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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 업계, 해외 진출·역직구 플랫폼으로 부활 몸부림
입력 : 2022.09.07 14: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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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면세 업계가 엔데믹 영향에 힘입어 장밋빛 분위기를 맞았으나, 상황이 녹록지 않다. 정부는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면세 업계 지원을 위해 8년 만에 여행자 면세 한도를 800달러(약 105만원)로 올렸다. 해외 거주자에게 국산 면세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역직구’도 허용하는 등 면세 업계 전방위 지원에 나섰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일본과 중국 등 주요 항공 노선도 확대되는 등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고환율의 직격탄을 맞으며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달러당 원화가 1300원을 넘어서며 고공 행진하는 원·달러 환율이 매출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최근 태국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온 김유진 씨는 태국으로 나가기 전 선글라스 구매를 하려고 고민하던 차에 깜짝 놀랐다. 면세점 코너에서 380달러(약 49만7800원)였던 페라가모 선글라스가 백화점에서는 45만2000원에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해외여행을 할 때면 당연히 면세점이 싸다고 생각하고 물건을 살펴봤는데, 백화점에서 최대 25%까지 할인하면서 5만원 가까이 저렴했다”며 놀라워했다.
롯데면세점 시드니시내점.
해외로의 여름휴가를 계획하며 면세품 구매를 고민했던 여행객들은 고환율에 따른 가격 상승의 불편함을 고스란히 느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여성 고객들이 자주 찾는 ‘톰포드 뷰티’ 립스틱 상품은 A면세점에서는 51달러(6만6810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해당 제품은 같은 A회사 온라인몰에서 6만468원에 판매하고 있다. 온라인몰이 면세점보다 6340원가량 더 싼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명품 라인의 경우 예전만큼 큰 할인을 제공하지 못하는 가운데 환율 영향을 곧장 받으니 가격이 온라인몰이나 오프라인 매장보다 더 비싸진 것도 일부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도 “향수 등의 상품은 면세점과 백화점 가격이 거의 차이가 없는 것도 많다”며 “공항에서 면세품을 받는 번거로움을 생각해보면 미리 백화점에서 사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분위기에서 면세점들은 가격 방어와 함께 국내 고객의 마음을 잡기 위해 다양한 자구책을 내놨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8월 말까지 ‘환율 보상 이벤트’를 진행했다. 매장 기준 환율이 1250원을 넘어서면 최대 40만원까지 LDF페이(선불카드 개념)를 지급하는 식이다.
이처럼 면세 업계의 내국인 고객 유치는 당분간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때 한국 면세점의 큰손으로 불리던 중국 따이공(보따리상)의 알선 수수료가 크게 올라, 팔수록 손해 보는 역마진마저 벌어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전 알선 수수료는 매출 기준 20% 초반 수준이었으나, 최근에는 특정 상품을 중심으로 40% 초반까지도 급등했다. 업계 관계자는 “따이공의 거래금액이 크고, 실제로 면세 업계가 코로나19 몇 년간 이들에게 의지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매출의 30~40% 수수료를 지급하는 게 보통이 됐다”고 설명했다.
▶여행자 휴대품 면세 한도 800달러로 확대 정부는 올해 추석 전까지 여행객 휴대품 면세 한도를 800달러까지 늘린다. 지난 7월 여행자 휴대품에 적용되는 면세 기본 한도를 600달러에서 800달러로 높이기로 한 조치가 시행되는 것이다. 기본 면세 한도가 800달러로 인상되는 건 지난 2014년 이후 8년 만이다. 지난해 1인당 소득수준이 2014년보다 약 30% 늘어난 점을 감안했다고 기획재정부는 밝힌 바 있다. 이에 이번 추석 연휴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여행객들은 상향된 면세 기준을 적용받게 된다.
정부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면세품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면서 면세점4사는 중국 시장을 노리는 ‘역직구몰’을 오픈했다.
업계 관계자는 “술 한도를 높여주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2병으로 늘어난 것은 의미가 있다”며 “여행자들은 2병 400달러의 기준을 맞추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환율에도 수입주류는 주세와 교육세 등 세율이 특히 높아, 면세점이 가격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지닌다. 발렌타인 30년산은 백화점에서 127만원, 주류전문점에서 95만원이다. 하지만 면세점에서는 36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다. 무려 70%나 더 저렴한 것이다.
