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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이 연 중고거래 시장 신세계·롯데가 뛰어드는 이유는
입력 : 2022.03.15 14: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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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확대되고 경기 침체 우려가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중고거래 시장의 사이즈는 점점 커지는 모습이다. 불경기에 중고로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한 거래뿐 아니라, 쇼핑업계 전반에서 유일하게 돈 되는 장사인 명품 소비와 리셀까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거래 업계 1위로 완벽하게 안착한 당근마켓을 포함해 번개장터, 중고나라 등이 시장의 파이를 키우고 있다. 특히 롯데와 신세계, 네이버, 롯데하이마트 등 대기업들은 중고거래 플랫폼에 투자하거나 직접 플랫폼을 만들며 전방위로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08년 4조원이던 국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2020년 20조원으로 5배 성장했다. 글로벌 중고거래 시장 규모도 2021년 270억달러(약 32조원)에서 2025년 770억달러(약 91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2021년 지역생활 커뮤니티 당근마켓을 통한 이웃 간 중고거래 연결 건수는 2020년보다 약 30% 증가한 1억5000여 건으로 집계됐다. 당근마켓에 따르면 1년간 이웃 간 중고거래로 자원 재사용을 통한 자원 순환 효과는 5240만 그루 소나무를 심은 것과 같은 온실가스 732만t 저감 효과와 맞먹는다. 당근마켓 누적 가입자 수는 2100만 명을 넘어섰고, 월간 순 활성 이용자 수도 1000만 명에 달한다.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의 국내 최대 한정판 스니커즈 컬렉션 공간인 ‘브그즈트 랩’.
‘당신 근처의 마켓’이라는 슬로건을 지닌 당근마켓은 전국에 있는 권역을 나누고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로컬 중고거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GPS상 반경 6㎞ 이내이고, 서울은 반경 4㎞ 이내의 동네 주민이 판매자와 구매자가 돼 채팅하고 대면 거래하는 구조다. 비대면 중고거래가 그동안 거리와 상관없이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 합의되면 이뤄진 것과는 정반대 행보다.
이처럼 당근마켓은 중고거래 플랫폼의 ‘사기 문제’를 동네 기반 대면 거래 방식으로 해결했다. 주로 택배를 통한 비대면 중고거래에서는 사기 문제가 빈번하고, 판매자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근마켓은 우리 동네에 있는 사람과 직거래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신뢰를 획득했다.
당근마켓은 이용자 관심사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통해 개인에게 맞춤화된 콘텐츠를 추천한다. 이용자 관심도가 높았던 아이템 순으로 콘텐츠가 노출된다. 예를 들어 ‘운동화’를 자주 검색하는 사람은 게시물 피드에 새로 업로드되는 운동화 게시물이 빠르게 보이는 식이다. 취향이나 관심사가 비슷한 이용자 게시글을 ‘모아보기’ 할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양질의 품목을 반복적으로 내놓는 이용자 게시글이 가장 먼저 뜨도록 모아볼 수 있다.
현재 당근마켓은 영국과 캐나다, 미국, 일본 등 4개국 72개 지역에서 글로벌 버전 ‘캐롯(Karrot)’을 서비스하고 있다. 당근마켓 관계자는 “해외 시장에서도 로컬 기반 비즈니스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며 “당근마켓의 성장성을 해외에서도 펼쳐나갈 전망”이라고 강조했다.
번개장터는 브랜드 중심의 취향 중고거래 서비스라는 표어를 내걸고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누적 가입자 수 1700만 명과 연간 거래액 1조7000억원을 달성했다. 쉽고 안전한 개인 간 거래 환경 조성을 위해 결제·배송 서비스도 계속 개선하고 있다. 2021년 12월 자체 안전결제 서비스 번개페이 월간 거래액은 2020년 6월 100억원 대비 세 배 이상 성장한 330억원을 달성했다.
카테고리 확장을 위해 기업 인수전에도 계속 뛰어드는 중이다. 번개장터는 스니커즈 커뮤니티 ‘풋셀’, 중고 골프용품 플랫폼 ‘에스브릿지’, 착한텔레콤 중고폰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중고 의류 셀렉트 숍 ‘마켓인유’에 투자하기도 했다.
특히 번개장터는 지난해부터 오프라인 편집숍을 국내 대형 오프라인 공간에 차례로 입점시키는 행보도 보인다. 리셀 상품 중에서도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한정판 스니커즈만을 다루는 매장으로 특화했다. 1호점인 ‘브그즈트 랩(BGZT LAB)’은 여의도 ‘더현대 서울’ 지하 2층에 위치해 있다. 코엑스몰과 역삼 센터필드까지 3호점을 차례로 내놨다. 3호점의 경우에는 프리미엄 명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재후 번개장터 대표는 “번개장터는 브랜드 중심으로 앱을 개편하고 번개페이, 포장택배, 오프라인 콘셉트 스토어를 오픈하는 등 고객들이 좋아하고 편안하게 거래할 수 있는 중고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며 “사용자가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고, ‘쉽고 빠르고 안전하게’ 중고거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더욱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한정판 리셀 플랫폼 ‘크림’.
