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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벤처 마피아’ 된 네이버 카카오…인재 대결 ‘용호상박’
입력 : 2021.08.18 16: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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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틸 팰런티어테크놀로지 회장,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맥스 레브친 어펌 CEO, 스티브 첸·채드 헐리 유튜브 공동창업자, 리드 호프만 링크드인 창업자….
이들은 모두 간편결제 서비스 ‘페이팔’의 공동창업자 또는 초기 멤버다. 페이팔에서 나와 각자 연쇄 창업에 성공, 오늘날 미국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파워 그룹으로 성장했다. 세상은 이들을 ‘페이팔 마피아’라고 부른다. 마치 거대 조직처럼 서로 정보와 자원을 주고받으며 세력을 확장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네피아(네이버 마피아)’ ‘카피아(카카오 마피아)’가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출신 창업자들이 잇따라 성공, 국내 스타트업의 제2전성기를 주도하고 있다. 당근마켓, 두나무, 넵튠, 생활연구소, 호갱노노, 팀블라인드 등이 대표 사례다.
‘마피아’라는 이름이 범죄 조직을 연상케 하지만, 실은 스타트업 인재사관학교로서 국내 벤처 생태계 선순환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는 평가다.
▷카카오가 최대 아웃풋…블라인드
국내 1세대 IT 벤처로 손꼽히는 네이버 출신 창업자는 누가 있을까.
네이버가 배출한 최고 인재는 단연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이다. 한게임을 창업한 김 의장은 네이버와 합병, 한때 NHN(현 네이버) 대표까지 지냈다. 2007년 돌연 회사를 떠나 ‘대한민국에 없던 회사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카카오 전신인 아이위랩을 창업했다. 조수용·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각자대표, 문태식 카카오VX 대표 등 현재 카카오 공동체를 이끄는 주요 수장들도 모두 네이버를 거쳐 간 ‘네이버 동창생’이다. 정욱 넵튠 대표도 한게임과 네이버를 거쳐 창업에 성공했다.
직장인 전용 익명 SNS ‘블라인드(Blind)’를 운영하는 팀블라인드의 문성욱 대표도 네피아다. 문 대표는 2005년 창업한 여행·맛집 정보 서비스 스타트업 ‘윙버스’가 인수되며 네이버에 합류한 사례다. 문 대표는 “네이버의 사내 익명 게시판이 블라인드 서비스의 시발점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자율주행 모빌리티 스타트업 ‘포티투닷(42dot)’도 네이버 출신 창업가의 작품이다.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이자 네이버랩스 최고경영자를 지낸 송창현 대표가 2019년 3월 설립했다.
채팅형 웹소설 플랫폼 ‘채티’를 운영하는 아이네블루메의 최재현 대표도 ‘네피아’다. 제일기획을 거쳐 2000년대 초 네이버에 합류, 부문장·기획본부장·미국법인장 등 요직을 거쳤다. 그는 “네이버 출신임이 자랑스럽다”며 “스타트업 성장 DNA를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최재현 대표는 “네이버는 잘할 수 있는 것을 극대화했다. 구글의 검색 기술력과 영어 문서의 양적, 질적 우위를 못 이기니 다른 방법을 찾았다. 구글이 ‘웹사이트’를 잘 찾아준다면 네이버는 검색을 ‘지식과 정보를 찾아주는’ 것으로 재정의했다. 그 결과 지식인, 커뮤니티, 도서, 콘텐츠 검색, 뉴스 등 다양한 구색을 갖추게 됐다. 검색만큼은 내줄 수 없다는 절박함이 네이버 검색 점유율을 성장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도 네이버의 문화적 자산이다. 이용자 검증에 따라 언제든 가설을 버릴 수 있는 용기는 기획력과 추진력 이상으로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은 네이버에서 배운 소중한 교훈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김민석 스마트스터디 대표, 김병철 미티영 대표, 김성훈 업스테이지 대표,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 김한나 그립컴퍼니 대표, 장정호 데이블 최고기술책임자, 정욱 넵튠 대표, 조용상 콜라비 대표, 천세희 더자람컴퍼니 대표 등이 네피아로 손꼽힌다.
▶카피아는 누구
▷당근마켓·생활연구소·남의집…
카카오 출신 창업가도 여럿이다.
연현주 생활연구소 대표는 카카오에서 신규사업개발부장을 지내다 2017년 창업해 성공한 사례다. 창업은 당시 신사업으로 개발 중이던 ‘카카오홈클린’ 서비스가 사업 우선순위에 밀려 출시가 무산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연 대표는 함께 서비스 출시를 준비했던 핵심 인력들과 함께 카카오를 나와 ‘청소연구소’를 선보였다.
