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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rency War] Currency War 전세계가 뛰어들다…찍어! 뿌려! 가열되는 통화전쟁
입력 : 2012.03.26 17: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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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전쟁의 불씨는 독수리군단(미국)의 전 사령관 앨런 그린스펀의 잘못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천문학적 자금을 날린 월가의 악동들(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이 저지른 사건을 돈을 풀어 무마했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IT버블 붕괴라는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그린스펀은 더 많은 화력으로 그 파문을 벗어났다. 그런데 그는 그 재미에 취해 구조조정할 생각을 하지 않고 시중에 자금을 계속 부어댔다. 그 돈은 재앙의 불씨로 자랐다. 그린스펀은 그 불씨의 진실을 알리지 않은 채 사령관 자리를 벤 버냉키에게 넘겼다(그린스펀은 퇴직 직전 M3지표를 없애버렸다).
헬기에 돈 실어 있는대로 뿌려
새 사령관 버냉키는 과거 쓰레기를 정리하려고 자금줄을 조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뭉텅이 돈으로 가렸던 부실의 재앙이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대변되는 미국의 금융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노회한 버냉키 사령관은 그 재앙을 더많은 돈으로 덮기로 했다.
“헬기에 돈을 실어. 있는 대로 뿌려.” 버냉키는 헬기로 돈을 뿌리듯 월가에 자금을 퍼부어댔다. 거기서 ‘헬리콥터 벤’이란 애칭을 얻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자 미국 금융기관들은 저부터 살려고 자금 긁어모으기 경쟁에 나섰다. 종전처럼 돌리면 누구도 무너지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정도의 돈이 있었지만 서로 살겠다며 기존 대출까지 회수해 서로가 망할 길로 접어든 것이다. 첫 희생양은 리먼브러더스였다. 놔두면 나머지도 모두 무너질 것이라고 판단한 사령관 버냉키는 연방은행이 직접 돈을 풀어야겠다고 결정했다. 누구든 물꼬를 터줘야 돈이 돌고 경제가 살아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다시 말해 중앙은행이 직접 시장에 돈을 공급하는 양적완화에 나선 것이다.
미국 연방은행은 1차 양적완화에서 6000억 달러의 MBS(모기지 담보부 채권)를 사들이기 시작해 2009년 3월까지 1조7500억 달러어치의 은행부채와 MBS 등을 보유했다. 2010년엔 이 규모가 2조1000억 달러까지 올라갔다. 은행의 대출채권을 받고 현금을 내주며 예전처럼 돈을 돌리라고 한 것이다. 1차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자 버냉키는 2차 양적완화를 결정했다. 2011년 6월 말까지 6000억 달러의 국채를 추가로 사들인 것.
버냉키의 판단은 일단은 옳아 보였다. 유럽이 문제였다. PIIGS를 비롯한 유럽 일부 국가의 재정위기는 다시 금융기관들을 움츠러들게 했다. 사령관 버냉키는 새로운 전략을 내세웠다. 똑같은 카드로 국민들을 설득하기 힘들어서다. 그래서 나온 게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다. 단기채를 주고 장기채를 사들이는 방법으로 시중 금융기관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도 통화 공급 같은 효과를 낸다고 설명한 바 있다. 도이치은행의 댄 올란도 국채 트레이딩 부문 대표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는 성공적으로 작동했다”며 “투자자들의 다른 자산 투자를 촉진했다”고 밝혔다.
예정대로라면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는 오는 6월 말로 종료된다. 그러나 미국 연방은행이 지금까지 이어오던 통화공급 기조를 바로 중단할 것 같지는 않다. 버냉키 역시 2014년까지는 저금리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공표했다. 경제가 급격히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한 통화전쟁은 계속될 것이란 얘기다.
특히 미국 정부가 15조5000억 달러가 넘는 부채를 안고 있는데다 재정적자가 지속되고 있어 이자를 갚기 위해서라도 통화팽창을 통한 인플레이션 정책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닌자군단 실탄 10조엔 들고 “돌격 앞으로”
닌자군단을 지휘하는 마사키 시라카와 일본 중앙은행 총재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일격을 가했다. 전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유례없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목표를 내세워 돈을 풀기 시작한 것. 일본은행은 2월14일 ‘물가 1% 상승’ 목표를 정하고 ‘돌격’ 명령을 내렸다. 실탄은 10조엔(약 150조원). 어마어마한 돈을 찍어내 3년 연속 마이너스였던 물가를 일순간에 상승세로 돌리겠다는 구상이었다.
