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커버그, 페이스북은 메타버스 기업이 될 거라는데…

    입력 : 2021.08.30 17:50:28

  • 지난 7월 29일,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가 실적발표에서 중요한 발언을 하나 했다. 원문을 그대로 옮겨오면 이렇다.

    “앞으로 수년간, 저는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소셜미디어 회사라기보다는 메타버스 기업으로 보게 될 거라고 기대합니다.”(In the coming years, I expect people will transition from seeing us primarily as a social media company to seeing us as a metaverse company.)

    그는 메타버스를 이렇게 정의했다. “(메타버스는) 가상의 환경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디지털 공간에서 함께 있을 수 있는 환경이죠. 이렇게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오늘날의 인터넷을 그냥 눈으로 바라봐야만 합니다만, 메타버스 시대가 되면 보다 구체화된 인터넷 공간 속에 놓여 있을 수 있어요. 저희는 이 메타버스가 모바일 인터넷 시대를 이을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한때 ‘인공지능’ ‘디지털 암호화폐’ ‘자율주행차’ 등과 같은 용어만큼 유행처럼 뜨거운 화두이다. 대표적인 메타버스 기업인 로블럭스가 올해 3월 상장하면서 주가가 오르는 대형 이벤트가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메타버스 공간에 머무르는 시간이 2020년에 전년 대비 27%나 증가했다는 미국 시장조사기관 NPD의 보고서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상현실 영역에 대한 투자를 일찍(2014년)부터 시작해 왔던 페이스북의 경우 관련 분야의 매출이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메타버스
    메타버스
    매년 미국에서 열리는 컴퓨터 그래픽 관련 최고의 이벤트인 시그래프(Siggraph)의 2021년 행사가 지난 8월 중순 열렸는데, 여기서도 최대의 화두는 메타버스였다. 이 행사를 2008년부터 참석해 왔다는 미국 메타버스 기업 씨지움(Cesium)의 패트릭 코치 CEO는 매일경제에 “2021년 시그래프의 최대 화두는 단연 메타버스였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네이버의 제페토 등과 같은 서비스들이 등장했고, 정부에서도 관련 산업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메타버스’는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런데, 그게 대체 나랑은 무슨 관계일까?

    ▶인터넷, 모바일은 더 이상 혁신 원동력 아냐 먼저 왜 메타버스라는 말이 급격히 미국 실리콘밸리와 한국 IT 산업계에서 이처럼 화두가 되고 있는지부터 취재해 봤다. 실리콘밸리에서 10년 이상 컴퓨터 그래픽 업계에서 종사해 온 A씨는 이렇게 말한다.

    “인터넷과 모바일은 이제 더 이상 혁신의 원동력이 되기 어렵습니다. 나올 만한 서비스는 다 나왔거든요. 플랫폼 자체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야만 새로운 서비스들이 그 위에서 나올 수 있는데, 블록체인이나 자율주행차 등이 그런 플랫폼으로 주목받아 왔지만 아직까지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가치를 주는 서비스가 나오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메타버스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그 위에서 과거와 몇 배는 훨씬 나은 다른 경험들을 제공해 줄 수 있지요. 그래서 주목을 받는 것 같아요.”

    사실 가상현실, 증강현실이라는 이름의 기술은 이미 예전에도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그런데 메타버스는 가상현실 증강현실을 활용해 인터넷과 모바일을 대체할 수 있는 ‘넥스트 인터넷’ 플랫폼의 개념이라 과거와는 다르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사진설명
    페이스북은 2014년 가상현실 디바이스 회사인 오큘러스를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인 23억달러(약 2조6000억원)에 인수하면서 메타버스 시대를 준비해 왔다. 단순히 디바이스만 만든 게 아니라 개발자대회인 ‘오큘러스데이’ 등을 개최하고 개발자들을 위한 소프트웨어 도구들을 무상제공하면서 생태계를 키웠다. 이는 구글과 애플 이상의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의 마인드를 반영한다. 구글과 애플은 모두 모바일이라는 거대한 흐름 변화에 맞춰 성장한 기업들이다.