실제로 롯데면세점은 최근 3개월 기준(5~7월) 롯데면세점의 내국인 위스키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0% 신장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담배(250%), 화장품·향수(220%), 주얼리·시계(210%) 내국인 매출 신장률을 훨씬 웃도는 수치였다. 롯데면세점 내국인 주류 매출에서 위스키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85%로 와인·샴페인(6.3%), 코냑(3.8%), 민속주(1.9%) 등 다른 주종을 크게 앞섰다.
▶중국 1억6000만 명 역직구족 잡아라 7월부터 국내 면세점의 온라인 해외 판매, 이른바 ‘역직구’가 허용됨에 따라 각 업체가 역직구 온라인 플랫폼을 마련하고 해외 배송 인프라스트럭처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롯데·신라·신세계·현대백화점 등 주요 면세사업자들은 이번 조치로 1억6000만 명에 달하는 중국 역직구족 등 전 세계 직구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전쟁을 펼치고 있다.
올해 3월 관세청은 면세점의 국산품 온라인 해외 판매를 제도화했다. 관세청은 ‘시내보세판매장 국산품 온라인 해외 판매 운영 지침’을 마련하고 지난 7월부터 면세점이 해외 거주 외국인에게 온라인으로 국산 화장품이나 의류, 건강기능식품, 전자제품 등을 팔 수 있도록 했다. 판매 한도는 없으며, 별도 통보 시까지 관련 온라인몰을 운영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인 관광객의 관광 수요 등이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를 방문하지 않은 해외 거주자에게도 국산품 판매를 허용해 달라는 면세업계의 요청에 따른 조치였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엔데믹이 본격화됐지만, 중국의 봉쇄 조치 등으로 예전만큼 수요가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 따른 고육지책”이라며 “유명 면세점의 인지도로 국산품 판로를 넓히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에서 승객이 면세점을 이용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차이냐오는 한국 내 물류 작업부터 중국 내륙까지 신라면세점 상품 배송을 모두 담당할 방침이다. 신라인터넷면세점 중국몰에서 상품을 구매한 중국 현지 고객은 집에서 한국 상품을 편리하게 받아볼 수 있게 된다. 신라면세점은 지난 7월부터 인터넷면세점 내 중국몰에서 중국 고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한국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 패션 등 브랜드 상품의 판매에 나선다. ‘설화수’ ‘라네즈’ ‘헤라’ ‘메디힐’ 등의 한국 화장품 브랜드를 비롯해, ‘정관장’ ‘에버 콜라겐’ 등의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메트로시티’ ‘뽀로로’ 등 국산 패션·잡화 브랜드까지 총 53여 개 브랜드의 인기상품 300여 종을 판매하고 있다.
신라면세점 관계자는 “중국 내 해외 직구 소비자는 2020년 기준 1억5800만 명에 이른다. 매년 시장 규모는 중국인 인구, 소비자의 구매력 증가, 수입 상품에 대한 수요 증가 요인에 따라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롯데면세점도 중국과 일본 미국 싱가포르 태국 등 9개국을 대상으로 역직구 플랫폼을 열었다. 취급품목은 화장품, 패션, 건강기능식품 등 220여 개에서 올해 안에 40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신세계면세점도 면세품 역직구 전문몰을 열었다. 중국어 온라인몰과 자사 앱에 ‘역직구관’을 열어 중화권 고객에게 인기 있는 화장품과 패션, 건강기능식품 등 한국 브랜드 제품 3000여 개를 선보인다. 현대백화점면세점도 최근 브랜드 선정을 마치고 하반기 내 역직구몰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신규 면세점 개점은 호주가 중국인 관광객 수요가 높은 서구권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전략적 판단이 있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 시트립에서 코로나19 이전에 발행한 ‘2019 새해 여행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 성수기에 중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장거리 여행지로 호주가 꼽혔다. 중국인 방문객도 연평균 10%대 높은 신장률을 보였다.
게다가 호주에 거주 중인 중국인도 12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를 차지한다. 시드니 지역에는 50만 명의 중국인이 거주 중인데 이는 시드니 인구 비율의 9%에 육박한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호주는 코로나19 발발 이후 지난 2년여간 강력한 입국 제한 조치를 내렸으나, 올해 2월 국경을 전면 재개방하며 본격적으로 국제선 운항을 확대 중”이라며 “중국인 관광객의 호주 관광 비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데다, 실제 거주 중인 중국인의 구매력도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홍성용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4호 (2022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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