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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까지 몰아치는 청약 광풍, 단기 공급 몰린 대구는 미분양 나고 제주는 초고가 분양에도 완판랠리
입력 : 2021.05.31 10:3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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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도 청약 광풍이 불고 있다. 서울권에서 충족되지 못한 청약 수요가 지방 곳곳으로 퍼져가면서 청약 열기가 전국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다만 단기 공급이 몰렸던 대구에서는 잇달아 미분양 단지가 나오면서 뜨거웠던 청약 수요가 잦아드는 변곡점을 맞은 게 아니냐는 분석 목소리도 나온다. 여전히 부동산 열기가 올라오지 않은 제주에서조차 기존 분양가 대비 큰 폭으로 오른 분양가로 나온 신축단지가 완판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5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민간 아파트 초기 분양률 동향 자료에 따르면 5대 지방 광역시(부산·대구·광주·대전·울산) 및 세종은 올해 1분기(1∼3월) 평균 초기 분양률이 100.0%로 조사됐다. HUG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4년 이래 처음 나온 수치다.
초기 분양률은 아파트 분양 초기 시점의 총 분양 가구 수 대비 계약 체결 가구 수 비율을 말한다. HUG가 주택 분양보증서를 발급한 뒤 입주자 모집 승인을 받아 분양한 30가구 이상의 전국 민간아파트가 조사 대상이다.
5대 광역시·세종시의 민간아파트 초기 분양률은 작년 1분기 95.8%, 2분기 97.6%, 3분기 98.6%, 4분기 99.1%로 네 분기 연속 상승했다. 올해 1분기는 결국 100.0%를 찍었다. 분양한 가구는 모두 계약이 됐다는 얘기다. 당첨자 모두가 아파트 시세가 당첨 시점 대비 오를 것으로 보고 한 명도 계약포기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그만큼 시장에 “아파트 시세가 오른다”는 강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기타 지방 민간 아파트 초기 분양률은 2019년 3분기 58.6%에서 지난해 4분기 92.0%로 다섯 분기 연속 올랐다. 하지만 올해 1분기에는 90.8%로 소폭 조정됐다. 충남(100.0%), 전북(99.9%), 경북(98.9%), 경남(91.0%)에서는 여전히 높은 초기 분양률을 기록했다. 서울 아파트의 초기 분양률 역시 작년 1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다섯 분기 연속으로 100.0%를 기록했다. 부동산 시세가 고공행진을 펼치는 가운데 노력 끝에 분양받은 아파트 계약을 포기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됐다.
HSSI는 분양을 앞두고 있거나 분양 중인 아파트 단지의 분양 여건을 공급자 입장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지표다. 주택사업을 하는 업체(한국주택협회·대한주택건설협회 회원사들)를 상대로 매달 조사한다. HSSI가 100을 넘으면 분양 전망이 긍정적이라는 것을, 100 미만이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서울(114.0)과 경기(112.2), 인천(109.7)은 연일 전망 호조를 유지했다. 특히 서울은 2018년 9월 이후 무려 32개월 만에 110선 이상의 전망치를 기록했다. 부산(106.5)은 전달보다 15.5포인트 급등했다. 대전(107.6), 세종(105.2) 등도 기준선을 웃돌았다. 이달 전국에서 가장 낮은 전망치를 기록한 곳은 제주(89.4)였는데, 이마저도 지난달보다 수치가 19.4포인트 급등한 기록을 썼다.
강원도 역시 93.3을 기록했는데 관련 통계가 나온 2018년 이래 5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제 속초 일부 아파트 분양권은 프리미엄이 3억원대에 육박한다는 게 지역 중개업소 설명이다. 희소성이 있는 펜트하우스는 웃돈이 5억원 넘게 붙기도 했다.
특히 수도권 대부분이 규제 지역으로 묶이면서 비규제 틈새를 노린 부동산 투자 수요가 시·군·구 지역까지 몰리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대출과 전매제한 등에 묶이지 않은 곳에서 신규 분양 물량도 다수 나오고 있다.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올해 전국 비규제 지역에서 총 5만6609가구(민간분양 기준, 임대 제외)가 분양될 예정이다. 지난해 같은 지역에서 분양된 4만9397가구보다 7212가구가 더 많은 수치다.
