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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eting] 멘토의 시대
입력 : 2011.11.28 15: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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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도 교수가 서울대 발전기금 콘서트에서 인기가수 바비킴과 ‘사랑 그놈’을 함께 부르고 있다.
386세대가 88만원 세대를 만들었다고 우석훈 교수는 얘기한다. 그러면서 386세대가 20대에 했던 것과 같은 행동을 취할 것을 현재의 청춘에게 촉구한다고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88만원 세대라고 명명된 이들이 수용하기는 힘든 요구였다. 광장으로 나섰던 두 차례도 뚜렷한 목표나 중심점 없이 한풀이 한마당에 그쳐버렸다. 좌절을 겪은 암울함 속에서도 그들은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를 찾았다. 한편 같은 처지의 청춘들이 함께 위로를 나누며 격려할 수 있는 수단이 발견됐다. 바로 트위터를 필두로 한 소셜네트워크였다. 기성세대가 정해 놓은 틀에서 빠져나와, 자신들만의 정보교환과 증폭의 통로를 만들었다. 디지털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그 새로운 통로가 오프라인에서도 어떻게 힘을 발휘하는지 2011년 4월 선거를 통해 확실히 보여줬다. 책이나 언론을 통해서만 만나 볼 수 있었던 인사들과 직접 실시간으로 얘기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됐다. 개인적인 관계를 전제로 하는 ‘멘토’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며, ‘청춘의 멘토’란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각광받는 인사들이 출현했다. 그 일련의 흐름은 지난 10월 서울시 보궐선거에서 정점을 이루며 폭발했다.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서울시장 선거 당시 5%에도 못 미치는 지지도를 보였던 박원순 시장이 안철수 교수의 후원을 받으며 이틀 만에 50% 이상의 지지도를 얻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제품으로 얘기하자면 ‘정치’라는 업종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제품이 다른 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바로 선두로 뛰어오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안철수 교수도 불가사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가 정치를 하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단 며칠 사이에 수년 동안 공을 들였던 기성 정치인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기존의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도 원인이 있지만,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그어져 있던 경계선이 무너졌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자신의 본분을 지키라는 말인데, 자신이 속한 방면에서만 활동하라는 얘기이다. 허나 최근엔 이런 구속적인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지도층 인사’, ‘존경하는 인물’과 같은 거리감이 없는 ‘멘토’형 인사에 청춘이 열광한다. 멘토라는 말 자체가 개인적, 일상적인 친밀함을 바탕에 둔 표현이다. 일방적으로 말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들어주고 의견을 교환하는 사람을 말한다. 소셜네트워크가 생겨 멘토로서 자리 잡을 여건이 생겼다. 그리고 모니터나 스마트폰 화면만이 아니라 안철수 교수는 ‘시골의사’ 박경철과 전국을 돌며 ‘청춘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찾아가는 강연을 했다. 온라인, 소셜네트워크 상의 의사 전달은 불충분하다. 모든 것이 결합되어야만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
서울시 보궐선거가 이전 선거와 달랐던 점을 또 하나 꼽으라면 다수의 연예인을 필두로 한 유명인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활동과 의사를 보일 수 있는 통로가 생겼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무조건적인 중립을 강요하던 기존 언론의 틀이 소셜네트워크라는 또 다른 소통 통로를 만나면서 느슨해졌다. 제한된 영역에서 빠져 나온 연예인들이 대거 멘토의 반열에 올랐다. 그런 멘토 열풍을 불러일으킨 사회적 현상 중 하나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오디션과 인생 이야기‘멘토’라는 단어를 올해 최고의 단어로 만든 프로그램 "위대한탄생"
2011년 광고 노래 중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불린 것을 꼽으면 바로 우루사의 ‘간 때문이야’일 것이다. 이 광고로 차두리는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최고의 광고모델상’을 받았다. 실제 이 광고가 성공한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광고 모델인 차두리의 건강하면서도 풋풋한 이미지, 바로 모델로서는 아마추어 같은 모습이었다. 차두리와 올해의 광고모델상에서 각축을 벌인 이들은 '남자의 자격'의 박칼린과 '슈퍼스타K' 출신의 허각이었다고 한다. 둘 다 기존의 프로페셔널 모델들과는 다른 아마추어 같은 신선함과 어색함이 주요 매력 포인트였다.
기존의 틀을 깨라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서로 얼싸안고 있다.
‘끈 떨어진’ 전직 국회의원은 선거본부장이 되어, 본인의 표현으로 당내에서 질시어린 ‘왕따’를 당할 정도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팟캐스트 방송에서 벗어나 오프라인 콘서트까지 열풍은 이어졌다. 어디서 열리는가를 떠나 이들의 콘서트는 몇 십분 만에 모두 예매가 완료된다. 티셔츠 등 관련 상품은 이미 컬렉터의 아이템이 됐다.
'뉴욕타임즈' 아시아판에서까지 1면 머리기사와 함께 2면에 걸쳐서 나꼼수 열풍을 다룰 정도였다.
이런 나꼼수에 대해 기성 언론들은 자신들의 잣대를 그대로 들이대며 비판한다. ‘영향력이 있는 만큼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역사와 소설, 개그와 평론의 벽이 허물어졌다’, ‘검증 안 된 음모론 남발’과 같은 비판은 시기어린 질투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리고 부메랑으로 기성 언론에게 역풍으로 타격을 가하고 있다.
모름지기 우리가 ‘언론’ 혹은 ‘방송’이라고 생각했던 틀 밖에서 나꼼수가 태어났고 존재한단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들에게 기존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틀에서 벗어났다고 소리치는 것 자체가 바로 ‘꼰대질’이다. 그리고 ‘부러우면 너희도 만들어’와 같은 조롱만 들을 뿐이다.
지난 2009년 팀 쿡 애플 CEO와 고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오른쪽)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90년대 말 삼성전자의 핸드폰이 미국 시장에 발을 붙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음성인식 기술이었다. 당시 ‘이름 부르기 놀이(Name game)’란 경쾌한 노래와 함께 광고도 꽤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서도 음성인식 기능만을 가지고 했던 핸드폰 광고도 있었다. 필자도 그 음성인식 기능을 다른 친구들이 보고 놀랄 정도로 즐겨 썼다.
그런데 음성인식 기능의 인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바로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명령, 관계가 아닌 기술의 관점에서만 생성되고 존재했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제품도 수익 집단이나 특정한 기능으로만 존재해서는 안 된다. 고객과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의 시작은 듣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되어 있는가? 실시간으로 경청하고 있는가? 이야기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는가? 우리 기업이나 제품은 고객에게 위안이나 흥미를 제공하고 있는가? 고객이 나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가? 어떤 부분에서 또 내가 멘토로서 기능하고 있는가? 광고 모델이 지나치게 프로의 티를 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와 대화를 나눈 고객이 취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고객과 대화를 통해 우리 내부와 제품은 무엇이 바뀌었는가? 멘토는 함께 얘기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함께 행동한다.
[박재항 / 이노션 마케팅 본부장 jaehang@hotmail.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5호(2011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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