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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인문학산책] 스페인 내전… 잊을 수 없는 꿈의 연대기
입력 : 2020.12.09 15:5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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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의 죽음도 결국 나를 갉아먹는다
잉그리드 버그먼과 게리 쿠퍼가 주연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57. For Whom the Bell Tolls)>라는 영화가 있었다. “키스할 때 코는 어느 쪽에 두어야 하죠”라는 여주인공 마리아의 대사가 가슴을 덜컹이게 한 명화였다. 나는 소년 시절 이 영화를 보고 제목을 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했는지 궁금했다. 알 듯 알 듯하면서도 뭔가 명확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감독 샘 우드는 원작인 헤밍웨이 소설 제목을 그대로 영화 제목으로 가져다 썼다. 그렇다면 헤밍웨이는 왜 이 문장을 소설 제목으로 달았을까. 알아보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영국 시인이자 성직자였던 존 던의 시 제목이었다.존 던
존 던이 살았던 17세기 영국 런던에는 마을에서 사람이 죽으면 교회당의 종을 치는 풍습이 있었다. 종소리가 들리면 귀족들은 하인을 시켜 누가 죽었는지 알아오라고 시켰다. 하인이 돌아와서 누가 죽었는지를 알려주면 귀족들은 그 이름을 듣고 장례에 참석할지 안 할지를 판단했다. 인류애를 중시한 박애주의자 존 던은 이런 귀족들에게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서 울린다”고 일갈했다. 두 가지 의미가 읽힌다.
우선, 당신도 죽음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경고가 읽힌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의미 하나가 또 있다. 그 어떤 죽음도 ‘남의 일’로 치부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하인을 시켜서 대충 알아보지 말고 네 발로 뛰어나가 공동체의 손실에 대한 애도를 표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구절인 것이다. 누구의 죽음이든 인류 입장에서 보면 결국 손실이라는 존 던의 철학이 느껴진다.
헤밍웨이가 존 던의 시를 소설 제목으로 쓴 이유도 명확해진다.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했다. 파시스트파와 공화파가 싸운 전쟁인데, 공화파에는 국제 의용군이 포함돼 있었다. 스페인의 자유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전 세계 젊은이들이 의용군에 가담했다. 다른 나라의 아픔일지라도 그것은 곧 지구의 아픔이므로 결국 나의 아픔이기도 하다는 인류애가 실현된 전쟁이었다. 헤밍웨이도 의용군에 참여했고 그 경험을 소설에 녹였다. 제목을 고민하던 헤밍웨이는 존 던의 시를 제목으로 쓰기로 결정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상이니까요.”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포스터와 한 장면
우리는 아나키스트(Anarchist)를 ‘무정부주의자’라고 번역한다. 난 그 번역이 일본의 한 대학생이 번역한 걸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오해는 바로 그 번역에서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무정부주의’라는 번역 때문에 나는 ‘아나키스트’하면 정부가 없는 혼란 상태를 먼저 떠올렸다. 아나키스트는 러사아어인 ‘트라보로 아나르키아 아나키스트’라는 말이 그 어원이다. ‘선장 없는 배의 주인들’이란 말이다.
그러니 정확히 말해서 아나키스트는 ‘자유연합주의’ 정도로 번역되어야 한다. 인간해방을 지향하기는 하지만 독재를 반대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와도 다르다. 물론 이 이념은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었다. 아나키즘은 근대로 넘어오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논할 때 반드시 거론해야 하는 중요한 정치사회적 경향이었다. 물론 한반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제국주의 이론과 아나키즘이 대척점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다윈의 적자생존 학설이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침략전쟁을 변호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나키스트는 슬픈 단어다. 자신의 신념과 대의를 위해 유독 치열하게 투쟁했던 아나키스트들은 일제 강점기에서 그 어떤 독립운동 세력보다도 가혹한 탄압을 받았다. 광복된 다음에도 아나키스트의 불행은 멈추지 않았다.
권력에 의한 통치를 부정했던 아나키즘은 남북한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부정하며 새로운 대안을 모색했던 그들은 그렇게 망명지의 뒷골목에서 꿈을 접어야 했다.
이 그래픽 노블은 재미보다는 성숙을, 자극보다는 고뇌를 전해준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의 저자들은 책 한 권으로 문학과 만화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원작자 안토니오 알타리바는 유스카디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며 바스크 대학 불문학 교수이기도 하다. 문학의 자기장 안에서 살아온 그가 텍스트의 이미지화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한 본격적인 작업의 결과물이 바로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킴’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주아킴 아우베르트 푸치 아르나우다. 그는 미국 언더그라운드 만화에 영향을 받은 작가다. 스페인 풍자문학 주간지 ‘목요일 El Jueves’의 창립 멤버로 ‘스페인 최고의 만화가’라는 평단의 찬사를 받는 사람이다. 이 둘의 조합은 한 아나키스트 노인의 인생을 세계로 확장시켰다. 순수한 열망으로 싸우고 그 끝에서 죽음이라는 형식으로 날아오른 아버지의 인생은 개인적이었지만 시대적이었고, 세계적이었다.
만화 <아나키스트의 고백>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굵고 거친 듯한 선으로 그려낸 만화에서 시종일관 ‘아름다운, 그러나 이루어지기 힘든 꿈’을 향해 헌신한다. 1910년 스페인 사라고사의 작은 시골에서 태어난 아버지 안토니오는 땅 넓히는 일에만 골몰하는 탐욕스러운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치이면서도 늘 다른 세상을 갈구했다. 그의 첫 번째 꿈은 ‘자동차’였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간 그는 그렇게 소망하던 운전면허증을 땄지만 그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스페인은 내전이라는 참혹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민중의 힘으로 공화정이 설립됐지만 프랑코군의 쿠데타로 위기에 처했고 스페인은 전쟁터가 되어갔다. 민중들이 세운 공화국에서 멋진 차를 타고 마음껏 달리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안토니오는 ‘아나키스트’라는 더 큰 꿈에 가담한다.<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전쟁이 끝난 후, 전우와 사업을 시작하고, 공장을 인수하고, 먹고 살 만큼의 돈을 벌고, 평범한 가정도 꾸렸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행복하지 않다. 그가 버는 돈이 가난한 사람을 속이고 착취한 대가이기 때문이었다.
안토니오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려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지워져 가는 걸 보며 회한에 빠진다. 그러면서 그는 늙어간다.
이제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많은 나이. 요양원에 갇혀 살던 그는 어느 날 꿈을 향해 날기로 결심한다. 그는 결국 91세의 나이에 요양원 창문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사람들은 그것을 자살이라고 했지만, 그는 꿈을 향해 날아올랐을 뿐이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안토니오의 비극적 생애가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림 작가 킴의 가족사 덕분이기도 했다. 킴 역시 프랑코에 의해 희생당한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그러니까, 같은 아픔을 지닌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자란 킴과 안토니오의 만남은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라는 리얼리즘적이면서도 환상문학 같은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사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그림과 연출, 풍부한 비유와 상징의 활용이 돋보이는 그림은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을 단순한 고백이 아닌 예술로 끌어올렸다. 장엄한 비행으로 끝맺은 안토니오의 삶이 그의 후대들의 손길로 재탄생한 것이다. 우리는 꿈을 꾸었다. 이 세상을 살다 간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허연 매일경제 문화스포츠부 선임기자·시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3호 (2020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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