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보복소비에 제대로 터진 명품시장

    입력 : 2021.03.26 15:09:37

  • 코로나19로 뚝 떨어졌던 소비욕구가 올봄 제대로 터졌다. 백화점과 아웃렛 3사 매출은 이미 코로나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이른바 ‘보복소비’의 주범은 명품과 의류, 화장품이다. 그중 명품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젠 ‘비싸서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
    지난 3월 첫 주말, 백화점과 교외 아웃렛 매출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섰다. 백신에 대한 기대가 사회적 거리두기 등 1년간 억눌렸던 방역수칙과 맞물리며 소비욕구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3월 첫 주말 현대백화점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9.8%나 상승했다. 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26.5% 높은 수치다. 최근 개장한 ‘더현대 서울’의 매출을 빼더라도 전년 동기 대비 72.5%나 늘었다. 같은 기간 롯데백화점은 전년 대비 94%, 2019년과 비교하면 9%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 매출도 각각 94%, 14% 늘었다. 서울 근교의 아웃렛에는 주말 내내 사람들이 몰렸다. 롯데프리미엄아울렛의 3월 첫 주말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08%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현대프리미엄아울렛도 100.8% 늘었다. 상품군별 매출을 살펴보면 고가의 명품 매출이 크게 늘었다. 3월 첫 주말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의 해외 명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43%, 109.9%, 138.6% 상승했다.

    ▶올 초 가격 인상에도 굳건한 수요 국내 명품시장은 전 세계에서 8번째로 큰 시장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9년 국내 명품시장 규모는 127억2670만달러(약 14조800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에는 15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의 한 수입업체 대표는 “불황을 모르는 국내 시장 특성상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위기가 오히려 명품 업계엔 기회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에르메스는 올 1월 1일(현지시간) 유럽에서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핸드백·지갑·스카프·액세서리 등 주요 제품 가격이 약 5~10% 상향 조정됐다. 국내에선 닷새 후인 1월 5일부터 일부 제품 가격이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상향 조정됐다. 에르메스 입문 백으로 알려진 ‘가든파티36’ 가격은 기존 473만원에서 482만원으로 약 2%, ‘피코탄18’ 핸드백은 343만원에서 354만원으로 약 3% 올랐다. 에르메스에 이어 루이비통은 1월 7일 자정을 기해 일부 제품의 가격을 올렸다. 스테디셀러 핸드백 ‘알마BB’ 가격은 175만원에서 182만원으로 4% 올랐다. ‘포쉐트 악세수아’ 핸드백은 78만원에서 98만원으로 25.6%, ‘토일레트리 파우치15’는 51만원에서 60만원으로 17.6% 인상됐다. 최근엔 카퓌신 등 일부 품목의 가격을 또다시 인상했다. 1월에 이어 2월에도 일부품목의 가격이 올랐으니 1분기에만 세 번째 가격인상이다. 샤넬은 지난해 5월과 11월, 루이비통은 지난해 3월과 5월에도 가격 인상을 진행한 바 있다. 업계에선 “올 상반기 내 주요 명품 브랜드 가격이 또다시 인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매년 가격이 인상되니 명품 구매를 재테크에 비유한 ‘샤테크(샤넬+재테크)’ 등 신조어가 일상어로 통용될 만큼 대중화되기도 했다. 지난해 봄 결혼식을 올리며 예물로 에르메스의 핸드백을 구입한 손정숙(가명) 씨는 “제품을 구입한 후 올 1월까지 총 3번의 가격인상이 있었다”며 “지난해엔 마치 주식을 산 것처럼 뿌듯하기까지 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처럼 코로나19로 인한 불황에도 명품 브랜드가 가격 인상을 단행할 수 있었던 건 수요가 건재하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해 표면적으로 결혼식은 줄었지만 신혼여행을 못 가는 대신 명품시계나 핸드백으로 눈을 돌리는 신랑 신부가 늘었다”며 “이 고정적인 수요가 국내 명품시장의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국내 진출한 한 명품시계 브랜드의 매니저는 “지난해 봄과 가을 시즌에 결혼식 수요가 있기도 했지만 2030 젊은 층의 구매도 상당히 늘었다”며 “브랜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명품시계는 생각보다 마진이 커 코로나19 영향에도 매장 운영이 원활하다”고 전했다.

