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cKinsey Report] CEO들이여 경청의 기술을 아는가

    입력 : 2012.05.04 13:15:02

  • 백악관 상황실.
    백악관 상황실.
    훌륭한 경청의 기술은 고위 경영진의 성과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막상 이를 어떻게 개발해야 할지 알고 있는 이는 극히 드물다. 경청의 기술은 과연 어떻게 길러질 수 있는 것일까. 한 대형 소비재업체 고위 임원은 빠르게 성장하는 해외 시장에서 대단한 파트너십 기회를 찾았다며 경영진 회의에 나왔다. 경쟁업체들보다 빨리 움직여 신속히 딜을 성사시키고 싶은 마음에 이 임원은 경영진 회의에서 이야말로 업계 구도를 재편할 절호의 기회라며 확신에 차서 당위성을 설명했다. CEO는 자신이 오랫동안 신임해 온 이 임원이 눈을 반짝이며 당찬 목소리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도 눈에 띄었다. 이 임원이 다른 이들의 의견에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딜 추진 여부 및 전략적 당위성을 둘러싼 찬반 토론이 진행되는 내내 그는 반론이나 다른 가능성들을 논의하는 대화에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일부 임원들은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까지 했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그의 태도 때문에 건전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았다.

    참다 못한 CEO는 그를 달래고 구슬리고 질책까지 하면서 동료들의 의견을 주의 깊게 경청하라고 설득했다. 이후 논의에서 경영진은 당초 제안한 딜이 훌륭하기는 하지만 더 나은 파트너십을 구축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파트너십 기회는 회사가 부담할 리스크는 적고 긍정적 기대효과는 10배나 더 컸다.

    이 CEO가 겪은 상황은 많은 고위 경영진이 흔히 겪게 되는 일이다. 경청은 의사 결정 과정의 최전선으로 판단 근거가 될 정보들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하고도 효율적인 방안이다. 대부분은 보다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은 듣게 된다. 그러나 많은 경영진이 경청의 기술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습득되는 것으로 간주한 채, 자신의 견해를 더욱 효과적으로 피력하는 스킬을 배우는 데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나 경청도 연습이 필요하다. 훌륭한 경청의 기술을 지닌 인물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상대를 존중하고, 침묵할 줄 알며, 자신의 가정을 의심하고 검증하는 것이다. 그 방법을 소개한다.

    상대방을 존중하라
    시스코시즈템즈 차세대 원격화상회의 시스템.
    시스코시즈템즈 차세대 원격화상회의 시스템.
    나는 가장 훌륭한 경청의 태도를 지닌 한 대형 의료기관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외과과장에서부터 물건보관소 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의 직원들로부터 의견을 구하지 않고는 병원 같은 복잡한 조직을 운영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이들이 각기 고유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그들로부터 인정받는 매력적인 관리자가 되었다. 그가 모든 이들을 진심으로 존중하였기에 그들도 그를 크게 존중했다. 그 결과 조직 내 모든 영역 및 부문에서 좋은 아이디어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 COO는 진지하게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이 결정적 정보들을 스스로 도출하여 새로운 시각에서 조망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구성원 모두의 아이디어들이 힘을 발휘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고위 경영진이 즉각적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부하 직원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충동을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직원들이 자신의 업무와 거리가 먼 영역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한 대형 산업재기업의 엔지니어 그룹과 최고마케팅임원(CMO) 간의 미팅은 이와 관련해 아주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이 CMO는 최악의 상황에 처한 한 신제품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해당 제품을 개발한 엔지니어들 역시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회사는 전통적으로 강력한 제품 개발 기술을 지닌 엔지니어들이 주도해왔다. 엔지니어들은 문제가 된 신제품에 대해서도 역시 진지한 열정과 큰 포부를 갖고 있었다. 이들은 그런 자부심으로 만든 신제품이 시장에 출시된 동급 제품들보다 효율성은 물론 설치나 사용 및 유지 보수의 용이성이 모두 훨씬 뛰어나다고 주장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 과정에서 CMO는 훌륭한 마케팅 기법에 대한 강의를 늘어놓거나 이들의 접근법을 무시하는 식으로 대화를 자르지 않았다.

    CMO는 한참 동안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한 후 정중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첫 3개월 동안 여러분이 생각했던 것만큼 판매가 되지 않았네요. 그렇지요?”

