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촌 공동기획 Business Law & Case]⑨ 신탁법 개정, 재산상속·관리 안심되네
입력 : 2012.07.06 16:00:07
-
A씨가 우선 자신과 부인을 위해 원하는 것은 자신이 회사를 그만두고, 더 나아가 자산을 운용할 의사 능력을 상실하더라도 부부 모두가 사망할 때까지는 부부가 가지고 있는 재산 중 일부를 잘 운용해 안정적인 수입을 얻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미리 재산을 물려주고 부양을 받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으나 주변의 친구들은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한사코 말리면서 “둘째 아들과 딸은 현재 회사 일을 해 수입도 넉넉하니 재산은 가능하면 끝까지 부부가 가지고 있다가 둘째 아들과 딸에게는 상속만 시켜주도록 하라”고 권한다. 또한 A씨는 큰 아들이 남긴 손녀들에 대한 걱정도 크다. 큰 며느리가 재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아직 손녀들이 어려 선뜻 재산을 물려주기가 쉽지 않아서다. A씨가 손녀들을 위해 가장 원하는 것은 손녀들 몫으로 일정한 재산을 떼어 놓아 그 수익금으로 손녀들의 유학비용 등을 충당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 손녀들이 학업을 마치고 일을 시작하거나 결혼을 하는 등 자신의 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그때 그들이 물려받은 재산을 비로소 분배 받도록 하고싶다.
물론 A씨로서는 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아 현재의 재산 중 일부를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전환해 자신이 원하는 목적의 일부는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방법만으로는 A씨의 우려를 해소하거나 원하는 바를 모두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재 민법이 인정하고 있는 재산승계제도는 주로 사망 이후에 이뤄지는 재산의 승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A씨가 현재 시점에서 특정한 재산에 대해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 운용수익을 자신이 받도록 하다가 사망 이후에 재산이 자녀들에게 이전되도록 정하려면 민법상의 제도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어렵다. 또한 손녀들에게도 민법상의 증여를 통해 미리 재산을 나눠 줄 수는 있지만 손녀들이 미성년인 동안에는 법정대리인인 첫째 며느리가 이를 관리하게 되고, 손녀들이 성년이 된 뒤에는 손녀들 스스로가 이를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A씨의 의사와는 달리 손녀들이 학업을 마치기 전에 재산을 처분해버린다고 하더라도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A씨가 활용해 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신탁이다. ‘믿고 맡긴다’는 의미의 ‘신탁(信託)’은 위탁자가 수탁자에게 재산을 이전시키면서 수탁자로 하여금 신탁의 목적에 따라 신탁재산을 관리 및 처분하도록 구속할 수 있는 제도로 신탁재산의 관리나 처분으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은 수익자가 받도록 설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수익자는 위탁자 본인이 될 수도 있고 제3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신탁제도는 신탁관계자의 합의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어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특히 재산의 관리 및 상속과 관련해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신탁제도는 신탁재산 자체가 권리행사와 의무부담의 실질적 주체로서 법률관계의 중심이 되는 제도다. 1인 1재산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대륙법계 국가의 법체계와는 이질적인 것이나 최근에 와서는 대륙법계 국가에서도 금융, 부동산, 연금 등의 여러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륙법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1961년에 이미 신탁법을 제정해 시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머지 법체계와 이질적인 면이 많아 일반 사인들 간에 신탁법에 따른 신탁계약이 체결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 1990년대에 부동산 신탁회사들을 통한 부동산신탁사업들이 등장하면서 대형 건설사업과 개발사업 등에 신탁제도가 활용되기 시작했고 금융 분야에서도 신탁상품들이 등장하게 됐다. 이에 신탁법 자체를 세계적인 추세와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 맞게 정비하고 신탁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신탁법에 대한 전면 개정 작업이 장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그 결과 개정 신탁법이 7월 26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 신탁법은 종전 신탁법이 이미 해석상 포함하고 있던 신탁제도들을 좀 더 명시적으로 정하기도 했고 종전 신탁법 하에서는 논란이 있던 부분들을 입법적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신탁제도의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신탁제도들도 다양하게 도입했다. 그 중 개정 신탁법 상의 유언대용신탁과 수익자연속신탁을 이용하게 되면 A씨가 갖고 있는 고민들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유언대용신탁’이란 위탁자가 자신이 사망한 때에 수익자에게 수익권을 귀속시키거나 위탁자가 사망한 때부터 수익자가 신탁이익을 취득할 수 있는 수익권을 부여하는 형태의 신탁이다. 위탁자가 생존 중에는 자신을 수익자로 하고 자신이 사망한 후에는 배우자나 자녀들을 수익자(사후수익자)로 하는 것으로 정하는 경우, 특히 고령자들의 재산관리와 자산승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유언대용신탁은 개정 전의 신탁법에서도 해석상 인정될 수 있었으나 개정법은 이에 대한 명문의 규정을 뒀다. 또한 개정법은 위탁자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언제든지 수익자로 지정된 자를 변경할 수 있다는 점도 명확하게 정해 둠으로써 위탁자로서는 자신의 사망 시까지 사후수익자가 자신의 의사를 존중해 행동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즉 A씨는 자신과 부인의 노후 생활비를 충당할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재산에 대해 자신의 사망 시까지는 자신에게, 자신의 사망 이후에는 부인에게 각각 수익수익권을 수여하고 부인의 사망 이후에는 자녀에게 원본수익권을 수여해 그 시점에 비로소 상속이 이뤄질 수 있게 할 수 있다. 또한 손녀들에게 물려줄 재산에 대해서도 손녀들이 일정한 나이에 이를 때까지의 기간 동안에는 수익수익권만을 수여해주고, 그 후에 원본수익권을 수여해 주는 신탁을 설정하게 되면 위 신탁기간 중에 A씨의 사망 여부와 상관없이 손녀들은 일정한 나이가 돼서야 재산 자체를 물려받게 된다.
신탁법의 개정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신탁제도가 활성화돼 고령화사회에서 재산의 적절한 관리 및 승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나 민법이 상속권자들의 상속권을 일정한 범위 내에서 보호하기 위해 인정하고 있는 유류분제도와의 조화로운 해석 문제 및 신탁을 통한 재산승계의 활성화를 위한 세제 혜택의 마련 문제 등이 해결된다면 신탁을 통한 재산승계는 우리나라에서도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세연 변호사
[김세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2호(2012년 07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