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카라쿠배’ 아세안 진출로 제2 도약할까

    입력 : 2021.05.31 11:09:10

  • 네카라쿠배(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로 불리는 우리 대표 플랫폼 기업들의 아세안 시장 진출이 거세다. 이들 기업의 아세안 진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그 흐름이 더 가속화돼 가히 ‘제2의 동남아 진출 물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카라쿠배가 아세안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이들의 코로나19 주력 사업인 전자상거래, 웹툰, 배달 등의 시장이 현지에서도 계속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세안의 높은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계속 두터워지는 중산층은 추가 성장 잠재력을 더 높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인터넷망 등 관련 인프라가 우리 못지않게 깔려 있는 것도 네카라쿠배에게는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게다가 규제 측면에서 우리에 비해 유연한 측면이 많아 다양한 비즈니스 실험도 할 수 있다. 네카라쿠배로서는 아세안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아세안의 현지 플랫폼 기업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미 현지에서도 이런 환경을 살려 탄생한 신흥 플랫폼 강자들이 수두룩하다. 네카라쿠배로서는 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점에서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안고 있는 셈이다.

    최근 우리 플랫폼 업계의 가장 눈에 띄는 아세안 진출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다. 콘텐츠 회사였던 카카오페이지와 엔터테인먼트 회사였던 카카오엠의 합병으로 탄생한 이 회사가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으로 아세안을 선정하고 공략을 강화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카카오엔터는 6월 태국에 신규 진출한 뒤 인도네시아 등 인근 국가로 비즈니스 영토를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

    베트남 시장에 진출, 업계 2위에까지 오른 ‘배민’의 라이더들
    베트남 시장에 진출, 업계 2위에까지 오른 ‘배민’의 라이더들
    카카오엔터가 태국을 아세안 첫 진출지로 결정한 것은 아세안에서도 한류 열풍이 강한 곳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아이유 등 여러 K-POP 스타들도 보유하고 있어 웹툰 시장 안착에 따라 서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태국의 웹툰 시장은 현지 젊은 세대 사이에서 꽤 인기를 끌고 있는데, 여기서도 한류 분위기는 역력하다. 현지 마케팅 회사에서 일을 하는 몰리 씨는 “한국 콘텐츠들은 스토리가 상당히 매력적인 것 같다”면서 “한국 웹툰 플랫폼이 새로 생겨난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카오엔터의 진출이 그리 녹록지는 않을 전망이다. 2014년부터 진출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라인웹툰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라인웹툰은 네이버 관계사인 라인이 만든 회사로 현재 시장 점유율 1위인 절대 강자다. 또 NHN엔터테인먼트가 만든 코미코도 카카오엔터의 도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코미코는 웹툰뿐만 아니라 웹소설도 서비스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시장도 마찬가지다. 라인웹툰이 태국처럼 시장 리더인데, 카카오엔터 측은 2018년 말 이곳 웹툰 1위 기업인 ‘네오바자르’를 인수해 이미 전열을 가다듬은 바 있다.

    이처럼 우리 기업들끼리 맞붙는 아세안 웹툰 시장 주도권 싸움에 일각에서는 제 살 깎아 먹기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곤 있지만, 현지 시장 자체의 성장 잠재력이 커 큰 문제가 없다는 분석이 아직은 많다. 태국의 웹툰 시장은 2억달러로 추정되는데, 이와 관련해 미래에셋증권은 “규모가 그리 크진 않지만 향후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밝혔다. 인근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경우 시장 규모가 약 3억달러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양사는 최근 북미 시장을 겨냥해 네이버와 카카오가 각각 현지 업체인 왓패드와 타파스미디어를 인수하며 웹툰 전장을 글로벌로 확장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주목할 만한 기업은 이커머스 기업인 쿠팡이다. 미국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한 후 곧바로 아세안 진출설이 터져 나와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쿠팡의 아세안 진출 국가로 알려진 곳은 싱가포르다. 글로벌 인맥 사이트인 링크드인에는 쿠팡의 싱가포르 법인 직원을 모집하는 구인광고가 4월 말부터 게재돼 있다. 물류, 애널리스트, IT 전문가 등의 채용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쿠팡이 아직 동남아 진출을 공식화하지 않아 어떤 전략을 취할지 알려지진 않았지만 싱가포르를 아세안 전진기지로 삼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쿠팡이 싱가포르만 보고 현지 진출을 결정할 확률은 극히 낮기 때문이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넓지 않은 국토 면적과 밀집된 주택 환경으로 쿠팡이 한국에서 시도한 빠른 택배 모델을 정착시키기에 용이한 점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쇼피라는 동남아 이커머스 시장의 토종 절대강자가 있어 쿠팡의 시장 침투가 원활히 이뤄질지 장담할 수 없다. 쇼피 역시 빠른 배송과 자체 결제 시스템 구축을 통해 싱가포르는 물론 동남아 시장에서 경쟁자들을 제쳤는데, 성장 모델이 쿠팡과 흡사하다.

