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rketing]Small Big Thing…사소한 것부터 확실히 하라

    입력 : 2013.02.04 13: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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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부터 2003년 초까지의 미국 주재 중에도 그랬지만 1990년대에 직장 생활을 하면서 미국 출장을 많이 다닌 편이었다. 한동안은 공항에 내리면 바로 공항의 셔틀버스를 타고 렌트카 회사로 가서 차를 빌렸다. 1990년대 후반까지는 주로 부동의 1위 렌트카 기업이었던 허츠(Hertz)를 이용해 프리미엄 고객으로 등록이 되기까지 했다. 1998년 말부터 장기출장으로 뉴저지에 있을 때는 주로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를 이용했다. 뉴저지에 있는 법인에서 이용하던 회사였기 때문에 가격이 쌌다. 회사 간 특별계약을 떠나서도 엔터프라이즈는 전국적인 규모를 갖춘 렌트카 회사 중에는 가격이 가장 쌌다.

    엔터프라이즈 렌트카만의 특별한 서비스 저렴한 가격 외에 그들이 내세우는 특별한 서비스가 하나 있었다. 차를 원하는 장소까지 가져다주고 지점으로 반납한 후에는 역시 원하는 장소로 태워다주는 것이었다. 이것을 ‘Pick-up&Drop-off’ 서비스라고 부른다. 도도해 보이는 허츠나 애비스(Avis)같은 전통의 대형 회사들보다는 확실히 강점을 지닌 서비스였다. 게다가 나를 데려다 준 직원 하나는 그 시간을 개인적인 얘기를 섞어서 엔터프라이즈를 홍보하는 데 십분 활용했다. 1년 후에 그 친구는 그가 근무하던 지점의 책임자가 되어 있었다. 그 친구가 일에 열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어쨌든 고객과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큰 강점이었다.

    당시 내게는 그런 서비스가 엔터프라이즈라는 작은 렌트카 회사가 자기 몫이라도 지키려 하는 안간힘 정도로만 보였다. 그래서 2000년대 중반에 엔터프라이즈가 미국에서 1위 렌트카 회사가 되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특히 고객서비스 부분에서 경쟁사들은 물론이고, 업종을 떠나서도 모든 기업 중의 최고 등급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렌트카에서 후발업체인 엔터프라이즈는 렌트카 고객이 가장 많은 공항에 거점을 마련하기가 힘들었다. 허츠나 애비스와 같은 기존 강자들이 아성을 구축하고 있었고, 초기의 투자비용을 감당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러한 자신의 약점을 엔터프라이즈는 동네 시장을 개척해 타개하려 했다.

    자금 여력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동네 고객을 대상으로 업소를 차린 렌트카 회사를 선뜻 이용할 고객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고객이 이용할 수 있는 이유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땅이 넓은 미국에서 큰 도회지를 벗어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다. 렌트카를 하려 해도 렌트카 사무실까지 가고 오고 할 교통편이 애매하다. 그런 불편을 앞장서 해결해주며 엔터프라이즈는 공항이 아닌 그야말로 동네 안에 뿌리를 내린 풀뿌리 렌트카 기업으로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엔터프라이즈를 두 번 이용하고 나서 회사우대계약의 비용 측면에서의 이점을 떠나 나 같은 경우는 다른 면에서 엔터프라이즈의 효능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날아와 미국 동부의 공항에서 렌트카를 하는 경우, 14시간 정도의 비행으로 녹초가 된 이후에 가방을 끌고 셔틀버스를 타거나 모노레일을 정류장에 가서 타고는 보통 한참을 기다린 후에 답답하기 그지없는 서류 작성 과정을 거친 후에야 차를 받게 된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30분 이상이 소요된다. 공항터미널에서 나와 바로 택시를 탔으면 웬만하면 호텔이나 일이 있는 사무실까지 도착할 시간이다.

    렌트카를 포함한 교통비를 회사의 비용으로 처리하는 입장에서 굳이 골치 아픈 과정 거치지 않고, 택시를 타고 호텔에 와서 쉬거나 사무실에 가서 일을 보고는 원하는 시간에 엔터프라이즈를 부르는 게 훨씬 편했다.

    처음 엔터프라이즈는 가격경쟁력만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가격보다는 픽업 서비스가 먼저 연상이 되었다. 그리고 픽업 서비스라는 특정한 서비스를 떠나서 엔터프라이즈는 소비자의 여건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배려하는 기업으로서 자리매김을 했다.

