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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촌 공동기획 Business Law & Case] ① 루게릭 친구가 남겨 준 세금
입력 : 2011.09.29 10: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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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 병에 걸린 환자가 등장하는 영화 "내 사랑 내곁에"의 한 장면
‘꼼짝없이’ 죽는 병이라고 했다. 마땅한 치료법도 없고 말 그대로 몸을 움직이는 모든 근육이, 심지어 혀를 움직이는 근육도 굳어버리고 결국에는 심장을 뛰게 하는 근육마저 멈출 때까지 그렇게 죽어가는 병이었다.
다만 그 친구가 남겨 놓을 가족이 걱정됐다. 아직은 한창 나이인 제수씨 혼자 책임져야 할 조카 같은 두 아이가 걱정이었다. 그리고 연명을 위한 치료에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의뢰인은 다른 한 친구와 함께 고민을 하다가 결국 그 친구를 퇴직시키기로 하고, 제수씨의 부탁에 따라 그 친구가 가지고 있던 주식을 모두 인수해 주기로 했다. 의뢰인과 다른 한 친구가 절반씩 인수해 준 그 주식의 양도가액은 모두 합쳐 10억이 넘었다. 이 돈은 환자의 연명을 위한 치료비는 물론 생활비에 필요한, 너무나도 절실한 돈이었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다만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환자를 위해 그 주식을 인수해 준 다음, 3명의 친구만으로 지탱해 온 회사를 앞으로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할 지 걱정이 됐다. 혹시라도 남은 두 사람에게 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제는 정말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몰랐다. 고민 끝에 오히려 이 회사를 상장시켜 규모도 늘리고, 소수의 경영진에게 의존하지 않는 큰 회사로 키우기로 마음 먹었다. 서둘러 상장을 추진했고 큰 무리 없이 회사는 1년 반 만에 코스닥에 상장됐다.’
설명을 들으면서 내심 짐작하고 있었던 문제가 있었는데, 그 문제는 역시 세금이었다.
‘난데없이 환자의 주식을 인수해 주었던 의뢰인과 다른 한 친구에게 증여세를 내라는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어찌된 영문인가 살펴보았더니, 상장이 될 회사의 주식을 특수 관계자로부터 미리 양수했다면 그 주식거래와는 별개로 그 상장으로 얻게 될 이익(시세차익)을 주식 양도인으로부터 미리 증여 받은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루게릭 친구가 남겨준 세금’ 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사연 때문이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는 “주식 또는 출자지분의 상장 등에 따른 이익의 증여”라는 제목의 조문이 있다(제41조의3). 내용이 읽기에 조금 불편하지만 추려서 그대로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종래 기업의 내부정보를 이용하면서 상장 또는 협회등록에 따른 거액의 시세차익을 얻게 할 목적으로 대주주가 자녀 등 특수관계자에게 비상장주식을 증여하거나 매도하는 경우가 있었다. 상장을 하게 되면 통상 그 주가가 상승하게 되는데, 이러한 특수관계자 사이의 사전증여 또는 매매는 그 명목상의 거래와는 별도로 그 ‘상장’에 따르는 시세차익을 증여하는 의미가 다분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그러한 시세차익에 대하여는 달리 과세를 할 근거가 없었다는 문제가 있었다. 대주주가 자녀 등에게 어떠한 이익을 증여를 할 의사가 있고, 그리고 그러한 이익이 명목상의 거래에 수반하여 같이 이전되고 있음이 빤히 보이는데도 세법상으로는 ‘증여세’를 물릴 수 없다는 나름의 반성(?)이 있었던 것이다.
비상장회사의 폐쇄성, 상장 등의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특수관계자 사이의 거래, 그 거래를 통한 부와 경영권의 대물림. 이를 세법적으로 견제하겠다는 취지로, 1999년 12월28일자로 개정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부터 ‘상장이익의 증여의제’라는 위 조문이 도입됐다. 상장 이전의 주식거래에서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증여의 이익을 미리 상정해두고 상장이 이루어지면 그 때에 가서 비로소 그 증여재산가액을 계산하여 증여세를 매기는 형식이다. 그런데 상담한 내용을 위 조문에 대입시켜 보던 중에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 세금을 내야 하는 사람은 루게릭 환자가 아니다. 그 환자로부터 주식을 인수해 준, 두 창업 멤버들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위 규정에서 말하는 부와 경영권의 세습이랑 무슨 관계가 있을까? - 위 조문에 의하면 주식을 판 사람은 “경영에 관하여 공개되지 아니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최대주주”이어야 한다. 그런데 루게릭 판정을 받고 출근은 물론 이미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이 정말 그러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지위의 최대주주라고 할 수 있을까?
