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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리더 정태영 새로운 카드 세상을 열다
입력 : 2013.08.09 17: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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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전의 카드는 무채색의 회색지대였다. 고객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금융회사 입장에서 만든 카드만 있었다. 2003년에 나온 현대카드M은 거기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혜택이 많아졌다. 카드에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이야기를 담았다. 금융이면서도 비금융적 접근을 했다. 새 카드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현대카드는 큰 시스템을 바꾸는 선두주자였다.”
실제로 현대카드의 알파벳과 숫자 시리즈는 시장에 일대 회오리를 일으켰고 정 사장은 카드업계 혁신 리더로 자리를 굳혔다. 국내에서 카드를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구분해 세그먼트화한 첫 시도였다. 모든 카드사들이 현대카드를 따라왔다. 여행객을 배려한다는 카드, 쇼핑에 도움이 된다는 카드, 주유 포인트에 가점을 주는 카드 등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소비자의 지갑은 각각의 특성을 강조하는 카드들이 비집고 들어오면서 날이 갈수록 두터워졌다. 어떤 이는 현금을 들고 다닐 때보다 지갑이 훨씬 무거워졌다고 할 정도다.
“알파벳과 숫자로 고객을 구분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알파벳과 숫자로 다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기계적 선택이 최선은 아니었다. 고객을 어떻게 여행객과 쇼핑객으로 가를 수 있겠나. 그런 식으로 고객을 규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게다가 경쟁사도 모두 따라왔다.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고객들은 과도하게 많은 카드를 놓고 불필요한 선택을 해야 했다. 매달 새로운 혜택의 카드가 나오는데 매달 바꿀까. 그게 정답은 아니었다.”
“플러스는 포인트 적립이고 마이너스는 캐시백을 통한 할인을 의미한다. 고객은 더 이상 카드를 바꿀 필요도 없고 그저 자유롭게 선택해서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현대카드는 새로운 카드 포트폴리오의 핵심을 ‘심플하게, 고민 없이, 편리하게’ 등 세 가지로 요약했다. 고객이 포인트를 쌓을 것인지 할인을 받을 것인지만 선택하면 카드를 쓰는 대로 포인트나 캐시백으로 적립해줘 원하는 시점에 편하게 찾아서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존 카드는 할인혜택이나 서비스를 받기 위해 전월 이용실적이 일정 수준을 넘어야 했다. 할인 한도나 횟수도 생각해야 했다. 게다가 특별히 원하는 혜택이 있으면 거기에 맞는 카드를 복수로 발급받아야 했고 한 번 선택한 카드나 서비스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았으니 엄청난 변화다.
현대카드는 이에 대해 기계적 패러다임에서 유동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한다. ‘쇼핑 마니아’ ‘레저 마니아’ ‘엔터테인먼트 마니아’라는 식으로 구분해 거기에 맞는 혜택만 주던 것을 고객이 어느 곳에서 카드를 쓰던지 알아서 포인트나 캐시백으로 쌓아주고 고객이 필요한 시점에 포인트나 캐시백을 이용하도록 한 것이다.
확 늘어난 포인트·캐시백 게다가 포인트나 캐시백 적립 규모도 카드를 많이 쓸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했다. 지난 7월 초 출시한 ‘현대카드M Edition2’의 경우 월 50만~100만원 사용 시 가맹점에 따라 0.5~2.0%의 M포인트를 적립해주는데 100만원 이상 사용하면 원 적립률의 1.5배, 200만원 이상을 사용하면 2배로 계산해준다.
할인을 핵심 포인트로 하는 ‘현대카드X’와 ‘현대카드X2’의 캐시백도 곱하기로 늘어난다. 월 50만~100만원 사용 시 0.5%, 100만원 이상 사용 시 1%의 캐시백을 제공한다. 또 특화가맹점에선 5%의 특별 캐시백을 적립해주고 이용금액이나 누적 캐시백 금액을 연간으로 따져서 다시 최고 10%까지 연간 보너스 캐시백도 적립해줄 방침이다.
이렇게 쌓은 캐시백은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 쓸 수 있게 했다. 카드 결제 시 이용할 수도 있고 현금으로 통장에 넣어주기도 한다는 게 현대카드의 설명이다.
얼핏 보면 고객에게 주는 혜택이 확 늘어나는 것 같은데 경영상의 부담은 없을까.
정태영 사장은 “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고객에게 이익이 되지만 회사로서도 이익이다. 혜택이 크지만 그만큼 고객이나 이용액이 늘어날 것이므로 회사 손익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정 사장은 특히 “예전의 카드는 (혜택을) 찾아 쓰는 사람에겐 혜택이 컸으나 (전체 고객으로 볼 때) 에너지 낭비가 컸다”며 이제는 혜택이 있는지 고민할 필요 없이 그저 사용하면 사용한 만큼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정 사장은 카드서비스의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해 엄청난 준비를 했다고 소개했다.