    사진설명
    ▶명품시장의 주 고객층으로 떠오른 2030세대 앞서 2030세대의 명품 소비는 실제 백화점의 명품 매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명품 매출에서 20대와 30대 구매 비중이 각각 10.9%, 39.8%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두 세대의 비중을 합하면 50.7%로 절반을 넘어선 수치다. 롯데백화점도 2030세대의 명품 매출 비중이 2018년 38.1%, 2019년 41%, 지난해 46%로 매년 상승폭을 키우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지난해 2030세대의 명품 구매가 전년 대비 33% 증가하며 개장 이래 처음으로 전체 명품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를 넘어섰다. 특히 20대의 명품 구매가 빠르게 늘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지난해 고객 연령대별 명품 매출 증가율을 살펴보면 20대가 37.7%로 28.1%의 30대와 24.3%의 40대를 앞질렀다.

    백화점 명품 시계 매장의 한 매니저는 “20대 고객은 취향이 분명하다”며 “3040세대가 매장에서 여러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결정한다면 20대는 셀러브리티가 차고 있는 시계를 지목해 구매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 명품 브랜드 판매담당 매니저는 “큰손으로 떠오른 20대의 성향을 파악해 영화, 드라마 PPL이나 셀러브리티 협찬 등 마케팅 방향도 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2030세대를 유치하기 위한 백화점들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업계 처음으로 지난 2월 2030세대 전용 VIP 멤버십 제도인 ‘클럽 YP’를 선보였다. 올여름에는 더현대 서울과 판교점에도 클럽 YP 회원 전용 라운지를 열 계획이다. 롯데백화점은 명동 본점 리모델링을 통해 2030세대가 선호하는 컨템퍼러리 브랜드에 특화된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오는 4월 하이주얼리·워치존의 명품시계 브랜드 일부를 남성 의류매장으로 이동시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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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Z세대 선호, 온라인 명품 플랫폼 급성장 전체 명품시장에서 온라인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도 늘었다. 2030세대의 영향력에 언택트 문화가 이어지며 명품 브랜드의 온라인 시장 진출이 맞닿은 결과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이커머스) 명품시장 규모는 1조5957억원으로 추정된다. 2019년 시장 규모(1조4370억원)보다 10.9% 증가했다. 국내 명품 플랫폼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명품에 특화된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자체 온라인몰 ‘에스아이빌리지’는 지난해 10월 말 이미 연간 매출 목표액(1000억원)을 조기 달성했다. 지난해 에스아이빌리지의 고객 중 2030세대의 비중(구매금액 기준)이 62.5%에 달한다. 명품업계도 온라인 시장을 새로운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까르띠에’와 ‘프라다’가 국내 공식 온라인몰을 오픈했고, ‘구찌’와 ‘샤넬’도 각각 네이버와 카카오톡 등 온라인 플랫폼에 입점해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의 온라인 시장 진출과 관련해 글로벌 회계·컨설팅업체 딜로이트의 분석이 이채롭다. 딜로이트는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 ‘글로벌 명품 산업 2020’에서 “2020년 9월 명품 산업이 아마존과 처음으로 협업하기에 이르렀는데, 미리 선정되었거나 초대받은 소비자들만을 대상으로 명품을 판매하는 ‘숍인숍(Shop in Shop)’ 플랫폼을 발족시키는 등 새로운 접근 방식을 선보이기도 했다”며 “하지만 특별한 고객 경험을 제공하는 오프라인 매장은 온라인 매장으로 대체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안전 위생규칙(방역)이 철저하게 이루어짐에 따라 옴니채널 등의 판매방식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제약 사항들의 극복이 가능해질 것이며, 이를 통해 매장에서의 소비자 경험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찌, 엑소 카이와 함께한 KAI x Gucci 컬렉션
    구찌, 엑소 카이와 함께한 KAI x Gucci 컬렉션
    ▶온라인과 함께 점점 커지는 중고명품시장 딜로이트는 ‘글로벌 명품 산업 2020’에서 명품 리세일 트렌드도 언급하고 있다. ‘중고’라는 단어가 ‘영원한 소유’로 바뀌면서, 명품 2차 리세일시장(중고시장)이 1차 구매시장의 상품 수요를 오히려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딜로이트는 “온라인 시장이 2차 리세일시장의 성장을 가속화시킨 측면도 있다”며 “2025년에는 1차 구매시장과 2차 리세일시장 전체에서 개인 명품 판매의 25%가 온라인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중고제품을 거래하는 국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입명품을 다루는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다. 남성과 여성으로 항목이 분리된 가방, 신발, 의류 등의 제품에 대해 매일 새로운 판매와 구매 희망 글들이 올라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명품은 비싸다는 인식이 중고명품시장을 통해 옅어졌다”며 “명품은 중고라도 관리된 상태에 따라 가격 하락폭이 적어 환금성 면에서도 유리하다”고 상황을 전했다.