- 당장의 치료비와 생활비 마련이 급한 환자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더 큰 이익(상장에 따른 시세차익?)을 볼 수 있는데도 그러한 이익을 포기하고 친구들에게 주식을 팔았다면, 곧 자기에게 귀속될 이익을 친구들에게 증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이른바 ‘포괄주의’라는 이름으로, 점차 과세관청의 ‘寶刀(보도)’가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증여의 개념을 민법상의 증여에 한정시키지 않고, 어떠한 이익의 무상적 이전이 있기만 하면 이를 과세대상인 증여로 포착해 증여세를 매길 수 있게끔 그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수관계자 사이에서 돈을 빌릴 때 기획재정부장관이 정해 고시하는 적정 이자율이라는 것이 있다. 만일 이 보다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린다면 그 적정 이자율과 실제 이자율의 차이만큼 대주에게서 차주에게로 증여된 것으로 의제되어 차주가 증여세를 내야 한다. 특수관계자 사이에서의 거래라는 특수성에 비추어 본다면, 이러한 증여세를 수긍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그런데 특수관계가 없는 단순한 친구 사이에서 돈을 빌릴 때에도 똑같은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면? 물론 이 때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어떠한 경우가 그러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되는 것인지는 그 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친구의 딱한 사정? 마침 내가 여윳돈이 있고 우리의 우정을 이자 따위로 매길 수는 없을 것이라는 순진한 의리? 과연 이러한 사정이 국세청이 보기에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을까?
세법 규정의 해석과 적용은 상식에 맞아야 한다현행 상속서 및 증여세법의 ‘포괄주의’는 관세관청에 의한 세금의 족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루게릭병에 걸려 소외 회사의 이사직을 그만두고,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소외 회사의 주식을 대주주에게 양도하는 소수주주에게 대주주를 위한 증여의사를 상정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고, 이러한 증여의사를 상정할 수 없다면 상정할 수 없는 내용을 가정하여 입법자가 입법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위 사건 1심 법원 판결문의 한 내용이다.
특수관계자의 범위에 대해 참 논란이 많다. 법인세법, 지방세법에서도 종종 문제되고 있는데, 그 범위가 조금씩 다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서는 ‘최대주주’를 규정하면서, 당해 주주(이 사건에서는 ‘환자’인 양도인)와 ‘사용인(이 사건에서는 양수인인 의뢰인 등)’의 주식을 합해 그 보유 주식의 수가 가장 많게 되는 경우 그 당해 주주는 최대주주가 된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서 주식 양수인인 의뢰인이 양도인인 환자의 ‘사용인’이 되는가 하는 점이다. 각자가 평등한 임원이므로 어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고용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주식 양도인이 그 회사를 출자를 통하여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면 같은 임원들이라고 하더라도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런데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출자를 통해 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경우’를 30% 이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을 때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의 환자는 20%의 지분에 불과한 이상 의뢰인을 사용인으로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사안을 뒤집어 만일 의뢰인이 주식을 이 사건 환자에게 양도했다면 이 조문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의뢰인은 이 회사의 지분을 40%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환자를 자신의 사용인으로 두고 있다고 의제되는 까닭이다). 법원은 이 점에 주목해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특수관계자의 범위(또는 최대주주 등의 범위)를 문언에 맞게 정확하게 해석해냈다. 특수관계자의 범위를 이와 같이 문언에 맞게 엄격하게 해석하려는 경향은 최근 법인세법상 특수관계자의 범위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된 바 있다(대법원 2011년 7월21일 선고 2008두150 판결).
[김동수 /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dskim@yulchon.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3호(2011년 10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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