라이트브라더스는 엑스레이 검수 시스템을 도입, 눈에 보이지 않는 수리 이력을 찾아내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해당 기술력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자전거를 검수하고 인증하는 방식으로 중고거래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고나라는 이번 투자가 중고나라 서비스 전략에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고나라의 강점인 방대한 거래 데이터와 라이트브라더스의 전문 역량을 결합해 경쟁력 있는 중고거래 시스템으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 중이다. 중고나라는 투자자인 롯데그룹과 협업을 통해 전국 1만5000개 점포를 보유한 롯데 유통계열사와 연계, 판매·보증·수리 등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롯데는 중고나라, 신세계는 번개장터 투자 먼저 롯데쇼핑은 지난해 3월 국내서 가장 오래된 중고거래 플랫폼인 ‘중고나라’ 지분 93.9%를 인수하는 재무 투자에 참여한 이후 두 회사 간 시너지를 낼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중고나라와 롯데가 가지고 있는 오프라인 매장 등 인프라를 중고 물품 관련 활동에 활용하는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최근 중고 시장의 성장세를 고려하는 한편 친환경 등 ESG 경영 강화의 차원에서 중고나라와의 협업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 중”이라며 “특히 롯데 유통사가 갖추고 있는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중고나라와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롯데는 롯데아울렛 광교점의 ‘프라이스홀릭’, 롯데프리미엄아울렛 광명점의 ‘리씽크’ 등으로 중고거래 사업에 발을 들인 바 있다.
파라바라 앱에 판매하고자 하는 물품을 올린 뒤 다른 이용자로부터 하트를 3개 이상 받으면 가까운 파라박스에 물건을 넣고 판매할 수 있다. 구매 희망자는 물건이 비치된 매장을 찾아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마음에 들면 신용카드나 체크카드 등으로 결제하고 가져가면 되는 방식이다.
한편 대기업들은 자회사를 통해 플랫폼을 직접 만들고 중고거래 시장에 진출하기도 한다. 네이버의 한정판 리셀 플랫폼 크림은 지난해 3월 네이버 자회사인 스노우에서 독립했다. 스니커즈를 시작으로 스트리트 웨어, 명품, 스마트폰 등 한정판 상품을 중심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KT의 자회사 KT알파가 운영하는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 ‘리플’도 있다. 리플은 지난해 10월부터 KT 멤버십 포인트를 통한 할인 서비스도 도입했다.
롯데하이마트도 지난해 자사 온라인 쇼핑몰에 중고거래 플랫폼 ‘하트마켓’을 열고, 전국 430여 개 롯데하이마트 매장 공간을 이용해 거래 물건을 주고받을 수 있는 ‘하트 테이블’ 서비스도 내놨다.
▶네이버 ‘크림’ 가입자 80%가 2030 “크림은 다른 한정판 플랫폼과 달리 100% 검수에서 차별화를 뒀습니다. 유명한 검수 전문가 등을 섭외해 ‘검수 커머스’로 자리를 틀었고, 이제는 소비자들은 크림이 검증했다면 최상급인 것을 믿고 살 수 있는 정도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김민국 크림(KREAM) 비즈니스 리더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개인 간 리셀 거래의 핵심은 어떻게 사기를 방지하느냐이고, 플랫폼별로 주안점이 다르다”며 “크림은 스니커즈에서는 흉내 낼 수 없는 검수 능력을 갖췄고, 앞으로는 1차 검수는 인공지능(AI)이 해낼 수 있도록 관련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당근마켓 본사.
특히 전체 가입자의 80%가 2030세대일 정도로 젊은 층에게 사랑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1000억원 규모 시리즈B 투자 유치 등 누적 투자금액이 1400억원에 달하는 것도 시장에서 크림의 성장과 리셀 시장의 확대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소셜네트워크(SNS)라는 일상화된 노출 창구는 리셀 플랫폼이 뜰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다고 했다. 김 리더는 “나만 갖고 있는 한정판 상품을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는데, 인스타그램 등 SNS가 그 욕구를 실현할 창구가 됐다”며 “내가 이 정도로 패션을 알고 있다는 식의 나의 확고한 관심과 취향을 보이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급자적 관점에서도 한정판을 생산하는 브랜드가 늘어난 게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김 리더는 “예전에는 브랜드가 유통의 영역에 있었다면, 이제는 콘텐츠의 영역에 있다. 오프라인 매장 하나 없이도 물건이 알아서 알려지고 소비되는 시대”라며 “요새 핫한 슈프림 등 브랜드는 공식 SNS에 ‘O월 O일 O시 신제품 공개’라고 쓰는 것으로 홍보가 끝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브랜드들은 저마다 컬래버 상품 등 한정판 공급을 늘리며 하나의 콘텐츠로서 요즘 세대의 구미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리셀 시장은 어떻게든 해당 상품을 갖고야 말겠다고 마음먹으면 구매하는 Z세대의 성향과도 맞다고 했다. 김 리더는 “코로나19 이전에는 나이키 브랜드 매장 앞에서 하루라도 먼저 줄서고 고생하면 물건을 가질 수 있었지만, 이제는 못 한다”며 “상품을 추첨 방식으로 구매해야 하니까 너무 갖고 싶은데 당첨되지 못하면 살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습관성 응모’가 하나의 트렌드로 뜨는 것은 당연해졌다는 얘기다. 김 리더는 “크림 안에는 다양한 브랜드의 한정판 상품 응모의 기회가 정리돼 있다. 리셀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면 원래 해당 브랜드의 팬덤에서는 내가 당첨될 확률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불만도 토로한다”며 “어느 시장에나 특정 팬덤의 찐팬들은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갑자기 커질 때의 저항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크림 내 상품의 80%는 스니커즈다. 단기적으로는 70%까지 해당 비율을 낮추고, 의류와 하이엔드 명품, 음반, 미술포스터 등 다른 한정판 상품으로 카테고리를 다양화하는 게 목표다. 김 리더는 “‘구하기 어려운 한정판은 크림에 모두 다 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강조했다.
[홍성용 매일경제 유통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8호 (2022년 3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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