    또 아세안에는 쇼피 외에 라자다, 토코피디아, 부칼라팍 등 역내 이커머스 강자들도 수두룩하다. 한 현지 전문가는 “현지 이커머스 기업들의 경우 지역 사정에도 밝아 쿠팡이 빠른 배송만으로 승부를 걸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면서 “로컬 기업과의 협업이 필수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설명
    일각에서는 쿠팡이 아세안의 높은 한국 상품 인기를 감안해 이를 염두에 둔 물류망 구축이 더 중점적 포인트가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한다. 실제 쿠팡이 링크드인에 채용 정보를 게재하면서 밝힌 회사 소개 자료를 보면 라스트마일(물류창고에서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단계)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싱가포르 자체가 동남아 물류의 거점이어서 이런 해석에 힘을 싣고 있다.

    쿠팡은 또 쿠팡플레이 관련 현지 직원도 충원 중인데, 지난해 현지 OTT 업체인 훅(Hooq)을 인수한 건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쿠팡의 OTT 시장 진출은 종합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는 과정이라는 분석이 많다. 아마존이 쇼핑에서 시작해 엔터테인먼트를 강화하며 구독자를 늘려 사세를 키워나갔듯이 쿠팡도 그와 같은 전략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쿠팡의 이 같은 싱가포르 행보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시장 안착 여부에 따라 회사의 글로벌 기업 성장 여부가 판가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달 시장에서는 우아한형제들의 행보가 뚜렷하다. 배민(BAEMIN)이란 브랜드로 현지 배달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배민의 베트남 진출은 2018년 현지 음식 배달 중개 서비스 업체 베트남엠엠(Vietn ammm)을 인수하며 시작됐다. 사전 작업 후 2019년부터 본격 배달 서비스를 시작해 불과 2년 만에 현지 업계 2위까지 올랐다.

    여기에는 B급 감성 마케팅이 주효했다. 베트남 소비자들에게 배민이란 브랜드의 인지도를 제고하기 위해 현지 감성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세웠는데 이것이 주효했다. 첫 시작은 베트남 국민이면 누구다 다 아는 전래동화 속 ‘세 뼘짜리 가방’을 에코백에 문구로 새겨 넣었는데, 한 현지 인플루언서가 소개하면서 인기 굿즈가 됐다. 그 다음 히트작은 ‘이거 엄마한테 맡기지 마’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지 마’ 등이 적힌 세뱃돈 봉투였다. 마지막 방점은 배민이 만들어 낸 서체다. 세계적인 서체 대회에서 수상한 ‘배민다니엘체(BM Daniel)’는 글자 모양만으로도 배민을 드러낸다고 할 정도로 현지인들에게 각인돼 있다. 이 서체는 현재 배민 굿즈에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라이더 교육에도 공을 들이고 있는데, 이는 현지 배달 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아한형제들도 베트남 시장 성공을 계기로 아세안 시장 전역에 배민의 깃발을 꽂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딜리버리히어로(DH)가 우아한형제들을 인수 발표할 당시 양사는 합병을 전제로 싱가포르에 ‘우아DH아시아’를 설립해 아시아 11개국에 진출하기로 한 바 있다.

    쿠팡 본사
    쿠팡 본사
    하지만 배달 시장 또한 그랩 등 현지 강자들이 수두룩해 쉽지 않는 싸움이 될 전망이다. 베트남에서는 현재 그랩푸드, 딜리버리우, 푸드판다 등 5개 회사가 서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베트남 배달 시장 1위는 동남아 기업인 그랩이다. 그랩의 영향력은 인도네시아는 물론 태국 등 아세안 전역에 퍼져 있다.

    카카오페이지, 쿠팡, 배민이 아세안 시장의 신흥 주자들이라면 네이버는 전통의 강자다. 이들보다 앞서 동남아 시장의 경쟁력을 알아보고 일찌감치 뛰어들어 입지를 다지고 있다.

