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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상점 2만곳 "디지털위안화 받아요"
입력 : 2021.05.03 17: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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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화폐 전쟁 ◆
세계 최초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CBDC)를 상용화하겠다는 중국의 도전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3일 매일경제 취재 결과 중국 인민은행이 디지털 위안화 실험을 위해 국민에게 뿌린 현금 보너스(훙바오)는 1억6000만위안(약 274억원)으로 총 125만명이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9개월 뒤인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디지털 위안화를 공식 통용시키기로 했다. 미국 달러화 패권에 대한 정면 도전인 셈이다.
중국 쑤저우와 상하이에서는 노동절 연휴와 연계된 '5월 5일 쇼핑축제' 때 상점 2만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훙바오를 주민들에게 지난달 말 지급했다.
앞서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선전시는 작년 10월 중국 최초로 디지털 위안화 시범사업을 시작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주민들에게 소액의 디지털 위안화를 지급하고, 이를 실생활에서 쓰는 6개월의 시범 기간 중 디지털 위안화 결제 장비를 갖춘 상점이 3000곳에서 3만곳으로 10배 늘었다.
민간 기업들도 중국 정부 움직임에 발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알리바바그룹 핀테크 계열사인 앤트그룹과 텐센트는 중국 중앙은행과 손잡고 디지털 위안화 유통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중국 2위 온라인쇼핑 업체 징둥닷컴도 직원 월급과 파트너사 대금을 디지털 위안화로 지급하는 솔루션을 공개했다.
미·중 간 경제 패권 싸움의 격전지인 홍콩에서는 지난달부터 역외 결제 시스템을 실험하고 있다. 아시아 금융시장 허브인 홍콩에서 CBDC가 통용되면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의 역외 패권을 빠른 속도로 넓힐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이처럼 글로벌 기축통화인 달러화 아성에 도전하는 중국의 CBDC 굴기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빨리하는 것보다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CBDC 발행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재무부와 국무부, 국방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등은 디지털 위안화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는 작업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은 내년까지 디지털 유로화 출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러시아도 2023년 디지털 루블화를 발행하겠다고 공언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CBDC 도입 논의가 거북이걸음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비로소 CBDC 파일럿 시스템을 만들어 가상 환경에서 시험할 예정이다. 독점적 발권력을 가진 한은이 과연 어느 수준으로 물리적 화폐와 디지털 화폐 간 균형을 맞출지부터 이에 따른 금융·실물경제의 파장, 관련 법률·제도 정비 등 풀어야 할 과제가 방대하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CBDC 도입 논의를 회피할 경우 디지털 기반의 새로운 금융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하는 기업의 혁신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권혁준 순천향대 IT금융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의 CBDC 발행은 자국 핀테크·빅테크 기업들과 관련 산업이 한 단계 성장하는 기회가 될 전망"이라며 "국내 도입이 늦어질수록 글로벌 디지털 자산·유동화 시장에서 중국 기업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의 디지털 화폐는 단순히 새로운 화폐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 패권과 직결된 전략적 선택"이라며 "중국이 디지털 화폐 시장을 주도할 경우 미국과 달러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등 글로벌 금융 환경이 완전히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유진 기자 / 김혜순 기자 / 신혜림 기자]美 "디지털위안화, 북핵보다 무섭다"…英·EU도 상용화 속도전
글로벌 新 화폐전쟁 상황은
中, QR결제 등 빠르게 보급
갈수록 높아지는 위안화 위상
"美 금융제재 무력화 할수도"
기축통화 패권 도전받는 美
디지털달러 필요성 커지지만
각국 이해관계 얽혀 추진 더뎌
월가 반발도 넘어야 할 숙제중국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인 디지털 위안화(e-CNY)가 담긴 모바일 전자지갑을 실행시킨 화면. 중국은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CBDC 저변 확대의 계기로 활용할 계획이다. [교도 = 연합뉴스]
CBDC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국가는 중국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역할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부각됐고, 이때부터 중국은 달러 체제로부터의 독립을 꿈꿔왔다. 2009년 비트코인이 세상에 나오자 중국은 이를 기회로 삼았다. 가상화폐가 달러 패권을 약화시키고 국제 금융 시스템을 재구성할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도 디지털위안화를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소식통을 인용해 "미 재무부, 국무부, 국방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등이 디지털위안화가 미칠 잠재적 영향 분석 작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달러 패권을 지키기 위해 디지털달러 도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 에릭 로즌그렌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디지털달러는 사이버 보안 측면에서 생각해야 할 문제가 많다"면서도 "실질적인 이점이 분명히 있다"고 전했다. 그는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점을 감안할 때 디지털달러는 향후 세계적으로 더 쉽게 거래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연준의 디지털달러는 더 빠르고, 안전하고, 저렴한 결제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미국이 CBDC 연구를 해오면서도 디지털달러 발행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온 것과 대조된다. 보스턴 연준과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은 오는 7월 디지털달러 연구 성과의 일부와 프로토타입을 공개할 예정이다.
그러나 디지털달러가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달러는 기축통화로 전 세계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몸집이 큰 만큼 빠른 디지털 전환이 어렵다. 중앙은행이 개인의 거래내역을 바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사생활 침해 여지도 있다. 3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디지털달러를 진행하려면 의회와 정부, 광범위한 대중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CNBC는 "디지털달러 최종 모델 공개는 2년이 지나야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가의 반발도 넘어야 할 산이다. 디지털달러가 도입되면 민간은행의 금융 중개 기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는 최근 "월가 은행 로비스트들이 디지털달러 도입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미 의원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도 CBDC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연구그룹 CBDC트래커에 따르면 전 세계 60개국 이상이 CBDC를 연구 중이거나 개발 중이다. SCMP는 세계 인구 5분의 1을 포함하는 중앙은행들이 3년 내 CBDC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바하마는 이미 지난해 10월 CBDC인 '샌드달러'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최근 유럽투자은행(EIB)이 이더리움 네트워크에서 1억달러(약 1118억원) 규모의 디지털 채권을 발행한 것도 CBDC 상용화 실험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29일 프랑스 중앙은행은 EIB가 발행한 1억달러 상당의 디지털채권을 블록체인 기반의 CBDC 방식으로 시험 결제했다고 밝혔다. 앞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3월 "2021년 중반까지 디지털유로 출시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지난달 19일 CBDC인 '브리트코인' 발행을 검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러시아 중앙은행 부행장도 "2023년에는 디지털루블을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언한 상태다.
■ <용어 설명>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 전자적 형태로 발행되는 중앙은행 화폐. 민간 발행 가상화폐와 구별되는 법정통화로서 실물 화폐와 동일한 교환 비율이 적용돼 가치 변동의 위험이 없다. 또한 중앙은행이 발행하므로 화폐의 공신력이 담보된다.
[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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