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rketing] ‘동기화’ 마케팅으로 고객과 일체감

    입력 : 2011.11.04 17:12:17

  • 사진설명
    ‘미네르바’를 기억하는가? 그가 했던 예언의 정확도 외에 그의 정체를 두고 말이 많았다. 퇴직한 금융계 인사, 경제학 교수, 정부 관료 등. 결국 그가 경찰에 연행되며 모습을 나타냈을 때 그가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전문대 출신이라는 데 경악한 사람들이 많았다. 트위터의 본좌, 여신으로 불리며 수만 명의 팔로워를 좌지우지하며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던 전문직에 미모까지 갖춘 여인이 있었다. 그가 나중에 보니 모든 것이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아는 대학교수 한 사람은 공부하는 분야도 그렇고 생김새도 그야말로 백면서생이다. 그런 그가 온라인 게임 세계에서는 친위대를 거느린 큰 부족의 추장과 같은 존재다. 게임 세계에서는 무자비한 용사(勇士)로 유명하다. 이렇게 온라인에서의 내 모습과 실제와의 괴리 혹은 이중성은 인터넷이 나온 직후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일인백색(一人百色)’의 시대 ‘인터넷 세계에는 5천만 명으로 이루어진 한 개의 세그먼트가 아닌, 한 개인 안에 5천만 개의 세그먼트가 존재한다.’

    인터넷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1995년에 하워드 레인골드(Howard Reingold)라는 문화평론가가 한 이야기다. ‘백인일색(百人一色)’에서 ‘일인일색(一人一色)’을 거쳐서 ‘일인백색(一人百色)’의 시대가 됐다는 얘기와 같은 맥락의 표현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었고 둥글둥글 조약돌은 노래로까지 예찬됐다. 그러나 이제는 ‘튀지 않으면 죽는다’가 됐다. 개인기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야만 하는 시대이다. 그런 자신을 드러내는 무대도 블로그, 홈페이지, 트위터 등으로 다양해졌다. 그 각각의 무대마다 선보이는 자신의 모습들이 다른 경우가 많다.

    “트위터, 페북, 블로그, 웹진 칼럼, 오프라인 잡지연재, 이메일, 문자메시지의 용도를 나름 구분해 쓰고 있다 생각했는데 페북과 트위터를 연동시키며 내 자신이 헷갈리고 있다. 잡지나 웹진은 좀 다르다고 해도 나머진 합쳐지나, 연동상태로 따로 존재하나, 완전 분리 존재가 맞나?”

    필자가 1년 전쯤에 올린 트윗이다. 위에서 ‘용도를 나름 구분’했다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각 매체마다 던지는 메시지와 그 메시지의 형태가 달랐다. 당연히 비춰지는 모습도 달랐다. 오프라인 잡지에 실린 분량이 긴 글로만 필자를 접한 독자와, 140자 이내의 단문으로 내뱉었던 말들로만 표현하는 트위터에서 필자를 본 트친이 상상하는 필자의 모습은 무척 다를 것이다. 좋게 말해서 필자의 모습이 다양화됐고 나쁘게 말하면 다중인격적인 모습을 띄게 됐다. 어쨌든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까지 다양화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거역할 수 없는 현상이다.

    다양화 속의 ‘쏠림’도 있다
    영화 [실미도]가 관객수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이후 그 이상의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들이 이어졌다.
    영화 [실미도]가 관객수 1천만 관객을 동원한 이후 그 이상의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들이 이어졌다.
    인터넷 이후 ‘다양화’가 사회·소비 트렌드라 했는데, 그와 반대되는 ‘쏠림’ 현상 또한 나타난다. 2003년 이후 영화 '실미도'가 관객 수 천만을 넘어선 이후, 그 이상의 동원 기록을 세우는 영화들이 줄줄이 나왔다. 멀티플렉스의 등장이 결정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처음 소수의 상영관에만 영화가 걸렸다가 차차 입소문이 퍼지면서 대형 흥행작이 되는 사례도 심심찮게 나오는 것을 보면 단순한 상영관 숫자로만 설명할 순 없다. 빌 게이츠는 지난 세기에 우리가 TV를 시청하는 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할 것이라며, 우리가 아는 전통적인 TV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3D TV, 스마트 TV가 나왔지만 실상 우리가 TV를 시청하는 행동은 채널이 많아져서 채널을 이리저리 바꾸는 재핑(Zapping)이 좀 심해졌다는 점 이외에는 별반 큰 변화가 없다. 오히려 TV를 시청하는 시간과 시청률은 높아지고 있다. 어떤 드라마는 시청률 50%를 넘겨 버렸다. 인기 프로그램이라면 꾸준히 20%를 상회하는 시청률을 유지한다.

