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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eting] 창의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적은 사장님?
입력 : 2011.09.15 16: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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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A의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목표 고객이 되었던 김 대표가 말했다.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는데 말이야”하며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여자로 치면 자신의 코가 성형수술한 거라며 먼저 얘기를 하는 건데, 진짜 이 양반이 내 머리카락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구나.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확 들더라고.”
비교적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주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치인이지만 A의원의 대화 방식은 배워야 할 부분이 많았다. 첫째, 그는 상대방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고개를 숙이는 행동을 취하게 하면서 대화로 이끌었다.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숙이게 된 김 대표는 그 순간부터 왜 자기가 고개를 숙였어야 했는지 그 대답이 궁금해졌을 것이다. 둘째, 초면인 자리에서 누구도 직접적으로 거론할 수 없는 탈모(脫毛) 이슈를 직접적으로 거론함으로써 예의 바른 상대방인 김 대표의 감정선을 심하게 자극했다. 소갈머리 얘기가 나오면서 김 대표는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그 대답을 듣기 전에는 자리를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면으로 보면 A의원은 커뮤니케이션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잡았다. 셋째, A의원은 자신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숨김없이 들어내 보였다. 이를 통해 김 대표는 A의원과 동료의식을 가지며 그가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게 됐다. 넷째, 필요성만을 얘기한 데서 A의원은 과학적인 지식까지 곁들여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상세한 정보를 제공했다.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A의원은 다음과 같이 전형적인 ‘기승전결(起承轉結)’형의 스토리텔링 기법을 보여줬다.
기(起)“머리 좀 숙여 보소”→호기심 유발, 이야기 속으로 끌어 들임
승(承)“소갈머리 없네. 이식하소”→도발적 자극으로 관여도 극대화
전(轉)“나도 뒷머리에서 이식을 했소”→동료로서의 연대감 형성
결(結)“하기도 쉽고 자신감이 생겨요”→구체적 행동 방법과 효과 약속
위와 같은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 기법은 매체의 종류를 떠나 모든 커뮤니케이션에서 근간이 되어야 한다. 개별적으로 15초밖에 안 되는 짧은 TV나 라디오 광고에서도 과연 어떤 기승전결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신문이나 잡지 한쪽의 일부분만을 차지하는 인쇄광고에서라도 같은 질문을 해야 한다. 하루에 수십 개 날리는 단문 SNS 메시지 중 하나라도 어떤 스토리 흐름을 갖고 더 큰 어떤 맥락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신제품 출시를 위해 발표회를 하고 신문에 광고를 한다 치자. 발표회와 신문 광고에 별개의 기승전결의 스토리가 있고, 이 둘을 합한 전체 출시 계획을 관통하는 기승전결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기승전결의 각 단계마다 행동의 목적이나 주제가 명확해야 한다. 위 A의원의 예를 보면 ‘호기심’, ‘자극’, ‘연대감’, ‘방법 제시와 확신 주기’의 순으로 진행이 됐다. 처음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서 알게 되는 ‘인지(認知)’에서 ‘구매’와 ‘평가’까지 이르는 과정을 따라 커뮤니케이션이 마케팅 단계별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공헌해야 하는지 명확해야 한다.
꿈을 키워주는 소통
끝없이 꿈을 꾸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 스스로 실천에 옮겼던 '어린 왕자', '전시조종사' 등의 유명 작품을 집필한 프랑스 작가 앙투완 드 생텍쥐페리의 말이다.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누어 주는 것’은 낮은 단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제한된 범위에서의 일방적인 ‘통(通)’이다. 아무리 작은 일을 하는 것 같은 사람에게라도 자신이 하는 일이 큰 계획에서 어떤 역할을 해 큰 계획을 완성하는 데 어떻게 공헌하는지 알려줘야 한다. 실제로 그렇게 모든 구성원이 큰 그림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고 있을 때 ‘작은 일’이란 없다. 모두가 성심껏 역할을 하며 하나하나가 큰 일이 되고, 그런 큰 일이 전체 그림을 더욱 크게 이룰 수 있게 한다.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나폴레옹의 군대가 도버해협을 건너 침입해오는지 감시해 연락을 취하는, 우리로 치면 봉수(烽燧)대원 같은 사람들을 특별히 뽑았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도 이들 봉수대원이 등장한다. 이후 나폴레옹이 유배되고 프랑스는 내부의 혼란과 쇠약해진 군사력으로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영국 동부해안의 봉수대원들은 묵묵히 원래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에도 수십 년을 봉수대원으로 지내고 은퇴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거야 국경초소대원 정도로 생각해 밀입국자도 그 시절에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하자. 증기기차 시절에는 석탄을 퍼서 집어넣는 화부(火夫)가 있었다. 디젤기차로 바뀌고 나서도 이들 화부는 기차에 타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이와 비슷한 유형의 일들은 현재 커뮤니케이션을 둘러싸고도 흔히 볼 수 있다. 전문화와 첨단화라는 미명 하에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계속 출현하고 있다. 그에 맞춰 기업들은 새로운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전담하는 조직을 창설한다. 광고회사의 경우도 별도의 대응조직을 만들곤 한다. 예를 들면 ‘SNS마케팅팀’과 같은 조직이다. 환경변화에 따른 기민한 대응을 하는 것은 좋은데, 그들이 기존의 커뮤니케이션이나 마케팅과는 별동대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문제다. 부정적으로 보면 극단적인 두 가지 방향으로 사태가 벌어진다.
첫째는 다른 마케팅 활동과는 무관하게 그들의 한정된 영역에 관한 명령만 주어진다. 즉 어떤 맥락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2000명의 트위터 팔로워를 한 달 내에 만들 것’과 같은 지시만 떨어지는 경우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주위의 다른 상황이 변해도 우직하게 밀고 나가 결과적으로 비효율성은 물론이고 경직된 조직문화를 만들게 된다. 한편으로는 철저히 똑같은 목표를 다수의 부서에 주는 경우가 있다. SNS마케팅팀에도, 전통매체를 주로 다루는 광고팀에도 ‘한 달 내에 10만대를 팔 수 있는 실행계획’을 짜가지고 오도록 하는 식이다. 두 부서 간의 조율은 상층부에서 이루어진다. 그것도 아주 기계적으로 ‘두 부문 모두 예산을 50%씩 삭감해 실행’하는 식의 결론이 나기 십상이다. 무엇보다 생각하지 않고 명령에만 따르게 만드는 수동적인 인간을 만들어 버린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적을 내부에 키우는 셈이다.
생각하게 하라
비슷한 경우를 한국의 어느 기업에서도 볼 수 있다. 철저한 조사로 유명했던 그 기업은 광고의 사전조사를 엄격하게 적용하면서부터 효과적인 광고물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실무자들의 광고물을 만드는 목적이 사전조사를 통과한다는 내부 행정적인 것에 우선순위가 주어진 결과였다. 제도나 장치로 얽어매기보다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고 행동으로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경영자가 해야 할 일이다. 이 점은커뮤니케이션의 도구나 시대 트렌드의 변화를 넘어서 언제나 통할 수 있고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다. 이를 위해 큰 그림을 보여주고 창대한 꿈을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기승전결의 스토리는 자유로운 생각과 큰 꿈 위에서 자연스럽게 풀어져 나올 것이다.
[박재항 /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jaehang@hotmail.com]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10호(2011년 07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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