“지난 10년간 출시된 모든 카드를 무시하고 제로베이스에서 리모델링을 했고 새로운 카드를 만들어냈다. 이를 위해 상품기획부문은 물론이고 그에 따른 모든 지원 조직을 다 바꿔야 했다. 2003년 M카드를 낸 이후 전사적으로 가장 치열하게 준비했다.”
10년간 최고를 만들었던 패러다임을 뒤엎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작업인 만큼 준비하는 데 상당한 심혈을 기울였다는 게 현대카드의 설명이다.
전력을 기울인 작품 이에 앞서 현대카드는 지난 2011년 최대한 단순하게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인 ‘현대카드 제로’로 고객들의 반응을 테스트했다.
“고객들은 심플한 것을 원했다. 여기서 성공한 것을 바탕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확신하게 됐다.” 원석준 카드사업본부장의 설명이다.
방향이 정해지자 전 조직은 새 상품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현대카드 Chapter 2를 준비하는 데는 연인원 21만명/일이 동원됐다. 자료 조사를 위해 9만 마일을 여행했고, 365일 쉬는 날 없이 머리를 맞댔고 160일의 임원회의를 거쳤다. 시카고 캠프에서 중역들이 모여 장기간 미팅을 열기도 했다. 현대카드의 새로운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투 트랙(플러스 마이너스)’ 구조로 가기로 한 결정은 이런 노력 끝에 나온 것이다.
그런 만큼 카드 디자인 하나에도 많은 것을 담으려고 했다. 우선 M계열을 블루, X계열은 실버톤으로 단순화했다. 카드라는 작은 공간에 압축된 내용을 담으려다 보니 IC칩이 걸렸다. 현대카드는 IC칩을 기존의 것보다 정사각에 가깝게 만들어 정직성을 강조했다. 세계 최초로 IC칩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반영한 것이다.
0.85mm에 불과한 두께마저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이려고 7개의 레이어로 구성했다. 옆면은 칼라코어를 구현했고 로고는 떠 있는 느낌을 주도록 했다. 플라스틱인데 표면 질감을 메탈처럼 표현했다. 다소 차가운 느낌의 카드를 고객이 따뜻한 느낌으로 받아볼 수 있도록 발송봉투는 비닐에서 종이봉투로 바꿨다. 대신 개봉부를 재봉질한 느낌으로 표현해 품격을 높였다. 실밥을 뜯듯이 뜯어내도록 했는데 한 번 열면 원상복구가 불가능해 위조까지 막을 수 있다.
홈페이지도 카드 3.0 시대에 맞춰 깔끔하고 직관적인 느낌을 주도록 개편했다. 회사가 알리고 싶은 내용이 아니라 고객이 알고 싶어 할 정보를 중심으로 배열했다. 홈페이지에서 고객들이 많이 열어보는 항목은 오른쪽에 배치했고 오퍼박스엔 고객이 놓친 혜택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배려했다. 정제된 디자인에 재미와 위트를 더할 것이란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은 우리에겐 즐거움이었다. 그동안 성공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을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이 꽉 차 있었다. 진짜로 가장 즐겁게 일했던 것 같다.”
최근 모바일 결제가 부각되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모바일에 관한 한 그 어느 회사에도 뒤지지 않았다. 어떤 회사보다도 압도적으로 앞서 있다. 기술적으로 완벽하다. 현대카드는 지금까지 운영과 생태계를 바꿔 왔다. 그만큼 가장 앞서 있다. 앞으로도 현대카드스럽게 행동할 것이다.”
‘심플’을 모토로 카드 3.0시대를 주창한 만큼 현대카드는 당분간 새 카드는 만들지 않을 방침이다. 2.0시대엔 늘 경쟁사의 허를 찌르는 상품으로 10년을 끌어온 회사가 조용히 있다면 혁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최대한 심플하게 해서 고객들이 편리하도록 했다. 당분간 새로운 상품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혁신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온다. 앞으로 상품 대신 서비스 인프라 개발에 주력할 것이다.”
고객이 아닌 가맹점과 서비스 상품을 놓고 경쟁하겠다는 선언이다.
경쟁사들은 이제 새로운 전선에서 현대카드와 부딪히게 된다. 고객을 확보하는 데서 가맹점과 포인트 사용처로 경합과제가 바뀐 것이다.
“시장 점유율이 높아진다고 우리가 더 잘되고 고객이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정태영 사장의 설명이다.
고객 확대 대신 서비스 경쟁을 선언한 현대카드의 행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지금 현대카드엔 정태영스러운 임직원들이 가득하다. 군살을 빼고 머리에 왁스를 바른 젊은(?) 그들의 모습에서 앞으로 일어날 바람이 어떨지 그려지는 것 같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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