    네이버의 아세안 현지 진출은 관계사인 라인을 통해 이뤄졌는데, 처음에는 메신저가 주력 상품이었다. 그 덕에 라인의 메신저는 태국·인도네시아 등의 국민 앱으로 사용자가 1억 명 가까이 된다. 현지에서 카카오의 메신저 프로그램이 한번 경험해 보고 마는 것이라면, 라인은 우리가 카카오톡을 쓰는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특히 태국의 경우 시장 지위는 압도적이다. 라인이 태국에서 라인맨으로 배달 시장에 진출한 것도 라인메신저의 시장 지위가 아니었으면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라인은 또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온라인 식품 배달 업체 해피프레시와도 손잡고 신선식품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라인은 메신저 플랫폼을 이용해 배달은 물론, 이커머스, 핀테크 등 확장 가능한 사업을 대부분 안착시키고 있다.

    네이버는 라인의 동남아 성공과는 별개로 최근 자체 브랜드를 앞세워 현지 진출도 꾀하고 있다. 올 4월 네이버는 인도네시아 대기업인 엘랑 마코타 테크놀로지(엠텍)에 약 1700억원의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엠텍은 인도네시아 대표 OTT 업체다. 엠텍의 플랫폼을 통해 자체 제작한 웹툰, 동영상 등의 콘텐츠를 유통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세안 역내 플랫폼 패권 다툼도 치열 싱가포르 이커머스 ‘쇼피’ 공세에

    역내 시장 판도 뒤바뀌어
    한국 플랫폼 기업들의 동남아 시장 공략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현지 관련 업체들 간의 시장 쟁탈전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아세안에는 이커머스, 전자 결제 등 디지털 경제 관련 유니콘들이 12개나 존재하는데 각 기업의 경쟁력은 만만치 않다. 이들이 자국을 넘어서까지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그만큼 아세안 관련 시장의 매력도가 크기 때문이다.

    코트라 싱가포르 무역관에 따르면 역내 경제 성장에 따라 동남아시아 신흥 중산층이 계속 두터워지는 동시에 이들의 디지털 소비가 가속되고 있는데, 2025년이면 디지털 소비자당 평균 소비가 329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2018년(124달러)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최근 아세안 내 디지털경제 관련 기업들의 경쟁을 촉발한 이는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쇼피다. 싱가포르 유니콘 SEA 그룹의 전자상거래 분야를 맡고 있는 쇼피는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역내 국가들의 전자상거래 시장 판도를 바꿔 놨다. 현지 디지털 리서치 회사인 iPrice에 따르면 쇼피는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이커머스와 결제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라 있다.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는 전통 강자를 라자다를 일찌감치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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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피의 마케팅 전략은 무료 배달과 결제 수수료 캐시백. 캐시백의 경우 30%나 해준다. 여기에 끌린 현지 고객들의 플랫폼 이동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의 경우 지난해 3분기 쇼피 플랫폼 방문자는 전년 동기 대비 80%나 는 62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정이 이러자, 토코피디아 등 각국 대표 기업들은 대응책 마련이 부산하다. 특히 쇼피가 앞세운 쇼피페이에 현지 토종 결제업체까지 영향을 받자 더욱 골치가 아픈 모양새다. 전자결제 시장은 전자상거래 시장 못지않게 향후 성장세가 유망한 업종이다.

    이런 쇼피의 파죽지세 공세에 기존 지역 강자들은 인수합병이란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몸집을 키워 대항하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쇼피의 공격적 마케팅의 배후에는 텐센트, 소프트뱅크 등 굵직한 투자자들의 적극적 지원이 깔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현재 고젝과 토코피디아의 합병이 논의되고 있다. 양사의 합병은 고젝과 그랩의 관련 논의가 무산된 직후 진행됐다. 그만큼 덩치 키우기가 다급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양상의 합병이 성사되면 기업가치는 18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에서는 라자다와 그랩이 손을 잡고 쇼피에 연합전선을 펴고 있다.

    하지만 쇼피도 공격적 마케팅으로 시장 잠식에는 성공했지만 웃지 못하고 있다. 기업 본연의 임무인 이익을 전혀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쇼피는 2017년 기업 공개를 한 후 계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지난해에도 40억37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지만 마케팅 비용이 89%(10억800만달러)나 치솟으면서 10억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30%나 캐시백을 해주는 수수료 정책이 점점 부담이 되고 있단 뜻이다. 때문에 현지 전문가들은 “쇼피의 시장 공략을 위한 인센티브 전략이 장기적으로 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쇼피가 디지털 소비자 유인책을 중단해도 이들이 쇼피를 계속 이용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 전문가는 “토코피디아의 결제 시스템인 오보가 쇼피보다 더 큰 캐시백 정책을 쓴다면 소비자들은 당장 결제 수단을 바꿀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수인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9호 (2021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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