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R] 제네바모터쇼 간 정몽구 회장…현대차, 이제는 유럽이다

    입력 : 2012.03.26 17:16:46

  • 2012 제네바 모터쇼에 모습을 드러낸 현대 i30
    2012 제네바 모터쇼에 모습을 드러낸 현대 i30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유럽을 향해 칼을 뽑았다. 세계적인 명차 브랜드들이 즐비한 난공불락의 요충지인 유럽시장에 현대기아차의 깃발을 꽂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현대기아차의 유럽 전략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이 지난 2006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이후 소비자들의 지갑이 꽁꽁 닫힌 미국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만큼 유럽시장에서 어떤 결과를 도출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서다.

    공략 대상이 된 유럽 자동차 메이커들도 현대기아차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이미 기술력과 브랜드 인지도에서 글로벌 메이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가 본격적인 유럽 공략에 나선다면 글로벌 재정위기로 가뜩이나 판매량이 줄어든 유럽시장에서 피 튀기는 판촉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여기고 있어서다.

    세계적인 명차 브랜드들이 즐비한 유럽시장에서 정면승부에 나선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의 ‘유럽 공략’ 비법을 살펴봤다.



    10년 간 준비한 유럽 공략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지난 3월 6일 스위스로 날아가 제네바모터쇼를 관람한 후 "공격경영"을 지시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지난 3월 6일 스위스로 날아가 제네바모터쇼를 관람한 후 "공격경영"을 지시했다.
    사진설명
    유럽시장은 사실 현대기아차에 있어 진입이 쉽지 않은 시장이다. 벤츠, BMW, 아우디, 재규어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글로벌 명차 브랜드들이 대거 포진해 있고, 자동차산업을 일으킨 곳답게 기술력과 소비자들의 자부심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기아차는 이미 10년 전부터 유럽 공략을 준비해왔다. 소형차를 중심으로 한 라인업을 유럽시장에 출시하며 꾸준하게 인지도를 높여왔다. 이런 노력은 현대차가 2002년 출시한 소형 해치백 ‘겟츠’(국내명 클릭)를 통해 처음으로 결실을 이뤘다. 겟츠는 2003년 1월 영국의 유력 매거진인 <왓카>가 선정한 실용적인 차 1위에 뽑히며 현대차의 유럽 공략에서 선봉장 역할을 했다. 이후 현대차는 액센트(국내명 베르나)와 매트릭스(국내명 라비타) 등을 투입하며 판매량을 꾸준히 늘려왔다. 기아차 역시 피칸토(국내명 모닝) 등을 통해 유럽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2006년 유럽형 전략모델인 씨드를 출시하면서 유럽시장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생산된 씨드는 완벽한 유럽형 모델로, 날렵한 디자인에 실용적인 해치백 디자인으로 단숨에 유럽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최근에는 현대차의 I시리즈와 기아차의 K시리즈를 유럽시장에 선보이며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특히 현대차가 지난해 하반기 유럽에 출시한 전략모델인 i40의 판매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소형차 위주로 구성됐던 현대차의 유럽 판매 비중이 중형차로 옮겨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유럽에 출시된 i40은 지난해 말까지 1만1777대를 팔아 전체 승용차 판매량 25만8568대 중 4.6%를 차지했다.

    유럽을 위한, 가장 유럽적인 전략모델을 출시하는 현대기아차그룹의 전술은 유럽시장에서의 인지도 상승은 물론 점유율도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현대기아차그룹이 유럽시장에 본격 진출한 2002년 당시에는 2.1%(현대차 1.6%, 기아차 0.5%)의 점유율에 불과했지만, 지난 2011년에는 69만2089대를 판매하며 유럽시장 점유율을 5.1%도 높혔다.

    지난 2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15.4% 증가한 5만3867대를 팔았으며, 1~2월 누적판매량은 10만9151대로 전년 대비 18.7% 늘어났다. 특히 독일에서는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도요타를 제치며 아시아 자동차 메이커 중 점유율 1위에 올랐다.