    그러자 엔지니어팀 리더는 실은 하나도 판매하지 못했다며 신제품이 시장 판도를 완전히 뒤엎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판매가 안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의 발언을 끝까지 들은 CMO가 다시 한마디를 던졌다.

    “여러분은 이 제품의 탁월함에 대해 정말 큰 확신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그렇다면 고객들이 서로 주문하겠다고 아우성을 칠만한데 문제는 제품의 품질에 있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이 제품에 대해 고객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그러자 엔지니어는 고객들과 이야기를 해 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대화를 통해 이 제품이 철저히 비밀리에 개발되었고, 엔지니어들은 품질만으로 승부할 수 있으리라고 가정했음이 드러났다. 회사의 영업팀조차 신제품의 스펙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엔지니어팀장은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함을 인식했다. 이후 엔지니어들은 먼저 나서서 고객조직 담당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다. 그 결과 점차 주문이 들어오더니 신제품은 업계의 판도를 재편하면서 인정을 받게 됐다.

    이 CMO의 태도에서 주목할 점은 엔지니어들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곤란한 질문들을 피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훌륭한 경청의 태도를 지닌 이들은 더 나은 의사 결정을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위해, 곤란한 질문들을 주저하지 않는다. 정보와 아이디어들이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흐르도록 하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침묵하라 나는 경청에 관해 80/20 원칙을 가지고 있다. 대화시간의 80%는 상대방이 말할 수 있도록 하고, 나머지 20% 시간에만 나의 이야기를 한다. 이 원칙을 대학 특강에서 말하자 한 똑똑한 MBA 학생이 “훌륭한 경청자 두 명이 대화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매우 생산적이면서도 짧은 대화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경영진이 80/20 원칙을 따른다면 회의는 논점에서 벗어나지 않고 더욱 생산적으로 진행되며 더욱 짧은 시간에 끝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발언하는 시간조차도 내 의견을 개진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상대에게 질문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이런 게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대부분 경영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자기 이야기를 하기에 바쁜 사람은 결코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라 대화란 자신의 지위나 아이디어를 알리기 위한 기회라고만 생각하거나, 대화 중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생각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한다. 경청을 저해하는 나쁜 습관들이다. 나 역시 이러한 나쁜 습관의 함정에 빠진 경험이 있다. 컨설턴트 초년병 시절 중요한 클라이언트와 첫 회의를 하게 됐다.

    클라이언트는 미국 중부 출신의 매우 냉철하며 현실적인 경영자였다. 그는 회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이야기했다. “내년도 예산이 맞지를 않아요. 그래서 직원들에게 어려운 변화들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능한 컨설턴트라는 인상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던 나는 첫마디를 듣자마자 그의 고민이 예산에 관한 것이란 생각에 지체하지 않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해결책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는 클라이언트와 함께 우리 회사 고위 임원도 있었다. 나는 업무 효율화를 위한 탁월한 방안이라 생각되는 아이디어들을 속사포 쏘듯 늘어놓았다. 한참을 주의 깊게 듣는 것 같던 클라이언트는 갑자기 펜과 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자 클라이언트는 노트를 찢어 옆에 앉은 임원에게 건넸다. 쪽지를 받아든 임원은 순간 피식 하는 미소를 내비쳤다.

    무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던 클라이언트의 태도에 조바심이 났던 차에 그런 모습을 보고 나는 너무나 당황해 말을 멈추고 쪽지에 쓰인 내용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클라이언트는 옆에 앉은 임원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쪽지에는 ‘저 친구 도대체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거지’라고 적혀 있었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았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내 생각만 가득 차 있어 클라이언트의 말을 제대로 경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말을 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내와 부단한 연습을 통해 억제하는 법을 배우면 침묵 속에 경청해야 할 때와 말을 해야 할 때를 판단할 수 있게 되며 그 결과 대화의 질과 효과는 현격히 개선된다.

    존 맥래플린 전 미 CIA 부국장은 상대방의 발언 중 개입이 필요한 때가 언제인지를 주의 깊게 생각하되 경청할 때는 최대한 중립적 태도로 감정을 내비치지 말고 반박이나 이야기 중간에 끼어드는 것은 언제나 최대한 미루며 자제하라고 한다. 다만 대화가 너무 늘어지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질문을 통해 개입할 필요도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이때도 성급한 것은 절대 금물이다. 경영진 선까지 회부된 사안이라면 어느 정도는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침묵하고 있다 보면 일반적으로 놓치기 쉬운 비언어적 신호들을 간파할 수 있다.

