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MBO,전문 경영자가 오너로 탈바꿈하는 마법

    입력 : 2013.04.08 15: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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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3위의 컴퓨터 회사인 델컴퓨터의 창업주 마이클 델이 회사 주식 전체를 사들여 상장폐지 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MBO(경영자 자기기업 인수)가 세인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MBO란 회사 실정을 가장 잘 아는 경영자가 사모펀드 등을 끌어들여 자기 회사를 인수하는 특이한 형태의 LBO(회사 자산을 담보로 차입해 대금을 지급하는 M&A 기법의 하나)를 말한다. 마이클 델은 1984년 시카고 오스틴에서 델컴퓨터를 창업해 거부가 됐고 지금도 회장 겸 CEO로 경영을 하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3월 현재 델은 지분율 16% 상당인 2억4334만9682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자산가치는 153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30억달러 매출에 44억달러의 영업이익을 올린 회사를 마이클 델이 상장폐지하려는 것은 과도한 배당을 요구하고 있는 월가 투자자들과 다툴 필요 없이 회사의 재무구조를 재조정하고 과감한 투자에 나서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델은 그동안 조세 천국에 세운 다수의 자회사를 통해 외국에서 번 이익을 쌓아왔다. 투자자들의 요구대로 이 돈을 본국으로 들여와 배당할 경우 거액의 세금을 내야 한다. 이를 잘 아는 공격적 투자자 칼 아이칸은 그동안 대규모 지분을 확보하고 델컴퓨터에 주당 9달러씩을 배당하라고 요구해 왔다.

    이에 반해 델은 주주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상장폐지를 하면 40억~50억달러 정도 상당의 세금을 절감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모펀드인 실버레이크 파트너스를 끌어들였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자금 지원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델의 뜻대로 상장폐지가 이뤄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칼 아이칸은 물론이고 세계적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이나 사우스이스턴자산운용 등이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아이칸은 델이 빚을 내서라도 고액배당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또 회사의 적정가치는 델이 제시한 공개매수가(13.65달러)보다 훨씬 높은 기본가치 13.81달러에 9달러를 더한 주당 22.81달러라고 주장했다.

    한국서 MBO 본격 시작될 때 한국에서도 이제 MBO가 본격화할 때가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에선 그동안 한독약품이나 필라코리아 등 극히 일부에서, 그것도 제한된 형태의 MBO가 이뤄진 바 있다.

    김규진 다산회계법인 FAS본부장은 “성장이 저조한데다 중소기업 영역에 대한 제재 등으로 상황이 어려워진 대기업들이 주력사와 비주력사를 구분한 뒤 비주력사를 매각하려 한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도 앞으로 MBO가 활성화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최근 임우돈 한국CFO협회 사무총장, 장훈 정책금융공사 투자금융부장 등과 함께 <경영자의 MBO 기업인수>란 책을 냈다. 그는 일본에서도 성장이 저조해지면서 MBO가 크게 늘어났다고 소개했다. 국내에서도 일부 그룹의 MRO(기업의 소모성 자재 구매 전담) 사업 전담 자회사나 와인사업부 등이 최근 계열에서 별도 회사로 독립한 바 있다. 김 본부장은 “일본에선 우리의 기촉법과 유사한 ‘산업재생법’이 2006년부터 시행되면서 MBO가 많이 늘었다”면서 “이 법은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공개매수 후 남는 지분이 5% 이내일 경우 경영자가 매수청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다만 이때 매수청구 가격은 공개매수가보다 20% 이상 높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일본에선 제도를 남용한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지만 어쨌든 MBO가 활성화됐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선 공식적인 MBO는 아니지만 외환위기 때 그룹의 위기를 타개할 목적으로 분사한 회사들은 이후 급속도로 회생해 코스닥에 상장한 경우가 많았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당시 매각했던 현대오토넷을 현대모비스에 합병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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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O를 위한 금융여건 우호적 자금시장의 여건이 그 어느 때보다 우호적인 것도 MBO가 활성화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시중에 자금은 남아돌고 있고 투자의 안전성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MBO는 은행에도 매력이 있다. 주요 그룹에서 사업부나 자회사 등이 분리해 나가고 사모펀드 등이 여기에 투자하는데다 기존의 경영진까지 유지된다면 은행에서도 신규대출을 하는 것이 보다 쉬워질 것이다.” 김 본부장의 설명이다.

    은행의 입장에선 사모펀드들이 돈을 넣는 것을 보고서 대출을 해주면 되니 훨씬 안전하게 고객을 확보하는 셈이다. MBO는 경영자 입장에서도 구미가 당기는 일이다. 몇 년 동안 열심히 경영해 회사가 성장한다면 자기 회사가 될 수 있으니 해볼 만한 시도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MBO는 경영자나 은행 모두 관심을 가질 만한 M&A 기법이다. 특히 자칫 사기로 몰릴 수 있는 일반 LBO와 달리 합법적인 자금조달이 가능한 점도 MBO의 매력을 높여준다. MBO는 근본적으로 우호적인 M&A 거래이기 때문에 이사회에서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할 수 있도록 승인해 자금조달을 도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한국에서도 주식담보 대출이 지난 2010년에 시작됐기 때문에 은행들이 자금을 지원할 길이 열렸다. 당시 하나은행이 론스타에 주식담보 대출을 해줬고 이후 딜이 굳혀졌다”고 사례를 제시했다. MBO는 물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던 사모펀드에도 활로를 열어줄 것으로 보인다.