    책도 구시대의 유품과도 같이 표현됐다. 당장이라도 전자책(E-book)으로 바뀌든지, 책 자체가 사라질 것처럼 얘기했다. 그런데 발행되는 책의 양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100만 권 이상 팔려야 하는 것으로 매출 부수를 세는 단위가 달라졌다.

    다원화의 시대에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집단으로 어느 하나에 몰리는 이런 집중화가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선순환의 마케팅
    사진설명
    세계 최대 규모에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칸느광고제가 지난 6월 말 프랑스 칸느에서 열렸다. 2010년 최고의 화제작이자 필름 부문 대상 수상작이었던 올드스파이스(Old Spice)의 광고가 올해에도 화제를 모았다. 자아도취 경향이 있는 코믹스런 모습으로 세계 광고계의 깜짝 스타가 된 전직 미식축구 선수인 아이샤 무스타파(Isaiah Mustafa)가 역시 그 중심에 있었다. 2010년 2월 TV 전파를 타기 시작한 올드스파이스의 모델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그는 올드스파이스 광고가 칸느광고제에서 대상(大賞) 중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필름 부문의 그랑프리를 타면서 국제적인 유명인사가 됐다. 미국에서는 토크쇼 초청 대상 1위로 떠올랐다. 또 드라마와 영화계의 캐스터들이 가장 열렬하게 쫓는 인사가 됐다. 이후 미국의 NBC방송은 그와 드라마 계약을 체결했고, 올 여름에 개봉한 영화 '호리블 보시즈(Horrible Bosses)'에 카메오로 출연하기까지 했다.

    그의 인기에 고무된 올드스파이스는 48시간에 걸쳐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들어온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짧은 영상물을 무려 200개 이상 찍었다.

    그 동영상들은 다시 유튜브에 게재되어 6천만번 정도 재생됐다. 그 영상물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올드스파이스는 다시 TV광고로 제작했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TV광고를 비롯한 전통 매체와 온라인의 이른바 소셜네트워크 매체 간에 일어나는 선순환의 전형을 만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만들어내는 커뮤니케이션의 선순환 구조는 일찌감치 한국에서도 선을 보였다. 뮤직비디오나 단편영화와 같은 동영상의 일부분만을 TV광고 형태로 방영해, 온라인 방문과 본편의 다운로드를 유도하는 형태는 2000년 초부터 많은 기업에서 시도했다. 상당수 성공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효리와 에릭이 출연했던 애니모션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콘텐츠에 관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창구가 많아지며, 관심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증폭되어 사람들을 구매로 이끈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구매할 수 있는 유통 창구가 증가했다는 사실도 지나칠 수 없다.

    위에서 ‘쏠림’ 현상으로 든 영화, TV 실시간 시청, 초대형 베스트셀러들의 등장, 늘어난 멀티플렉스 상영관, 복수의 TV를 가진 가구 증가, 인터넷 서점의 출현 등이 큰 공헌을 한 것도 사실이다.

