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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그룹 형제경영 이상무?
입력 : 2013.08.09 1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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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현대백화점그룹은 2003년 부천 중동점 이후 2010년 상반기까지 백화점 신규출점이 없어 경영과 투자에 보수적이란 평이 지배적이었다. 반면 신세계 등 경쟁사에선 공격적인 투자가 진행됐다. 경쟁사 간 대비되는 경영에 당시 업계에선 ‘현대백화점의 2위 자리가 위협받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실제로 2004년 28.9%였던 현대백화점의 시장점유율은 2010년 24.5%로 감소했고 같은 기간 신세계의 시장점유율은 15.7%에서 21.9%로 증가해 숫자만 놓고 보면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당시 보수적인 투자로 시장지배력은 저하됐지만 그룹의 재무안정성은 견실해졌다”고 말한다.
보수적인 분위기는 2010년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당시 정지선 회장도 “2020년까지 그룹 매출을 20조원으로 확대하고 대형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룹 창립 39주년을 맞아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한 ‘2020 비전’은 기존 유통·미디어·종합식품사업 등을 강화하고, 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금융·건설·환경·에너지 등 신규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그룹의 비전을 담고 있다. 2003년 정지선 회장 체제가 출범한 이후 구조조정과 내실다지기에 주력한 현대백화점그룹이 공격경영을 통해 ‘성장과 내실’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것이다.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백화점 시장이 이미 성숙한 단계에서 유통그룹이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한다. 한 유통전문가는 “현대백화점그룹은 그동안 재무안정을 통해 충분한 실탄을 확보했기 때문에 그룹 비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최근 인수합병 시장에서 현대백화점그룹이 자주 거론되는 이유다. 그룹의 적극적인 투자계획도 이러한 비전을 뒷받침하고 있다. 백화점의 경우 2010년 8월 일산 킨텍스점, 2011년 8월 대구점이 이미 개점됐고 2016년까지 총 5개 점포를 오픈할 예정이다. 경쟁사 롯데나 신세계의 국내 점포투자 계획보다 훨씬 공격적이다. 증권업계에선 이러한 투자계획에 현대백화점의 시장 지위가 점진적으로 강화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목동점 유플렉스에 설치된 10~30대 VIP룸 ‘U라운지’ 양재동 파이시티 사업용지
실제로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1분기 매출액이 3909억원, 영업이익이 1263억원, 영업이익률이 32.3%였다. 하지만 올 1분기에는 매출액 3857억원, 영업이익 1048억원, 영업이익률 27.2%을 기록하며 매출액은 1.3%, 영업이익은 17%, 영업이익률은 5.1%포인트나 줄었다. 여기에 코엑스몰 운영권을 둘러싼 소송전도 악재다. 한 해 유동인구만 5000만명에 이르는 코엑스몰은 업계에선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린다. 그동안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인 한무쇼핑이 운영하고 있었다.
올 들어 무역협회가 직접 운영하겠다며 재계약을 하지 않자 현대백화점이 반발하며 민사소송을 낸 것이다. 현대백화점 측은 1987년 무역협회가 삼성역 지하상가의 운영권을 줬기 때문에 코엑스몰 운영권도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역협회 측은 지하상가와 면적이 10배 이상 차이나는 공간이고 없던 자리에 개발된 몰이란 입장이다. 업계에선 현대백화점이 소송까지 제기하며 코엑스몰을 지키려는 건 신세계 강남점과 롯데 잠실점의 중간 상권인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리스크를 없애려는 데 있다고 분석한다. 무역협회가 코엑스몰에 경쟁브랜드를 입점시킨다면 현대백화점이 입을 매출 타격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이 사건을 직권으로 조정에 회부했다. 지난 6월 27일 서울법원조정센터에서 진행된 조정절차는 현대백화점이 무역협회가 제기한 질의에 대해 답변을 작성하고 있어 8월 말로 조정기일이 연기됐다.
출점계획 무산도 업계 관계자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관심이 집중됐던 양재 파이시티(옛 화물터미널)는 롯데, 신세계 등과 벌인 인수경쟁에서 입찰에 포기하며 없던 일이 됐다.
당초 현대백화점은 이곳에 대형 매장을 오픈할 계획이었지만 시행사의 파산 등으로 주춤했었다. 안산 돔구장 건설과 함께 백화점 출점을 계획했던 안산점도 돔구장 건립이 무산되며 물 건너갔다. 여기에 지난 6월 정리한 광주점도 ‘전략의 부재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1998년 광주의 송원백화점과 위탁운영 계약을 맺고 2008년부터 매년 계약을 연장해왔다. 롯데 광주점과 신세계 광주점에 비하면 부지와 입지 면에서 불리했지만 현대백화점 입장에선 전라도 지역의 유일한 매장이었다. 하지만 실적이 문제였다. 위탁운영 계약 하에 영업이익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는 입장에선 선택과 집중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계약 종료 시점에서 현대백화점 측이 밝힌 입장도 “향후 투자계획에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서”였다. 허나 송원이 새로 이랜드그룹과 계약하자 업계의 평가가 달라졌다. 일각에선 “계약 시 이랜드에 밀린 것 아니냐” “2위 수성에 차질이 생긴 것 아니냐” 등의 반응도 나오고 있다.
업계에선 2011년 11월에 인수한 리바트, 2012년 1월에 인수한 한섬과의 시너지도 그리 크지 않다는 반응이다. 한섬의 경우 인수가격만 4200억원. 인수 이후 한섬이 갖고 있던 ‘지방시’와 ‘셀린느’의 국내 판권이 신세계인터내셔널로 넘어가며 과연 인수효과가 있겠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한섬은 ‘발리’의 백화점 등 국내 내수 유통판권을 확보했다.) 지난해 영업이익(710억원)도 인수 전(984억원)보다 줄어든 상황이다.
2011년 당시 퍼시스로부터 경영권을 위협 받자 백기사를 자처하며 최대주주가 된 리바트도 인수 이후 실적이 부진했다. 2010년 166억원이던 영업이익이 2011년 89억원, 2012년 32억원으로 악화됐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현대백화점그룹의 경우 경쟁사에 비해 아웃렛 진출이 늦었다”며 “아웃렛, 쇼핑몰 개발과 인수기업과의 시너지, 신성장동력까지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상황”이라고 이야기했다.
[안재형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5호(2013년 0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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