    세심한 소비자 관찰로 새로운 마케팅 기획을 어찌 보면 작은 서비스가 특정한 분야를 넘어 확대 지향적으로 해석되고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꽤 있다. 내셔날렌트카는 소비자조사를 통해 가격에 민감한 고객들이 주차장에서 차를 찾을 때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회사 출장비용으로 렌트카를 사용하는 다수의 프리미움 고객들은 1990년대 중반의 나처럼 자주 렌트카를 이용해서 주차장 지리나 차를 찾고 빠져나가는 과정 등에 익숙했다. 이에 비해 가격에 민감한 고객들은 렌트카를 자주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를 찾아서 점검하고 주차장을 나가기까지가 만만치 않은 과정이 되었다.

    내셔날렌트카는 자주 렌트카를 이용하지 않는 고객들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목적으로 주차장의 아무 차나 골라서 타고 갈 수 있는 ‘Pick Any Car’ 옵션을 도입했다. 맘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권한을 주었다며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했다. 피동적으로 배차를 받는 것이 아닌, 차를 스스로 고른다는 효과는 아주 컸다. 무엇보다 내셔날렌트카의 마케팅 테마, 소위 ‘세일즈 토크(Sales Talk)’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고객 우선’의 렌트카로서 내셔날렌트카의 돌풍을 몰고 오는 듯 했다.

    이 옵션에 대해서 알아보니까 ‘아무 차’는 아니고 예약한 사이즈대의 차에서만이 가능한 옵션이었다. 실제로 차를 찾고 빠져나가는 시간을 줄이는 데는 큰 효과는 없었다. 자신이 예약한 사이즈의 차종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거나 그 사이즈 대의 차들이 무엇인지 모르는 고객들도 많았다고 한다.

    예약한 차종의 차들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아서 우왕좌왕하거나 결국 종업원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한 경우도 많았다며 불만이 연이어 나왔다. 실행할 만한 조건이 되지 않은 상황으로 결국 내셔날렌트카로서는 소기의 성과보다는 역풍을 맞게 되었다.

    다른 렌트카 회사는 고객들은 무조건 새 차를 선호한다는 통념을 깼다. 이용자로서는 차를 기능적, 실용적인 측면에서만 평가하는 나 같은 사람은 차가 말썽만 일으키지 않는다면 마일리지 같은 것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검증되고 길이 잘든 차라고 이력이 쌓인 차를 좋아하기도 한다.

    나 같은 고객에게 주목해 그 회사는 회사가 탁월한 유지 점검 및 안정성을 보증하면서 저렴한 가격으로 마일리지가 많은 차를 내놓았단다. 비용을 따지는 고객들을 만족시키고, 예전 같으면 처분했을 차들을 렌트카 대상으로 포함시킬 수 있게 되면서 막대한 원가절감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고객들을 잘 관찰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얻은 아주 긍정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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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조건적 비용절감의 이면 1981년 아메리칸항공 CEO가 된 로버트 크랜달(Robert Crandall)이란 사람은 재무회계 쪽에서 줄곧 근무했다. 그래서인지 비용절감을 위해서 자신이 몸소 앞장서고, 직원들에게도 아이디어를 내도록 열심히 촉구했다. 그가 직접 지시했던 비용절감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사례로 아메리칸항공에서 자랑했던 게 있다.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의 세인트 토마스라는 지역에 있는 작은 영업소의 경비원을 경비견으로 대치하고, 나중엔 개 짖는 소리가 녹음된 녹음기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로 기내식으로 나오는 샐러드에서 올리브를 없애 50만달러를 비용절감 했단다. 어느 기록을 보니 로버트 크랜달의 소개 문구로 ‘전설적인 비용절감의 주창자(Legendary cost-cutter)’라 했는데 그럴 만하다. 비용절감 아이디어 제안 우수 사례로 꼽힌 것을 보니, 어느 여자 직원이 일등석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캐비어의 양을 3분의 2 줄여서 역시 몇 십만 달러를 절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과연 그래서 아메리칸항공이 잘 되었을까? 버진아일랜드의 세인트 토마스와 같은 곳에 있는 아메리칸항공의 지점은 그 지역에서 아주 중량감 있는 고용주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시골 마을에서 그런 큰 회사의 사무실이 존재한다는 자체가 지역 주민들에게는 알게 모르게 자부심의 원천인 경우가 많다. 경비원은 큰 회사의 월급쟁이로 나름 지역 사회에서 알아주는 존재였을 수 있다. 꼭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을 동물로, 이후 살아 있는 동물도 아닌 녹음기로 대체한다면, 과연 사람이 하는 노동을 어떤 가치로 보았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는가? 기내식에 캐비어가 꼭 나올 이유는 없지만 어쨌든 고객에 대한 서비스의 질을 저하시켰음에는 틀림없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의 대형 항공사들은 자동차의 GM과 거의 비슷한 존재 취급을 받았다. 대기업병에 걸린 공룡과 같은 존재로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하지 고객들은 안중에도 없이 행동한다고들 했다. 개인적으로 아메리칸항공을 많이 타고, 미국에 있을 때는 연계 카드도 가지고 있고 마일리지도 꽤 쌓았을 정도로 미국의 항공사 중에서는 충성스러운 고객이었다. 그래서 나름 그들의 마케팅 활동도 열심히 따라잡으며 본 편이었다. 아메리칸항공이 했던 프로그램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앞뒤 좌석의 간격을 넓혀서 승객들에게 보다 넓은 공간을 제공한다는 ‘More Room’ 캠페인이었다. 공간을 마련하려면 줄 몇 개를 빼야 하는데, 그런 손실을 감수하면서 고객들에게 더 편안한 여행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는 게 그 캠페인의 골자였다. 그렇게 몇 줄 빠진 것을 메우려고 요금을 올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주 좋은 호응을 얻은 캠페인이었고 많은 항공사들이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설사 요금을 올렸다고 하더라도 정당한 이유가 있으면 고객들은 수긍한다.