김성용 남의집 대표 역시 카카오 재직 시절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카카오모빌리티에서 근무하며 공유경제를 접한 그는 마침 아는 형과 함께 살고 있던 셰어하우스에 착안, 남의 집 거실을 공유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요리 레시피 앱 ‘우리의식탁’을 운영하는 컬쳐히어로의 양준규 대표도 대표적인 카피아다. 카카오에서 콘텐츠 기획과 운영을 담당한 경험을 살려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 밖에도 김기풍 마카롱팩토리 대표, 김홍익 안전가옥 대표, 박규병 튜닙 대표, 박차진 타임트리 공동대표, 이승준 어메이즈VR 대표, 이정균 라이브하이브 대표, 이참솔 리턴제로 대표, 전병철 콘랩컴퍼니 대표, 주민철 더널리 대표 등이 손꼽히는 카피아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모두 거친 ‘네카피아’도 있다.
지역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의 김용현·김재현 공동대표는 모두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김용현 대표는 네이버 서비스전략팀을 거쳐 카카오 게임 플랫폼 팀장과 카카오플레이스 TF장을 역임했다. 김재현 대표는 네이버에 개발자로 입사해 검색 관리 시스템을 담당했다. 이후 모바일 앱 개발사인 씽크리얼즈를 창업하고, 2012년 카카오와 인수합병하며 김용현 대표와 함께 일하게 됐다. 이들은 2015년 카카오에서 나와 당근마켓을 공동창업,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 기업으로 키워냈다.
이 밖에 이석우 두나무 대표, 야놀자에 인수된 여행 스타트업 ‘트리플’의 김연정 공동창업자도 네이버와 카카오 출신이다.
인터뷰 | 김재현 당근마켓 공동대표(네이버·카카오 출신) 네이버는 스마트·복지 천국, 카카오는 수평적 소통 인상적
Q 양 사를 모두 경험했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기업 문화에 대한 평가는. A 카카오는 매주 전 직원이 참여하는 타운홀 미팅을 열고 경영진이 직접 회사 경영 상황을 공유했다. 나는 카카오에 매각 전 15명 직원을 둔 회사를 경영하기도 힘들었는데, 그렇게 수백 명의 직원들과 열린 소통을 하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네이버는 치밀하고 사업의 일관성, 추진력이 뛰어나다. 내가 이전에 중소기업을 다녀서 그런지, 네이버는 신세계였다. 직원들이 모두 스마트하고 일을 잘해서 인상적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좋은 회사라고 생각한다.
Q 네이버, 카카오에서의 근무 경험이 회사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A 네이버는 내가 입사했을 때 이미 직원 2000명 정도의 대기업이었다. 반면 카카오는 직원 200명 정도의 스타트업이어서 현재 당근마켓에 적용할 수 있는 노하우가 많다. 영어 이름 쓰기, 주요 경영 정보 공유, 타운홀 미팅 등이 대표적이다. 단, 당근마켓도 회사가 커지면 네이버처럼 수직적인 체계가 생겨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직원들과 수평적 소통이 어려워질까 봐 두렵지만,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A 네이버는 복지 제도가 매우 잘 갖춰져 있다. 사내 양호실도 있고 가족 실비보험도 다 해줬다. 카카오는 직원이 원하는 부서에서 일하도록 지원을 받는 ‘손들고 이동’ 제도가 좋았다. 나는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해 이를 잘 활용했다. 카카오플레이스, 게임, 택시 등 주로 신사업 부서에 1호 개발자로 자원해서 들어갔다.
인터뷰 | 연현주 생활연구소 대표(카카오 출신) 오픈 이노베이션·전 직원 하와이 여행…카카오에서 배웠죠
체계가 뚜렷한 엔씨소프트에서 이직했던 처음에는 그런 문화가 다소 충격적이었는데, 이내 적응이 됐다.
그런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생활연구소에도 접목, 40~50대 중년 여성이 대부분인 청소 매니저분들과도 서로 존중하며 일한다. 수직적 문화가 강한 기존 업계의 구태를 벗은 것이다. 이분들의 업무 만족도가 높아지니 고객 만족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Q 카카오에서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A 입사 후 6개월쯤 됐을 때 가입자 수 1억명을 돌파한 기념으로 500명 넘는 전 직원이 2박 3일 하와이 여행을 갔다. 당시로서는 직원들의 해외여행, 워크숍이 거의 없었다. 직원들과 공통의 추억이 생기니 여운이 오래가더라.
생활연구소도 경영 목표 달성하면 전 직원이 하와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
박수호·노승욱 기자 문지민·장지현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2호 (2021.08.18~2021.08.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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