    모두 안드로이드와 iOS라는 운영체제를 갖고 있고, 모바일 생태계를 좌우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페이스북도 그 힘에 당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애플은 개인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각 앱들이 개인들의 어떤 사생활 정보를 사용하고 있는지를 공개하고 개인 동의를 받게끔 앱스토어 규칙을 바꾼 적이 있다. 이건 그동안 구렁이 담 넘어가듯 사용자들의 개인정보 제공동의를 받아왔던 페이스북 입장에서는 매출에 치명적인 규칙개정이었다. 이 때문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애플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렇게 말이다. “애플은 고객들의 스마트폰에 대한 문지기 역할을 하는 독특한 입장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로 인해 독점적 지대추구를 해 오고 있었죠!”(2020년 8월 직원 미팅에서.) 사용자 생태계의 규칙을 좌우할 수 있는 지배적 기업이 되는 꿈, 그리하여 애플과 구글을 넘어서는 메타버스 시대의 승리자가 되는 꿈. 그게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의 야심으로 보인다.

    VR 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2
    VR 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2
    기업가들의 동물적 감각이 결국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면, 마크 저커버그처럼 메타버스 시대에서 인터넷과 모바일을 능가하는 ‘먹이’의 냄새를 맡는 사람들이 달려들면서 인류의 미래가 서서히 변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기업이 이런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메타버스는 정말 미래에 새로운 인터넷 플랫폼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결국 왜 메타버스가 이처럼 화두인지에 대해 답을 하자면, ‘새로운 기회의 땅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미 판이 짜여 있는 것은 아닐까? 거대기업인 페이스북이 자금을 쏟아붓고 있고, 로블럭스라는 회사도 2004년부터 설립되어 오랫동안 생태계를 가꿔왔고, 한국의 거대 IT 기업인 네이버도 이미 뛰어들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취재에 응한 이들은 ‘그렇지는 않다’고 말한다.

    지금은 메타버스의 규격과 기준이 정해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픈소스 형태로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고 있는 회사 씨지움(Cesium)의 패트릭 코치 CEO는 메타버스가 인터넷과 모바일 다음의 플랫폼으로 진정 성장하려면 다양한 주체들이 열린 협력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치 인터넷이 어떤 단일한 회사가 좌우할 수 없는 열린 기준과 열린 프로토콜 위에 만들어졌던 것처럼, 메타버스 역시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기준과 열린 프로토콜, 열린 대화, 그리고 다양한 회사들이 참여하는 열린 협력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쓰이는 3D 그래픽 엔진 중 하나인 ‘언리얼’을 만들고 있는 회사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CEO는 “한 회사가 메타버스를 통제해서는 안 된다”라며 “그래야만 한 사람이 만드는 창조물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조종하거나 억압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설명
    실리콘밸리 현지 매체 벤처비트의 가상현실 담당 저널리스트 딘 다카하시는 “메타버스의 시대에 기회는 아직 열려있다”고 말했다. 그러한 열린 기회는 각자 주체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잡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페이스북 투자자라면?

    먼저 페이스북의 주주라면, 더 이상 페이스북의 주가를 설명하는 변수가 광고매출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동안 페이스북의 실적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앱 안에 광고주들이 얼마나 광고를 많이 하는가가 중요한 변수였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메타버스 기업으로 전환하게 되면 오큘러스 하드웨어 판매량과 소프트웨어 판매액이 매출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 페이스북의 선장인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이라는 거대한 배의 방향타를 ‘메타버스’로 잡았고 그 최종 목적지에 애플, 구글보다 먼저 도달하여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그 야심이 실현된다면 페이스북은 구글, 애플을 능가하는 기업이 될 수도 있다.

    ▷일반 기업 임원이나 직장인들이라면?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기업들의 임원이나 간부들이 인터넷 웹페이지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들고 나왔을 때도,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기업의 임원이나 간부들은 모바일을 이용해 어떻게 사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뚜렷한 아이디어와 실행을 하지 못했던 경우가 많다. 이제 메타버스가 인터넷과 모바일 다음 플랫폼이 될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시대에 맞게끔 우리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기업문화를 알리고 고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라나는 학생들의 입장

    이제까지는 인터넷 언어인 HTML이나 자바스크립트 등을 열심히 학습하면 웹개발자가 될 수 있었다. 웹 디자이너가 되려면 CSS 같은 언어를 공부하면 됐다. 하지만 메타버스의 시대가 온다면 루아, 언리얼, 유니티, 옴니버스 등과 같은 과거와 다른 플랫폼들을 전문적으로 미리 공부해 두던 사람이 더 많은 쓰임새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유니티 CEO인 존 리치텔로는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최근 들어 유니티 엔진 활용방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이걸 보면 메타버스의 시대가 진짜로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현규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2호 (2021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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