    김 본부장은 “MBO의 핵심은 회사의 펀더멘털이 좋으냐와 기존 경영진이 그대로 넘어오느냐이다”면서 이 두 가지 조건이 맞는다면 사모펀드도 구미가 당길 것이라고 했다. 그는 펀드와 경영자가 팀을 짜는 것을 훌륭한 선수와 감독이 만나는 것으로 평가했다.

    블랙스톤이나 KKR 등 세계적 사모펀드들은 이런 경우에 대비해 내부에 경영자 자원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삼성 출신이 겨우 우대를 받고 있는 상황이란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김규진 다산회계법인 FAS본부장
    김규진 다산회계법인 FAS본부장
    비주력사도 중소기업 입장에선 ‘굿’ 그렇다면 어떤 사업이 MBO의 대상이 될 것인가.

    사모펀드의 입장에선 내용이 좋은 핵심 사업을 원할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대기업에선 비주력사업을 매각의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본다면 사모펀드의 투자 대상이 상당히 제한적인 것 같다. 그러나 대기업에선 비주력 사업이라도 중견 또는 중소기업에게는 좋은 사업 대상이 될 수 있고 성장을 위한 활력소가 될 수 있다. 중소기업의 입장에선 MBO가 해외진출의 기반을 닦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김 본부장은 “현재로선 주요 그룹의 비주력 사업들이 MBO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외국인과 합작한 회사의 독립을 위한 MBO도 가능할 것이다”라고 보았다. 실례로 김영진 한독약품 회장은 지난해 IMM PE와 공동으로 기존 합작사인 사노피 아벤티스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50%를 MBO 방식으로 인수한 바 있다.

    한독약품은 1964년부터 사너피 아벤티스의 전신인 독일 훽스트와 합작 경영을 해왔으나 2006년부터 독립경영을 추진하다가 지난해 지분인수를 마무리 지었다. 이에 앞서 필라코리아는 필라 본사를 인수해 세인들을 놀라게 했는데 이 경우도 삼성증권 등이 투자해 딜을 성공시켰다.

    승계의 대안으로 떠오른 MBO MBO는 2세나 3세에게 승계를 고민하는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게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조업의 사업 내용이나 영업 방식 등을 잘 모르는 2세나 3세에게 무작정 회사를 넘기기보다 차라리 경영은 회사를 잘 아는 기존 임원들에게 맡기고 2세나 3세는 사모펀드 형태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이 경우 오너 2, 3세는 CFO를 맡고 전문인이 CEO를 맡아 회사를 차질 없이 꾸려나가게 돼 승계의 새 모델이 될 수도 있다. 2, 3세가 나중에 경영을 할 의향과 능력을 갖췄을 때 회사를 인수해도 된다. 일본에서는 공개매수로 지분율이 줄었던 오너들이 상장폐지 할 때 다시 지분을 인수해 기존 오너 체제로 복귀한 사례도 있다. 여기서도 사모펀드가 지원을 했다”고 설명했다.

    MBO의 법률적 제한은 넥슨은 지난 2010년 게임 개발업체 엔도어즈를 인수한 뒤 소수주주들을 몰아내기 위해 주식 액면을 1만대 1로 병합해 버렸다. 1891만주나 됐던 주식 수는 1880주로 줄었다. 병합 전 500원이었던 이 회사의 액면가는 500만원이 됐다. 이 과정에서 1만주 미만의 지분을 들고 있던 소수주주들은 신주를 단 한 주도 받지 못하고 퇴출됐다. 화가 난 소수주주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대주주의 손을 들어주자 대법원에 상고하는 한편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까지 청구했다.

    넥슨의 경우는 대주주가 자기 이익만을 위해 소수주주의 권익을 침해했다고 할 수 있지만 MBO에도 유사한 법률적 분쟁의 가능성은 내포돼 있다.김 본부장은 “MBO는 (경영자의) 자기거래이므로 반드시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본인은 이사회에서 빠져야 한다. 이사의 책임 한계는 명확치 않으나 공개매수 시 개인주주에게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경영자는 회사나 주주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의무(Fiduciary Duty)가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 결의가 없이 차입을 일으킨다면 사기가 될 수 있다. 최용선 한신공영 회장의 경우 LBO 기법의 M&A를 하다 처벌받은 바 있다. 다만 이사회 결의가 있으면 무죄가 된다. 이 경우도 피해를 입은 소수주주가 주주총회를 통해 이사진을 제소할 수는 있다. 이런 무리수를 벗어나기 위해 이사회가 안건을 주총에 넘겨 확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최근 MBO를 추진하는 마이클 델 역시 델컴퓨터의 주주총회를 통해 상장폐지를 확정할 방침이다.

    김 본부장은 “MBO를 하려면 반드시 상장폐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버리지(차입)를 쓰려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상장폐지를 한 뒤엔 회사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전엔 법률적 분쟁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김 본부장은 MBO 거래에선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이해가 다양하게 얽혀 사법당국도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법당국이나 로펌 등의 동태를 보면 순수하게 법적으로만 접근하고 있는데 이 경우는 대주주와 소액주주가 얽혀 있고 회사의 소유 형태가 바뀌는 것인 만큼 법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MBO를 경제상황 변화의 한 양상으로 보고 보다 포괄적인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정진건 기자 사진 정기택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31호(2013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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