일본은행은 국채 매입기금 규모를 종전 55조엔에서 65조엔으로 늘려 양적완화에 나서기로 했다. 2011년에도 소규모 양적완화를 한 적은 있지만 디플레이션이 사라지지 않자 물량공세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반격 뒤엔 또 다른 책략이 숨어 있었다. 명목은 ‘고질적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는 것이지만 실은 돈을 풀어 치솟는 엔고를 잠재우고 수출을 회복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던 것이다. 대지진에 엔고까지 겹치면서 도요타나 소니 등 일본 주요 제조업체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을 쳤고, 이는 지난 1월 1조3816억엔의 무역수지 적자로 나타났다. 적자가 4개월 연속 지속돼 공격의 명분도 생겼다. 여기에 일본 정부도 대지진 복구를 명목으로 대규모 자금을 방출해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나섰다.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이 한마음으로 돈을 풀자 전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지난해 10월 달러당 75엔까지 치솟았던 엔화는 최근 달러당 84엔대로 떨어졌다. 그 덕분에 11월 초 8000포인트 대 초반에 머물던 닛케이225 지수는 최근 1만 포인트 고지를 탈환했다.
늙은 사자군단 영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후부터 독수리군단과 보조를 맞춰왔다. 마빈 킹 사령관(영란은행 총재)은 위기 발생 직후 즉각 자금을 풀라는 명령을 내렸다. 영란은행은 2009년 9월까지 1650억 파운드를 방출했고 2010년 10월말까지 1750억 파운드의 금융자산을 사들였다. 영란은행은 또 2011년에 750억 파운드의 유동성을 공급한 데 이어 지난 2월 추가로 자산 매입 규모를 500억 파운드 늘렸다. 자산 매입 목표치는 3250억 파운드가 됐다. 영국 정부도 이 기조에 동조하고 있다.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신용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200억 파운드의 채권을 발행해 중소기업에 저리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예산에 반영해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2차 대전 직전 초인플레이션의 두려움을 경험한 바 있는 전차군단 출신이 사령관으로 있던 유럽연합군(유럽중앙은행·ECB)은 미국의 통화 공급 공격에도 상당 기간 새 카드를 내지 않았다. 유로화가 폭등할 때조차 중립을 고수했다. 2009년에 방출한 자금이 고작 600억 유로 정도이니 알 만하다.
이 때문에 피해가 커졌고 일부 회원국에선 재정위기가 고조되었다. 그러던 차 2011년 10월 유럽연합군의 사령관이 아주리 군단 출신으로 바뀌었다. 새 사령관(ECB 총재)은 공격적 성향의 마리오 드라기. 그는 자리에 오르자마자 돌격 명령을 내렸다. ECB는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이란 이름으로 2011년 12월 1차로 500여 유럽은행들이 4890억 유로(약 740조원)를 대출했다. 지난 2월29일엔 2차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에 따라 5200억 유로를 추가 방출키로 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나 부도 직전에 있던 그리스가 모든 채권을 연장해 회생하게 됐고 전 세계 증시에 긍정적 효과를 불러왔다.
삼바군단·알프스군단 “고래싸움에 당할 수만은 없다”(왼쪽부터) 유럽중앙은행 , 일본은행
2009년 초 미 달러화 대비 1.5 대 1 수준이던 호주달러 가치는 최근 0.95 대 1 수준으로 치솟았다. 엄청난 지하자원 덕분에 글로벌 경기침체와 강대국의 통화 공격에도 불구하고 독야청청 성장세를 이어오던 호주의 산업들이 이 여파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자기나라 돈이 강세를 보이자 760만명(2011년)이나 해외를 다녀온 호주인들의 움직임도 여기에 한 몫을 했다. 아무튼 호주 제조업체들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시장엔 외국 제품이 넘친다고 한다. 증권 전문가들은 올해 호주 기업들의 실적 증가는 거의 제로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원자재 강국인 노르웨이나 브라질도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외화 때문에 자국 통화가치가 치솟자 수출경쟁력 약화를 우려해 비상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세계적 산유국인 노르웨이는 유가가 치솟아 오일머니가 쏟아져 들어와 인접 국가들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예외로 높은 성장률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크로네화 가치가 치솟자 중앙은행이 개입에 나섰다. 노르웨이 중앙은형은 현재 1.75%에 불과한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럽에선 보기 힘든 경기호황으로 부동산 버블 조짐까지 보이기 때문에 실제 금리를 인하하기는 쉽지 않은 형편이다. 이 때문에 노르웨이 정부는 재정자금 대신 국부펀드 자금을 지출하는 방식으로 크로네화 추가상승을 막고 있다. 바이킹군단 다운 전법이다.