특히 지난해 분양이 없었던 경기도 이천에서는 올해 무려 4628가구가 분양 예정이다. 수도권 비규제 지역 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수치다. 아파트 분양 활황과 거리가 있었던 포천과 동두천에서도 각각 1207가구, 889가구가 분양 예정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오랫동안 분양이 없던 지역의 새 아파트는 갈아타기 수요가 많고 시세 차익도 기대할 수 있어 인기가 많다”며 “건설사들이 오랜 시간 공급이 없던 지역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분양 시장에 만연한 풍선 효과 때문에 일부 비규제 지역 청약 경쟁률은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경기도 양평·가평·연천군에서 공급된 2579가구에 2만1623건의 신청이 접수됐다. 평균 경쟁률이 8.3 대 1에 달했다. 세 지역은 수도권에서 아직 시(市) 승격이 이뤄지지 않고 군으로 남아있다. 지난해 4분기 경쟁률이 1.1 대 1에 그쳤던 것과 분위기가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양평역 한라비발디 1·2단지’는 1순위 평균 13.5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가평에서도 지난 1월 선보인 ‘e편한세상 가평 퍼스트원’과 ‘가평자이’가 각각 6.28 대 1과 11.44 대 1의 경쟁률로 1순위 마감됐다. 한마디로 뜨겁지 않은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분양 열기가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양평, 가평, 연천은 경기도 대부분이 규제지역으로 지정된 가운데 아직까지 비규제 지역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선 만 19세 이상이고 청약통장 가입기간 1년 이상, 주택형별 예치금만 충족하면 경기도, 서울, 인천 모두에서 세대주, 세대원 가릴 것 없이 1순위로 청약할 수 있다. 특히 양평과 가평은 자연보전권역에 속해서 전매제한 기간도 6개월로 짧다.
실제 지난 4월 기준 대구에서 청약한 아파트 10개 단지 중 3곳은 미분양됐다. 4월 말 청약을 받은 대구 수성구 ‘수성 해모로 하이엔’은 576가구 중 약 80여 가구가 미분양됐다. 공급량이 몰린 전용 59㎡에서 지원자가 미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보다 앞서 분양했던 759가구 규모의 ‘대구 안심 파라곤 프레스티지’ 역시 공급 가구 수의 절반에 달하는 300여 가구가 미분양됐다. ‘동대구역 엘크루 에비뉴원’의 경우 총 9개 주택형 중 3개에서 1순위 미달이 돼 2순위까지 청약을 진행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대구 지역 아파트 분양 물량은 최근 3년간 9만여 가구(2019년 2만9103가구, 2020년 3만1241가구, 2021년 2만9315가구 예정)에 달한다. 같은 기간 서울 분양 물량과 큰 차이가 없다.
300여 가구 미분양됐던 ‘대구 안심 파라곤 프레스티지’가 무순위 접수(줍줍)에서도 예비청약자의 외면 속에 결국 미달로 마무리됐을 정도다. 5월 11일 진행된 이 아파트 696가구 무순위 접수에 172건만 신청한 것이다.
물론 대구에서 안심뉴타운은 아직까지는 선호하는 지역으로 꼽히지 못한다. 교통, 학군 등 인프라가 기능을 발휘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같은 시기 대구에서 분양한 이시아 팰리스, 힐스테이트 대명 센트럴, 이안 엑소디움 에이펙스, 수성범물 일성 트루엘 레전드도 일부 무순위 매물이 나왔다.
