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nowledge]혁신제품은 마케팅도 달라야 한다

    입력 : 2012.07.06 16: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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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성도 좋고 수익성도 좋으면서 경쟁도 치열하지 않은 시장.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기업이라면 이런 시장을 찾아 경쟁에서 탈출하기를 꿈꾼다. 그렇기에 마케팅 부서는 늘 기업을 블루오션으로 인도해줄 혁신적인 제품 개발에 대한 압박에 시달린다.

    혁신 제품 개발에 있어 가장 선행되는 일은 고객의 ‘Unmet Needs’의 발굴이다. 그러나 ‘Unmet Needs’ 또한 ‘Unmet Needs’로 남아있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차라리 현재의 기술로 구현이 어려운 문제라면 기술 개발로 극복하면 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고객조차 자신이 그러한 Needs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예언에 가까운 통찰력과 두뇌까지 스캔하는 첨단조사 방법을 동원해 성공의 단서를 찾고 밤잠을 설쳐가며 준비한다.

    세상을 변화시킬 혁신적인 제품들은 이렇게 힘겨운 과정을 거쳐 출시된다. 기업은 기존에 존재하던 제품보다 확연히 개선됐기 때문에 고객의 선택을 당연히 받을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성공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단지 고객의 Unmet Needs를 잘못 파악한 것일까?

    그렇다고 단정 짓고 포기하기 전에 우선 혁신제품에 적합한 마케팅이 전개되었는가에 대한 점검부터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혁신 제품을 개발한 기업과 사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기업이 일치하지 않는 예는 무수히 많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혁신제품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혁신제품에 적합한 마케팅을 논하려면 우선 혁신제품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혁신은 제조과정과 사용과정에서 있을 수 있다. 혁신적인 제조공법으로 원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한 제품 또한 시장에 큰 변화를 유발하기 때문에 광의의 혁신제품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한 니즈를 현저히 낮은 가격에 제공할 수 있다면 마케팅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크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용과정에서 혁신을 요구하는 제품이다. 사용과정에서 혁신은 보통 Trade-off를 수반한다. 특히 귀찮게 사용방법을 학습해야 하거나 이전에 사용하던 다른 제품과 호환이 되지 않는 경우, 새로운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대신에 사용할 수 없게 된 기능이 존재하는 경우 등 ‘불연속적인 혁신’이 적용된 제품의 경우 고객은 구매를 망설이게 된다. 이러한 문제가 모두 없다면? 대부분 비싼 가격을 요구한다. 결국 고객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크다는 것을 설득해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혁신제품의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고객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을 크게 여기는 반면 기업은 얻는 것을 잃는 것보다 크게 여기고 시장성도 과대평가한다. Segmentation도 잘 했다고 생각하고 그 중에 크고 해볼 만한 시장을 노려 마케팅을 해보지만 예상외로 냉담한 고객의 반응 앞에 좌절하고 사업은 포기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술에 배부를 욕심을 부리지 않고 단계별로 차근차근 접근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제품 수용도에 따른 고객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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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에도 진보·중도·보수가 있듯이 혁신제품의 수용도에도 차이가 존재한다. 혁신제품의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려면 세분시장의 규모나 성장성 등 일반적인 세분화 기준뿐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한 고객의 수용도를 감안해 공략의 순서 및 방법을 수립해야 한다. 에버렛 로저스(Everett Rogers)는 혁신기술 채택에 소요되는 시간에 따라 고객을 5개 군으로 분류했다. 첫 번째 고객군 ‘혁신수용자(Innovator)’ 단지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구매하는 고객들이다. 새로운 제품을 사용해보고 남들보다 더 많이 아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으며 실용적으로 어떤 편익을 얻느냐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보통 전체 고객의 2~3% 정도에 불과하며 혁신수용자로 분류할 만한 고객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수가 적고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혁신수용자는 구매 의사 결정에 있어 마케팅의 개입 여지가 크지 않다.

    두 번째 고객군 ‘얼리어답터(Early Adopter)’ 일정수준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혁신제품을 통해 원하는 편익을 달성하기를 원한다. 얼리어답터는 혁신제품이 다른 부분에서 불완전하더라도 자신이 중시하는 부분에서는 니즈를 충족해주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자신이 지식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잠재적 고객군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혁신수용자와는 다르다. 얼리어답터는 전체 고객의 13~14% 정도로 그 수도 적지 않지만 이들에게 채택되느냐가 혁신제품의 잠재력 유무를 판가름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고객군이다.

