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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원의 클래식 포레스트] 눈 내리는 밤에 듣는 시벨리우스, 결정적 명작에 투영된 인생의 단면
입력 : 2021.02.04 10: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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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눈이 내린다. 올겨울 들어 벌써 세 번째 맞는 대설(大雪)이다. 근래 이렇게 눈이 자주, 많이 내린 겨울이 있었나 싶다. 아직은 하얀 눈이 가지런히 쌓여가는 한밤의 거리와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며 잠시 낭만적 상념에 젖어본다.
눈이 내릴 때면 생각나는 음악가가 있다. 자신의 여섯 번째 교향곡을 두고 “이 곡은 언제나 내게 첫눈의 내음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던 장 시벨리우스. 일반적으로 ‘겨울 작곡가’라면 러시아의 차이콥스키가 보다 유명하고 친숙하지만, 지금처럼 눈발 흩날리는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그의 음악이 듣고 싶다.
장 시벨리우스
연주시간 8분 안팎의 관현악곡인 ‘핀란디아’는 오케스트라가 장렬한 울림과 비장한 선율을 부각하며 출발하는데, 마치 시련에 처한 핀란드의 현실에 대한 비탄을 토로하는 듯하다. 중반으로 접어들면 힘차고 활력 넘치는 음률과 함께 결연한 저항의 의지가 솟아오르고 치열한 투쟁이 전개된다. 종반에는 감흥에 찬 분위기 속에서 찬가풍 선율이 성스럽게 울려 퍼지며 핀란드의 승리와 영화로운 미래를 암시한다. 이 곡은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연주되어 핀란드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는 한편 시벨리우스에게 국제적 명성도 안겨주었다. 이후 시벨리우스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자리매김했고, 핀란드 정부로부터 종신연금을 받으며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핀란드는 1917년 러시아 혁명기의 혼란을 틈타 독립을 선언했고 이듬해 공화정을 수립했다.
▶표제적 교향시와 추상적 교향곡의 대가 92세까지 장수했던 시벨리우스는 클래식 음악의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방대한 수량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 돋보이는 것은 다음의 두 장르이다. 먼저 ‘교향시(Symphonic Poem)’ 또는 ‘음시(Tone Poem)’라 불리는 곡들인데, 교향시란 관현악을 통해서 문학, 회화, 철학 등의 음악외적 내용을 표현한 표제음악의 일종으로 19세기 중엽 프란츠 리스트가 창시한 장르이다.
시벨리우스는 주로 핀란드의 민족서사시인 ‘칼레발라’에서 소재를 취해 교향시를 썼다. ‘칼레발라’에 수록된 전설들이 핀란드인 고유의 기질과 정신, 대자연의 섭리와 신비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중 음산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와 잉글리시혼(목관악기의 일종)의 적막하고 애처로운 선율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투오넬라의 백조(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물 위에 떠있는 신성한 새)’가 특히 유명하고, 교향시는 아니지만 기묘한 환상에 사로잡힌 마술적 리듬의 향연이 펼쳐지는 ‘슬픈 왈츠’도 콘서트의 단골 앙코르로 연주될 만큼 인기가 높다.
핀란드 헬싱키 시벨리우스 공원의 기념비
▶암울했던 시절에 탄생한 걸작 한편 시벨리우스는 “교향곡 작곡은 인생의 여러 단계에 있어서의 신앙고백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그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에도 적용된다. 시벨리우스의 작품들 가운데 공연장에서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이 결정적 명작은 그가 존경했던 브람스를 본받아 독주부와 관현악부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교향곡 같은 협주곡’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곡은 위기의 산물이었다. 작곡 당시 30대 후반의 시벨리우스는 여러 모로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건강에 이상이 생겼고 경제난에 시달렸으며 창작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해 고심했다. 무엇보다 ‘교향곡 제2번’의 대성공 즈음 찾아든 불청객인 귀의 통증이 계속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는 어쩌면 베토벤처럼 청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이 협주곡은 그 암울했던 시절의 반향처럼 보인다. 한때 바이올리니스트를 지망했던 시벨리우스는 바이올린 솔로에 자신의 내면을 투영한 듯하다. 장대한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1악장에서 바이올린이 빚어내는 고뇌 어린 표정과 안타까운 탄식, 격렬한 투쟁의 몸짓은 그 무렵 그의 심정이 얼마나 애틋하고 절실했는지 너무도 생생하게 전해준다. 목관부의 화음으로 시작되는 2악장으로 넘어가면 ‘숲과 호수의 나라’의 울창한 침엽수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사이를 산책하는 바이올린 솔로는 상처 입은 영혼의 진지한 사색과 진솔한 독백을 들려준다. 클라이맥스에는 감동적인 카타르시스가 기다리고 있다. 3악장은 이상야릇하다. 시종 묵직한 리듬이 바탕에 깔리고 음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경묘한 스텝과 정열적 제스처를 넘나드는 바이올린 솔로의 춤사위가 현란하게 펼쳐진다. 이것은 북구 요정의 춤인가, 아니면 죽음의 무도인가? 1악장의 투쟁과 2악장의 깨달음 뒤에도 아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사실 요즘 같은 시국에 낭만적 상념은 오래 가지 못 한다. 이내 어지러운 잡념들이 교차하기 일쑤다. 이를테면 지난번 큰 눈이 내렸을 때 출퇴근길에 고생했다던 지인들의 경험담, 뉴스에서 보았던 눈길 교통사고 장면 등이 스쳐간다. 안 그래도 일그러진 우리의 일상에 또 하나의 불편과 혼란이 더해지리란 생각에 한숨이 뒤따른다. 이번 대설과 지난여름의 폭우가 공히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때문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떠오른다. 그리고 그 모두가 인간의 과도한 욕심이 자초한 재앙이라는 인식, 그것은 코로나19 시대에 한층 가속화되고 있다는 환경오염에 대한 우려와 고민으로 번져간다. 과연 우리는 이 어둡고 기나긴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보다 진중하고 겸손하게, 치열하고 끈질기게 사안을 마주할 일이다.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5호 (2021년 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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