    시간대 ‘본방사수’에서 연대감을 형성하는 ‘동시행동화’로
    SNS에서의 호의적인 평들은 개인의 ‘즉시 행동화’를 이끈다. SNS에서 화제가 된 ‘박태환 신드롬’은 올 7월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높은 시청률에 일조했다.
    SNS에서의 호의적인 평들은 개인의 ‘즉시 행동화’를 이끈다. SNS에서 화제가 된 ‘박태환 신드롬’은 올 7월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높은 시청률에 일조했다.
    새로운 영화가 개봉되면 SNS에 평가가 즉각적으로 줄줄이 올라온다. 몇 년 전에 한국의 대표적인 영화사의 의뢰를 받아서 컨설팅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관객들이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올리는 영화평과 댓글의 성향에 관한 조사를 했다. 예상과는 달리 호의적인 내용들이 8대 2 이상의 비율로 압도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부정적인 리뷰 중 일부가 강력한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에게 강하게 각인되면서, 그 존재감과 영향력이 과대 포장되고 있었다. SNS에서도 마찬가지로 호의적인 평들이 올라오고, 이른바 ‘대세’를 형성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극장으로 향하게 만든다. 특히 SNS는 즉시 행동하도록 이끄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모두가 이미 잘 아는 것처럼 SNS는 정보가 사람들 사이에 교환되는 횟수와 관심 증폭의 속도를 현저히 증대시켰다. 그런 교환과 증폭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지난 7월 박태환 선수의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결승 중계가 있던 날이었다. 사무실에서 평소 스포츠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친구가 앞장서서 TV를 켰다. 약간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는 푸념처럼 “(트위터에서)다들 박태환 선수 얘기를 하니 안 볼 수가 있나?”라고 혼잣말을 했다. SNS상의 친구들과 TV프로그램에 대한 실시간 대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전까지 보지 않던 프로그램을 보게 된다.

    올해 초 미국 야후에서 한 조사에 의하면, 스마트폰 등 모바일 인터넷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의 86%가 TV를 시청하면서 동시에 모바일 인터넷 기기를 손에 쥐고 사용한단다. 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SNS로 시시각각 시청하는 프로그램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주말 저녁이면 SNS는 방영되는 인기 프로그램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진다. 그러면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있다. ‘본방사수’.

    이제 신조어사전을 지나 정식 국어사전에도 올라갈 것 같은 이 단어는 언론지상에는 2006년에 처음 등장했다. 그 때는 케이블채널에서의 재방송이나 인터넷으로 보는 것과 대비해, 처음 방영될 때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단순하게 물리적인 시간 차이에 따라 나눈 것이었다. 동시시간의 표면적인 행동에 더해, 본방사수를 하며 사람들은 ‘관심의 대상과 문맥을 공유’하고, ‘의사소통의 달성감’을 느끼며, 참가자 상호간에 ‘강한 일체감’이 생긴다(강영희 저 <생명과학대사전> 부분 인용). 이것을 발달심리학이나 인간행동학에서 ‘동시화행동(同時化行動)’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싱크로나이제이션(Synchronization)’이라고 한다. 요즘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연결해 ‘동기화’한다고 하는 바로 그 단어이다. ‘소셜(Social)’을 의미하는 SNS의 첫 번째 ‘S’는 서로 간에 얘기를 나누고 의견을 주고받는 소셜 행위에서 싱크로나이제이션, 줄여서 ‘싱크로(Synchro)’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단순한 기계들 간의 물리적인 연결이 아닌, 마케팅적으로는 소비자와 제품 간의 일체화한 관계를 형성하는 동기화를 지향해야 한다.

    일체화한 관계는 함께 행동하는 것으로 진화한다. 런던의 리버풀역에서 펼친 플래시몹 댄스로 시작한 통신사 T모바일의 이벤트는 갈수록 참여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며 대형이벤트가 됐다.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동기화하려는 참여자들이 늘고 있다. 관중 동원의 신기록을 달성할 것이 확실시되는 한국 프로야구의 관중석을 보면 동기화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 수 있다. 예전의 관중들이 소리 높여 응원을 하기도 하지만 문자 그대로 ‘관중(觀衆)’ 곧 ‘보는 사람’에 그쳤다면 요즘은 ‘열 번째 선수’로 참여한다. 유니폼까지 입고, 구단 운영에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던가. 팀의 일원으로 동기화한 것이다. 쏠림을 통한 메가히트는 바로 그런 성공적인 동기화로부터 나왔다. 여러분들의 제품은, 마케팅 활동은 얼마나 동기화돼 있는가?

    [박재항 /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jaehang@hotmail.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3호(2011년 10월)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경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