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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이온 뒤이을 차세대 K배터리 현주소, 전고체 개발 나섰지만 양산에 최소 5년
입력 : 2022.12.12 17: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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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오피니언 리더들이 꼽은 가장 시급한 국정과제는 무엇일까. 국내 사회과학자들로 구성된 4대 학회(한국경제학회, 한국경영학회, 한국정치학회, 한국사회학회)가 지난 11월 15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공동 추계학술대회에서 ‘반도체·배터리 등 미래 산업 초격차 확보’를 정부가 가장 시급하게 추진해야 하는 국정과제이자 국가안보상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발표했다. 최근 윤석열 정부 출범 6개월을 맞아 학자 636명과 기업인 100명, 국회의원 34명 등 국내 오피니언 리더 7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다.
설문 대상 중 95% 이상의 학자와 기업인이 모두 ‘반도체’와 ‘배터리’를 미래 초격차 산업으로 인식하고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지목했다. 최근 정부가 민관 협의 플랫폼인 ‘배터리 얼라이언스(동맹)’를 발족시킨 것도 이러한 인식에 궤를 같이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1월 1일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삼성SDI·SK온·LG에너지솔루션 등 배터리 기업과 회의를 갖고 ‘이차전지 산업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배터리 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민·관의 역량을 결집해 공동의 전략을 수립하고 협력 체계를 구축한 것”이라며 “주요국을 중심으로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에 업계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지만 이러한 위기는 오히려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번 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 40%, 50조원 이상의 국내 투자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민관 합동 배터리 얼라이언스는 배터리의 원료인 핵심 광물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동맹이다. 예를 들어 해외 자원개발에 전문성을 가진 한국광해광업공단이 리튬·니켈·코발트 등의 광물을 확보할 수 있는 해외 프로젝트를 선별해 민간에 제안하면 업계가 광산 개발·공급 구매계약 등으로 진출하는 방식이다. 확보한 광물을 정제 처리해야 하는 경우 배터리 얼라이언스에 속한 제련 기업이 나서고, 이 과정에 필요한 재정은 무역보험공사나 수출입은행이 지원한다.
정부는 이 같은 민관 합동 대응으로 중국에 쏠린 광물 투자를 호주, 캐나다, 칠레 등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국가로 돌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대응에 초점을 맞춘 전략으로 보인다”며 “현재 국내 배터리 3사의 북미 진출도 가속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전고체 배터리 선점해야 미래 시장 주도이른바 차세대 배터리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은 어느 정도 속도를 내고 있을까. 최근 발생한 카카오 먹통 사태의 원인으로 데이터센터 무정전 전원장치(UPS·데이터센터 전력 차단 시 비상 전원을 공급하는 장치)의 리튬이온 배터리 발화가 지목되며 배터리 안전성 문제가 도마에 오른 상황. 데이터센터 UPS를 비롯해 전기차, 휴대폰 등에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분리막, 전해질로 구성된다. 배터리 내부 분리막이 손상됐을 때 액체 상태의 전해질과 음극·양극이 섞이면 열폭주가 발생한다. 이 상태에서 내부에 산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불이 꺼지지 않아 배터리가 전소한다. 화재 원인을 밝히는 게 쉽지 않은 이유다.
안전성 문제가 불거진 리튬이온의 대안으로 개발되고 있는 배터리가 바로 전고체 배터리다. 고체 상태의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외부 충격에도 누액이 발생하지 않아 안전하며, 분리막 역할까지 대신한다. 리튬이온 배터리와 비교하면 전해질이 분리막 역할도 하기 때문에 부품수가 적고 그 자리를 활물질로 채워 배터리 용량도 늘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가장 앞선 국가는 일본”이라며 “현재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데, 국내 기업의 추격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과 비교해 안전하고 효율성이 높기 때문에 전고체 기술을 상용화하는 기업이 향후 배터리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질 성분에 따라 산화물계, 고분자계, 황화물계로 나뉜다. 산화물계는 효율이 낮고, 고분자계는 개발은 쉽지만 배터리 성능이나 안전성이 다소 낮다. 황화물계는 전도성과 안전성이 높지만 개발이 가장 어렵다고 알려졌다. 국내 배터리 3사도 적극적으로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나서고 있다. 최근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그린비즈니스위크 2022’에서 공개된 각 사의 로드맵을 살펴보면 전고체 배터리 양산 시계는 최소 5년 이후로 맞춰져 있다.
고분자계와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약 1800억원을 투자한 LG에너지솔루션은 고분자계는 2026년, 황화물계는 2030년 상용화가 목표다.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인 SK온은 지난해 미국 솔리드파워에 3000만달러(약 413억원)를 투자하고 공동 개발에 나섰다. 오는 2030년 양산이 목표다. 2500억원을 투자한 삼성SDI도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양산 시점을 2027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 3월부터 경기도 수원 연구소에 전고체 배터리 생산 파일럿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 그런가 하면 국내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차그룹도 남양연구소 산하에 배터리 연구개발 조직을 두고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SDI 천안사업장과 현대차그룹 남양연구소에서 각각 만나 자율차 등 미래 신사업과 함께 전고체 배터리 기술 확보를 위한 협력을 논의하기도 했다.
최근 국내 배터리 업계에선 바나듐 이온 배터리(VIB· Vanadium Ion Battery)에 대한 주목도도 높아지고 있다. 바나듐이란 광물을 전해질로 사용하는 배터리다. 에너지 밀도가 리튬이온 배터리와 비교해 3분의 1 수준이고 부피가 커 주로 에너지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 분야에 사용될 예정이다. 전해액과 배터리 소재에 물을 사용하는 VIB는 화재와 폭발 위험이 낮다. 내구성이 좋아 8000번 이상 충전과 방전을 반복해도 배터리 용량이 초기 대비 99% 유지된다.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전기 저장 등 다양한 영역에 사용될 전망이다. VIB의 가능성은 롯데케미칼이 실현할 계획이다.
포드와 SK온의 합작사인 ‘블루오벌SK’가 2025년 테네시주에 준공하는 배터리 공장 조감도. 바나듐 이온 배터리도 주목롯데케미칼은 올 1월 VIB를 개발한 스탠다드에너지에 650억원을 투자하고 2대 주주가 됐다. 스탠다드에너지는 안정성을 입증하기 위해 지난 6월 서울 강남구 롯데하이마트 압구정점에 VIB ESS를 활용한 전기차(EV) 급속 충전 서비스 ‘차저5’를 공개하기도 했다. 충전 출력은 최대 200㎾, 기존 급속 충전시설(50㎾급)보다 4배나 높았다.
지난 11월 21일에는 전남 여수시와 여수국가산단에 2056억원 규모의 제조 공장을 짓기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롯데케미칼은 여수1공장에 페인트 원료로 사용되는 헤셀로스 제조 공장과 바나듐 배터리 전해액 생산 공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7호 (2022년 12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