    세 번째 고객군 ‘조기다수수용자(Early Majority)’ 한마디로 실용주의자이다. 얼리어답터가 구매 자체에서 효용을 느끼는 반면 조기다수수용자는 제품의 실용성에 집중한다. 또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고객들을 통해 제품의 효용 및 품질이 검증되기를 희망하고 사후 지원 등을 중시한다. 전체 고객의 34% 정도를 차지하는 큰 시장이며 승자가 독식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공략은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네 번째 고객군 ‘후기 다수수용자(Late Majority)’ 남들보다 한발 늦은 구매로 만족하는 이들이다. 혁신제품이 이미 시장의 다수를 차지함에 따라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을 찾기가 더 어려워지는 시점부터 이들은 혁신제품의 구매를 고민한다. 가격 민감도가 높지만 전체 고객의 34% 정도로 상당한 크기를 가지고 있고 규모의 경제를 통해 원가 경쟁력을 조기에 갖출 경우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각수용자(Laggard)’ 애초에 생활패턴을 조금도 바꿀 의지가 없는 고객군이다. 마케팅도 결국 고객을 설득하는 행위인데 이야기를 들어보려는 최소한의 의지도 없는 이들에게 혁신제품의 유용성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약 16%의 고객이 이러한 성향을 지닌다고 보는데 기업의 입장에서는 놓치기에는 아깝고 집중하자니 어려운 ‘계륵’ 같은 존재다.

    첫 번째 고객군인 ‘혁신수용자’는 새롭기만 하면 어쨌거나 구매하는 고객, 다섯 번째 고객군인 ‘지각수용자’는 의도적으로 공략을 자제할 고객군이라고 보면 혁신제품의 성공은 ‘얼리어답터’ ‘조기다수수용자’ ‘후기다수수용자’ 라는 세 부류의 문지기를 어떻게 공략하느냐의 문제로 좁혀진다.

    허브를 포섭하고 무대를 제공하라 얼리어답터로 구성된 초기시장의 공략법은 혁신제품을 그들 사이에서 ‘얼마나’ 화제로 만드는 가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얼리어답터 중에서도 허브를 규명하고 전략의 수립 및 실행에 있어 허브의 참여도를 높이는 것이다. 허브는 ‘전문가 허브’와 ‘사회적 허브’로 나눠지며 역할이 다르다. 전문가 허브는 해박한 지식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을 제공하는 반면 사회적 허브는 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입소문을 퍼트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허브를 규명하고 우군으로 포섭했다면 허브가 이야기할 저변을 확보해줘야 한다. 적절한 광고는 얼리어답터에게도 유효한 역할을 수행한다.

    SONY는 신제품 DSLT(Digital Single Lens Translucent) 카메라를 출시하면서 ‘카메라를 안다면 논쟁하라’는 강렬한 카피를 내세웠다. 이러한 카피는 다분히 얼리어답터 사이에서 이야깃거리가 될 것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작은 시장의 승자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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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펭귄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바다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수많은 천적이 있는 바다는 위험하기 때문에 바닷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을 뿐 뛰어 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한 펭귄이 바다에 떨어지게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든 펭귄이 바다로 뛰어든다. 조기다수수용자의 움직임이 펭귄과 비슷하다. 모험적인 얼리어답터와는 달리 조기다수수용자는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하고 성공사례를 중시한다. 특히 조기다수수용자는 얼리어답터의 선택과 추천을 참고하지만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대세가 결정되면 움직이지만 서로 눈치를 보며 최초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얼리어답터까지 성공적으로 공략했지만 주류시장의 공략에는 지지부진한 상태. 실리콘벨리의 스타 컨설턴트 조프리 무어(Geoffrey A. Moore)는 이를 ‘캐즘(Chasm)’이라고 명명했다. 캐즘은 애초 기술적 불확실성이 큰 하이테크 시장에서 비롯된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혁신적 제품 및 서비스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앞에서 언급한 조기다수수용자의 성향을 감안했을 때 캐즘 탈출의 핵심은 Reference(참고기준)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기다수수용자 시장을 다시 세분화하고 선정된 타깃에 완전완비제품(Whole Product)를 제공해야 한다. 이때 선정되는 타깃은 본 혁신제품을 통해 공략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타깃이라기보다는 여러 다른 세분시장에 Reference로 활용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자사가 공략하기 쉽고 다른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타깃 선정의 기준이 된다. 하나의 세분시장에서 교두보를 마련하면 다시 인접 시장으로 진출하며 점점 Reference를 확장하는 이른바 볼링 앨리(Bowling Alley) 전략의 수립이 필요하다.

    사실 실제로 이렇게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안 그래도 매출이 늘어나지 않는데 타깃을 좁히는 것은 경영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선을 좁혀서 타깃을 공략하지 않으면 그 어떤 조기다수수용자에게도 완전완비제품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캐즘을 극복할 수 없다.

