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재 현장에서] 한·미 광물동맹의 미래
입력 : 2025.12.18 09:05:02
-
핵심광물(Critical Minerals)은 더 이상 단순한 원자재가 아니다. 전기차, AI 데이터센터, 방위산업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특정 광물의 공급망 단절은 곧 국가 안보의 위기를 의미한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과 에너지부(DOE)가 알루미늄, 코발트, 니켈 등을 전략 자산으로 분류하고 공급망 내재화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이러한 지정학적 흐름 속에서 고려아연이 추진 중인 미국 테네시 통합제련소 프로젝트는 단순한 해외 공장 증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광산 하나를 더 갖는 것이 아니다. 중국이 장악한 ‘제련(Smelting)과 정련(Refining)’의 병목 구간을 동맹국간 기술 협력으로 해소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담겨있다.
‘채굴’이 아닌 ‘기술’의 문제광석(정광)을 채굴하는 것으로는 공급망이 완성되지 않는다. 갈륨, 게르마늄, 안티모니 같은 희소금속은 축적된 분리 · 정제 기술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고려아연은 세계 최고 수준의 건식 · 습식 융합 제련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이번 미국 프로젝트의 핵심은 한국 기업이 자본 투입을 최소화하면서도, ‘기술 레버리지’를 활용해 북미 시장의 진입권을 확보한다는 데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논의를 살펴보면 해당 프로젝트는 총 사업비의 상당 부분을 미국 측 자본(정부 지원 및 재무적 투자자)으로 조달한다. 고려아연은 기술과 운영 노하우를 제공하는 대신 소수 지분을 취득하는 구조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막대한 설비투자(CAPEX)에 따른 재무적 리스크 줄이면서도,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의 정책 수혜를 직접적으로 누릴 수 있는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
재무적 리스크 vs 전략적 기회물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MBK파트너스와 영풍 측은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채무보증 규모와 장기간의 우발채무 리스크를 지적한다. 지분율 대비 과도한 보증은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은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 경영진은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외형 확장이 아니라, 확실한 수익성(IRR)과 오프테이크(Off-take, 장기 구매 계약)가 담보된 사업임을 주주들에게 구체적인 수치로 증명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이를 단순히 ‘경영권 방어를 위한 무리수’라는 프레임으로만 본다면 희소금속과 관련된 산업의 큰 그림을 놓치는 일이 될 수 있다. 이미 MP머티리얼즈나 리튬아메리카스 같은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정책 자금을 통해 기업가치(Valuation)를 재평가 받았던 사례가 있다. 지금은 ‘정책 파트너십’ 자체가 강력한 무형 자산이 되는 시기다.
분쟁 넘어 산업 경쟁력 봐야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전경. 세계는 지금 제련 능력을 ‘전략 자산’으로 격상시키고 있다. 고려아연이 온산제련소에서 축적한 복합 광물 처리 능력을 미국 본토에 이식한다면, 이는 한국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키 플레이어(Key Player)’로 도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독점적 판권으로 시장 확대, 기술 로열티 수입 극대화, 경쟁사 진입 장벽 구축 등 미국 테네시 제련소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그 파급 효과는 무궁무진하다고 할 것이다.
경영권 분쟁의 그림자 속에서도 산업 경쟁력이라는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논쟁의 초점을 “누가 경영권을 갖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한국의 제련 기술을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고 국익을 극대화할 것인가”에 맞춰져야 할 때다. 사모펀드 MBK와 영풍, 그리고 현 경영진은 분쟁을 멈추고, 대한민국 기간산업의 미래 청사진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기를 바란다.
[김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