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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매화틀서 변을 봤는데, 궁녀는 어디서? 150년전 정화조 화장실 나왔다
입력 : 2021.07.08 17: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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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대형 화장실 유구 발굴 현장에서 오동선 연구사가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왼쪽)와 오수가 나가는 출수구를 가리키고 있다.
이렇게 발효된 분뇨는 악취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독소가 빠져서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 오 연구사는 "부패조, 침전조, 여과조로 구성된 현대식 정화조 구조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석조 구덩이는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에 달하며 바닥부터 벽면까지 모두 돌로 만들어져 분뇨가 구덩이 밖으로 스며 나가는 것을 막았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경복궁배치도'(1888~1890년)와 '궁궐지'(1904년) 등의 기록으로 화장실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발굴 유구 토양에서 많은 양의 기생충 알(g당 1만8000건)과 오이·가지·들깨 씨앗이 검출돼 화장실이라는 것을 검증했다고 덧붙였다. 조선 궁궐 내부에서 화장실 유구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865년 4월부터 1868년 7월까지 경복궁 중건 과정을 기록한 '경복궁 영건일기'와 가속 질량분석기를 이용한 절대연대분석, 발굴한 토양층의 선후 관계 등을 종합한 결과, 이 화장실은 1868년 경복궁 중건 때 만들어져서 20여 년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은 동궁과 관련된 하급 관리와 궁녀, 궁궐을 지키는 군인들이 주로 이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임금을 비롯한 왕족은 매화틀(휴대용 변기)을 사용했다.
문헌자료에 따르면 화장실 규모는 4∼5칸으로 한 번에 최대 10명이 이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장훈 한국생활악취연구소장은 "150여 년 전에 정화시설을 갖춘 경복궁 대형 화장실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며 "17세기까지 유럽 궁전과 성(城)에는 화장실이 없었다. 유럽과 일본에선 분뇨를 포함한 모든 생활하수를 함께 처리하는 시설이 19세기 말에 들어서야 정착됐으며, 중국에는 집마다 분뇨를 저장하는 대형 나무통이 있었다고만 전해질 뿐 자세한 처리 방식은 알려진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이번 경복궁 화장실 유구 발굴은 그동안 관심이 적었던 조선 시대 궁궐 생활사 복원에 도움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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