삼바군단 브라질은 치솟는 헤알화를 잡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브라질 정부는 지난 3월12일 자국 채권에 투자하는 외국자본에 6%의 금융거래세(IOF)를 만기 5년 이하의 모든 해외차입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3월 초만 해도 만기 3년 이내 채권에만 적용하겠다고 하다가 불과 며칠 만에 전격적으로 대상을 확대한 것이다. 브라질은 지난해 기업의 해외 차입에 부과하는 IOF 세율을 2%에서 6%로 인상했지만 약효가 크지 않자 올해 들어 대상을 넓히는 쪽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삼바군단은 설전에도 능하다. 브라질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의 대규모 통화증발로 핫머니가 쏟아져 들어와 헤알화가 폭등했다고 미국 등 선진국을 비난했다. 또 지난해 9월엔 세계무역기구(WTO)에 ‘통화덤핑제안’을 제출하고 환율조작국을 규제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통화전쟁과 관련해선 한국은 방관자는 아니다. 오래전 외환위기를 겪은 코리아군단은 최틀러 사령관과 그의 후배들로 방어진을 짰다. 사부는 강만수 전 부총리. 이들의 운은 좋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 900원대 초반에 머물던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를 만나자 1400원대까지 치솟았다. 그 덕분에 코리아군단은 가만히 앉아서 초반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이후 독수리군단의 엄청난 물량공세로 원·달러 환율은 크게 밀렸다. 코리아군단은 1100원선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작전상 후퇴를 하다가 순간 반격하는 전술을 되풀이했다. 그래서 원·달러 환율은 미국의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1100원선을 중심으로 2년여 간 횡보국면을 이어오고 있다.
알프스군단 스위스는 아예 장벽을 쳐버렸다. 유럽 각국의 재정위기로 유로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상대적으로 스위스프랑화가 치솟자 일정 수준 이상은 오르지 못하도록 아예 가이드라인을 정해버린 것. 스위스 중앙은행은 지난해 9월 유럽중앙은행과 협의해 유로 당 최소 1.2 스위스프랑으로 환율을 고정하고 프랑화를 무제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프랑화가 더 이상 오르면 돈을 찍어 외국 화폐를 사들이겠다는 것이다. 금융 강국이면서 동시에 제조업 강국인 스위스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신용평가사는 독전대
지난해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올해 1월초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1%로 유지한다고 발표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끌어내렸다. AAA이던 프랑스의 신용등급을 AA+로 한 등급 내리고, 또 포르투갈과 키프로스의 신용등급은 아예 투기등급으로 떨어뜨렸다.
S&P는 이번 신용등급 강등의 이유로 유럽 지도자들이 지난해 12월9일 회동에서 지역의 채무위기를 풀기 위해 결정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었다. 그 뒤 벼르다가 ECB가 금리동결을 결정하자 등급을 내린 것이다. 돈을 찍어 경제가 잘 돌아가게 만들라는 것이다.
당시 길포드 증권의 제레미 헤어 전무는 “S&P가 메르켈 독일 총리의 턱을 정면으로 가격했다”고 평가했다.
S&P는 이후에도 돈 찍기를 망설이는 나라들에 등급을 내리거나 전망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지난 3월엔 영국에 대해 재정 개선을 하라며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통화전쟁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3월14일 한 콘퍼런스에서 미국 연방준비은행(Fed)이 추가 자산 매입에 나서면 해외 투자가들이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억제 의지를 의심할 수 있으니 신중을 기하라고 주장했다. 연방은행이 추가 자산 매입을 한다면 글로벌 시장 참여자들이 미국 정부가 돈을 찍어 연방정부 부채를 갚으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게 루빈의 지적이다.
한국에선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수출을 확대하기보다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방점을 둔 환율정책을 운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쳐 관심을 끌었다. 박 장관은 3월 초 페이스북 대담에서 정부의 고환율 정책에 대한 질의에 “환율이 높다고 수출에 유리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며 “10년 전과 비교하면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많이 줄었다”고 답했다.그러나 통화전쟁이 글로벌 치킨게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어 박 장관의 의중이 반영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누구도 먼저 빠져나오기가 힘든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통화전쟁의 피해는 통화가치가 강세로 돌아서는 나라가 입을 것 같지만 사실 진짜 큰 피해는 통화가치가 약세인 나라의 소비자들이 입는다. 자국 통화가 약세를 보이면 수입물가가 폭등하고 수입물가 인상의 부담을 전가할 수 없는 최종 소비자가 고스란히 높은 가격을 물어야 하기 때문.
한국의 경우 환율이 금융위기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되면서 수출기업들은 엄청난 이익을 남기고 있지만 수입품 가격이 급등해 전 국민이 부담을 안고 있다. 국민 기호식이라고 할 수 있는 자장면이나 라면 값이 치솟은 데도 환율의 영향이 엄청나게 크게 미쳤다. 결국 국민들의 호주머니 돈이 수출대기업의 금고로 들어가는 셈이다.
잠깐용어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신용경색으로 시중 금융기관이 구실을 하지 못할 때 중앙은행이 직접 통화 공급을 늘리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리는 방법으로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지만 신용경색 상황에선 어느 금융기관도 자금 공급을 하지 않기에 중앙은행이 나서는 것이다.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채권 가운데 남은 만기가 상대적으로 짧은 채권(3년 미만)을 팔고 장기채권(6~30년)을 사들여 시중금리 하락을 유도하는 정책을 말한다. 이 역시 통화 공급의 효과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진건 기자 borane@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9호(2012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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