    기술력·품질이 현대기아차 돌풍의 원인
    기아차의 유럽 전략 모델인Ceed.
    기아차의 유럽 전략 모델인Ceed.
    업계에서는 현대기아차가 자동차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이처럼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을 기술력과 품질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높은 기술력과 현지 유럽 공장에서 생산되는 뛰어난 품질로 무장한 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하니 당연히 잘 팔릴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 현대기아차그룹의 기술력은 이미 글로벌 메이커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현대차가 자체 개발한 엔진이 글로벌 자동차 매거진인 <위즈오토>의 ‘세계 10대 최고 엔진’에 4년 연속 선정될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자랑한다. 현대차는 2009년 V8 타우엔진으로 처음 10대 엔진에 이름을 올린 뒤 3년 연속 이 자리를 지켰고, 올해에는 1.6 감마 GDi엔진이 10대 엔진에 포함됐다. 품질 역시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JD파워는 현대차의 제네시스를 ‘2012년 내구품질조사’에서 중형 고급승용차 부문 1위에 선정했다. 고품질로 이름난 벤츠 E-class와 BMW 5시리즈가 제네시스에 밀린 것이다. 이 외에도 지난해 6월 공개된 ‘2011년 신차 품질조사(IQS)’에서는 대형 고급승용차 부문에서 에쿠스가 2위를, 소형차 부문에서는 베르나가 3위에 이름을 올렸다. 2위는 기아차의 프라이드가 차지했다.

    무엇보다 현대기아차가 유럽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매력을 발하는 부분은 바로 ‘가격’이다. 글로벌 메이커들와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은 고품질의 차량들을 경쟁업체보다 5~10% 저렴한 가격에 팔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발 재정위기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꽁꽁 닫힌 유럽시장에서 현대기아차가 폭발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앨런 러시포드 현대차유럽법인 부사장 역시 제네바 모터쇼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업계의 분석을 일부 인정했다. 그는 “현대차는 과거 프리미엄 차량에 장착됐던 고연비 친환경 엔진을 양산 모델에 적용했지만, 경쟁 차종보다 훨씬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고 있다”며 “가격 대비 가치와 품질, 친환경성이 유럽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끔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의 뚝심이 엿보이는 공격적인 경영 방식도 현대기아차 유럽 질주의 원동력이다. 정 회장이 지난 3월6일 스위스 제네바모터쇼에 참석한 뒤 유럽 법인장들과의 회의에서 “판매 네트워크를 늘리고, 직영점을 과감히 확대하라”며 “경쟁사 딜러를 영입하고, 실적이 부진한 딜러는 교체하라”고 밝혔다. 공격 경영에 더욱 박차를 가하라고 당부한 것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은 현재 1789개인 현대차 유럽 판매망(직영점·대리점 포함)을 1850개로, 1478개인 기아차 유럽 판매망을 1520개로 늘리기로 했다. 실제 지난해 말부터 유럽 최대 시장인 독일과 프랑스의 판매망을 직영으로 바꾼 후, 과감한 투자를 통해 프랑스시장에서만 현대차 판매는 50.2%나 늘었다.



    “우린 아직 배고프다!”
    현대차 체코 공장 조립 라인
    현대차 체코 공장 조립 라인
    현대기아차그룹이 유럽에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자 기존 유럽 메이커들의 긴장 역시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마틴 윈터콘 폭스바겐 CEO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현대차의 i30을 직접 타본 뒤 사실상 현대차를 최고의 경쟁자로 평가했다. 당시 그는 “어떤 소음도 나지 않는다”며 “우리가 못하는 것을 현대차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라고 임원들을 다그쳤다. 이안 로버슨 BMW 세일즈 마케팅 총괄사장 역시 지난 3월13일 BMW벨트에서 열린 연례 기자회견에서 “현대차는 성장하는 기업으로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그러나 현대차의 질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로 르노와 푸조, 피아트, GM 등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퍼블릭 메이커를 지목한다. 다만 퍼블릭 메이커인 폭스바겐의 경우 산하에 아우디와 부가티, 람보르기니 등의 고가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어 상당한 우위가 점쳐진다.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글로벌 메이커들의 견제가 심해지고 있지만, 현대기아차는 올해 72만대 이상을 판매 목표로 세우며 공격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정몽구 회장이 유럽시장에 대한 공격 경영 의사를 밝힌 것은 이미 유럽시장 공략을 위한 현대기아차그룹의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미국시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3~4년 뒤에는 유럽 자동차 시장의 주요 메이커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현대기아차그룹은 그러나 여전히 낮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지난해 세계 톱10 자동차 기업 중 가장 높은 판매 성장세를 기록하며 5위를 굳히고, 폭스바겐(2위)과 도요타(3위)를 바짝 뒤쫓고 있지만 성장세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글로벌 자동차업계가 감속 성장을 하고 있는 사이, 나 홀로 질주를 계속하고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의 성장RPM이 어디까지 올라갈지 기대된다.

    [서종열 기자 snikerse@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9호(2012년 0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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