    딜로이트는 2018년 162억달러(약 18조5200억원) 규모인 명품 2차 리세일시장이 연평균 15.5% 성장해 2026년 685억달러(약 78조3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 온라인 중고명품 거래 플랫폼 ‘더 리얼리얼’의 총 거래액은 2017년 4억9220만달러(약 5630억원)에서 2019년 10억달러(약 1조1400억원)를 돌파하며 2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중고명품 거래 플랫폼에서 인기리에 거래되는 루이비통 모노그램 캔버스 포쉐트 메티스 토트 겸 숄더백
    중고명품 거래 플랫폼에서 인기리에 거래되는 루이비통 모노그램 캔버스 포쉐트 메티스 토트 겸 숄더백
    ▶오프라인 매장도 다시 불 밝혀 이처럼 명품에 대한 든든한 수요와 실적 성장은 온라인 시장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매장의 재개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임대료가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에 다시금 명품 브랜드의 플래그십스토어가 들어서는 것. 우선 2019년 한국지사를 설립하고 국내 직진출한 돌체앤가바나가 지난 2월 청담동 명품거리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열었다.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이 운영하는 아틀리에 장 누벨이 건축 설계와 인테리어를 담당했고, 블랙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4개 기둥과 투명한 유리 실린더를 통해 거리에서도 하우스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내부는 빛에 따라 반짝이는 블랙 마르퀴나 마블 모자이크 바닥의 단일 나선형 경사로를 활용해 모든 층을 연결하고 있다. 인테리어는 여러 음영과 마감의 블랙을 활용해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 광택이 있는 블랙 글라스, 잿빛 콘크리트, 세련된 망고나무와 블랙 양극 산화알루미늄을 조화롭게 디자인한 게 특징이다. 건물 위 테라스에는 거대한 반원형 캐노피 아래 모던한 감성 공간을 구성했다. 우아한 블랙 메탈 의자와 곡선 형태의 화강암 바 카운터를 갖춘 테라스를 만들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생로랑은 이르면 상반기 오픈을 목표로 플래그십스토어를 단장 중이다. 위치는 압구정로데오역 3번 출구에서 400m 떨어진 곳에 자리할 예정이다. 바로 옆에는 막스마라 플래그십스토어가 들어서 있고 길 건너편에는 페라가모 플래그십스토어가 마주보고 있다. 생로랑은 국내 시장에서 성장세가 돋보이는 브랜드 중 하나다. 업계에선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를 글로벌 앰배서더로 기용해 효과를 높이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청담동 명품거리와 도산공원 등지에 명품 패션, 뷰티 브랜드 매장의 오픈이 이어지고 있다”며 “한동안 조용했던 시장에 활기가 돌며 유명 맛집들도 상권에 다시 합류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7호 (2021년 4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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