    경청할 줄 모르는 이들의 여섯 유형 경청을 잘 하려면 대화에서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고 확보하는 데 끊임없이 방해 요소로 작용하는 게 무엇인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일반적 방해 요소를 여섯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한 사람에게서 여섯 유형이 모두 발견되기도 하며, 심지어 하루에 여섯 양상 모두를 드러내는 이도 있다. 한 주 동안 당신의 모든 업무 관련 대화 속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들이 있는지, 혹은 스스로가 그러한지 관찰해 보자. 스스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할 때마다 이를 자각할 수 있는 일종의 경계경보를 설정해 둔다면, 경청을 방해하는 습관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고집쟁이(The Opinionator)

    고집쟁이들은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것과 상대방의 생각이 일치하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으로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다. 이들은 매우 깊이 경청하는 것 같지만, 결코 열린 마음으로 듣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차례에 발언할 내용을 정리하는 ‘장전의 시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좋은 의도로 대화에 임하더라도 이러한 스타일로 인해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거나 심지어 주눅 들게 하기도 한다.

    심술쟁이(The Grouch)

    이 유형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생각이 틀렸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경청하지 않는다. 전형적 인물은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에 대한 경멸을 숨기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대화란 필요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늘 상대방에게 은연중 ‘왜 내가 바보 같은 당신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거야’라는 메시지를 주곤 한다. 각고의 인내를 발휘하지 않고는 대화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서론이 긴 유형(The Preambler)

    늘 서론이 장황하고 질문은 거의 연설에 가까우며 때로는 상대방을 코너로 몰고 가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이들이다. 이들은 늘 삐딱한 질문으로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유도해 가거나,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거나, 혹은 자신이 바라는 답변을 끌어내려고 한다. 일방적 커뮤니케이션의 진수를 보여주는 전형적 행동이다.

    말을 되풀이하는 유형(The Perseverator)

    이 유형의 사람들은 논점 없이 많은 말을 되풀이한다. 이들의 어떤 코멘트나 질문도 대화를 진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들은 종종 반복적 발언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즉석 편집하거나 조정하기도 하며 상대방의 생각을 교묘히 이용해 자신의 편견, 바이어스 혹은 아이디어를 뒷받침하기도 한다. 이러한 유형의 사람과는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대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강박증적 정답맨(The Answer Man)

    모든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지만 이 유형의 사람들은 해당 사안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기도 전에 해결책을 먼저 제시한다. 상대방의 의견은 전혀 필요가 없다. 정답맨은 고집쟁이 유형과 혼동되기 쉽다.

    고집쟁이 유형이 자신이 옳다는 강한 확신으로 말을 하는 반면, 정답맨은 다른 이들에게 만족감과 좋은 인상을 남기고자 한다. 대화 중 끊임없이 해결책을 제시하며 당신이 지적하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변을 가지고 있는 듯 반응한다면 그는 십중팔구 강박증적 정답맨이다.

    경청을 가장하는 유형(The Pretender)

    이 유형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듯 혹은 동의하는 듯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관심이 없거나 이미 자신의 마음을 결정하고 있다. 한 의료업체 CEO는 매우 바람직한 경청의 자세를 모두 갖추고 있는 듯 보였고 가끔씩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의 마음을 샀지만, 결정적 순간에 남이 했던 어떤 말도 실천하지 않았고 그들이 제공한 정보조차 참고하지 않았다.

    자신의 가정을 의심하고 검증하라
    종합청사 회의실.
    종합청사 회의실.
    미래에셋자산운용 서울 본사에서 구재상 부회장(왼쪾 둘째)이 최근 홍콩 현지 펀드매니저들과 영상회의를 하고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서울 본사에서 구재상 부회장(왼쪾 둘째)이 최근 홍콩 현지 펀드매니저들과 영상회의를 하고있다.
    훌륭한 경청의 태도를 지닌 이들은 모든 대화의 이면에 있는 가정들을 낱낱이 파악하고 이를 검증한다. 대학 입학을 앞뒀던 어느 여름 로체스터 레드윙스에서 만났던 얼 위버 감독은 그러한 전형적 인물이다. 얼 위버는 나중에 볼티모어 팀으로 옮겨 통산 15연승, 4회의 아메리칸 리그 우승 및 1회의 월드시리즈 승리를 이끈 전설적 인물이다. 위버 감독은 불 같은 성미에 매우 고약한 성격을 지닌 야구 천재였다. 18세의 내 눈에 비친 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야비하고 입이 험한, 한마디로 공포의 존재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경청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언제나 분노로 가득 차서 종일 고함을 치는 듯이 보였다. 젊은 선수가 실수라도 하면, 그는 해당 선수를 불러 마구 다그쳐댔다. “2루 주자가 3루를 향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공을 2루로 던진 거야”

