 다변화 돼 있다.

    지난 2012년 매출의 13.7%인 5조5000억원을 연구개발(R&D)에 투자했다. 15만명에 달하는 임직원 중 R&D 인력이 7만명으로 절반에 육박한다. R&D 인력 비율이 30%를 밑도는 삼성전자를 뛰어넘는 수치다. 화웨이는 2010년 스마트폰 시장에 본격 진출했는데 어느덧 글로벌 랭킹 3위에 올랐을 정도로 영향력이 있다.

    IT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격전장인 스마트폰 판매 순위를 보면 중국 업체들이 얼마나 가파르게 성장하는지를 대번에 알 수 있다. 3분기 기준 톱10 스마트폰 업체 중 중국업체가 4곳(화웨이·레노버·쿨패드·ZTE)이나 된다.

    4곳 업체를 합치면 글로벌 점유율이 20%에 육박한다. 아직까지는 자국산 제품을 선호하는 중국 수요를 토대로 내수 시장 위주의 성장을 했지만 이들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면 삼성·애플 등 1~2위 스마트폰 업체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미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싸구려 폰 이미지로 강했던 중국 스마트폰이 품질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늘리는 중국 업체를 놓고 ‘저가폰의 공습’으로 폄하할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최근 중국 업체들이 잇달아 ‘세계 최초’ 타이틀을 붙인 프리미엄폰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중국 업체 ‘비보(VIVO)’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스마트폰 ‘Xpay3S’는 세계 처음으로 QHD(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를 탑재했다. 갤럭시노트3나 아이폰5S 수준을 크게 뛰어넘은 2560*1440 해상도를 지원한다.

    이 업체는 작년 9월에 세계에서 가장 얇은 스마트폰인 ‘X3’를 내놔 주목을 끌었다. 가장 두꺼운 부분이 5.6㎜, 나머지는 두께가 5㎜에 불과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전까지 가장 얇은 스마트폰 역시 중국 업체 제품이었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화웨이의 ‘어센드 P6(6.18㎜)’이다. 이처럼 중국은 삼성·애플을 제치고 초박형 스마트폰 경쟁을 주도할 만큼 성장했다.

    중국 메이주(Meizu)가 내놓은 스마트폰 ‘MX3’는 대용량 저장장치 분야에서 세계 1위다. 세계 최초로 128GB(기가바이트) 저장 공간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선보인 것이다. 삼성이 국내에 출시한 갤럭시노트3 저장용량은 32GB에 불과하다.

    이 제품이 선택한 디스플레이를 보면 중국 업체 감각이 얼마나 올라왔는지를 알 수 있다.

    ‘MX3’는 세계 최초로 디스플레이 비율을 15대9로 책정했다. 세계시장 트렌드인 16대9에서 벗어나 차별화를 시도할 만큼 자신감이 차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애플이나 삼성의 카피캣(따라쟁이) 역할에 머무르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천명한 셈이다.

    중국 오포(OPPO)가 지난 9월 선보인 5.9인치 패블릿 ‘N1’도 마찬가지다. 기기 상단에 달린 1300만 화소 카메라가 206도 회전하며 앞뒤로 움직인다. 안드로이드폰 최초로 6조각 렌즈를 써 카메라 성능을 극대화했다. 두께도 9㎜로 갤럭시노트3의 8.3㎜와 별 차이가 없다.

      화웨이 Ascend-P1-LTE-1
     화웨이 Ascend-P1-LTE-1
    프리미엄폰을 반값에 떨고 있는 삼성·애플 애플 카피캣으로 시작한 중국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小米)’의 도전도 흥미롭다. 샤오미는 지난 여름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의 핵심인물인 휴고 바라 전 구글 부사장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바라 전 부사장은 구글에서만 5년 넘게 일하면서 안드로이드 OS 개발을 진두지휘한 사람이다. 중국 업체들이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까지는 중국 업체들이 텃밭인 중국 시장에 국한된 세일즈를 펼쳐왔지만 이들이 적극적으로 글로벌을 노리는 순간 최근 2~3년간 스마트폰 시장을 지배했던 패러다임은 완전히 깨진다. 그 동안 중국 스마트폰의 부상을 삼성·애플은 물론 LG전자까지 조금은 느긋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제품=저가’라는 공식이 성립했기 때문이다. 즉 첨단 스마트폰 분야에서 차별화된 가치를 느끼고 싶은 소비자들이 중국 제품에 손이 쉽게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국 제품이 삼성이나 애플과 비교해 기술력 측면에서 종이 한 장 차이로 올라온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사용자환경(UI), 사용자경험(UX) 등 중국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디테일한 부분을 개선하면 삼성, 애플과의 격차는 완전히 없어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중국 스마트폰은 소비자 지갑을 열 결정적인 한방을 가지고 있다. 바로 가격이다. 앞서 예로 든 메이주의 MX3, 오포의 N1 등은 출고가가 40만~50만원 대로 갤럭시S4, 아이폰5S 등의 절반에 불과하다. 김지웅 이트레이드 증권 연구원은 “중국 업체들이 높은 품질과 낮은 가격이라는 무기로 빠르게 시장에 파고들고 있어 프리미엄 시장을 독식했던 삼성·애플이 예전같은 지배력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노키아를 제치고 2012년을 기점으로 스마트폰을 포함 휴대폰 전 분야에서 1위 자리에 오른 삼성전자의 위기감은 상상 이상이다.

    노키아는 1998년 휴대폰 업계 제왕에 올라 무려 14년간 패권을 놓치지 않은 세계 최강이었다. 불과 3~4년 전만 하더라도 삼성이 노키아를 넘어설 것이라고는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삼성의 목표는 노키아의 뒤를 이어 안정적인 2위 자리에 오르는 것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노키아도 성장세가 꺾이자 바닥을 모르고 추락했다. 얼마 전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에 팔려가는 신세로 전락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영업이익의 약 70%를 스마트폰을 비롯한 무선통신 분야에서 내고 있다. 그룹 전체로 시각을 넓혀 봐도 영업이익 측면에서 스마트폰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중국에 밀려 삼성 스마트폰이 왕좌에서 내려오면 그룹 전체가 휘청거릴 정도다.

    삼성전자가 지금 소프트웨어 업체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그래서인지 모른다. 스마트폰을 비롯 제조업 분야 주도권은 필연적으로 중국에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대안 찾기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가 얼마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 ‘삼성 개발자 회의’는 이 같은 움직임의 첫 시도라 할 만하다. 삼성은 여기서 삼성 기기라면 제품에 상관없이 콘텐츠가 서로 연동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를 공개했다.

    삼성 스마트폰, TV, 냉장고, 프린터, 세탁기에서 동일한 콘텐츠가 흐르게 하고 사용자가 여기에 매력을 느낀다면 다음 제품을 살 때 삼성 브랜드가 아닌 제품을 고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략이다. 삼성은 자사만의 독자 콘텐츠 생태계(ecosystem)를 만들어 중국의 거센 도전을 물리치겠다는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홍장원 매일경제 모바일부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40호(2014년 0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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