    이에 비해 위에서 예를 든 지역사회와의 관계나 고객의 즐거움을 고려하지 않고 가볍게 생각하며 취한 행동은 아무리 요금을 깎아 주거나 절감된 비용을 지역사회에 기부한다고 하더라도 이전의 상태 이상으로 복원되기는 힘들다. 회사 직원들의 복지도 역시 그러하다. 이미 시행된 복지프로그램은 아주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거둬들여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많은 회사들이 비용절감을 외칠 때면 ‘무조건 30% 삭감’ 식의 지시가 떨어진다. 각 부서마다 자신들의 예산은 예외적으로 삭감하면 안 되는 이유들을 대고, 힘 있는 부서들은 어떻게든 삭감의 칼날을 잘 피하기도 한다. 그러나 복지프로그램의 경우 그렇게 나서서 옹호할 사람들이 별로 없다. 노동조합이 그런 역할을 하나 한국적인 상황에서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직원들을 ‘내부 고객’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고객에 대한 서비스의 질을 낮추는 행위다. 그렇게 해서 절감되는 금액은 아메리칸항공처럼 바로 몇 십만 달러 식으로 숫자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떨어진 직원들의 사기와 약해진 충성심이 회사에 미칠 영향은 그렇게 숫자로 표시되지 않는다. 1년, 분기별로 실적을 따질 때는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사소한 것들이 회사 내부의 기둥을 무너뜨리게 된다.

    전설적 무용가 최승희의 성공 원칙 일제강점기 때 뉴욕과 파리의 무대를 포함해 세계 순회공연을 하며 명성을 떨친 최승희라는 무용가가 있다. 해방 후에 월북해 남쪽에서는 1980년대 말까지 제대로 알려질 수 없었다. 얼마 전 그녀의 평전을 읽었는데 그녀가 공연을 꾸미는 데 적용한 몇 가지 원칙이 나와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아주 간단하면서도 사소한 것이었다. 공연을 할 때 중간 중간 ‘옷 갈아입는 시간을 1분 이내로 줄이라!’. 중간 휴지기와 같은 옷 갈아입는 시간이 1분을 넘기면 관객이 지루해 한다. 그래서 그들은 옷을 빨리 갈아입기 위한 연습을 했고, 특별한 장치도 고안했다고 한다.

    이어서 두 번째 원칙으로 제시한 게 무대에 올리는 단편 작품 하나하나의 길이를 10분 이내로 제한한 것. 관객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스토리텔링 형식, 뛰어난 연기력과 그를 통한 인간 내면의 표현과 같은 최승희의 공연을 세계적 전설로 만든 출발점이 바로 ‘옷 갈아입는 시간 줄이기’였다.

    트렌드를 예측할 수 없는 게 트렌드인 불확실성만이 확실한 시대에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자세로 사소하지만 가장 확실하게 고객에게 혜택을 줄 마케팅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런 사소한 ‘티끌’과 같은 혜택들이 모여 결국 ‘태산’과 같은 브랜드를 만든다.

    [박재항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9호(2013년 0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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