    선수가 “2루 주자가 몇 차례나 한참을 뛰어갔다가 다시 2루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았기에, 2루까지 빨리 공을 던지기만 하면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라는 식으로 답하면 그는 선수의 답변을 빌미로 오히려 더 혼을 내곤 했다. 그러나 아주 이따금씩 그는 잠시 숨을 고르며 선수가 설명하고 있는 내용 중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도 했다. 위버 감독은 이 선수가 상대방 선수의 동선을 잘못 설명하고 있음을 알았으나 대화 속에서 새로운 정보를 기반으로 자신의 가정을 잠시 의심해 볼 줄 아는 의외성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위버 감독은 점차 경청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위버는 자서전 제목을 “중요한 것은 어떤 지식을 습득하였느냐가 아니라 그 다음에 무엇을 깨달았는가에 있다(It’s What You Learn After You Know It All That Counts)”라고 붙였다. 선문답 같은 제목이나 이는 훌륭한 경청의 핵심 요소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

    대화를 통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제대로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소중히 여겨온 오래된 가정들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영진이 제대로 경청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자신들의 가정을 좀처럼 포기하지 않으려 하며, 다른 이들과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수용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하면 생산적 내용의 대화가 전개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를 위해서는 전격적인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불명확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쌍방이 더욱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대화를 통해 양측이 모두 얻어야 할 무언가를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러나 유능한 경영진은 대부분 부지불식중에 자신이 모든 것을 혹은 적어도 가장 중요한 것쯤은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한다. 그 결과 자신의 신념을 무너뜨릴 수 있는 일체의 것에 대해서는 좀처럼 마음을 열려 하지 않는다. 직원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훌륭한 성품을 지닌 경영진조차 이러한 습성에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경청을 잘 하는 사람이 되려면 기정사실로 간주해 온 자신의 가정들을 낱낱이 해부해 알고 있는 것, 모르는 것, 알 수 없는 것을 면밀히 재검토해 기존의 사고방식을 재편하려는 의식적 노력을 해야 한다.

    경청의 달인인 안 덩컨 미국 교육부 장관은 자신의 생각과 논리에 대해 서슴없이 반론과 의문을 제기하는 까다롭고 깐깐한 인물들이 주변에 있을 때 자신의 경청 능력이 향상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회의 중 모든 참석자들이 반드시 발언할 수 있도록 하고 침묵하거나 안일하게 구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리더로서 그는 우리의 목표란 모든 구성원들이 동일한 시각을 갖는 게 아니라고 강조하며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언제나 서슴없이 반론을 제기하도록 독려한다.

    덩컨 장관의 기법은 특정 상황에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한 가지 사실이나 가정을 의도적으로 변경한 후 팀의 문제 해결 접근법에 어떠한 여파를 가져오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고위 경영진은 이 기법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자신들의 사고를 재검토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M&A 확대를 추진하고 있던 한 회사는 경영진 회의에서 이 기법을 통해 큰 성과를 거뒀다. 그 회사는 보유 현금이 많았고 지출할 수 있는 기회도 적지 않았으나 M&A 역량은 갈수록 쇠퇴하고 있었다. M&A 팀과 사업개발 부문장이 참여한 회의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다소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여러분의 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당장 여러분의 회사를 위해 어떠한 M&A 기능이 필요할까요. 새로운 팀이 갖추어야 할 스킬이나 전략은 무엇일까요.”

    팀원들은 초반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질문을 계기로 시작된 토론은 매우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왔다. 차기연도에 계획되었던 수십억 달러 규모의 딜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추가 역량과 스킬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운 인재들을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버나드 T. 페라리 Ferrari Consultancy 회장 사진 정기택기자 매경DB]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20호(2012년 0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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