최근 대구에서 분양을 마친 한 건설사 관계자는 “비슷한 시기 대구에서 공급물량이 너무 넘쳐나 미분양에 대한 우려로 밤잠을 설쳤을 정도”라며 “앞으로 대구에서 분양하는 상당수 건설사들은 미분양 발생을 막기 위해 치열한 홍보작전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심뉴타운에서 무순위 접수를 한 호반써밋 이스텔라도 70여 가구가 미달됐다. 결국 서울에서도 ‘과도하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의 공급물량이 쏟아지면 미분양 사태가 나오고 부동산 가격도 안정될 수 있다는 예측이 힘을 받는 것이다. 김기원 데이터노우즈 대표는 “공급이 많은 곳 시세는 떨어지고 공급이 없는 곳 시세가 오르는 건 너무 당연한 이치”라고 말했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도 청약 광풍이 불어닥치면서 광역시의 초기 분양률(분양 후 3∼6개월 내 계약 비율)이 처음으로 100%를 기록했다.
엠디엠플러스가 제주시 연동에서 분양한 이 단지는 204가구 일반공급 1순위 청약에서 2802명이 신청, 평균 14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 단지는 주력형인 전용 84㎡의 분양가가 상당수 9억원이 웃돌고 전용 145㎡와 154㎡형은 14억원대와 15억원대에 달해 제주 집값을 한 단계 ‘레벨 업’시킨 분양단지로 손꼽힌다. 그런데도 ‘최고 40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무난히 순위 내 마감한 것이다.
사실 제주 부동산 경기 전반은 뜨겁다고 보기엔 아직 이른 상황이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4월 기준 부동산 경매시장에 올라온 제주도 내 업무·상업시설은 109곳으로 1월 23곳, 2월 24곳, 3월 107곳에 이어 올 들어 가장 많았다. 하지만 실제 낙찰건수는 7건에 그치면서 낙찰률은 3월 17.8%보다 떨어진 15.6%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평균 응찰자 수도 3월 2.7명에서 지난달 2.2명으로 줄며 전국에서 가장 적었다.
하지만 주택에서만큼은 과열 우려가 불거질 정도로 확실한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제주시 이도주공 3단지 아파트 실거래가는 전용면적 40㎡ 기준 지난해 1월 3억5000만원에서 4월 5억4500만원으로 1년 3개월 만에 1억9500만원이나 올랐다. 이도주공 1단지 아파트는 59㎡ 기준 지난해 2월 5억9000만원에서 최근 8억2000만원으로 2억3000만원이나 상승했다.
재건축이 추진 중인 제주시 연동 제원아파트는 42㎡ 평형이 올해 1월 3억1800만원에 거래돼 지난해 3월 기록된 2억5400만원과 비교해 6400만원 상승했다.
이 밖에 노형동 부영1차는 80㎡ 기준 지난해 2월 4억4700만원에서 올해 2월 5억9900만원으로 1억5200만원 올랐다. 미리내마을 중흥S클래스는 120㎡형이 지난해 2월 5억4500만원에서 올해 3월 7억5000만원으로 상승했다.
이에 제주특별자치도는 민간택지의 분양가 상한제를 제주특별법 8단계 제도개선에 넣어 주택시장 과열현상을 막겠다는 카드까지 꺼내고 있다. 2015년 4월 건설경기 부양을 이유로 민간택지의 분양가상한제는 폐지됐지만 재건축 아파트를 축으로 시세가 강하게 꿈틀거릴 조짐을 보이자 미리 속도조절에 나서는 분위기다.
제주도는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보다 현저히 높은 곳 중 ▲12개월 평균 분양가격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 2배 초과 ▲직전 2개월간 일반분양 5 대 1 초과 또는 국민주택규모 10 대 1 초과 ▲3개월 주택 거래량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 등 세 가지 중 하나를 충족하면 민간아파트도 국토교통부 주거정책심의위원회 심사를 거쳐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짜고 있다. 투기과열지구나 조정대상지역 지정을 국토교통부에 요청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고분양가가 나오는 특정지역을 관리지역으로 지정하거나 분양보증서 발급 심사를 강화하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조정하는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실수요자 중심으로 주택 거래가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시장을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제주 아파트 가격은 바닥을 쳤다는 것이 중론”이라며 “하락한 세월이 길었던 만큼 향후 안정적으로 상승 분위기를 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홍장원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9호 (2021년 6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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