    완전완비제품이란 타깃시장의 고객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완벽한 해답을 제공하는 제품을 의미한다.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상품의 계층을 본원제품-기대제품-부가제품-잠재제품으로 구분하고 있다.

    본원제품은 제품의 본질적 기능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휴대전화의 통화기능에 해당한다. 기대제품은 제품에 당연히 포함돼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기능을 의미하며 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에 해당한다.

    부가제품은 타사 제품과 차별화된 기능을 뜻하며 잠재제품은 향후 업그레이드 또는 보완재와의 호환 등 잠재적인 미래가치를 의미한다. 얼리어답터는 본원제품과 기대제품으로서의 조건을 충족하면 만족하지만 조기다수수용자는 부가제품과 잠재제품의 조건까지 충족해야 완전완비제품으로 인식하게 된다.

    완전완비제품을 통해 1차 타깃시장에 진입하게 되면 인접 시장을 다시 타깃으로 선정해 진입해야 한다. 이 경우 1차 타깃시장이 Reference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시장진입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진다. 조프리 무어와 서울대학교 김상훈 교수는 조기다수수용자들이 새로움에 대한 학습과 추가적 비용에 대한 두려움, 표준화 및 확산과정에서 미래 가치변동에 대한 불확실성, 성능과 안정성 등 기능측면에 대한 의심 등 FUD Factor(Fear·Uncertainty·Doubt)로 인해 혁신 제품의 채택을 늦춘다고 분석했다.

    1차 타깃시장에서의 성공은 재무적으로는 작은 성과일 수 있으나 다른 타깃시장에서 느끼는 FUD Factor를 완화시킴으로써 지속적으로 저변을 확대해 나가는 시발점의 역할을 하게 된다.

    고객을 Lock-in 시켜라
    S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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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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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기다수수용자까지의 공략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면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서 이후 전략을 전개할 수 있다. 후기다수수용자의 경우 가격에 민감하기 때문에 먼저 규모를 갖춰 원가경쟁력을 갖춘 선발기업에 유리하다. 그러나 뒤집을 수 있는 정도의 우위는 아니다. 이 시기에는 이미 시장에 Me-too 제품이 난무하며 저마다의 차별화 포인트로 시장 진입을 도모한다. 안일하게 대응할 경우 후발주자에게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길 가능성도 상존한다. 따라서 앞의 단계와는 달리 전통적 마케팅을 통해 시장점유율 수성에 나서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신규고객보다는 기존고객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고려가 더 많이 요구된다. 지각수용자 만큼은 아니지만 후기다수수용자를 신규고객으로 유치하는 것에는 상당히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또 고객당 이익도 높지 않기 때문에 한번 유치한 고객은 놓치지 않는 것, 즉 Lock-in이 중요하다. Lock-in은 결국 전환비용을 높이는 행위다. 전환비용을 증가시키는 행위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약정 할인이나 마일리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전환비용을 증가시키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해당 제품과 호환되는 부가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Lock-in 시키는 것이다. 이를 가장 충실히 실행하고 있는 것은 Apple이다. Apple은 iTunes와 Appstore를 통해 생태계를 이미 구축했다. iPhone을 구매하고 사용하다가 다른 제품으로 전환하려면 iTunes에서 구매한 음악 및 App을 포기해야 한다. 다른 Apple 제품을 보유하면서 iCloud를 활용하고 있었다면 전환비용은 더 커진다. iPhone, iPod와 호환되는 오디오 등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문제도 있다.

    Apple이 꾸준히 iOS를 업그레이함으로써 기존 제품의 기능을 확장하고 다른 Apple기기와의 호환성을 강화하는 것은 개별 제품에 대해 갖는 불만에도 불구하고 Apple이 그 불만을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도록 고객을 Lock-in 시키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때로는 멀리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혁신제품 마케팅의 과정을 보면 상당히 길고 험난한 과정으로 느껴진다. 혁신제품은 많은 기대를 받고 개발되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은 견디기 어려운 기다림일 수 있다. 특히나 당장 대박을 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캐즘을 극복한다고 시장성도 커 보이지 않는 니치마켓에 집중하는 시점은 경영진의 예민함이 최고조로 달하는 때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직선거리가 항상 최적경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로마를 공격하기 위해 알프스를 넘었던 것처럼 때로는 멀리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 아니 유일한 길일 수도 있다. 특히 세상에 없던 새로운 제품일수록 이 과정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그 길을 갈 수 없고 그 길을 걸은 자가 얻는 과실은 크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황유동 T-Plus 팀장, 김온중 T-Plus 컨설턴트, 최현중 T-Plus 컨설턴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2호(2012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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